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애인에게
백영옥 지음 / 예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상대방을 마주보는 사랑이 아닌 뒷모습을 사랑한다는 것은 굉장히 마음 아픈 일이다. 앞모습을 마주할 수가 없다. 자신에게 뒷모습을 보인 사람은 또다른 사람의 뒷모습을 사랑하고 있으므로. 그럼에도 그의 뒷모습이라도 보지 못하면 너무 아플 것이기에 그 마음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마치 숙명처럼 찾아든 사랑, 나를 향해 뒤돌아보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 마음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 이 소설에 있었다.

 

  원래는 이정인의 이야기로 된 짧은 단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한 권의 장편소설로 탄생한 『애인의 애인에게』는 세 여자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사랑이야기이지만 서로 사랑하는게 아닌 누군가의 뒷모습을 사랑한 짝사랑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소설을 보면서 느꼈다. 한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쩌면 이렇게도 다른지를. 각기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쓴 남자 '조성주'의 인상은 소설 속의 화자의 입장에 따라 달리 보였다. 수영을 바라보는 성주. 다른 여자 마리와 살고 있는 성주의 모습들이.

 

  수영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성주의 시선을 본 정인은 성주가 마리와 살고 있었던 집에, 그들이 이별여행을 떠난 한달 동안 세를 들어와 머물게 되었다. 성주와 마리가 머물었던 공간, 그들의 침대, 그들의 부엌과 거실에 걸려져 있는 성주의 사진들이 걸려있는 공간에서 정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성주가 머물렀던 공간을 이렇게라도 갖고 싶었던 것일까. 얼마나 짝사랑하게 되면 다른 여자와 머물렀던 공간에 들어와 한 달간의 시간동안 머무를 수가 있을까.

 

  성주를 바라보는 세 여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소설의 전체적인 느낌은 쓸쓸함이었다. 뉴욕에서 예술적 성공을 거두고 싶어했던 성주. 뛰어난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가 경제적인 수입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는 포르노그래피를 찍었던 것. 그럼에도 자신은 나무 등 자연속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어했다. 자신의 사진에 대해 유명한 갤러리스트인 마리의 평가를 물어보면 늘 좋다라고만 말했다. 마리는 정작 성주의 작품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시아 사람들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오리엔탈리즘. 정작 미국인들은 그런 사진들을 원했으니까. 마리는 성주의 사진들 중 차라리 포르노그래피를 더 찍었으면 했다. 성주만의 시각으로 사진들 속의 여자들의 모습을 부각시켰으면 했다.

 

  아마도 성주 본연의 모습을 바라 볼 수 있었던 사람은 마리 일 것이다. 동거를 시작하고 마리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줄 알면서도 성주와 결혼했다. 마리가 가진 영주권, 마리와 헤어지면 임시 영주권이 없어질 줄 알면서도 한번도 자신에게 간청하지 않았던 성주때문에 슬펐다. 실패한 사랑, 다른 여자를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도 뉴욕에 남기위해 자신을 이용하지 않았던 그 때문에 마리는 슬펐다.

 

 

 

 

  아무리 사랑이란 것이 주는 사랑이 좋다고 해도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오래도록 누군가를 짝사랑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나에게 오지 않은 사람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은 결국 그 사람에게 내가 주는 사랑의 깊이만큼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강하기 때문일수도 있다는 것을. 그가 주는 사랑에 목말라하다가 결국은 지쳐버리고 마는게 사랑일수도 있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성주를 알면서도 그를 사랑하다가 지쳐버린 마리의 마음처럼.

 

우리는 마음 깊은 곳의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각자의 갑옷을 입는다. 누군가에게 그 갑옷은 수없이 많은 전시 목록일 수도, 수없이 써댄 책일 수도, 직함이 다른 여러 개의 명함일 수도 있다. 나는 컴퓨터의 모니터를 껐다. 긴 목록들 사이로 그의 사진들이 그림자처럼 흘러가듯 펼쳐졌다.

내 갑옷은 무엇이었을까. (241페이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임에도 사랑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감정들. 그 감정들과 마주한 사람들의 쓸쓸한 사랑이야기였다. 다만 나를 사랑하는 남자를 바라보는 이야기는 다른 여자들의 이야기와는 달랐다. 나는 사랑하지 않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데는 시선은 쓸쓸하지는 않으므로. 

 

인간은 각자의 사랑을 할 뿐이다.

나는 나의 사랑을 한다.

그는 그의 사랑을 한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나를 사랑할 뿐, 우리 두 사람이 같은 사랑은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너무나 외로워 내 그림자라도 안고 싶어졌다.  (247페이지)

 

  위 문장에서처럼 모두들 각자의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들. 그 사랑이 상처가 되든 기쁨이 되든 고통이 되든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때로는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향한, 사랑에 빠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작가는 이런 것들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실패한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독백들이 여기, 이 소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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