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래 : 세상은 백성의 것이다 샘깊은 오늘고전 9
작자미상 지음, 윤기언 그림, 김기택 글, 강명관 해설 / 알마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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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 그를 알지 못한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을 통해 배웠던 것이 전부다.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실패해버린 인물.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홍경래의 전부다. 그것만으로도 아쉬움이 없었고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를 기르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아무리 실패했어도 우리 역사의 일부에 기록을 남긴, 농민들과 반란을 일으킨 인물인데 아는 게 너무 적지 않은가. 이담에 아이가 질문을 해오면 어쩔 것인가. 이래서야 아이에게 면목이 서질 않는다.




그동안 구전으로 전해지던 이야기 속에서 홍경래는 신비로운 힘을 가진 영웅으로 그려지곤 했는데 이번에 출간된 <홍경래>는 그것과 다르다. 시인 김기택님이 작자 미상의 기록인 홍경래전에 여러 가지 역사 기록과 자료를 참고해 홍경래의 삶과 ‘홍경래의 난’을 썼는데 고전 특유의 어려운 말을 쉽고 편하게 가다듬어 쓴 책이란 점이 큰 차이점이다.




홍경래를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활달한 아이였다. 글솜씨도 다른 아이보다 뛰어났을 뿐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깨치는 것도 달랐다. 또래아이들보다 늘 앞서나갔다. 이 나라 백성을 괴롭히는 왕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치겠다는 시를 지어서 선생님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평소 경전과 역사를 두루 공부해서 누구보다 과거시험에 자신 있었던 홍경래는 2차 시험에서 그만 떨어지고 만다. 18세기 전후 당시 조선은 나라 안의 모든 관리들이 서로 편을 갈라 싸우는데만 몰두하고 있었다. 관리를 뽑을 때도 실력이 아니라 집안에 의해 좌우됐다. 어떤 집안, 얼마나 힘 있는 집안이냐에 따라 벼슬에 오르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했다. 게다가 서북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전왕조의 수도였다는 이유로 특히 심한 차별을 받았다. 자신이 평안도 사람이란 이유만으로 고배를 마셔야 했다는 건 홍경래를 불타오르게 했다. 농민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농민이 반란을 일으켜 잘못된 조정을 바로잡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그 후 홍경래는 온 나라를 떠돌면서 굶주린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다. 군사를 일으키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점점 홍경래에게 모여들었다. 가난한 농민이 중심이 되는 반군을 만들어 난리를 일으킬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시켰다. 그리고 드디어 병사를 이끌고 난을 일으켰다. 관군에 맞서 승리를 거듭하였고 여러 고을을 빼앗아서 창고의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큰 뜻을 품고 반군을 일으켰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정주성에서 끝까지 저항을 하지만 결국 목숨을 잃는다. 세상의 주인인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난을 일으켰지만 실패하고 말았던 ‘홍경래의 난’은 이렇게 끝을 맺고 말았다.




100여 페이지의 얇은 책을 숨가쁘게 읽어가자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홍경래가 분연히 주먹을 쥐고 일어서던 그때와 지금 우리의 상황도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 청구를 할 것인지, 불구속 기소를 할 것인지 여부로 나라가 시끄럽다. 봉하 마을에 2억 원짜리 시계를 찾으러 가자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책을 다듬어 쓴 시인 김기택님은 머리말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에게도 성공한 사람 못지 않은 배울 점이 있’다며 ‘이루지 못한 일 속에도 훌륭한 뜻과 굽히지 않는 정신, 그리고 실패가 주는 교훈만은 남아 있’다는 말을 했다. 실패가 주는 교훈. 그렇다. 우리는 그 점을 잊어선 안된다.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홍경래 그가 품었던 뜻은 무엇보다 크고 원대했다. 그걸 우리의 아이들 마음에 심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끝없이 도전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게 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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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해부
로렌스 골드스톤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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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엄마. 너무 끔찍해.” 책 표지를 보던 큰아이가 질색을 한다. 어둠이 차지한 공간 속에 빛을 받은 일부만이 대조적으로 밝게 표현된 그림. 흉측한 괴물도 유혈이 낭자하지도 않지만 그림 속에서 굳은 표정을 한 남자가 피투성이 손으로 날카로운 도구를 들고 있는 것이 아이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한 것 같다.  솔직히 나도 그랬으니까.




‘인류를 구원한 천재 외과의사의 두 얼굴’이란 부제의 <죽음의 해부>는 저자인 로렌스 골드스톤의 우연한 발견에 의해 탄생한 작품이다. 고서적을 뒤지던 그는 19세기 의학계의 거물인 윌리엄 홀스테드가 사실은 약물중독자였다는 비밀을 접하게 된다. 독서광으로 알려진 저자는 그것을 모티브 삼아 충분한 자료조사와 상상력을 더해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저자에 의해 살아나고 재현된 19세기말 미국 의학계,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후반은 사체의 해부가 범죄행위란 낙인에서 겨우 해방된 정도에 불과했다. 죽은 몸을 토막 내는 것에 대한 반감과 혐오감이 강하게 남아있던 때, 캐롤을 비롯한 네 명의 동료들은 오슬러 교수의 시체 해부에 참관하기 위해 필라델피아의 시체안치소로 향한다. 해부는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네 번째 해부를 위해 관 뚜껑을 열어젖히고 금발의 젊은 여인의 시체를 확인하는 순간 터크와 캐롤은 숨을 죽이고 당황한 오슬러 교수 역시 알 수 없는 이유를 대며 해부를 거부한다.




어리둥절한 캐롤에게 터크는 다정스레 대하고 둘은 극장과 싸구려 술집을 전전한다. 그 다음날부터 병원에 출근하지 않던 터크가 염려된 캐롤은 우여곡절 끝에 그의 집을 찾아가지만 캐롤을 본 터크는 곧 죽음을 맞는다. 터크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해부가 이뤄지고 그 과정을 통해 터크가 독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베네딕트 가의 저녁 만찬에 참석한 캐롤은 매력적인 여인 애비게일에게 매료되고 애비게일로부터 기묘한 의뢰를 받는다. 실종된 친구 레베카 라흐트만의 행방을 알아봐달라는 것이다. 




그후 캐롤은 수많은 의문에 휩싸인다. 시체실에 있던 아름다운 여인은 과연 누구이며 레베카의 실종 원인이 된 해결책이란 무언지, 술집에서 터크와 다툼을 벌이던 남자의 정체는 또 무엇인가. 그리고 오슬러 교수는 정말 터크의 죽음과 레베카의 실종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인가. 이런 의혹을 풀기 위해 캐롤은 점점 사건의 핵심으로 다가가고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의학과 해부학에 관한 저자의 철저한 자료조사와 상세한 묘사와 의학계에 큰 획을 그은 실존 인물들이 등장해선지 책의 내용은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표지를 비롯해 책에 수록된 토마스 에이킨스의 그림을 통해 당시 의학계가 어떤 변화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당시 논란이 되었던 해부나 낙태, 약물 등에 대해 등장인물이 토론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에서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반대로 해당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내가 꼭 챙겨보는 만화 중에 <의룡>이란 의학만화가 있다. 생명을 지키는 최일선에 있는 의료계가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비뚤어져 있는지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만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천재외과의 아사다가 초반에 이런 얘길 했다. 끊임없이 째고 오리고 도려내봐야 진짜 의사가 된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만 한편으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나의 생명을 마치 실험도구처럼 여기는가. 화가 났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걸 느꼈다. 다수의 사람을 위해선 소수, 한 명의 목숨은 희생되어 마땅한가. 의학적인 진보를 위해서라면 허물이나 실수, 치부까지도 모든 걸 덮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들이 책장을 덮은 후에도 떠나지 않고 줄곧 따라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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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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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공포증? 그런 거 없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안에 있으면 왠지 불안하다. 갑자기 멈춰버리진 않을까? 줄이 끊어져서 아래로 뚝 떨어지면 어떡하지? 엄청난 속도로 떨어질 테니까 깡충 뛰어서 발을 바닥에서 떼야 충격이 덜할까? 언젠가 이런 얘길 남편에게 했다. 그랬더니 “니가 영화를 너무 봤는갑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라!”한다. 아니, 이게 왜 쓸데없는 소리냐고. 만약이란 게 있을 수 있잖아?




눈을 뜨니 낯선 천장. 대체 여기가 어디야? 아내의 전화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탄 것까진 확실한데... 그래! 여긴 엘리베이터야! 근데 내가 왜 여기에 누워있는 거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자신을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는 세 얼굴. 마녀처럼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여자와 메뚜기를 닮은 오타쿠임이 분명해 보이는 젊은 남자, 덥수룩한 수염 때문에 평범한 직장인 같지 않은 중년의 남자. 그들은 오가와에게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급강하했고 그때의  충격으로 오가와가 정신을 잃었다는 말을 한다.




이런, 큰일이다. 아내의 출산이 곧 시작될텐데...사태가 심상찮음을 직감한 오가와는 비상벨을 누르고 살려달라며 소리를 지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지만 휴대폰도 시계도 온데간데 없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야? 안절부절 못하는 오가와에 비해 세 사람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엘리베이터에 갇혀있는데도 불구하고 무덤덤하게 보이는 그들은 오가와에게 얘기나 하면서 구출을 기다리자며 말을 건넨다. 그러다 자신의 숨겨진 비밀을 털어놓기에 이르는데....




어느날 갑자기 멈춰버린 엘리베이터에 갇힌 네 사람. 그들은 우연히 그 엘리베이터에 함께 있게 된 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철저한 계획인걸까? 엘리베이터란 한정된 좁은 공간에서 네 사람이 벌이는 일들은 왠지 엉뚱하면서도 유머가 넘쳤다. 하지만 그건 바로 이어서 찾아올 악몽의 예고편이였다.




책은 오가와 - 마키 - 사부로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처음엔 해프닝처럼 가볍게 생각했던 일이 얼떨결에 드러난 허점을 감추려고 하다가 사태는 오히려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다. 사건의 배후에 의외에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순간 당황하면서도 사태를 수습하려 하지만 일은 자꾸 더 꼬이기만 한다. 과연 오가와를 비롯한 네 명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대체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공포와 악몽의 공간으로 만든 것일까.




소설은 마치 영화를 보듯 빠르게 진행된다. 설상가상으로 얽힌 일이 마무리 되는 분위기에서 이제 끝인가...싶어 마음의 긴장을 늦추는 순간, 책은 놀라운 반전으로 이야기를 뒤집어버렸다. 의외의 인물,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이어지는 <악몽의 엘리베이터>. 이 책은 기노시타 한타의 ‘악몽’시리즈 중에서 첫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뒤이어 출간될 <악몽의 관람차>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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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넥션 - 생각의 연결이 혁신을 만든다, 세계를 바꾼 발명과 아이디어의 역사
제임스 버크 지음, 구자현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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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넥션. 영어로 된 책제목을 만날 때마다 당황스럽다. 이건 또 무슨 뜻이야? 검색해보니 이것을 우리말로 적절하게 설명하는 용어가 없다고 한다. 대략 ‘접속’, ‘연결’, 혹은 ‘잇다’란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 제목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다니...이거 참, 곤란하다. 다행히 부제가 있어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생각의 연결이 혁신을 만든다. 세계를 바꾼 발명과 아이디어의 역사. 오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책은 세계사에 길이 남을 발명과 아이디어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거로군! 그렇담 뭐가 있나...어디 한번 볼까?




책은 작은 금속 용기의 오작동이 미국과 캐나다 북부 지역에 정전을 불러왔던 사건으로 출발한다. 갑자기 전력이 끊기면서 거리는 마비되고 사람들은 지하에 갇혔으며 활주로의 불이 나가면서 공항도 혼란에 빠져 우회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저자는 이 사건을 통해 현재의 진보된 사회가 얼마나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지 꼬집으면서 모든 변화의 원동력이자 방아쇠로 작동되는 혁신에 대해 말한다. 인류 최초의 혁신은 땅을 긁는 도구인 쟁기인데 그 단순한 도구가 인류 역사상 가장 근본적인 발명인 동시에 문명을 탄생시키게 한 방아쇠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최초의 농경 수확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줬으며 어떻게 변화시켜 나갔는지 따라가보자고 제의한다.




저자는 인류에게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지만 때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는 발명에 대해 하나씩 짚어나간다. 원자폭탄을 비롯해서 통신과 전화기, 컴퓨터, 현대 생산라인, 비행기, 플라스틱, 로켓, 텔레비전. 이런 발명들이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해서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진행이 됐는지 차근차근 얘기를 풀어나가는데 하나의 발명이 처음 시작된 지점과 마지막 완성 단계를 보면 이럴수가! 너무나 놀랍다.




예를 들어 ‘원자 폭탄’의 경우, 그 발명의 기원을 어디에 닿아있는지 아는가. 놀랍게도 2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터키의 두 강에서 사금이 발견되는 것에 가닿는다. 상상이 되는가. 사금과 원자폭탄이 하나의 뿌리와 열매로 이어져있다는 사실이. 그 자체만으로 봐서는 결코 서로 연결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가 당시 시대적 배경과 상황과 맞물리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어진다. 그 결과 1945년 최초의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되기에 이른다.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발명과 그 변천사에 대해 알 수 있을 거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책을 읽어나갔다가 큰 낭패를 보고야 말았다. 읽긴 읽었지만 책을 덮고 나면 대체 무슨 내용이었는지 잘 연결되지 않았다. 하나의 발명에 완전히 몰입하지 않고 며칠에 걸쳐 읽었던 게 실수였다. 결코 만만하게 볼 내용이 아니었다. 두 번째는 좀 더 꼼꼼하게 정독을 해나갔다. 필기도구를 준비해 줄을 긋고 메모를 곁들이면서 읽자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그때 또 한번 놀랐다. 아니, 세상에 이럴수가! ‘생각의 연결이 혁신을 만든다’는 부제가 무슨 의미인지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냥 무심코 넘길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아이디어가 되고 실마리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아가 새로운 혁신을 불러왔다.




‘위기’란 말이 사람들의 입에서 수시로 오르내리는 요즘이다. 계속되는 경기불황을 속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묘안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생각의 혁신이 아닐까 한다. 늘 보던 사물도 좀 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며 유추하는 새로운 접근방식. 이런 것들이 모두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고 더 나아가 또 하나의 발명, 인류의 역사란 커다란 바퀴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는 게 아닐까.




40여년전 BBC에서 방송됐던 과학 다큐멘터리 <커넥션> 시리즈가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와 후속편까지 제작되었는데 그것을 저자가 한권의 책으로 묶어서 출간한 <커넥션>. 근래 들어 읽은 책 중에 가장 어려운 책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중간중간 흥미를 가질만한 내용도 많았다. 기원전의 도서관이라든가 굴뚝과 독서의 관계...등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것도 많았다. 인류의 변천사나 과학사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꼭 한번 일독, 정독해볼 것을 추천한다. 사고의 무한확장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읽을 때 내 머리에서 자꾸 끼익끼익 소리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했나보다. 한창때만큼은 아니라도 앞으로 또 몇 십 년 돌리려면 기름칠이라도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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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 어느날 과학이 세상을 벗겨버렸다
이종필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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풉, 푸하하! 표지를 보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온다. 풀밭에 주저앉은 당나귀가 옆에 있는 동물에게 건네는 말이 걸작이다. “과학적으로 다스려 주셨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 도대체 옆의 동물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했길래 덩치 작은 동물이 큰 동물에게 저런 조언을 할까?




<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제목이 정말 거창하다. 어느 누가 감히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 원수에게 ‘당신을 위해 글을 썼으니 읽고 제발 나라를 제대로 다스려’ 달라며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 조선시대 같으면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른다며 경을 칠 노릇이다. 하지만 선왕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글에 담긴 뜻과 내용에 따라 관리로 발탁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글은 어느 쪽에 속할까. 경을 치게 될 것인가, 등용의 지름길이 될 것인가.




저자는 크게 정치, 문화, 사회, 인간 네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그 중심뼈대는 하나다. 바로 과학은 외딴 섬처럼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서로의 이해관계를 따지기에 급급한 정치판이나 사람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 앉히는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과학적 사고와 원리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롤러코스트를 타듯 복잡한 그래프로 나타나는 경제, 인류의 우주에 대한 꿈까지 모두 과학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거였다.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두뇌가 모자랄 뿐 아니라 정치와 종교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과 고통을 낳는지 말한다. 또 고등학교 때 문과냐 이과냐에 따라 완전히 분리되고  상황에 따라 제대로 된 과학교육을 받는 것조차 기대할 수 없는 현재의 교육환경에서는 다가올 미래 역시 그리 밝지 않을 거라고 전망한다. 영화도 관련 분야의 전문가의 조언이나 자문없이 제작되는 작품은 스토리의 필연성이나 일관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특별한 사건이나 우연의 연속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한계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과학적인 사고가 필요하며 인문과 과학이 단절되어 있는 현실이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대학에서 기초과학 분야를 전공했음에도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부분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그땐 왜 이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까...반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이많이 부러웠다. 얼마전 읽었던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이란 책에서 학부생들의 교양필수 과목으로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강좌가 있다고 해서 무척 부러웠는데 이 책에선 [미래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이란 강좌를 전공 상관없이  수강하는 대학이 있다고 했다. 중요한 건 그런 강좌를 개설하여 학생들에게 마음껏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대학이 모두 미국의 대학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기초학문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로 깊고 넓은 사고와 과학적 합리성이 바탕이 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10살인 큰아이의 장래희망은 4년째 변함없이 ‘과학자’다. 이야, 대견한대! 역시 멋진 내 아들이야! 하고 말은 하지만 속으론 걱정이 된다. 어느 기업이나 연구소든지 최고경영자는 관련 전문가가 아닌 인문계 출신으로 채워지는 현실을 알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조건 없이 지원해주고 싶다. 그러니, 제~발 우리나라를 과학적으로 다스려 주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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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5-13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관심이 가던데 몽당연필님의 리뷰를 보니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확실히 드네요. ^^

몽당연필 2009-05-13 05:1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제겐 과분한 말씀인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