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법한 모든 것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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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마비된 팬데믹은 새로운 형식의 글로 나타나 우리의 시선을 기억들과 맞물리게 한다. 3년간의 팬데믹 시기를 지나오며 우리는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집 밖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며 기쁨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그 시기가 끝나가며 새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작가들에 의해 변주되는 팬데믹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구병모의 작품세계는 현재와 미래 어딘가를 넘나든다. 과거와 현재 속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소설을 그린다. 이번 작품집에서도 감탄했다. 팬데믹의 세계와 우리의 미래를 보여줄 그 세계에서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관계의 변화를 느끼면서도 우리 사회와 가족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노커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친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에게 따질 것이다. 미안하다고 하지 않은지,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볼 것이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사람은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이후 그는 말을 잃는다.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은 상대방과의 소통이 어렵다. 몸짓언어도 있겠지만, 복잡한 언어를 표현할 때는 그 선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언어를 잃은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며, 자녀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괴롭다. 이해할 수 없고 소통할 수 없는 시간. 후드를 뒤집어쓰고 밖에 나가려는 딸의 얼굴을 확인해야 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딸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해와 오해, 소통의 문제를 말하는 소설이었다.

 


니니코라치우푼타는 초고령 사회에서 노인 돌봄 문제를 말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경제활동을 해야 하고, 요양원에 계신 엄마의 돌봄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직장을 박차고 나온 주인공은 엄마가 있는 요양원의 사무장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엄마가 보고 싶은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 만난 외계인이었다. 외계인의 이름이 니니코라치우푼타다. 죽기 전에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소원을 들어주고 싶은 그는 엄마의 설명을 자세히 듣고 마스크를 만든다. 실장의 얼굴에 마스크를 만들어 씌우고 요양원에 방문하여 만나게 해주고 싶다.

 


있을 법한 모든 것는 로맨스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작가가 로맨스 소설 제안을 받고 작가는 꿈속에서 영화를 보았다. 호텔의 장기 투숙자와 메이드가 교감을 나누는 내용이다. 만나고 싶다는 메모를 남겼다. 꿈속에서도 이 내용의 소설을 써야겠다고 여긴다. 하우스키퍼가 나오는 비슷한 영화를 검색한다. 작가에게는 모든 상황이 있을 법하지 않겠나. 더군다나 로맨스 소설을 써야 한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답장을 받으며 마음을 여는 상황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에너지를 절약하는 법에서는 사람과 개가 함께 목욕을 하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오래전 에너지 절약을 위해 외치던 수많은 방법. 작은어머니 집에 얹혀살아야 했던 주인공은 옷을 벗고 목욕을 시키던 작은어머니를 떠올린다. 에너지 절약하기 위해 온 가족이 한꺼번에 샤워하라던 기억도 떠올랐다. 가족 공동체 운운하는데, 도대체 가족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국가 간의 이동이 불가능한 디스토피아의 세계, 트럭 운전사 사드가 출근하지 않자 그의 흔적을 찾는 이야기 이동과 정동또한 현재와 미래의 어느 한순간에 있는 거 같다. 신체가 아닌 영혼을 이동시키는 모임에 참석했던 이야기를 들으며 얼은 생각을 바꿨다. 목숨 걸고 사람들을 물건 상자에 숨겨 국경 바깥으로 이동시켜주었던 사드였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소설이었다. 개인의 안위를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수많은 SF영화에서 말했다시피 인간애는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다양한 이야기로 우리를 깨우친다. 시원한 나라 혹은 겨울로 공간 이동하고 싶은 요즘,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일 것이므로 우리는 오늘을 산다. 비록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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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라이터즈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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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작가가 말하는 세계에 감동하여 그동안 출간된 작품을 읽어보고자 했다. 그중의 한 작품으로 자서전이나 대리 번역 등 자기의 이름이 아닌 타인의 이름으로 출간되는 작가들의 세계를 나타낸 소설이었다. 전업 작가로 지내는 분들이 많지 않다고 했다. 몇몇 유명한 작가 외에는 출판사나 다른 계통에서 일하거나 다른 경제적 활동을 하며 어렵게 글을 쓰는 걸로 알고 있다. 좋은 작품을 쓰려는 작가들의 애환은 여러 매체에 심심찮게 드러난다. 그에 한발 다가선 느낌의 소설이었다.

 


푼돈에 창작력과 주체성을 파는 작업. 그래서 무명도 아니고 유령인 것이다. 창공을 떠도는 구름처럼, 강물을 부유하는 썩은 나뭇가지처럼, 그렇게 어디 하나 자리하지 못한 채 글을 쓰는 것. 그들에겐 뿌리가 없으므로 작품이란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지금 나는 고스트라이터다. (20페이지)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김시영의 현재는 대필 작가다. 경제적 사정 때문에 유령 작가가 되어 타인의 작품을 써주고 고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일이 끝나면 소설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도 한 줄도 쓰지 못한다. 그러다 한 여배우로부터 제안을 받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주면 큰 사례를 하겠다고 했다. 몇만 원으로 어떻게 한 달을 살아야 하나 했던 그의 고민을 한순간에 날릴 만한 큰 금액을 입금해 주었다.

 


김시영이 여배우 차유나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 그걸 읽은 차유나의 미래는 김시영이 쓴 대로 된다. 즉 김시영에게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걸 눈치 챈 강태한에게 납치당했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 글을 쓰라는 강태한, 그에 맞서는 김시영. 강태한의 복수를 위해 죽음으로 몰고 간 이야기를 들은 그는 고스트라이팅 능력을 지닌 다른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추리 소설 형식을 이용해 유령 작가로 활동할 수밖에 없는 등단 작가들의 애환과 진정한 글쓰기란 무엇인가를 말한다. 아울러 타인의 글을 착취할 뿐 아니라 고료를 받지 못하는, 작가들의 현실을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작가들에게 글쓰기는 큰 산을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백지상태로 열린 화면, 몇 줄을 썼다가 지우고 나면 한 줄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가 계속된다면 두려움마저 느끼지 않을까.


 

총 열 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의 첫 장에 저명한 작가들의 이야기와 글쓰기에 관한 명언들이 실려 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글쓰기의 방법 혹은 생각들이다. 저마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글쓰기를 한다. 어떤 이는 모두가 잠든 밤에 쓰고, 어떤 작가는 아침에 출근하듯 집을 나서 글을 쓰고 퇴근하듯 돌아온다. 각자의 루틴에 따라 쓰지만,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글로 나타나기란 실로 어려운 법인가 보다. 애쓰지 않아도 술술 나오는 이야기의 힘과 더불어 머리를 쥐어 짜내듯 해도 나오지 않는 상태의 무기력과 절망의 크기는 꽤 클 것 같다.

 


그는 이제 행복해지기 위해서 쓴다. 자신이 읽고 싶은 이야기를 창조하고, 그 이야기를 읽는 다른 사람들의 삶도 풍요로워지길 바라며 쓴다. 그와 독자들은 이야기를 나눔으로 풍요로워지고, 살아 있다고 느끼고 행복해진다. (334페이지)


 

김시영이 원하는 대로 풀리는 내용에서는 통쾌함이 있었다. 픽션이지만, 어딘가에서, 여전히 김시영처럼 유령 작가가 되어 페이지 당 얼마간의 고료를 받는 작가들은 많을 것이다.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이름으로 낸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시나리오 작가였던 저자의 경험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박진감이 느껴진 소설이기도 했다.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결국 자신을 위해 글을 쓴다. 자기가 쓴 글을 읽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작가는 행복해한다.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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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 지음 / 레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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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뺀 소설이었다. 짧고 단순하고, 금방 읽을 수 있는 소설. 소리를 내어 읽어줄 수 있는 소설. 이 많은 소설을 낭독회에서 듣는다고 생각해보니, 읽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즐겁지 않겠나. 더군다나 작가의 목소리로 듣는 소설은 미세한 입자처럼 우리의 마음을 파고들 것이다.


 

제주의 한 섬, 가파도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낭독회를 해야 했던 작가는 찾아온 사람들에게 하루에 한두 편씩 소설을 읽어주었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인문서를 읽는 분들은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하루하루를 사는 이들을 바라보고 그 뒤부터 작가는 생각이 바뀌었다. 산문보다 소설을 더 많이 쓰게 되었고, 막 지은 짧은 소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더 많은 낭독회를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소설이 필요하다. 짧지만 강렬한 소설, 스치고 지날 것처럼 여겨져도 뒤돌아서도 머릿속을 부유하는 소설 말이다.




 


산문 보다는 소설이 더 좋은 나는 작가의 짧은 소설이 좋았다. 밤마다 호텔의 책상에 앉아 즐거운 마음을 글 쓰는 작가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좋은 기운을 받아야, 좋은 소설이 나오는 법. 욕심을 부리거나 트렌디한 것만을 찾다가는 도태되고 만다.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소설은 많다. 하지만 정작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그냥 심심풀이 책일 뿐이다. 소설의 내용이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공감하고, 새로운 걸 얻는 시간.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의 특징 아닐까.

 


고작 한 뼘의 삶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소설가의 재능에 감동한다. 소설가의 재능을 그 사람의 능력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가의 재능이란 꿈꾸는 것이 전부다.’ 라고 말한다.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선물. 꿈을 꾸지 않으면 작품으로 나타날 수 없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소설은 작가의 꿈이 실현되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눈덩이를 굴리는 일과 비슷했다. 사랑할수록 더 사랑하게 된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미워할수록 더 미워하게 된다. 매 순간 관계가 호의와 악의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지금도 양양행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 언니와 손을 맞잡았을 때, 미래가 달라졌다고 믿고 있다 했다. (166페이지, 관계성의 물중에서)

 


작가는 세상을 보여준다. 작가의 상상이든, 현실의 다른 모습이든 작가의 세상에서 우리는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한다. 잊고 있었던 사건도 작가의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벌써 잊어버린 우리를 꾸짖는다. 잊힌다는 것. 이것처럼 마음 아픈 일도 없을 텐데, 각자의 삶에 바빠 잊고 사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 보내준 쪽지 한 장, 그 마음 한 자락에 눈물을 흘리고 함께 찍은 사진이 없어 안타까워 옷자락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소설의 한 형태, 선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므로

너무나 많은 여름이,

너무나 많은 골목길과 너무나 많은 산책과 너무나 많은 저녁에 우리를 찾아오리라.

우리는 사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으리라.

내 나이 때의 엄마를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먼 훗날 내 나이 때의 열무를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으리라. (281페이지, 너무나 많은 여름이중에서)


 

여름은 항상 나에게 삶의 희열을 주었다. 뜨거운 여름의 한낮, 장맛비의 시원함처럼 계절은 우리를 살아 있게 했다. 기후 위기 때문에 동남아시아의 우기처럼 한 달 정도 내리는 비는 우리를 우울하게 했으며 햇볕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수많은 여름날의 소설이 이토록 아름다워 그만 눈물이 날 듯했다. 삶은 단순하면서도 어느 한순간의 깨달음으로 내일을 꿈꾼다.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 꿈이 우리의 미래라는 것을 말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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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사들 - 안 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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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총총 시리즈
황선우.김혼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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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평소 이야기할 때, ‘최선을 다하자.’라고 말하지 않나. 그런데 책 제목이 요상 하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니, 이런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대체로, 뭐든 열심히 하라고 하는데 말이다. 에세이스트 김혼비와 나에게는 낯선 작가 황선우의 편지 형식의 에세이는 순전히 제목 때문에 읽게 되었다. 이 나이 정도 되면 지나친 최선은 문제 아닌가. 김하나 작가의 어머니, 이옥선 작가님의 말이 마음속 깊이 와닿았다. 이제 느긋해질 때도 되었다. 지나친 열심과 부지런 금지의 시기다.

 


황선우 작가의 이름은 익숙하다. 김하나 작가와 공동으로 작업한 작품도 있고, 팟캐스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작품을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여겼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던 차에 김혼비 작가와 함께 에세이를 펴냈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뭐랄까, 여성을 이끄는 여성, 즉 선도자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반면 피버 피치의 작가 닉 혼비에게서 따온 필명을 사용하는 김혼비 작가는 아무튼, 다정소감으로 친근하게 여겨진다. 술에 관하여 명쾌한 논리를 펴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작가가 펼치는 술에 관한 생각에 마구마구 공감을 표하며 읽었다. 또한 약자를 배려하는 작은 행동 하나가 큰 울림을 주었다. 작가의 세계관이 좋아 좀 더 읽으려던 차에 신작 소식이 보여 반가웠다.

 


황선우 작가와 김혼비 작가가 전부터 친분이 있었을 거로 여겼다. 작가들이 서로 서간을 나눈다는 설정 때문인 것 같았다. 작가의 생각과 서로에게 전해지는 마음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관계에서 오는 조심스러움. 소극적인 태도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작가들이 오히려 혼자서 작업하는 시간이 많기에 낯가림이 심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에세이의 형식은 두 작가가 번갈아 가며 쓰는 편지글이다. 친밀한 관계가 아닌 것에서 점점 친밀해지는 관계 변화를 보는 듯했다. 개인적인 안부와 상대방의 책에서 느낀 점과 작가로서 글쓰기와 표현에 대하여 나눈 글이 주를 이루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말이 잘못 나오는 경우가 생긴다. 마음속에는 그 상황에 맞는 단어를 말하려고 했으나 전혀 다른 단어가 나온 경우다. 작가들은 단어들과의 싸움에서 늘 이기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일까. 작가들도 잘못 나오는 언어 때문에 생긴 해프닝을 말하는데 상당히 솔직했다. <재벌집 막내아들><막냇집 재벌아들>로 말하거나, <범 내려온다>의 이날치를 말하고 싶은데 <이말년>이 나오는 식이다. 주변에서도 이런 경우는 흔하다. 단어에 관한 한 나도 잘 기억한다고 여기는데도 가끔 다른 단어를 말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틀린 단어를(어쩌면 생각나지 않아 잘못 나온 단어) 김하나 작가와 황선우 작가처럼 ‘~~ 겠지하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꺾이지 않는 몸이었어요. 제가 계속 내일을 기대하며 낙관적으로 살아온 건 대단히 의지가 강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꺾이지 않는 식욕 덕분이었던 거죠. 제 태도나 생각이 개방적이었다면, 많은 부분은 활짝 열린 혀와 위장으로 세상과 만나겠다는 자세에서 왔을 거예요. (175페이지, 황선우 편)

 


이렇게 어떤 마음과 마음을 장난스레 이어붙여 세상이 가끔씩 툭툭 던지는 유쾌한 농담들이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이왕이면 선하고 어진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만들어요. 그래서 누가 오해받기 쉬운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왜 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술은 언제나 저를 조금 허술하게 만드는데, 허술한 사람에게 세상이 좀더 농담을 잘 던져서 그렇다고요. (187페이지, 김혼비 편)

 


버스로 출퇴근을 한다. 언젠가 좌석에서 누군가 일어서길래 봤더니 의자에 임산부 표시가 있었다. 비어서 가는 것 보다 앉는 게 복잡함을 없애는 게 아닐까, 순전히 나를 위한 핑계로 의자에 앉아서 간 적이 있다. 뜨끔하긴 했다. 하지만 김혼비 작가의 용기에 관한 글에서 나는 반성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임산부석에 앉은, 누가 봐도 임산부일 리 없는 여성에게 진짜 임산부가 배지를 보여주며 임산부라고 했을 때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은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임산부를 위해 임산부석을 비워둘 것.


 

책을 읽지 않은 사람보다 읽은 사람의 사고가 넓어지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책읽기를 강조한다. 우리가 놓친 것을 깨달을 수 있으며 작은 행동하나가 불러오는 따뜻함이 온전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휴대폰을 잠시 꺼두고 책을 펼쳐보는 걸 권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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