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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 어느날 과학이 세상을 벗겨버렸다
이종필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4월
평점 :
풉, 푸하하! 표지를 보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온다. 풀밭에 주저앉은 당나귀가 옆에 있는 동물에게 건네는 말이 걸작이다. “과학적으로 다스려 주셨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 도대체 옆의 동물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했길래 덩치 작은 동물이 큰 동물에게 저런 조언을 할까?
<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제목이 정말 거창하다. 어느 누가 감히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 원수에게 ‘당신을 위해 글을 썼으니 읽고 제발 나라를 제대로 다스려’ 달라며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 조선시대 같으면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른다며 경을 칠 노릇이다. 하지만 선왕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글에 담긴 뜻과 내용에 따라 관리로 발탁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글은 어느 쪽에 속할까. 경을 치게 될 것인가, 등용의 지름길이 될 것인가.
저자는 크게 정치, 문화, 사회, 인간 네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그 중심뼈대는 하나다. 바로 과학은 외딴 섬처럼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서로의 이해관계를 따지기에 급급한 정치판이나 사람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 앉히는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과학적 사고와 원리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롤러코스트를 타듯 복잡한 그래프로 나타나는 경제, 인류의 우주에 대한 꿈까지 모두 과학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거였다.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두뇌가 모자랄 뿐 아니라 정치와 종교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과 고통을 낳는지 말한다. 또 고등학교 때 문과냐 이과냐에 따라 완전히 분리되고 상황에 따라 제대로 된 과학교육을 받는 것조차 기대할 수 없는 현재의 교육환경에서는 다가올 미래 역시 그리 밝지 않을 거라고 전망한다. 영화도 관련 분야의 전문가의 조언이나 자문없이 제작되는 작품은 스토리의 필연성이나 일관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특별한 사건이나 우연의 연속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한계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과학적인 사고가 필요하며 인문과 과학이 단절되어 있는 현실이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대학에서 기초과학 분야를 전공했음에도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부분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그땐 왜 이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까...반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이많이 부러웠다. 얼마전 읽었던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이란 책에서 학부생들의 교양필수 과목으로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강좌가 있다고 해서 무척 부러웠는데 이 책에선 [미래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이란 강좌를 전공 상관없이 수강하는 대학이 있다고 했다. 중요한 건 그런 강좌를 개설하여 학생들에게 마음껏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대학이 모두 미국의 대학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기초학문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로 깊고 넓은 사고와 과학적 합리성이 바탕이 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10살인 큰아이의 장래희망은 4년째 변함없이 ‘과학자’다. 이야, 대견한대! 역시 멋진 내 아들이야! 하고 말은 하지만 속으론 걱정이 된다. 어느 기업이나 연구소든지 최고경영자는 관련 전문가가 아닌 인문계 출신으로 채워지는 현실을 알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조건 없이 지원해주고 싶다. 그러니, 제~발 우리나라를 과학적으로 다스려 주세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