가타기리 주류점의 부업일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8
도쿠나가 케이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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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엇이든 배달해준다는 가게가 있다면 나는 무슨 배달을 주문할까. 오래전 이십대 시절의 나처럼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다시 한번 신랑의 사무실에 배달해 달라고 해볼까. 새삼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뭔가 설렘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처음 이 책을 받아보았을때 전에 읽었던 오야마 준코의 『하루 100엔 보관가게』의 포맷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 하루 100엔만 내면 무슨 물건이든 맡아준다는 설정이었다. 어떤 물건을 맡겼든 비밀을 지켜주고 직접 맡긴 사람이 나타날때까지 보관해주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따스한 감동을 느꼈던 작품이었다. 도쿠나가 케이의 작품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본업은 가타기리 주류점인데 주류점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어 물건을 배달해주게 된 즉 부업을 하게 된 이야기의 설정에 기대감을 안고 읽게 되었다.

 

  프롤로그에서의 시작은 7년후의 자신에게 편지를 배달해달라는 주문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난 처음에 주류점에서 단기 알바를 하게 된 마루카와가 주인공이 아닐까 했다. 그곳의 작은 사장이라 불리는 가타기리와 가게를 보는 후사에와 함께 가게를 이끌어가는게 아닐까 했지만 마루카와는 단기 알바로 끝나고 가타기리가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말이 없고 저혈압이 심해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든 가타기리는 무슨 사연이 있었길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가 하던 주류점을 이어 받았을까. 무언가 생각에 잠기는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묵묵히 주문이 들어온 배달을 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배달해주는 건 한 연예인을 좋아하는 열성팬으로부터 음식물을 직접 배달하는 일에서부터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손자에게 자전거를 배달해주는 등 배달권에 들기만 하면 손님이 원하는 물건은 무엇이든 배달해 주었다.

 

 

 

  소설의 중반쯤 되었을까. '악의'라는 소제목의 챕터에 한 회사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여성 요코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회사의 젊은 과장으로부터 아줌마 소리를 들으며 자신을 무시하자 스트레스를 이기려 컴퓨터로 물건을 주문하다가 무엇이든 배달한다는 가타기리 주류점의 홈페이지를 보게 되었다. 요코는 주문서에 악의라는 것을 주문하고 주류점을 방문하기에 이른다. 요코는 자신을 무시하는 과장에게 해가 되지 않은 한에서 약간의 곤란함을 겪었으면 했다. 이 챕터에서는 가타기리의 사연도 나오는데, 그는 한 바닷가에 서 있었다. 회사를 다닐적 가장 친한 친구가 된 자신이 가야하지만 부품을 배달해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고, 자신의 부탁으로 부품을 배달하러 가던 친구가 사고로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갔으면 그 친구는 죽지 않았을테고 친구가 좋아하던 여자랑 결혼도 했을텐데 하는 자책감이 그는 회사까지 그만두게 되었던 것이다. 그나마 주류점의 부업으로 배달일을 하게 되며 그런 생각들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이후 7년후의 자신에게 배달해달라는 주문해놓았던 모치즈키 아이가 방문했고, 가타기리는 모치즈키 아이를 찾기 위해 수소문하게 된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의 사연들을 배달해 주면서,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기원하면서 벗어나는 건 아닐까. 열세 살의 소녀가 어느새  스무 살이 되었고 그녀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가타기리는 비로소 자신의 불행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점점 발전하는 도쿠나가 케이를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새로운 작가의 발견이랄까.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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