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나, 마들렌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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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은 미래에 목이 잘려 죽는 꿈을 꾼 여성이 있다. 함께 사는 과자 친구 마들렌에게 또 꿈을 꾸었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 잠이 깬 순간 마들렌이 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팔에 누군가의 체온이 느껴졌다. 다른 나였다.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말하는 존재였다. 나는 출근을 하고, 다른 나는 마들렌을 따라 법원에 가기로 했다. 퇴근 후 마들렌이 눈치채지 못하게 찜질방, 모텔 등을 전전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라고 할 만큼 바쁠 때 또 다른 내가 있다면 할 일을 분산해도 되겠다는 상상을 해 본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지 실제로 두 명이 존재한다면 난감할 것 같다.

 


우리를 상상의 나라로 안내하는 소설이었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연결하는 듯 머릿속에서 연상되는 그림을 따라가다 보며, 소설을 읽는 이유를 깨달았다.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서울에서 강원도로 향하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감염된 자들을 피해 차로만 움직일 수 있다. 이런 세상에서도 밤에는 잠을 자야 하고 낮에는 움직여야 한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순간에 대비해 도끼를 들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친절을 베풀지도 않는다. 만약, 운전하지 못한다면 감염자를 피해 달아나기도 힘들 것 같다. 운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차를 바꿔가며 남편이 있는 강원도로 향할 수 있는 거다. 그녀의 새로운 동승자인 남자애는 감염자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감염되지 않았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학생들이 떠올랐다. 바이러스 감염자들의 이야기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상상의 세계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직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나는 남자애와 비슷한 종일까. 아니면 조만간 걸릴 수도 있을까.

 




일곱 편의 소설 모두 주제가 다르며 느낌도 달랐다. 소설의 재미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재미있다, 재미있다 중얼거리며 읽었다. 젤로의 변성기는 애니메이션의 시리즈에서 몇십 년째 소년 역할을 하고 있는 오십 대 성우의 이야기다. 아이돌 외모에 팬덤을 가진 여자애와 함께 오디오 녹음하며 젊음과 늙음의 경계에 선 인물들을 그린다. 소년 목소리를 냈던 그녀는 소년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생각과 다르게 나오는 목소리는 마치 소년이 변성기를 거치는 듯하다.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석류를 먹는 그녀를 상상해보니 어쩐지 안타깝다. 늙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복잡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한나와 클레어는 호텔 메이드로 일하는 여성과 미스터리 쇼퍼 활동으로 분기 투숙 바우처를 친구에게 받은 여성이 나온다. 손님과 메이드.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고 클레임을 받기도 하지만 이들의 위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거다. 서로의 위치에 따라 우리는 다양한 관계를 형성한다. 때로는 갑의 위치에서, 어느 순간에는 을의 위치로 바꿔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 글을 쓰기 전, 남편이 틀어놓은 TV 프로그램에서 남성의 목소리를 가진 여성 출연자를 보고 정체를 알고 싶어 검색했더니 트랜스젠더라고 나왔다. 김수진의 경우는 트랜트젠더인 김수진이 인공 자궁 이식 수술 실험에 참여하는 내용이다. 엄마가 되고 싶었던 김수진이 수술에 성공하고 남자일 때 채취해둔 정자를 이용해 수정, 착상의 과정을 겪는다. 엄마가 되는 과정이 이렇게 힘든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새로운 가족관계의 변화를 엿본다.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정된 사고방식으로는 도태될 뿐이다.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고, 이해해달라고 말하지 말자. 내가 이해하면 된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다양한 이야기만큼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살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말을 숨겼던 것처럼, 타인이 말하는 숨은 의미를 제대로 깨우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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