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플라이트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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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진심!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진심!
   인터넷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갑질 사건'이 올라옵니다. 육군 대장도 모자라 그의 부인까지 공관병과 운전병에게 온갖 잡일을 시키고, 땅콩 하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고 비행기를 돌리라고 하질 않나, 라면 하나 잘못 끓였다고 폭행을 합니다. 그렇게 지체 높은 분들이, 그런 상스러운 짓들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합니다.

   B항공사의 2년 차 스튜어디스였던 '유나'는 비즈니스 객실의 한 손님으로부터 정말 황당한 질문을 받습니다.

   ─ 스튜어디스는 중력 때문에 가슴이 처졌다던데. 사실이오? 30쪽

   유나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유나는 행동이 잘못됐다는 이유로 따귀를 맞았습니다. 유나는 생각합니다. 만약 그 질문을 받은 사람이 승무원이 아니라 같은 승객이었다면, 질문을 한 손님이 성희롱으로 처벌을 받았을까요?
   그렇게 B항공사에서 5년을 버텼던 유나는 어느 날 차를 몰고 저수지로 향합니다. 저수지 앞에서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저수지로 내달렸습니다. 그동안 유나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죽음을 내몰만큼 힘든 일이었을까요?

   유나가 왜 혼자 그 길을 걸어야 했는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모른다.
   유나는 차를 몰고 편도 1차선 도로를 달렸고 그대로 저수지에 들어갔다. 부검 결과 역시 명백하게 익사였다. 블랙박스를 판독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으나 모든 결과는 유나가 스스로 저수지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지시하고 있었다. 17쪽

   유나의 아버지 '정근'은 공군에서 불명예 제대한 이후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10년 만에 들은 딸의 소식이 '자살'이었습니다. 유나는 세상을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자신의 일기를 남깁니다. 유나는 왜 아버지에게 일기를 남겼을까요?

   아빠, 여기서 실패하면 군말 없이 삶으로 돌아갈게요.
   빛 들지 않는 방으로.
   직장으로 갈게요. 9쪽

   장례식장에서 만난 유나의 친구들과 함께 '정근'은 딸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친구들의 이야기로는, 유나가 유부남인 부기장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소문 때문에 회사로부터 추궁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부기장을 만나지만, 부기장은 그저 유나가 친했던 스튜어디스 동료를 꼭 만나보라고 합니다. 하지만 유나의 동료는 끝끝내 그들을 만나주지 않습니다.

   유나가 중학생이었을 때, 공군 대령이었던 아버지에게는 운전병이 있었습니다. 운전병은 아버지 뿐아니라 유나까지 데려다 주곤 했고 유나 엄마의 차도 운전했습니다. 그 운전병에게는 임신한 아내가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유나의 집에서 유나의 엄마와 함께 틈틈히 이런 저런 일들을 했습니다. 
   어느날 집에 혼자 있던 운전병의 아내에게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아내의 소식을 들은 운전병은 아버지에게 먼저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화를 내며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날밤 운전병의 아내는 유산을 하고 맙니다. 대령의 가족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따랐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결국 상처 뿐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던 유나는 운전병과 그의 아내에게 늘 미안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대신 사과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운전병과 그의 아내는 유나를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대령 가족을 위해 애쓰는 일들을 유나는 당연하다는듯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나는 고마워하고 미안해 했고, 두 사람은 그 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B항공사에 입사한 유나는 그곳에서 조종사 노조 간부로 활동하고 있던 부기장, 그러니까 20년 전의 운전병 아저씨를 다시 만납니다. 운전병 아저씨는 1년동안 정직을 당했고, 그의 아내는 뺑소니 사고를 당해 2년째 중환자실에 누워 있습니다. 여전히 힘들게 살고 있는 그들을 본 유나는, 또다시 미안해집니다.

   유나와 동갑이었지만 3년 늦게 입사한 후배는 유나를 잘 따랐습니다. 자기가 이전 직장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왜 승무원이 되었는지 속 깊은 이야기까지 유나에게 들려줬습니다. 자신에게 할당된 면세품 판매 실적을 다 올리지 못하면 회사를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B항공사에는 엑스맨 제도가 있습니다. 승무원들끼리 서로를 감시하는 것인데, 면세품 판매 실적이 좋지 않았던 후배는 엑스맨 제도에서 성과를 올리기 위해 유나가 유부남인 부기장과 불륜 관계라고 허위 고발을 합니다. 유나가 따져 묻자 그녀는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지 않은 유나에게 오히려 서운하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내게 접근했던 까닭이 나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면 뭐 하러 자기 이야기를 그렇게 길게 했을까. 왜 진심 그대로를 표현했을까. 회사의 사주를 받아 팀원으로서 내게 접근한 것도, 친하게 지낸 것도 다 감시하기 위해서였다면 어째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좋을 자기 과거까지 털어놓은 걸까요. 217쪽

   유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공군 방산 비리에 연루돼 불명예 제대한 아버지를 떠올렸는지 모릅니다. 고등학생 때 인터넷을 통해 아버지의 사건을 알게 된 유나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은 채, 아버지를 비난합니다. 그날 아버지는 유나를 심하게 때렸고, 그날 이후로 그들은 더이상 함께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운전병을 그저 운전병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던 유나에게 진심이 있었듯이, 임신한 운전병의 아내에게 이런저런 일을 시키며 그녀를 챙긴 유나의 엄마에게도 어떤 진심이 있었듯이, 그녀의 아버지에게도 나름의 진심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누구보다도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진심 같은 것 말이죠. 사람들은 딸이 죽고나서야 아버지 행세를 하려 든다고 그를 비난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의 진심은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유나도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아버지에게도 어떤 진심이나 어쩔 수 없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사과할 기회를, 누군가의 진심을 알아차릴 기회를, 누군가에게 진심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테니까요.

    어릴 적 본 「캐빈 어텐던트」라는 미국 드라마에서 잊어지지 않는 장면이 있어요. 주인공인 승무원이 플라이트 백을 놓고 나왔다가 하루 종일 '미스 플라이트'라는 놀림을 받는 겁니다. 과장되기야 했겠지만 사무장, 부사장을 포함해 기장, 부기장까지 하루 종일 그녀를 놀려 댑니다.
   어린 나는 '미스'가 뜻하는 것이 '놓쳐 버리다'인지, '미혼 여자의 성 앞에 붙이는 호칭 또는 지칭'인지 구분하지 못했고, 어쩐지 후자에 더 가깝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니었지만요.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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