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해부
로렌스 골드스톤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윽, 엄마. 너무 끔찍해.” 책 표지를 보던 큰아이가 질색을 한다. 어둠이 차지한 공간 속에 빛을 받은 일부만이 대조적으로 밝게 표현된 그림. 흉측한 괴물도 유혈이 낭자하지도 않지만 그림 속에서 굳은 표정을 한 남자가 피투성이 손으로 날카로운 도구를 들고 있는 것이 아이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한 것 같다.  솔직히 나도 그랬으니까.




‘인류를 구원한 천재 외과의사의 두 얼굴’이란 부제의 <죽음의 해부>는 저자인 로렌스 골드스톤의 우연한 발견에 의해 탄생한 작품이다. 고서적을 뒤지던 그는 19세기 의학계의 거물인 윌리엄 홀스테드가 사실은 약물중독자였다는 비밀을 접하게 된다. 독서광으로 알려진 저자는 그것을 모티브 삼아 충분한 자료조사와 상상력을 더해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저자에 의해 살아나고 재현된 19세기말 미국 의학계,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후반은 사체의 해부가 범죄행위란 낙인에서 겨우 해방된 정도에 불과했다. 죽은 몸을 토막 내는 것에 대한 반감과 혐오감이 강하게 남아있던 때, 캐롤을 비롯한 네 명의 동료들은 오슬러 교수의 시체 해부에 참관하기 위해 필라델피아의 시체안치소로 향한다. 해부는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네 번째 해부를 위해 관 뚜껑을 열어젖히고 금발의 젊은 여인의 시체를 확인하는 순간 터크와 캐롤은 숨을 죽이고 당황한 오슬러 교수 역시 알 수 없는 이유를 대며 해부를 거부한다.




어리둥절한 캐롤에게 터크는 다정스레 대하고 둘은 극장과 싸구려 술집을 전전한다. 그 다음날부터 병원에 출근하지 않던 터크가 염려된 캐롤은 우여곡절 끝에 그의 집을 찾아가지만 캐롤을 본 터크는 곧 죽음을 맞는다. 터크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해부가 이뤄지고 그 과정을 통해 터크가 독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베네딕트 가의 저녁 만찬에 참석한 캐롤은 매력적인 여인 애비게일에게 매료되고 애비게일로부터 기묘한 의뢰를 받는다. 실종된 친구 레베카 라흐트만의 행방을 알아봐달라는 것이다. 




그후 캐롤은 수많은 의문에 휩싸인다. 시체실에 있던 아름다운 여인은 과연 누구이며 레베카의 실종 원인이 된 해결책이란 무언지, 술집에서 터크와 다툼을 벌이던 남자의 정체는 또 무엇인가. 그리고 오슬러 교수는 정말 터크의 죽음과 레베카의 실종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인가. 이런 의혹을 풀기 위해 캐롤은 점점 사건의 핵심으로 다가가고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의학과 해부학에 관한 저자의 철저한 자료조사와 상세한 묘사와 의학계에 큰 획을 그은 실존 인물들이 등장해선지 책의 내용은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표지를 비롯해 책에 수록된 토마스 에이킨스의 그림을 통해 당시 의학계가 어떤 변화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당시 논란이 되었던 해부나 낙태, 약물 등에 대해 등장인물이 토론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에서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반대로 해당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내가 꼭 챙겨보는 만화 중에 <의룡>이란 의학만화가 있다. 생명을 지키는 최일선에 있는 의료계가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비뚤어져 있는지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만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천재외과의 아사다가 초반에 이런 얘길 했다. 끊임없이 째고 오리고 도려내봐야 진짜 의사가 된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만 한편으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나의 생명을 마치 실험도구처럼 여기는가. 화가 났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걸 느꼈다. 다수의 사람을 위해선 소수, 한 명의 목숨은 희생되어 마땅한가. 의학적인 진보를 위해서라면 허물이나 실수, 치부까지도 모든 걸 덮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들이 책장을 덮은 후에도 떠나지 않고 줄곧 따라다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