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하는 소설 - 미디어로 만나는 우리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김애란 외 지음, 배우리.김보경.윤제영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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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를 테마로 한 소설집으로 창비교육에서 펴냈다. 청소년과 2030 독자들에게 미디어를 통한 새로운 시선과 공감을 선사하는 소설로 김애란 작가를 포함해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테마소설의 특징이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거다. 작가들의 다양한 세계와 사고를 알 수 있었으며 우리 또한 마음의 문을 열고 다양한 시각을 기를 수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언어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김애란의 침묵의 미래에서는 잊혀져 가는 언어에 대하여 파고든다. 나는 누구일까를 묻는데, 말의 언어, 표현의 언어가 사라진 세계의 탐험이다. 구소현의 시트론 호러는 책을 좋아하는 유령이 주인공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물건을 움직이거나 사람의 몸을 스치는 능력이 있는 건 아니다. 살아있을 때 책을 좋아하지 않았던 유령 공선은 너무 심심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만 책 읽는 누군가를 따라다녀야 했다. 유령이 책을 읽는다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인간이 책장을 넘기지 않으면 책을 읽을 수 없기에 부지런한 독서가를 좋아한다. 존재하고 있지만 살아있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며 누군가에게 닿고 싶은 유령의 마음이 애틋하다. 삶도 죽음도 누군가와 연결해야만 나아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만 같다.




 


오선영의 후원명세서는 아동 복지 재단의 직원이 바라보는 후원자와 후원 아동의 이야기다. 복지 재단의 후원자가 포털 사이트에 올린 글 때문에 일어난 내용이다. 후원 아동에게 갖고 싶은 물건을 말하면 선물을 사서 보내주겠다고 했다가 자기도 신어보지 못한 30만 원 상당의 한정판 나이키 신발을 말하자 불쾌했으며 복지 재단의 무례하고 어이없는 답변에 화가 났다는 내용이었다. 결연 관리팀인 윤미도 아픈 엄마와 함께 사는 보호아동이었다. TV에 나오면 후원금이 많아 출연하게 되었을 때, 좋아하던 책으로 데미안을 말했으나 피디에 의해 키다리 아저씨로 변경되어 학교에서 쥬디로 불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갖고 싶은 것을 절대 말하지 말 것을 교육받았으나 빨간 운동화를 사서 신은 고등학생을 보며 어릴 적 욕망과 결핍의 순간을 떠올렸다.

 


서이제의 위시리스트는 인간의 소비 욕망을 드러낸다.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려 하지만 쉽지 않다. 갖고 싶은 물건이 왜 이리 많은 것이냐. 장바구니와 위시리스트가 쌓여간다. 소비 심리의 상관관계를 말하는 소설이었다 김혜지의 지아튜브는 유튜브 채널의 폐해를 말하는 내용이다. 돈을 버는 매개로 아이를 이용하는 부모와 놀아주지 않는다며 슬퍼하는 아이가 안쓰럽다. 엄마 아빠가 다시 지아를 사랑하게 글을 내려달라고 말하는 아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런 아이가 없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중고 거래 앱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필요 없는 물건을 사고파는 사이트로 원목 식탁을 무료나눔하며 일어난 이야기가 임현석의 무료나눔 대화법이다. 물건을 가져가겠다는 사람과 심플한 대화만을 원할 뿐이었다. 직장에서도 비슷한 연배가 편하고 젊은 사람들과는 불편했다. 소통의 문제가 있어 보이는 그는 원목 식탁을 판매하면서 비로소 타인과 대화하는 법을 배운다. 메신저로 게임 사용법을 물어보며 관계의 변화가 생긴다.

 


김보영의 고요한 시대와 전혜진의 바이센테니얼 비블리오필은 근미래의 우리를 상상할 수 있다. 자기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마인드넷으로 대통령 선거 유세를 바라보며 경험하는 이야기와 인공지능이 인간을 보좌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책은 인간에게 중요한 것인지를 묻는 소설이다. 책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 그 집념에 대하여 말하는 소설은 우리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소통을 강조하지만, 소통이 어려운 시대다. 세대 간의 차이 혹은 말이 통하지 않아 서로를 외면한다. 미디어와 공존하는 시대, 사람에게 가닿는 작은 노력이 관계의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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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마들렌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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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은 미래에 목이 잘려 죽는 꿈을 꾼 여성이 있다. 함께 사는 과자 친구 마들렌에게 또 꿈을 꾸었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 잠이 깬 순간 마들렌이 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팔에 누군가의 체온이 느껴졌다. 다른 나였다.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말하는 존재였다. 나는 출근을 하고, 다른 나는 마들렌을 따라 법원에 가기로 했다. 퇴근 후 마들렌이 눈치채지 못하게 찜질방, 모텔 등을 전전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라고 할 만큼 바쁠 때 또 다른 내가 있다면 할 일을 분산해도 되겠다는 상상을 해 본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지 실제로 두 명이 존재한다면 난감할 것 같다.

 


우리를 상상의 나라로 안내하는 소설이었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연결하는 듯 머릿속에서 연상되는 그림을 따라가다 보며, 소설을 읽는 이유를 깨달았다.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서울에서 강원도로 향하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감염된 자들을 피해 차로만 움직일 수 있다. 이런 세상에서도 밤에는 잠을 자야 하고 낮에는 움직여야 한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순간에 대비해 도끼를 들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친절을 베풀지도 않는다. 만약, 운전하지 못한다면 감염자를 피해 달아나기도 힘들 것 같다. 운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차를 바꿔가며 남편이 있는 강원도로 향할 수 있는 거다. 그녀의 새로운 동승자인 남자애는 감염자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감염되지 않았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학생들이 떠올랐다. 바이러스 감염자들의 이야기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상상의 세계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직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나는 남자애와 비슷한 종일까. 아니면 조만간 걸릴 수도 있을까.

 




일곱 편의 소설 모두 주제가 다르며 느낌도 달랐다. 소설의 재미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재미있다, 재미있다 중얼거리며 읽었다. 젤로의 변성기는 애니메이션의 시리즈에서 몇십 년째 소년 역할을 하고 있는 오십 대 성우의 이야기다. 아이돌 외모에 팬덤을 가진 여자애와 함께 오디오 녹음하며 젊음과 늙음의 경계에 선 인물들을 그린다. 소년 목소리를 냈던 그녀는 소년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생각과 다르게 나오는 목소리는 마치 소년이 변성기를 거치는 듯하다.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석류를 먹는 그녀를 상상해보니 어쩐지 안타깝다. 늙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복잡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한나와 클레어는 호텔 메이드로 일하는 여성과 미스터리 쇼퍼 활동으로 분기 투숙 바우처를 친구에게 받은 여성이 나온다. 손님과 메이드.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고 클레임을 받기도 하지만 이들의 위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거다. 서로의 위치에 따라 우리는 다양한 관계를 형성한다. 때로는 갑의 위치에서, 어느 순간에는 을의 위치로 바꿔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 글을 쓰기 전, 남편이 틀어놓은 TV 프로그램에서 남성의 목소리를 가진 여성 출연자를 보고 정체를 알고 싶어 검색했더니 트랜스젠더라고 나왔다. 김수진의 경우는 트랜트젠더인 김수진이 인공 자궁 이식 수술 실험에 참여하는 내용이다. 엄마가 되고 싶었던 김수진이 수술에 성공하고 남자일 때 채취해둔 정자를 이용해 수정, 착상의 과정을 겪는다. 엄마가 되는 과정이 이렇게 힘든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새로운 가족관계의 변화를 엿본다.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정된 사고방식으로는 도태될 뿐이다.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고, 이해해달라고 말하지 말자. 내가 이해하면 된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다양한 이야기만큼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살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말을 숨겼던 것처럼, 타인이 말하는 숨은 의미를 제대로 깨우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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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이향규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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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다문화 청소년과 탈북 이주민, 결혼 이주 여성을 돕고 이와 관련된 연구를 해 온 저자의 사물과 기억에 얽힌 사람에 대해 말하는 글이다. 소박한 일상에서 우리는 사물을 보고 사람을 떠올리는 삶을 살아간다. 아픈 남편, 딸 둘과 함께 한국과 영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작가다.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과 영국 생활하며 느꼈던 고국에 대한 그리움, 이웃들의 따스함 때문에 견딜 수 있는 이야기들은 퍽 다정하다.


 

우리나라의 산모는 미역국을 먹는다. 이 습관은 외국에 가서도 변하지 않는지 아이를 낳을 때 미역국을 끓여 밥을 말아서 병원에 갔다고 한다. 미역국에 불은 밥이 맛이 있을 리 없지만, 찬 미역국을 먹는다는 건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이후 마른 미역을 담아 보낸 소포를 떠올리고 엄마의 마음(혹은 돌봄)을 이해한다. 결국 음식은 위로의 한 형태다.




 


저자의 남편 토니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파란색과 하얀색으로 된 팔찌를 손목에 끼고 다닌다. 팔찌에는 저는 파킨슨병 환자입니다. 저에게 시간을 주세요.’라는 문구와 연락처가 적혀있다. 파킨슨병 환자는 떨림 증상 때문에 속도가 느리다. 팔찌를 보여주며 느려도 양해해 달라고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해 보였다. 남편의 속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었는데 팔찌를 보며 생각을 바꾸었다고 했다. 병을 받아들이고, 속도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다.

 


결혼한 지 20년이 되어도, 나는 혼자같이라는 두 바퀴의 균형을 찾느라 종종 휘청댄다.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한다. 혼자여야 하는 일이 있고, 같이 하면 더 좋은 일이 있다. 그러니 어느 한쪽에 너무 마음을 쏟지 말자. 다 혼자 하겠다고 모질어지지도, 늘 같이 하겠다고 애쓰지도 말고, 그저 순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자. 그리고 지금은 내가 그의 뒤를 따라가지만, 내 뒷모습을 보이게 될 날도 올 거다. 짝이 되어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에게 등을 보이면서 긴 시간 함께 가는 자전거 여행 같다. (39페이지)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를 향하는 부부의 모습을 그려 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모습이 다정해 보일 것 같다. 낯선 곳을 가도 덜 무서울 것이며 누군가가 넘어졌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다. 저자가 남편과 같이한 일 중에 자전거 타기가 괜찮은 일이라고 표현했다. 함께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긴 시간 함께 해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삶은 기차 여행이다. 대강의 방향을 정했지만, 그렇다고 경로가 분명한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경유할 수 있다. 어쩌면 목적지가 바뀔 수도 있겠다. 그래도 함께 타고 있는 이들이 많아 안심이다. 사람으로부터 배우고 사람으로부터 위안받을 것임을 안다. 그리고 그 힘을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241페이지)

 


코로나 팬데믹은 사회를 변화시켰다. 실제로 만나지 않고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며,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 때문에 의지가 된다. 저자의 휴대전화 속 이웃들도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만들어졌다. 갑자기 전기가 나갔을 때 도움을 청하자 전기를 고쳐줄 수는 없어도 음식이나 간식을 줄 수도 있다. 불확실한 시대에 서로를 살펴보는 커뮤니티 그룹이 있어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외국에서 김치를 나눠 먹는 풍경을 그려본다. 누군가 김치를 얻었다고 두 통이나 주었다. 그 김치를 학교에 가져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 주고, 저자도 몇 포기 가져와 다양한 음식을 만들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김치 나눔의 정경이 아름답다. 저자는 말한다. ‘김치는 나눔이고 위로고 그리움이고, 고마움이다.’라고.

 


사물을 보고 떠올리는 건 그리운 기억들이다. 따뜻한 음식을 보며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사람에 대해 편견에 갇히지 않는다. 소수의 일원으로 시작되었던 삶이 여러 사람과 깊숙이 연대하며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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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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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들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장면을 디테일하게 표현한다. 탁자의 모양, 소파나 침대, 탁자 위에 놓인 물건들 하나에도 이름을 붙인다. 어느 공간에 손님을 초대했다고 치자. 손님이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물건을 배치하여 그 세세한 묘사에 감탄하게 된다. 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가며 소설을 읽는 효과를 준다. 각자의 색채를 가진 물건과 인물 앞에서 우리 내면의 세계를 구축하게 되는 것 같다.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는 상황 속으로 독자를 이끈다. 대학 생활과 대학에 속한 사람들의 실체, 특별히 뛰어나지 않은 한 인간의 일생이 마치 우리 눈앞에 있는 인물을 마주하는 것 같다. 학문적인 성과나 큰 업적을 남기지도 않았고 화목한 가정도 아니었으며 사랑이라고 일컬을 만한 일에도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저 보통의 인물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윌리엄 스토너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작은 농가의 외아들인 스토너는 고등학교를 마쳤을 때 아버지를 도와 당연히 농사를 지을 줄 알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컬럼비아에 새로운 대학교가 생겼다며 농과대학을 가라고 했다. 2학년 때에야 대학에 온 이유를 깨달았다. 필수과목으로 영문학 개론을 들을 때 강의를 맡은 아처 슬론 교수의 질문 하나가 그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주는 의미를 물었다. 그때부터 농과대 커리큘럼을 따르지 않고 철학과 고대역사, 영문학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삶은 이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바뀌는 것 같다.

 


소설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제1차 세계대전이다. 대학생들이 참전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통했던 두 친구, 데이브 매스터스와 고든 핀치가 입대했다. 스토너는 고민 끝에 징병 유예를 결정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박사학위를 받았다. 데이브 매스터스는 프랑스에 파견되었다가 전사했다. 아처 슬론 교수는 서서히 내리막을 걷기 시작하고,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온 고든 핀치는 대학의 학장 비서로 업무를 시작했다.

 


스토너가 아내와 결혼하기 전, 첫 만남에서 반하게 되어 만남을 청한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도 전 결혼하며 스토너가 상상했던 결혼생활에서 벗어난다. 스토너의 아내 이디스는 그저 아버지의 그늘에서 뛰쳐나오고 싶어 결혼을 선택했던 것 같다. 침대에서 스토너를 거부하고 오로지 임신을 위해서만 관계를 가진 후 아이를 낳자 그마저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디스는 스토너와 딸 그레이스를 통제하고 군림했다. 아이를 낳은 후 돌보지 않아 스토너가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스토너에게 그레이스를 빼앗았을 뿐 아니라 강의 준비와 집필을 하던 공간을 없애 그를 구석으로 몰았다.

 


이디스와 마찬가지로 아처 슬론 교수를 대신할 로맥스 또한 이해하기 힘든 부류였다. 로맥스가 지도하던 찰스 워커 때문에 스토너와 앙숙이 된다. 로맥스가 학과장이 되면서 스토너가 좋아하던 라틴 전통문학과 르네상스 문학 강의를 빼고 1, 2학년을 위한 수업을 맡겼을 뿐이다. 무엇 때문에 스토너를 미워하고 배척했는지 그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방식이 조금씩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 나는 살아 있어. (350페이지)

 




스토너는 어떠한 압박과 반대에도 강의를 멈추지 않는다. 진정한 학자와 교수로 거듭나게 된 사건은 그가 타협을 거절했을 때부터다. 스스로 알에서 깨어 나오듯 그는 예정되었던 강의계획서를 빼고 중세 문학 강의를 하며 비로소 학생들 뿐 아니라 동료 교수들에게 인정받는 교수로 거듭나는 장면은 감동이다. 삶에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거로 인식했으나 그가 농과를 뒤로 하고 영문학에 뛰어드는 순간에도 그는 조용하지만 강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다.

 


문학 애호가들이 뽑은 진정한 인생소설이라고 한다. 한 사람의 평범한 삶이 이토록 감동적이어도 되는가. ‘인생소설이라고 할 만하다. 소설의 마지막, 스토너가 후회하는 부분이 있다. ‘~ 했더라면으로 시작되는 말에 우리의 삶과 대비해 볼 수도 있겠다. 이 소설을 읽는 일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진정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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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뒤에 쓴 유서 오늘의 젊은 작가 41
민병훈 지음 / 민음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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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읽다 보면 느끼는 게 있다. 잊으려고 애쓴 고통스러운 기억들도 결국엔 글로 풀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작가가 자신을 말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글쓰기가 되는 것일까.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1편부터 읽어오고 있다. 드문드문 이어지지만 늘 눈여겨보고 있다. 아마도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선택했던 것 같다. 자신의 아픔을 드러낼 수 없었던 누군가가, 뒤늦게 발견할 수 있는, 아니면 휴지 조각으로 변할 수도 있는 달력 뒤에 유서를 썼을까. 그 고통이 전해오는 것 같아 궁금했다.




 


작가의 이름이 등장하는 자전적 소설이다. 두 편의 소설집이 있지만, 많은 사람이 읽지 않은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아버지의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죽은 아버지를 발견한 기억으로 인도하는 게 아니라, 작가로서 풀어내야 할 숙제처럼 안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함과 동시에 이제야 소설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다. 기억은 단편적이어서 전체적인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과거의 한 장소로 찾아가는 과정이 그의 번민과 맞닿아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꺼내는 게 힘들어 주저하지만 글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기억과 마주해야 한다. 글쓰기의 고통이 드러난다. 아울러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남들이 읽지 않은 소설을 쓴다는 것의 고통.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대한 고민도 엿보인다. 편집자와 나눈 메일은 작가와 편집자 간의 역할에 대해서도 알게 한다. 좋은 편집자란 그가 가진 것을 이끄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흩어진 기억을 모으고, 잊고 살았던 장소에서 마주하는 것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풍경일 수도 있다. 아버지를 발견했던 공간에서의 기억은 이미 잊혔다. 그럼에도 단편적인 기억들이 부유한다. 환경미화원으로 일했던 아버지. 못 박는 소리를 들었지만 무심코 흘려보냈던 일, 창문을 깨고 들어가야 했던 기억들이 그를 괴롭힌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삶을 이해하고 고통을 극복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어떤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랜 기간, 아니 매일 그 일에 대해 생각했다. (9페이지)

 




그가 소설을 완성할 수 있다는 건 기억에서 해방되었다는 뜻이다. 소설을 쓰는 일은 사랑했던 아버지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한 작업이다.

 


모든 건 그의 죽음 때문이 아니다. (151페이지)


 

아들의 문장을 읽을 수 없는 어머니에게도 마음이 언젠가는 닿기를 바라는 염원. 민병훈 작가를 기억하게 해줄 작품이었다.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렸을 지난한 과정이 보였다. 이제는 기억에서 자유롭기를 바란다. 다른 작품에서 삼켰던 그의 문장들이 제대로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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