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하는 여자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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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적 내가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바느질하는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말이었다. 바느질하는 여자는 고생을 사서 하며 평생 바느질을 한다는 이야기. 마치 굴레처럼 따라다니던 말이었다. 그래서일까.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바느질을 시키지 않으려고 했었다고 기억한다. 바느질이라는 게 하루종일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놀려야 하는 일. 어깨는 굳어가고 고개도 가누기 힘들고 손가락 또한 굳어갈지도 모르는 일.

 

  유난히 손재주가 없는 나는 중학교때 배우는 가사 시간이 제일 재미없었다.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아 고생했고 뜨개질을 배울때도 겨우 목도리 하나만 떴을 뿐이었다. 지금에는 어떤가. 바느질한다는 게 고생은 되어보여도 고급 기술에 속한다. 바느질 하는 사람이 드물기도 하겠지만 공장에서 수백장씩 나오는 옷보다는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가는 정성에 어디 비할까.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은 손바느질로 만든 옷을 구입해서 입을 수도 없을 정도로 수공비가 비싸고 고가의 상품이 되었다.

 

  바느질하는 여자라. 제목에서부터 여자의 인고의 세월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평생 바느질을 해오는 동안 얼마나 힘든 삶을 살까. 바느질을 하며 딸을 키우는 주인공의 삶은 얼마나 버거울까. 서쪽방에서 나오지 않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한 여자의 삶이 오롯이 살아 숨쉬는 소설이었다. 『바느질하는 여자』는. 그간 작가의 작품을 몇 권 읽어오며 작가를 어느 정도 느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작품에서 나는 김숨 작가의 변화를 읽었다. 한 여자의 삶을 이야기하며 작가가 무언가에서 탈피했다는 느낌. 글도 달라졌다는 느낌이었다.

 

  여자의 삶은 숭고한 것 같다. 평생 바느질을 해오는 어머니 수덕을 바라보는 금택. 그리고 화순은 어머니에게서 버려질까 두려워 서로 경쟁하듯이 엄마의 사랑을 갈망한다. 어머니는 두 딸들이 그러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가타부타 말이 없다. 우물집에서 바느질하는 여자인 엄마는 원래 복래한복집 한 귀퉁이에서 누비 바느질을 했었다. 부령할매의 수의집에서 기거하고 있던 금택은 엄마와 함께 기거하게 됐고 이어 두살때 버려졌던 화순을 데리고 이곳 우물집으로 오게 되었다. 주로 금택의 시선으로 바느질하는 어머니를 바라보게 된다. 한복집 골목에서 기거했던 이들에게 바느질하는 여자는 수두룩했다. 바느질을 잘했지만 옷을 짓지 못하는 여자. 평생 삯바느질을 하다 한복집을 낸 사람. 시절이 그랬을까. 바느질하는 여자들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모두 한두가지씩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누비 바느질을 하는 어머니의 곁에서 오래 있어서인지 금택은 바느질하는 여자들의 과거 이야기를 많이 주워들었다. 어머니에게서 바늘을 받은 금택과 화순. 금택은 어머니의 바늘을 잃어버릴까봐 늘 옷 속에 품고 있다가 바늘에 찔려 피가 흘렀다. 그에 비해 화순은 어머니에게서 받은 바늘을 아무데나 놔두고 금택에게 바늘이 어디있는지를 물었다. 자신이 어머니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금택은 늘 불안했다. 어머니에게서 버려질까봐 불안했고, 자신이 어머니의 친딸이었으면 했다. 

 

버스에서 내려 우물집으로 걸어 올라가는 금택의 시야에, 검은 무명실과 흰 무명실이 수십 가닥 풀어지고 엉키면서 허공으로 오르는 광경이 들어왔다. 풀어지고 엉키다 허무하게 사라져버리는 무명실들이 한낱 연기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녀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327페이지)

 

 

 

어머니처럼 되고자 하는 금택의 욕망은 스스로 자랐다. 죽순처럼 무섭게 올라오는 욕망을 그녀는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그것이 불온한 욕망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딸들인 자신과 화순에게 누비 바늘을 건네던 날을 금택은 똑똑히 기억했다. 그녀는 어머니가 단순히 누비 바늘이라는 물건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건넨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어머니는 그러나 정작 딸들에게 누비 바느질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281페이지)

 

  결국 모든 딸들은 엄마의 운명을 그대로 닮아가는 것일까. 어머니가 금택과 화순에게 누비 바느질을 가르치지 않았지만 딸들인 금택과 화순은 누비 바느질을 했다. 어머니와 누비 바느질에서 벗어나고자 대학의 의상학과를 갔던 화순도 어머니의 누비 바느질과 자신과 경쟁하는 금택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결국엔 누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누비 바느질을 배우고 싶었던 금택 또한 어머니의 곁을 지켰지만 어머니 모르게 자기 방에서만 누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화순에게 내주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의 곁을 지키는게 금택 자신이고 싶어했다. 

 

  바느질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알았지만, 바느질을 업으로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던 듯 하다. 숙명처럼 받아들였던 바느질이 자신의 삶을 옥죄고 바느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자신들의 삶 또한 어머니의 삶을 물려 받았기 때문일까. 어머니의 운명, 이어 자신들의 운명의 굴레에 갇혀 바느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일까. 어머니가 만들었던 누비 저고리, 누비 치마, 누비 마고자, 자신의 모든 마음을 담아 한 땀 한 땀 지었을 바느질.

 

 

  금택의 바늘에 대한 집착은 결국 어머니에 대한 집착이었다. 어머니의 친딸이고 싶은. 그래서 어머니의 곁에서 평생 머물고 싶은. 그럼에도 어머니에게서 머물고 싶었던 것 만큼 어머니에게서 떠나고 싶었던 금택. 화순은 그런 금택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바늘을 찾으려 풀숲을 손으로 헤치던 금택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바늘이 아니라 바늘을 잡은 어머니의 손이라는 것을, 엄지와 검지 사이 지네처럼 징그럽게 달라붙어 있는 흉터가 북두칠성같이 생각될 정도로 경탄드러운 어머니의 손이라는 것을. (449페이지)

 

  바느질하는 여자는 우리의 어머니들의 질곡진 인생을 닮았다. 말없이 누비질만 했던 어머니 수덕의 모습에서 과거 여인들의 삶을 보았다. 어머니의 누비 바느질을 말없이 지켜보는 금택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누비 바느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화순의 방황에서도 우리네 어머니들의 고단한 삶이 보였다. 이렇게도 삶은 견디고 살아내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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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1-04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ㅡ박명수식으로 ..덜덜덜 ~~두유 헤브어 썸띵 투 드링?!~달그락 ㅡㅎㅎㅎ (라디오 두시데이트버전)
음 ~스멜~~!

잘 마셨습니다...크....
김숨의 새 소설을 벌써 취하시다뉘...빠른 Breeze님!^^
속도에서 빵빵한 wifi ~(응?)광대역 을 느꼈다고나...

바느질은 느림의 미학 ㅡ아메리칸 퀼트 ㅡ가 문득 생각나서
그들은 웃도 울고 즐거워 보였는데 ㅡ어째서 우리나라에선
이 바느질은 질곡의 삶이 묻어나는 걸까 ㅡ행복보단 ㅡ묵묵한 인고의 세월만 ㅡ짚어지나 ㅡ하는 안타까움 ㅡ
뭐 ...그랬다는 ...

손재주가 아니 손 끝이 야물면 궂은 일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런 일을 두고 천성이 그냥 두고 못지나가니 ㅡ일을 사서 고생을 해 그런 속설이 생긴건 어른의 옛 지혜들이 참 틀린 말 없다는 게 기막힐 뿐 ㅡ이고...

이전의 김 숨 작품은 어떤 걸 읽으셨는지 모르나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국수`를 보자면 그 흐름이 크게 바뀐것은
아니란 생각을 하게 합니다 . 아직까지는 ......같은 선상에
있다고 ㅡ봐져요. 아니 더 깊이 들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죠.. 여자의 삶 속 그 안으로 진정한 자기를 찾는 방편이라면 김 숨은 이해와 포용의 선택을 택한 건지 모르겠어요. 전투적 의지 아닌 수용의 의미로......
김 숨 답다 랄까...나...
뭐 ,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입니다 .

글을 읽어내시는 깊이 너무 좋습니다. 같은 작가를 좋아해서
길게 떠들었는데 실례가 아녔음 합니다.
사진도 좋아서 제가 좀 까불어 봤어요.^^
좋은 오후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
저도 곧 김숨의 바느질을 보겠습니다.
한 땀 한땀 이태리 장인 같은 ..?ㅋㅎ
애정을 놓고 가며 ㅡ

Breeze 2016-01-04 12:54   좋아요 1 | URL
이렇게 장문의 댓글을 단 그장소님께 경의를....^^
김숨 작가님을 좋아해 여러 권의 책을 읽었는데, 이 작품이 가장 좋았어요.
뭐랄까, 다른 작품들보다는 마음을 더 열었다고 할까요.
제가 읽은 김숨 작가의 최고의 작품입니다.
감사합니다. ^^

[그장소] 2016-01-04 13:28   좋아요 0 | URL
얼른 읽어봐야겠네요~^^그정도 라니!^^
기대가 무럭무럭 자라는 중입니다!^^

[그장소] 2016-01-04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라진 김숨 ㅡ저도 느껴 보고 싶어요!^^
 
러브 메이 페일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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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혹은 삶에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누군가가 구해주겠다고 하면 그게 구해질까. 내가 너를 구할거라고 해서 구해질까. 만약 죽을 만큼 힘들어 아끼던 개까지 죽어버렸다면, 삶에 대해 절망을 느낄 뿐이라면 과연 살고 싶을까. 그럼에도 마음깊숙한 곳에서는 누군가 나를 구하러 와주길 바라는 것일까. 만약 누군가가 나를 구하러 와주었을때, 말로는 죽고 싶다고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누군가 나를 구하러 와주길 간절히 바라게 될지도 모르는 일. 삶이란 그럴지도. 내가 아무리 죽고 싶다고 할때도 마음 저변에서는 살고 싶다는 욕망을 분수처럼 뿜어져 나올수도 있다는 것. 죽고 싶다는 것은 타인에게 나를 살려달라고 하는 말일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배워왔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살아가야할 이유를 잊어버릴때 누군가를 간절하게 기다릴지도 모르는 소설을 만났다. 매튜 퀵의 소설 『러브 메이 페일』이다. 어쩐지 연애소설 같은 혹은 삶의 희열과 희망을 느끼게 하는 소설일수도 있었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네 명의 사람들이다. 네 명 모두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삶에 있어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사람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느새 그들의 앞날에 희망만이 가득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 첫번째 사람으로 포샤 케인이라는 여성이 있다. 포르노를 만드는 남편의 혼외정사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그 길로 짐을 싸들고 엄마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많은 술을 마시고 취해서 비행기에 탔고 비행기 옆좌석에는 매브 라는 수녀가 타고 있었다. 매브 수녀는 술취한 포샤를 챙기고 헤어질때는 편지 한 통도 놔두고 갔다. 쓰레기를 쌓아두고 밖에 나가지 않은 엄마의 집에 도착한 포샤는 식당에서 고등학교 때 친구 다니엘을 만나고, 포샤의 고등학교 문학 교사였던 버논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자신들에게 소중한 무엇을 깨닫게 해주었던 버논 선생님의 소식에 안타까워하며 버논 선생님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 한다.

 

  두번째 인물은 고등학교 문학 교사였던 네이트 버논 선생님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문학교사였지만, 한 남자아이로부터 구타를 당했고 더이상 교사를 할 수 없어 불구의 몸으로 자신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개에게 알베르 카뮈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어느날 개가 죽고 자신마저 죽을 위험에 처해 있을때 마치 천사처럼 나타난 여자가 있었으니 바로 제자 포샤였다. 포샤는 버논 선생님을 구하러왔다며 그를 보살핀다.

 

  세번째 인물은 매브 수녀다. 갑자기 신의 영접을 받아 수녀가 되었지만 아들 네이트 버논은 매브 수녀와 절연하고 떠나버렸다. 그를 구하고 싶었지만 보낸 편지에 답장이 없어 안타까워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때 우연히 비행기 안에서 만난 술취한 포샤와의 인연과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글로 나타냈다. 네번째 인물은 다니엘의 오빠인 척 베이스. 한때 마약중독자였지만 초등학교 교사이자 밤에는 바텐더로 일하던 그는 우연히 첫사랑을 다시 만났다. 이들 모두는 하나로 엮여 있었고, 그 중간에 버논 선생님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세상엔 그보다 나은 사람들이 있다고 믿고 싶을 때, 적어도 단 한 명의 좋은 사람은 있다고 믿고 싶을 때, 버논 선생님과 선생님의 수업에 대해 생각했다.  (222페이지)

 

 

 

  네이트 버논 선생님은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을 닮았다. 아이들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안겨 주었던 선생님이었다. 종이 비행기를 접어 자신의 꿈을 향해 날리게 했던 멋진 선생님의 전형이었다. 네이트 버논 선생님의 가르침에 포샤 케인도, 척 베이스도 자신의 미래에 희망을 품었고, 좀더 나은 방향으로의 삶을 꿈꾸었다. 선생님이 만들어주었던 공식 인류 회원증을 이십 년이 지나서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키팅 선생님을 떠올리게 한다.

 

  버논 선생님의 교육 철학을 사랑했던 포샤가 이제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불신의 늪에 빠진 선생님을 구하려 한다. 자신이 버논 선생님을 구할 수 있다고 강하게 믿는 포샤는 선생님을 설득하고 버논 선생님이 진짜 있어야 할 곳으로 안내하고자 한다. 자신의 삶은 어떤가. 부자 남편을 만나 돈을 펑펑 썼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버논 선생님에게 배웠던 때의 소설을 써보겠다는, 그래서 좀더 나은 자신만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포샤는 자신의 글을 쓴다. 사라져버린 버논 선생님이 언젠가는 자신의 소설을 읽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삶의 의미를 잃었을 때, 다시한번 삶의 의미를 되찾고 싶을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과거 우리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는지 생각하면 된다. 좌절과 절망을 겪었지만 다시금 할 수 있다는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자신의 나이가 몇 살인지는 중요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잘 할수 있는 찾는다는 것이 삶의 희망을 가지는 일이며 또한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기도 하다. 실패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면 자신의 꿈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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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비밀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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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역사는 늘 가슴아프다. 전쟁의 역사 속 진실과 마주할 때는 특히 더 가슴아프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죽이거나 죽거나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상흔은 몇십 년이 지나도 가슴에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일부러 잊고 살려고 해도 가슴 한구석에는 폐허처럼 자리잡아 가슴을 허허롭게 만드는 게 또한 전쟁의 상흔이다. 어느 나라든 전쟁의 역사는 이토록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수반할 수 밖에 없다. 책속의 주인공 호프만 씨가 몇십년의 기억들을 일부러 꺼내놓지 않고 잊고 살았던 것처럼 전쟁의 역사는 그렇게 참혹하게 기억될 뿐이다.

 

  일흔이 넘은 호프만 씨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부모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1941년 10월의 어느 날, 부모로부터 친척집에 가야한다고 하고 열두 살의 게오르크에게는 이웃집에서 자라고 했던 그 날의 기억들을. 게오르크는 부모가 떠나는 장면들을 보았다.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잡혀가던 그 시절의 일들. 소년은 부모의 생사를 어느 정도 예감했으면서도 오래도록 기억하지 않으려했다. 우연히 방송에 출연하게 된 호프만 씨는 어릴적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게 되고 이어 한 여성으로 부터 서류 봉투 하나를 받게 된다.

 

  봉투 겉표지에는 아버지의 이름과 아우슈비츠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고 60년이 지나 아들 호프만 씨에게 배달되었다. 서류 봉투 속에 든 것은 오페라의 거장 오펜바흐의 미출간 친필 악보였고, 악보의 가치는 말할 수 없이 컸다. 호프만 씨를 인터뷰 했던 방송 기자 발레리는 호프만 씨의 대리인 자격으로 악보의 저작권 문제로 계약하러 프랑크푸르트로 떠났고, 약속 장소인 선상 레스토랑에서 다섯 명의 시체가 발견된다. 발레리는 실종되었다. 선상 레스토랑의 주인 남자도 사라졌다. 총상을 입은 다섯 명의 시체. 경찰은 누가 무슨 이유로 이들을 죽였는지 사건을 그려보지만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경찰청 강력계 팀장 로버트 마탈러가 이 사건을 이끈다. 마탈러는 이 사건의 살해 동기가 뭘까 생각한다. 사건이 일어날 만한 근거를 찾아 다닐수록 수수께끼 같다. 발레리의 실종의 이유도 찾지 못하겠고, 선상 레스토랑의 주인 또한 중상을 입은 채 발견되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유품으로 받은 오펜바흐의 친필 악보와 악보를 빼앗으려는 자들. 돈을 벌기 위해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죽음.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갈수록 상상하지 못했던 진실들과 마주하게 된다.

 

 

 

  오펜바흐의 친필 악보의 궁극적인 의미는 무얼까. 돈 아니면 역사? 좀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끔찍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법도 한데 그 이유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친필 악보를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이들의 분투기 정도면 상당히 실망스러울텐데, 역사 얀 제거스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 속에 숨겨둔 비밀을 숨겨두고 있었으니까. 

 

  앞서 이야기했지만 전쟁은 많은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나치 전범들에 대한 재판도 있었듯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진실도 나타나게 마련이다. 소설에서처럼 실제로도 그런 인물들이 있지 않았을까.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새로운 신분을 얻어 살아온 사람들이 분명 있었을터. 죽을때까지 비밀로 하고 싶겠지만 어디 세상 일이라는게 영원한 비밀이라는 건 없는 것 같다. 언젠가는 드러나고 말 일이다.

 

  이 사건을 해결하는 경찰청 강력계 팀장 마탈러의 활약이 돋보였다. 애인 테레자와의 관계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직원들에게도 인간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살인범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또 얼마나 차갑게 대하는지 강력계 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고 마탈러라는 인물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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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집 허밍버드 클래식 5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배수아 옮김 / 허밍버드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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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집을 새롭게 읽고 있으려니 마음이 다시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내가 좋아서 읽었던 어린시절의 동화는 상상력의 힘을 길러주었고,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던 동화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길러 주었다. 나이가 들어 내가 다시 읽는 동화는 어린시절의 환상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이처럼 모든 시절을 총망라하며 우리에게 꿈과 낭만을 길러주는 게 동화가 가진 힘이 아닌가 싶다.

 

  안데르센 동화집도 꽤 많이 알고 읽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내가 읽지 않은 동화도 있다는 걸 알았다. 허밍버드판 『안데르센 동화집』에서 수록된 동화 중 내가 읽은 것은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백조왕자」 뿐이었다. 나는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생각이 나지 않은걸 보면 읽지 않은 「눈의여왕」, 「그림자」, 「어머니 이야기」, 「발데마르 다에와 그의 딸들에 대해서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 「아름다워라」라는 동화였다. 이 동화집은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가 번역했다. 배수아만의 감성과 문장이 살아 숨쉬는 동화였다.  

 

  『안데르센 동화집』을 보며 느낀 것은 그림을 그림 삽화가들이 19세기에 태어난 작가들이라는 것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동화와 잘 어울렸다. 현재의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의 이야기가 먼 곳에서 온것처럼 다른 감정들을 선사했다.

 

라플란드는 눈과 얼음으로 가득한 곳이야. 얼마나 아름다운 땅인지! 눈에 덮인 드넓고 눈부신 벌판을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지. 눈의 여왕은 그곳에 여름 별장을 두고 머물러. 하지만 여왕의 성은 그보다 더 북쪽, 북극에 가까운 스피츠베르겐이란 이름의 섬에 있어. (71페이지, 「눈의여왕」 중에서)

 

  카이와 게르다의 거울 조각으로 인한 모험의 여정은 한 곳에 머물고 있는 것 보다는 먼 곳을 향해, 자신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꿈꾸게 한다.

 

  내가 읽지 않은 동화중 인상 깊었던 작품이 두 작품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그림자」라는 작품이었다. 빛이 비칠때면 누구에게나 있는 그림자. 그림자는 빛의 방향에 따라 짧아지기도 하고 길어지기도 하는 것. 나의 분신이었던 그림자가 사라지고 어느 날 사람의 옷을 입고 사람의 행세를 하는 나의 그림자를 만났다면 그림자의 주인인 사람은 어떻게 될까. 더군다나 그림자는 부자고, 그림자의 주인은 가난한 학자라면. 그래서 어딘가로 떠난 여행에서 자신의 그림자 행세를 해달라고 한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잘 지켜야 함을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방심하고 있던 사이에 자신의 정체성은 물론 자신의 존재까지 도둑맞을지도 모른다.

 

 

 

형체의 마법이 그를 홀렸다. 그는 상자를 보았지만 그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은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런 경솔함은 결혼 생활에 불행을 가져다준다. 그것도 엄청난 불행을. 상자가 망가지고 떨어져 나가면, 그제야 사람은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게 된다. 호화로운 파티에 갔는데 바지 단추 두 개가 몽땅 떨어진 걸 안다면 얼마나 낭패스러운가. (275페이지, 「아름다워라」 중에서)

 

  「아름다워라」라는 작품은 칼라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고 반한 알프레드의 이야기이다. 그가 보았던 칼라의 외모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할 수 있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서 보는 칼라는 자신과 대화가 통화지도 않았고, 그저 거실의 정물화처럼 아름다움만을 간직하고 있었다.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외모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외모에 홀려 사랑에 빠졌더라도 결혼 생활이라는 것은 생활인 것을. 칼라의 친구 소피의 방문은 그에게 어땠었는가. 마른 하늘의 단비처럼, 막힌 곳의 싱그러운 바람처럼 느껴졌었다. 못생긴 외모였지만 소피의 박식함이 그에게는 청량감을 선사했던 것이다. 그녀와 대화하는게 너무 즐거웠다.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중에 외모가 아름다운 것보다 미모는 좀 못하더라도 삶의 지혜가 가득한 사람이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우리가 배우자를 고를 때도 그렇지 않을까 시쳇말로 외모는 몇개월이라고 하던데. 외모 이외의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훨씬 더 많이 필요하고 매력을 느낀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늦게야 깨닫지 않는가.

 

  우리가 고전이라고 불리우는 것들. 동화나 문학등 언제 읽어도 좋고, 세대를 달리해 읽어도 좋은 것이 고전이다. 몇세기가 지나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들은 우리에게 다양한 경험을 대리하게 만들고 다양한 감정과 감동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들. 마음이 다시 말랑말랑해지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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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열린책들 세계문학 27
에드몽 로스탕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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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국 영화 「시라노 ; 연애조작단」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시라노 에이전시라는 곳에서 연애에 서투른 사람들을 대신해 사랑을 이루게 해준다는 영화였다. 가장 보편적인 러브 스토리의 영화였지만 영화속 삽입곡이었던 아그네스 발챠의 Aspri Mera Ke Ya Mas(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되었네)라는 곡이 좋아 음악이 닳도록 들었었다. 아그네스 발챠의 곡이 좋아 영화까지도 훨씬 더 감동적이게 다가왔었다. 이 영화가 프랑스 소설 『시라노』라는 작품을 모티프로 해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나는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았고 이 작품을 읽어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이제야 이 책을 읽었다.

 

 

  소설인줄 알았던 『시라노』는 연극 무대에 올리는 희곡이었고, 대사만 보고 재미없으면 어떻게 하나 생각했었던 나의 우려를 말끔히 없애 주었다. 희곡의 새로운 맛을 들였달까. 간단한 설명과 무대를 비춰주는 불빛, 출연자들의 이름들. 소설과는 약간 달라 생소했지만 대사가 살아 있어 대사 속의 감정들을 살피는 즐거움을 주었다.

 

  『시라노』의 이야기는 못생기고 코가 큰 시라노라는 남자가 있었다. 시라노는 자신의 아름다운 사촌 록산을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외모때문에 혼자만의 짝사랑을 하고 있던 즈음, 크리스티앙이라는 남자가 록산을 사랑한다고 했다. 크리스티앙은 문장을 만드는 재주는 없었지만 잘생긴 외모로 록산의 사랑을 받았다. 크리스티앙의 마음을 대신해 편지를 쓰는 시라노는 자신의 온 마음을 편지에 담았다. 록산은 처음엔 크리스티앙의 외모에 반했지만 점점 그가 보낸 편지의 문장들에 반했다. 크리스티앙과 만나면서도 그에게 아름다운 문장을 들려달라고 했고, 문장을 만드는 실력이 없는 크리스티앙은 또다시 시라노의 도움을 받아 떠듬떠듬 말했다.

 

  하지만 록산을 짝사랑하는 드 발베르 자작의 음모로 크리스티앙은 전쟁터로 떠나게 되고, 록산은 시라노에게 크리스티앙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록산을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했던 시라노는 전쟁터로 향했다. 록산이 사랑한 것은 이제 크리스티앙의 외모가 아니었다. 전쟁터에서 매일 두 통씩 편지를 쓸 정도로 열렬한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던 문장들이었다. 시라노의 문장들이 록산을 사로잡았다.

 

  록산의 한 말 중에서 이제는 크리스티앙의 외모도 필요치 않다고 했다. 그의 지성을 알 수 있는 그가 말하는 문장이 좋다고 했다. 얼굴이 추남이어도 상관없고 그의 문장을 열렬히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외모가 아름다우면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고 사랑하겠금 만드는 효과가 있지만 살다보면 외모가 다가 아니라는 걸을 우리가 일깨우는 것처럼 록산도 외모와는 상관없이 외모보다 더 중요한 사랑하는 마음, 즉 사랑하는 마음이 배어있는 문장을 사랑했던 것이다.

 

  사랑이란 것은 어쩌면 이렇게 아이러니한지. 록산이 크리스티앙을 사랑했고, 시라노는 록산을 사랑했지만, 록산이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시라노의 마음이 배어있는 문장이었지만 록산은 그것을 몰랐다. 자신이 추남이라며, 록산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시라노는 몇 번의 좌절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크리스티앙의 록산을 향한 사랑은 또 어떠한가. 자신을 열렬히 사랑한다던 록산이 그가 보낸 편지속 문장들을 사랑한다고 했을때의 좌절감이란. 록산이 사랑한 것은 크리스티앙이 아니라 시라노의 마음, 즉 시라노의 영혼이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서로 함께 바라보는 사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삶 속에서 서로 마주보는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등을 바라보기도 하는 것. 뒤돌아보지 않는 등을 향해 있는 시선은 얼마나 안타까울까. 사람은 자신이 바라보는 것만 바라보느라 누군가 나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수도 있다. 오랜시간 록산의 곁에 있었던 시라노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던 록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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