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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구병모 작가를 『위저드 베이커리』로 만났다.
신선함과 놀라움을 주었던 작가. 나는 작가의 작품이 나올때마다 늘 눈여겨본다. 이번에 나온 신작의 표지를 보고는,,, '파과'라는 뜻이 무엇일까, 무언가 파손된 것이 아닌가. 여자의 등허리가 맨몸으로 되어 있었다. 한 여자의 이야기로구나. 날씬한 뒷모습을 젊은 여자의 이야기리라. 나 혼자 마구 상상의 나래를 폈다.
그런데 작가 구병모는 나의 이런 상상을 한 순간이 무너뜨려 버린다.
책의 처음 시작부분, 나오는 여자가 예순여섯의 할머니가 주인공인것 같다. 금요일밤의 지옥철, 사람의 부대낌이 너무도 싫은 곳에서 육십이 다 되어가는 남자가 앉아 있는 젊은 여자에게 일어나라며 삿대질을 한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곧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 있고, 모두들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그 장면으로 보고 있는 65세의 여자, 남자가 내리자 뒤따라 내린뒤 무언가로 남자를 찌른것 같다.
이 여자, 65세의 이 여자가 주인공이다.
그 여자의 이름은 '조각'이고, '무용'이라는 개, 역시 자신처럼 나이 든 개와 함께 살고 있다.
그 여자의 명함에 들어있는 회사는 '방역'을 하는 업체다. '쥐, 개미, 바퀴벌레를 청소하는 업체'가 아닌 쓰잘데 없는 사람들을 처리하는 곳이라는 방역업체다. 누군가 사건을 의뢰한다. 그 사람을 처리해 달라고. 대부분의 방역은, 누가 왜 이것을 원하는지 묻지 않는다. 누가 왜 누군가의 안에서 구제해야 할 해충이나 소탕해야 할 쥐새끼가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방역업을 하는 이들은 그저 대상자를 처리할 뿐이다. 45년간 사람 죽이는 걸 업으로 하고 살아온 사람, 조각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방역업자는 아니었다.
먹고 살기 힘든 가족에게서 버림받고, 우연한 기회로 방역 업자가 될수 밖에 없었던 그 여자, 조각은 과거의 자신을 생각한다. 이제 나이는 들어 몸은 둔해지고, 자꾸 기억이 나지 않는 일들이 생기자, 이 일을 그만두고 이제 무엇을 할것인가 고민한다. 그 와중에 사무실에 일을 받으러 갈때면, 늘 있곤 하는 젊은 남자애가 있다. 자신에게 '할머니' 라 부르면서 반말짓거리를 하지만, 별 대꾸를 하지 않는다. 그도 방역업자다. 그의 이름은 '투우', 그에게도 방역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하던 때를 떠올린다. 자신들의 곁에서 일하고 있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아버지를 죽이고 혼연히 사라져갔던 그 여자를 찾는다. 벌써 20여년이 지났다.
구병모 작가는 참 독특한 글을 썼다.
청소년 소설인『위저드 베이커리』나 『아가미』, 『방주로 오세요』, 『피그말리온 아이들』이런 책들 모두 보통의 책들이 아니다. 한 작가의 작품이 아닌 작품들인것처럼 다양한 주제, 구병모 만의 이야기를 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내용에 빠져 읽다보면, 나는 내가 이 세계에 있지 아니하고, 다른 세계에 있는 것만 같다. 그만큼 독특한 이야기를 한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한 '조각'은 누구하나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을 평생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조각이, 아직 어린 풋내기 아가씨일적에 마음을 품었던 '류'라는 사람을 생각하는 일을 자주 한다. 사람들에게 무감했던 조각이 이제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들이 눈에 들어오고, 눈에 밟힌다. 그들의 사연을 모른척 할 수 없다. 나이가 들어가, 곧 죽을때가 되어가니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 건가. 누군가에게 정을 붙이지 아니하고 살아도 사람을 품을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으므로. 혼자서는 살아가는게 너무 외로우므로.
그다지 두꺼운 책은 아니었지만, 금새 읽었다.
다시한번 구병모의 글에 반했다. 이제 읽지 않은 그의 단편집 『고의는 아니지만』도 읽어야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표지처럼 좋았던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