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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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왜 이렇게 전화가 안 되냐, 괜찮아?” “거기 지금 난리 났던데, 별 일 없어?” “아이구~~ 다행이네.” 대학졸업 후 직장 때문에 서울에서 지낼 때.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멀쩡하게 보이던 백화점 건물이 순식간에 와르르, 그야말로 폭~삭, 내려앉았다. 텔레비전으로, 뉴스로 이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가족과 친구들은 깜짝 놀랐다. 내 자취방이 서울에, 그것도 문제의 백화점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혹시나?’했던 것. 걱정이 돼서 연락하려는데 마침 전화가 불통이었단다. 휴대폰도, 삐삐도 없던 때였으니 오직 전화로 생사여부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조차 안 되니 벌렁거리는 가슴 진정시키느라 난리를 치렀다고 한다. 사실 내가 그 백화점에 가는 건 일 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 했지만 그걸 알 턱이 없으니 얼마나 애를 태웠을지.......




책은 마흔 두 살의 박선녀가 ‘대성’백화점 붕괴사고에 휘말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가난한 국밥집의 딸이었던 박선녀. 그녀는 우연히 하이틴 모델을 찾는 이에게 발탁되어 모델 일을 시작한다. 그러다 ‘마담 조’의 눈에 들어 룸쌀롱에서 특별한 손님을 모시게 되는데, 극히 일부의 귀빈층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자연스레 부동산의 흐름을 알게 되고 투자의 길에 발을 내딛는다. 또 잠깐 호텔의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다가 새롭게 룸쌀롱을 차리는데, 그곳에서 환갑을 넘긴 김진(김회장, 남산 영감)을 만나 그의 후처가 되면서 부유한 ‘사모님’의 생활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김회장의 둘째 며느리 생일을 맞아 백화점을 찾았는데 바로 그때 건물이 붕괴되고 말았다.




박선녀가 훨씬한 키에 매력적인 외모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면 김진은 치열한 생존본능이 삶의 바탕이 되었다. 거기에 중국어와 일본어에 능통하고 상황판단이 빨라 만주에서 밀정으로 일하다가 일본의 패망을 계기로 서울로 돌아왔다가 이번에는 미군 특무기관인 CIC요원이 되면서 그는 제주의 4.3 항쟁을 비롯한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에 연이어 관계하게 된다. 특히 70년대 강남개발과 관련해 개발 요지의 땅을 매입해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정관계에 비자금을 뿌리면서 차곡차곡 부를 축적해 나간다. 그러다 박선녀를 만나고 강남의 중심에 백화점을 개점하는 등 아무런 이상없이 부유한 말년을 보내는 가 했는데, 어느날 그의 백화점이 내려앉아 버린 것이다.




이후 책은 부동산업자인 심남수와 박선녀와 동업(?)으로 나이트클럽을 운영했던 조직폭력배 홍양태, 붕괴된 백화점의 건물더미에서 박선녀 가까이에 갇혀 있다가 마지막 생존자로 구출된 점원 임정아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5장에 걸쳐 펼쳐진 다섯 명의 삶은 단순하게 보면 박선녀를 비롯한 그녀와 관련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박선녀와 김진, 심남수, 홍양태, 임정아의 삶은 우리의 근현대사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에 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리면서 서울공화국, 강남특별구, 부의 상징으로 통하게 되는 과정이 담겨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척박해진 나라를 개발이란 이유를 앞세워 앞만 보고 내달아온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이면에 숨겨진 그늘과 추악한 욕망까지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다만 한 권으로 압축하기엔 많은 이야기를 담아 때론 몰입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강남이 형성되는 과정, 역사 ‘강남 형성사’를 통해 욕망의 허상, 덧없음을 느낄 수 있었던 <강남몽>. 이 책을 읽고 나니 언뜻 떠오르는 게 있었다. <개밥바라기별> 출간 이후 황석영 저자 강연회에서 들었던 ‘stopgap’. 일명 ‘구멍마개’라고 하는데 우리가 한 시대를 지나면서 겪었던 수많은 일과 오류들을 당시엔 그냥 지나쳤더라도 이후엔 반드시 그 구멍마개를 열어 상처를 치유하고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을 거쳐야 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이나 사회 모두 자폐가 된다는데. <강남몽>을 통해 바라본 우리의 근현대사도 바로 사회적 차원의 구멍마개를 열어보는 것이 아니었을까.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 지난날의 과오를 되돌아보고 상처를 쓰다듬고 화해를 시도하는 계기, 그런 과정을 거쳐야 사랑도 싹틀 수 있다는 걸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야 꿈에서 깨어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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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vs 역사 -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
볼프강 헤를레스.클라우스-뤼디거 마이 지음, 배진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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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기보다 무조건 암기하는 걸로 대신했던 기억 때문인지 역사는 왠지 어려운 학문이란 생각이 컸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불혹을 넘기고 보니 역사만큼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학문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가깝게는 나 개인, 혹은 가족의 태어나고 성장하는 역사에서부터 일상 속에서 늘 접하는 수많은 물건들의 역사,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도시, 나라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역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책의 역사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책’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으며 어떤 것들이 ‘책’으로 남겨졌는지, 그 ‘책’들로 인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으며 미래는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고 싶은 것 투성이거든요.




마침 이번에 제 궁금증을 풀어줄만한 책을 만났습니다. <책 VS 역사>. 제목이 정말 의미심장하지요? 책장을 넘기기 전에 한참 생각했습니다. 책과 역사에 관한 어떤 이야기가 담겼을까. 표지의 그림과 사진, 거기다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이라는 부제를 보면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지만 그래서 왠지 더 궁금해지네요.




‘책의 나비효과’.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수도사들이 목숨을 잃는 이유가 됐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 대한 이야기로 책은 출발합니다. 세계사에 있어 큰 사건의 중심에 존재했던 인물과 그의 책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짚은 저자는 ‘수많은 책이 의도하는 바는 그 책을 읽는 독자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것’이라며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치고 중요한 의미를 남긴 책 50권을 소개합니다.




책은 ‘고대 : 기억의 역사가 시작되다’에서 ‘중세: 중교를 위한 책에서 학문을 위한 책으로’, ‘근대: 세상을 정복한 책’, ‘현대: 생활매체로서의 책’으로 이어지지만 저자는 책의 순서에 상관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읽어도 무방합니다. 그래서 저도 마음이 가는대로, 보고 싶은 책을 먼저 읽었습니다. 제일 처음 소개된 [사자의 서]는 책 제목만 알고 있는 책인데요. 그 책이 역사상 최초의 책이자 사후 인간의 삶과 영원에 이르는 여행을 다룬 여행안내서라니! 뜻밖이었습니다. 고고학적 대사건(?)이라는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 발견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연결된다는 것과 [오디세이아]로 인해 영화 ‘스타 트랙’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대목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뿐인가요?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하학 원론]. 이 책이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인쇄 부수를 기록한 책인데,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구조나 설계, 계산이 [기하학 원론]이 있기에 가능했다니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 외에도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연애 이야기로 손꼽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황량한 외딴 섬에 난파되었다가 돌아오는 모험을 다룬 [로빈슨 크루소]와 독특하면서도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걸리버를 통해 당시 세계를 풍자했던 [걸리버 여행기] 등의 책에 대해서 작가와 줄거리, 그 책이 당시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려주는데요. 본문의 부분부분마다 해당 책의 내용이나 관련 이야기를 수록해놓고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제가 사랑하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말괄량이 삐삐]와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었습니다. 주근깨 투성이 얼굴에 양갈래로 땋은 머리의 천방지축 소녀 삐삐.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본 삐삐를 보면서 왠지 후련한 기분이 들었는데요. 알고보니 [말괄량이 삐삐]를 통해 당시의 성 역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는군요. 대단하지요?




두툼한 책을 이리 왔다, 저리 갔다 뒤적이며 읽고 나서 생각해봅니다.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 저자는 50권의 책을 소개했지만 난 그것보다 훨씬 많은 책, 더욱 길고 긴, 광대한 역사의 장면 장면을 지켜본 느낌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어떠했을까요? 현재의 모습은?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그 모든 것이 책에 담겨 있다는 것. 그 속에 흐름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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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것들의 진짜 운동법
트레이너 강 지음, 박용우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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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결국 여름이 오고야 말았다. 노출의 계절, 여름이 언제부턴가 내겐 공포로 다가왔다. 이 살들을 어찌 드러내 놓는단 말인가. 아니 돼. 그럴 수 없다니까...긴 소매, 긴 바지로 꼭꼭 감춰보지만 세찬 바람을 이기는 뜨거운 햇살 아래선 속수무책, 항복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팔과 다리를 드러내며 한 가지만을 빌 뿐이다. 사람들이여, 제발 날 못 본 척 그냥 지나쳐주오...(사실, 남들 눈에 띌 정도의 외모도 아니지만...ㅠㅠ)




한동안 안 보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날렵한 몸매로 나타나는 연예인들을 보면서 깜짝 놀라고 부러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쟤네들은 도대체 다이어트를 어떻게 하는 거야? 무슨 비법이 있길래 저렇게 완벽한 변신이 가능한 거지? 궁금했는데, 그런 연예인들에겐 개인 트레이너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각각의 개인에 맞는 운동법을 체크, 지도해주고 식이요법까지 관리해주고 사람. 바로 ‘퍼스널 트레이너’가 그들의 뒷백(?)이었던 것이다. 역시! 특별한 전문가의 손길(?)이 닿아야 환상적인 몸매가 가능한 거였다.




‘트레이너 강’, 저자 강창근 역시 전문 퍼스널 트레이너다. 78만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다이어트 카페의 운영진인 그가 한 권의 책을 출간했다. <독한 것들의 진짜 운동법>. 학교 운동장에서, 헬스클럽에서 몇 시간동안 땀 빼며 운동하고, 밥 굶기를 숨 쉬듯 했는데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면 ‘이 책을 정독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집에서도 전문 퍼스널 트레이닝의 조언과 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책은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는 다이어트가 왜 성공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와 다이어트의 잘못된 상식을 짚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당신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서 현재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목표를 정한 다음 운동과 식이요법을 꾸준히 하면 틀림없이 3개월 후 몸짱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다이어트 중의 식이요법에 관해서도 중요한 점을 콕콕 짚어주고 있다. 또 흔히 운동하기 전에는 스트레칭이 필수라고 알고 있는데 그건 잘못된 거라며 운동전에는 체온을 올릴 수 있는 유산소 운동이나 ‘동적인 스트레칭’을 하고 운동 후에는 유연성을 향상시키는 ‘정적인 스트레칭’이나 요가가 좋다고 하는데 책에는 저자가 언급한 ‘동적. 정적인 스트레칭’이 사진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저자는 체지방을 줄이기 위해서는 유산소운동이나 무산소운동보다 서킷 트레이닝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번갈아 하는 운동인 서킷 트레이닝이 유산소운동보다 300%나 체지방을 감량할 수 있다는 것! 살빼는 데엔 유산소 운동이 최고라고 여겼는데 그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니 놀라웠다. 다만 꼭 기억해야할 것은 개개인마다 운동에 맞는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심박수를 재어서 운동의 강도를 조정해야 한다는 점. 그 후에는 저자와 함께 서킷 트레이닝을 시작하면 된다.




해야지, 해야지 노래를 부르면서도 막상 잘 안되는 게 있는데 내게는 ‘정리’와 ‘운동’이다. 누군가의 조언도 없이 혼자서 하다가 지쳐서 그만둬 버린 게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이번엔 곁에 트레어너 강이 있으니 왠지 든든하다. 독한 홈트레이닝의 DVD가 있으니 운동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12주? 딱 석 달이다. 열 달 동안 뱃 속에 아이도 품고 있어봤는데, 그것도 두 번이나. 두 눈 딱 감고 석 달을 노력해보자고, 독한 마음 먹고 나도 독한 것이 되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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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글쓰기 특강 - KBS방송문화연구소장이 총정리한 뉴스로 배우는 글쓰기
이준삼 지음 / 해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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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만을 위한 한 권의 책을 받았다. 국내의 모 온라인서점에서 작년 한 해 동안 100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쓴 사람들 중에서 100명의 회원을 선정해서 기념서평집을 제작했는데 거기에 나도 포함되었다. 해당 온라인서점으로부터 작년에 내가 올린 200개가 넘는 서평 중에 100개를 뽑아달라는 메일을 받고 뛸 듯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에이, 그냥 다 해주지. 뭘 100개만 뽑으라는 거야. 귀찮게스리.’했다. 하지만 막상 100개의 서평을 고르려니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예전에 내가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 왜 그리도 뒤죽박죽 엉망이던지. 너무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서툰 글도 부지기수여서 이 중에서 과연 100개를 추릴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책을 읽고 느낌과 감상을 글로 남기기 시작한 게 벌써 몇 년 째인데, 내 글은 왜 발전이 없지? 나의 글쓰기에 부족한 점은 뭔지 알고 싶었다.




<스케치 글쓰기 특강>을 선택하게 된 데엔 나의 글을 지금보다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가슴을 울리는 글, 마음을 사로잡는 글’이란 표지의 문구처럼 나도 다른 이의 가슴을 울리고 마음을 사로잡는 글을 쓰고 싶었다. 나의 꿈이었다.




책은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스케치’가 무엇이고 ‘스케치 문장’이란 어떤 글인지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케치가 어떤 사람이나, 동물, 사물의 특징을 단순하게 쓱쓱 선을 긋거나 명암으로 나타내는 표현법이듯이 스케치 문장이란 어떤 모습이나 현장을 그림처럼 묘사하는 글이라고 한다. 단,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저 있는 그대로, 보이는 대로만 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각각의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정경, 사람들의 느낌을 마치 카메라로 사진을 찍듯 순간 포착해서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스케치 기사, 문장을 잘 쓰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알려준다. ‘좋은 글을 외우고 베껴 쓸 것’, ‘개념을 정리하는 훈련을 할 것’, ‘언어의 용법을 넓힐 것’. 이런 것들을 평소 뉴스나 신문을 통해 자주 접하는 평범하고 상투적인 문장과 분위기와 느낌이 잘 살아있는 스케치 문장과 비교해서 설명해놓고 있어서 스케치 문장이 어떤 글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스케치 기사의 유형을 휴일, 성묘, 귀성, 장례, 명절 등으로 나누어 각각의 경우마다 범하기 쉬운 실수나 식상한 표현을 소개하고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지 알려준다.




초반엔 책을 읽으면서 ‘그래, 바로 이거였어.’ 저절로 무릎이 쳐졌다. 하지만 저자가 짚어주는 상투적인 문장, 피해야할 문장을 보면서 왠지 위축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썼던 글이 어떤 글이었는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았다. 가슴으로 쓰는 글이 제대로 된 스케치 문장이라고 했는데 난 눈으로 쓰는 글에 매달려왔다는 걸, 내가 추구하는 글을 쓰기까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참으로 길고 험난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늦은 건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저자가 알려준 ‘추억 더듬기’ 훈련을 조금씩 해나가면 언젠가는 나도 가슴을 울리고 마음을 사로잡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분명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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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제국 -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기록한 우리 시대 음식열전!
황교익 지음 / 따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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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장남, 그것도 장손과 결혼하겠다 했을 때 모든 가족들이 반대했다. “니 손으로 양말 한 짝 안 빨아봤으면서” “라면도 제대로 못 끓이는데” “어떻게 맏며느리를 그것도 장손며느리 노릇을 한다는 거냐. 못한다!”고. 남편에게도 “자네가 속는 거”란 말까지 했다. 그러나 어찌됐든 난 결혼했고 이제 맏며느리 노릇 13년째에 접어들었는데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밥을 할 때 물 양을 제대로 맞추기 것조차 힘들었고 반찬이나 나물 무칠 때, 국을 끓일 때마다 친정집 전화엔 불이 났다. 그렇게 한 가지씩 배워가면서 느낀 것은 친정과 시댁의 음식이 뭔가 다르다는 거였다. 갖은 양념으로 맛깔나게 요리하는 친정에 비해 시댁은 비교적 적은 양념으로 간단하게 장만하는 음식이 많았다. 공통점을 찾자면 모두 손맛이 살아있다는 것 정도? 조리과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맛있는 음식들 앞에서 난 궁금했다. 맛이란 무엇일까. 지구상 수많은 음식 재료들에서 어떤 부분이 맛을 내는 걸까. 어떤 음식을 맛있다고 하는 걸까. <미각의 제국>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미각의 제국>을 통해 80여 가지의 음식 재료의 맛에 대해 얘기한다. 산소와 수소의 결합물인 ‘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책은 눈으로 보기에 말간 물에도 갖가지 맛이 난다는 걸 알려주면서 물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한다. 소금도 일반 소금보다 천일염이 미네랄 함량이 높아서 좋다는 건 알지만 소금의 미네랄 중 염화마그네슘은 쓴맛의 주범이라며 국산 천일염이라고 모두 맛이 좋은 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된장은 옹기에서 제대로 익혀야 하는데 요즘은 모두들 장독에 유리뚜껑을 덮어놓는다면서 편하자고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말라고 일침을 놓는다. 또 요즘 식당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남기는 반찬이 김치인데 그게 모두 공장 배추김치가 맛이 없어서라며 배추김치를 제대로 담그지 못하면서 음식점을 하는 세태를 꼬집었다. 여름에 보양식으로 즐겨먹는 삼계탕은 닭이 주재료이고 인삼이 부재료이니까 계삼탕이 올바른 표현이며 냉면을 평양냉면, 함흥냉면 아울러서 쓰는데 면의 재료에 따라 양념은 물론 맛이 달라지는 음식이기 때문에 구분해서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서 저자는 하나의 음식재료로 제대로 맛을 내는 방법을 일러주는데 육수를 내는 멸치는 머리와 내장을 버리고 찬물에 하룻밤 우렸다가 살짝 끓이면 비린내 없으면서도 고급스런 맛을 낼 수 있다하고 국도변에서 파는 찐옥수수가 유난히 맛있는 건 밭에서 따자마자 찌기 때문이라고 한다. 분명 음식에 관한 책이지만 어디에도 음식 사진 하나 없는 책. 이렇다할 레시피조차 없다. 아, 딱 한가지! 비빔밥에 대해서 저자는 밥을 짓는 것에서부터 갖가지 나물과 고명을 만드는 방법을 번호를 붙여가며 설명해놓고 있다. 하지만 사골 곤 물로 밥을 짓다니...이건 내 취향이 아니다.




80가지가 넘는 음식 재료와 생각들을 짧게 서술해놓은 책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책 제목을 왜 ‘미각의 제국’으로 했는지 털어놓은 서문 격의 글도 12번째 가서야 등장한다. 한마디로 마음이 끌리는 것부터 펼쳐보라는 의미듯  하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내, 내 미각 세계의 조정자’란 대목이었다. 결혼 전 어머니의 음식 세계에 있던 저자는 이제 아내의 음식 세계에 머물면서 아내에 의해 자신의 삶이 조정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고 한다. 음식을 해서 먹인다는 건 곧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일임과 동시에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사랑의 행위라는 대목이 왠지 마음에 남았다.




지난달엔 시아버님 칠순이었고 어제, 휴일은 시어머님의 생신이었다. 생일상에 올라가는 기본 음식 외에 올해는 갈비찜을 준비했다. 질 좋은 고기를 골라 핏물을 빼고 누린내가 나지 않도록 생강, 통후추를 약간 넣은 다음 과일즙과 갖은 양념에 재웠다가 불 위에 올렸다. 끓는 중간 중간 거품을 들어내며 오래도록 뭉근히 익혔더니 좋은 향이 올라왔다. 시댁 식구들과 남편, 아이들 모두 맛있다며 먹는 모습을 보니 음식 장만하는 데 들었던 힘겨움이 날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아쉽기도 하다. 육식을 않는 난, 내가 만든 음식 맛을 모르니. 아이러니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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