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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후회남
둥시 지음, 홍순도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이 화상아, 넌 그런 것도 모르냐?”, “아이고~오, 이 답답아!!”, “야! 쩡광셴!! 너의 반복 학습능력은 완전 바닥이야 바닥. 그거 알어?”.
책을 읽는 내내 답답해죽는 줄 알았다. 엽기의 도를 넘어서서 주인공의 앞뒤 꽉 막힌 행동은 나의 이해반경을 훨씬 벗어나 있었다. 똑같은 일, 똑같은 실수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그럴때마다 자신의 얼굴이나 입을 스스로 쥐어박거나 찰싹찰싹 때리는 걸 보고 슬며시 의심하기도 했다. 이 남자, 정말 정상이야? 살짝 모자라는 거 아냐?
<미스터 후회남>. 아~니, 이렇게 궁상맞은 남자가 또 있을까. 제 멋대로 깎은듯한 헤어스타일에 긴 코, 콧구멍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들이칠까 걱정될 만큼 위로 뻥 뚫려있다. 크기만하다. 거기다 코 밑이랑 턱엔 삐죽삐죽 수염이 보인다. 하지만 더 인상적인 건 남자 눈빛이다. 여덟팔자처럼 아래로 찡그린 눈썹에 커다란 눈동자. 불쌍하다 못해 처량하기 짝이 없다. 이런 얼굴을 어른들은 아마 복이 붙은 데가 하나도 없는 관상이라고 하시겠지?
‘별다른 의견이 없지. 아가씨? 그러면 이제부터 내 얘기를 슬슬 시작해보겠어.’ 이렇게 시작한 책은 주인공인 쩡광셴이 들려주는 자신의 인생이야기이자 후회담이다. 어쩌다 우연히 보게 된 아버지와 자오산허의 불륜행각. 들통난 아버지와 자오 할아버지는 광셴에게 ‘아무것도 못 본거’라며 단단히 입조심을 시킨다. 하지만 자기 속에만 담고 있기에 너무 큰 비밀이었던걸까. 다정하게 대하는 엄마한테 속이는 게 너무 미안해서,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지 않겠다는 친구 위바이자의 맹세를 믿고 또 자오완넨에겐 얼떨결에 광셴, 기어이 일을 치고야 만다.
그때부터 시작된다. 광셴의 후회담은. “내가 제일 무서운 건 다른 게 아니야. 바로 몹쓸 놈의 네 입이야”라며 자신의 입이 집에 화를 불러들이니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하지 말라는 엄마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광셴의 입은 제어불능이다. 자신을 좋아해서 치마까지 걷어 올린 샤오츠에게도 ‘저질’이라며 소리를 지른다. 근데 일이 꼬이려고 했던 걸까. 광셴은 샤오츠가 떠난 뒤에야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샤오츠에게 지난날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샤오츠에겐 다른 남자가 있었다.
또 직장동료이자 친구인 자오징둥이 자신의 말실수로 인해 자살하게 되는데 그 원인제공자였던 장나오를 만난 광셴은 보자마자 다시 열에 들뜬다. 거기다 위바이자의 부추김이 더해져 광셴은 장나오의 숙소에 침입하기에 이른다. 결국 광셴은 강간죄로 8년형을 받고 감옥에 간다. 그런 그에게 루샤오옌은 정성을 다한다. 예전보다 달라진 그의 모습에 광셴이 이제야 제정신을 차렸구나 싶을 찰라에 광셴, 또 일을 친다.
자신의 강간죄가 무고하다는 게 판명되고 출소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광셴은 우리의 기대(?)에 결코 어긋나지 않았다. 루샤오옌과 장나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우왕좌왕할 때는 어이가 없었다. 급기야 종이 두 장에 루샤오옌과 장나오의 이름을 적어서 하나를 골라서 결혼하겠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늘어놓을 때는 너무 화가 나서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부분도 있었다. 하나도 잘난 구석이 없는 광셴을 여자들이 뭐 좋다고 그렇게 매달리는 건지. 아무리 중국이란 나라가 우리와 다르고 또 시대적 배경(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 시기)이 다르다 치더라도 여자의 기준이란 비슷하지 않을까. 책임감이나 주체성이라곤 눈 씻고 봐도 없는데다 걸핏하면 논리도 맞지 않는 말을 늘어놓고 걸핏하면 말실수를 하는 남자. 나 같으면 열 트럭을 갖다줘도 싫다. 우리의 얼굴 중에 귀나 눈이 두 개인데 비해 입이 하나인 이유가 뭐겠는가. 세치 혀를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게 아닌가.
둥시의 책은 <미스터 후회남>을 통해 처음 만났다. 금욕, 우정, 충동, 일편단심, 신체, 방랑, 후회록(어처구니없게도 마지막 끝나는 순간에도 대미를 장식한다) 7개의 장에 걸친 광셴의 후회막급인 인생역정을 보면서 내 가슴팍을 얼마나 쳤는지 모른다. 답답해서. 참 딱하고 불쌍한 인생이다 싶다. 애처롭게 뒤를 바라보는 광셴이 언제쯤이면 후회스런 지난날을 이겨내고 시선을 똑바로 앞으로 향하게 될까. 과연 후회남, 동정남이란 딱지를 떼게 될까. 기대가 된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예요. 후회라는 것은 집 앞을 다 봤는데도 불구하고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아 집을 못 보는 것과 같아요. 또 집으로 가는 길이 가가운데도 일부러 빙빙 돌아 쿠바까지 가는 것과 같다고요. 더 말할까요. 후회는 자기가 다 지은 집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는 것과 같아요. - 2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