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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계 - 중국의 4대 미녀
왕공상.진중안 지음, 심우 옮김 / ODbooks(오디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클레오파트라의 코, 그것이 조금만 낮았더라면 지구의 모든 표면은 변했을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이 한 말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클레오파트라가 엄청난 미모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클레오파트라의 외모는 소문만큼은 아니었다고 한다. 역사에 길이 남을 정도의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그녀만의 매력이 있었기에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와 대결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지중해의 판도가 바뀌었다는 얘기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상징적 인 의미였던 것에 비해 <미인계>에 등장하는 중국의 4대 미녀들은 보다 구체적이다. 여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번 돌아볼 때마다 성이나 나라가 위태롭고 기울어지게 한다 하여 ‘경국지색’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다면 한 나라의 운명, 흥망성쇠의 열쇠를 쥐었던 뛰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4명의 여인은 누구인가. 바로 양귀비와 초선, 왕소군, 서시다.
책은 가장 먼저 양귀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빼어난 미인의 대명사이자 누구나 그 이름만큼은 아는 여인이 바로 ‘양귀비’가 아닐까. 뛰어난 외모뿐 아니라 가무에 능한 양귀비는 수왕과 혼인하여 수왕비가 된다 하지만 시아버지인 현종이 양귀비를 마음에 품으면서 그녀의 운명이 달라진다. 현종의 후궁으로 입궐한 양귀비는 현종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귀비’가 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양귀비’를 그냥 이름으로 알고 있었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더불어 나의 무지함까지도.) 양귀비에 대한 현종의 사랑은 정말 지극했다. 하늘에선 한 쌍의 비익조, 땅에선 가지가 얽힌 두 나무가 되길 염원했단 그들의 사랑은 안녹산의 난으로 위기를 맞는다. 급기야 군신들은 현종에게 애물을 버리고 법을 바로잡으라는 ‘할애정법’을 요구하기에 이르고 양귀비는 화려한 생을 뒤로 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다음으로 등장한 여인은 삼국지를 통해 익히 알려진 초선이었다. 초선의 아름다움은 ‘취영청 밝은 달도 구름 뒤로 숨게 만들’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초선의 가족은 끼니를 잇기 어려울 만큼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왕윤이란 사람이 가족을 보살펴준다. 양아버지의 은혜를 갚기 위해 초선은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 하는 역할을 스스로 떠맡는다. 조조와 관우에게도 몸을 맡긴다. 평범한 여인으로 한 남자의 아내로 살고자 했던 초선이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남자를 거치는 모습은 무척 안타까웠다.
그리고 왕소군. 그녀의 비파 켜는 모습과 소리에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도 떨어뜨렸다고 하는데 사실 난 왕소군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는 걸 본 지인이 책을 한번 훑어보면서 이런 말을 했다. “왕소군은 경국지색이 아니지. 한족의 문화를 오랑캐족에 전파해서 그 나라의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한 여잔데..” 지인의 그 말처럼 왕소군은 책에서 언급된 다른 미녀들과 사뭇 달랐다. 흉노족과의 화친을 목적으로 호한사와 혼인하게 됐지만 그녀를 본 황제가 왕소군 대신 다른 여인을 보내려 하지만 그게 호한사의 성미를 건드리게 된다. 자신을 희생해서 평화를 지키려한 왕소군은 호한사에게 시집을 가지만 결국 그 두 나라가 전쟁을 하는 불행을 겪게 된다.
마지막으로 만난 서시 역시 앞의 세 여인과 비슷했다. 헤엄치는 물고기를 가라앉게 만드는 서시의 미모는 그녀에게 행복을 안겨주지 않았다. 사랑하는 이가 있음에도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그리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기구한 삶을 살아간 여인이었다.
장구한 중국의 역사 한 켠에서 자신의 미모를 이용하거나 희생해서 역사를 바꿔나간 양귀비, 초선, 왕소군, 서시. 삼국지를 통해 초선을 알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네 명의 여인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무척 설레었다. 남자의 입장에서 남자가 주도해나가는 역사에 아무리 미인이라지만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안타깝다...는 거였다.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사랑하지 못했다. 자신만의 삶을 살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여인들의 삶은 생전엔 어느 누구보다 화려했지만 결코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소박하고 평범함 속에 깃든 아름다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