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
마빈 클로스 외 지음, 박영록 옮김 / 생각의나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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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하는 것도 없으면서 매일 바쁜 일상. 집으로 오는 두 개의 일간지를 모두 훑어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빼놓지 않고 챙겨보는 것이 있는데, 바로 ‘북 섹션’입니다. 일주일간 새로 출간된 수많은 책 중에서 눈길을 끄는 책을 소개해놓은 글을 보는 시간이 무척 즐거운데요. 어쩌다 한 권의 책을 여러 신문에서 중복 소개되기라도 하면 불쑥 솟구치는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게 되버리곤 합니다. 얼마전에도 그랬어요. 여기저기 떨어지고 낡은 축구공사진과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를 끝낸 것은 축구였다!’는 글을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댔습니다. 하나의 스포츠 경기일 뿐인 축구가 인종차별제도를 끝낼 수 있다니. 축구를 알지 못한 저로선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 자세한 내막이.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월드컵 개최에 맞춰 국내에 번역 출간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은 남아공의 로벤섬 수용소에서 벌어진 실화를 담고 있습니다.




책은 먼저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해 말합니다. 남아프리카에서 거주하는 소수의 백인들, 아프리카너에 의해 확립된 극단적인 인종차별제도로 분리 혹은 격리를 뜻하는 아프리칸스어(語)라고 합니다. 이 제도로 인해 대부분의 흑인들은 자신들의 조국에서 통행증 없이는 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었을 뿐아니라 거주지나 일하는 데에도 통제를 받았는데요. 이를 거부하거나 저항하는 사람은 즉시 정치범으로 체포, 고문을 가했는데, 대부분 케이프타운 해변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로벤섬 수용소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언제나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로벤섬은 정치범들에게 더욱 가혹했습니다. 악랄한 간수들은 걸핏하면 수감자들에게 폭력을 가했고 힘든 육체노동으로 부상을 입어도 치료는커녕 약도 제공되지 않았는데요. 바로 그 수용소의 독방에 넬슨 만델라(전 남아공 대통령)와 ANC 지도자인 월터 시술루가 감금됩니다.




한편, 비밀경찰에게 잡히기 전 축구광이었던 토니 수즈는 수감소의 거친 환경과 탄압, 혹독한 상황 속에서 수감자들과 셔츠를 둥글게 뭉쳐 임시 축구공을 만들어 감방 안에서 축구를 합니다. 5명 혹은 8명의 미니 경기였지만 로벤섬의 수용소에선 서서히 축구바람이 불게 됩니다. 그 후 그들은 정식으로 축구경기를 할 수 있도록 교도소에 요청을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감자들은 축구를 하려는 투쟁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매주 토요일 단 30분 동안의 축구경기를 허락받데요. 그들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FIFA의 규정대로 축구경기를 진행하고 여러 개의 축구팀으로 리그제 경기를 하다가 ‘마카나 축구협회’를 결성하기에 이릅니다.




축구를 알지 못하지만 2002년 월드컵의 열기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하나의 축구공이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벅찬 감동을 안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척박한 땅이 부지런한 농부에 의해 기름진 땅이 되듯 가혹하고 살벌한 로벤섬 수용소가 축구로 인해 변화하는 모습은 실로 기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More than just a game’. 이 책의 원제인 ‘단순한 게임 그 이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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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신호등 - 내 몸이 질병을 경고한다
닐 슐만 외 지음, 장성준 옮김 / 비타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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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들어 작은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중 단 몇 시간에 불과하지만 집을 벗어난다는 건 아이에게 큰 스트레스이자 모험일 겁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아이는 엊그제부터 콧물에, 기침까지 하네요. 열이 없고 그리 심하지 않아보여서 병원에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아이의 상태나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데요. 이거 정말 애매합니다. 아이의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치료와 처방을 받아서 상태가 깊어지는 걸 방지하는 게 좋을지, 당장 응급실로 뛰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당분간 지켜봐야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허용범위나 위험정도를 나타내는 적정선이란 걸 명확하게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저 같은 평범한 주부에게 쉽지가 않지요.




그래서 선택한 책이 <건강신호등>인데요. 이 책은 여느 건강서적과 다릅니다. 먼저 저자가 한 명이 아닙니다. 자그마치 210명이 동원됐습니다. 미국 최고의 전문 의사 210명이 그동안 환자를 진료하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서 자주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나 징후에 어떤 것이 있는지 설명하고 그에 대한 대처방법도 짚어주고 있는데요. 책의 앞부분에 본문의 내용을 알려주는 차례에 이어 ‘건강 신호등 경고 징후표 목록’을 수록해서 신체의 각 부위별로 통증이나 증상에 따라 어디를 찾아봐야 하는지 각 페이지를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은 크게 ‘머리에서 발끝까지 나타나는 건강 이상 신호’ ‘성인에게 흔히 나타나는 일반적인 증상과 징후들’ ‘임신과 출산’ ‘소아과, 신체부위별 질병’ ‘의료과실을 피하는 방법’ 5개의 차트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신호 1. 천둥처럼 갑자기 머리가 울리는 두통’을 시작으로 우리가 일상 중에서, 혹은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신체에 나타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증상과 징후에 대해 252개의 신호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증상이나 통증이 있을 때 이 책에 해당되는 항목을 찾아서 바로 병원으로 가야할지, 집에 구비해둔 상비약으로 해결해야 할지 판단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다만, 저를 비롯한 독자들이 의학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책에서 명시되어 있는 증상을 잘못 이해할 수도 있으니 책의 내용에만 치중하는 건 조심해야겠지요. 우리가 길을 갈 때 계속 가야할지, 멈춰야할지 신호등이 초록불, 노란불, 빨간불로 알려주는 것처럼 이 책은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통증이나 증상들이 어떤 의미인지 전해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의외로 위험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흔히 얼굴에 난 뾰루지나 여드름을 별 생각없이 터트리곤 하는데요. 대서양에 버뮤다 삼각지대가 있듯이 우리 얼굴에도 ‘위험한 삼각지대’가 있다고 합니다. 양 눈의 정중앙에서 입의 양쪽 끝이 해당하는데 여기에 생긴 감염이나 염증은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으니 반드시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야한다는 거. 또 부록으로 수록된 응급처치법이나 여러 자가 검사법, 소아의 체온 측정법도 꼭 기억해둬야겠습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저도 중년을 고비로 서서히 성인병이나 여러 질병을 앓을 위험이 높아졌는데요. 이제부터라도 제 몸이 보내는 여러 신호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 <건강신호등>이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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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를 부르는 그림 Culture & Art 1
안현신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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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를 낳고 몇 년간 중단상태지만 한때 십자수에 빠져 살았다. 책 아니면 바늘을 쥐고 살았는데, 책 읽는 속도가 느리듯 수놓는 속도도 무척 더뎠다. 그런데 귀엽고 예쁘고 멋지고 근사한 도안은 왜 그리도 많은지 하나하나 모은 도안이 두어 박스가 넘는다. 그중에서도 언젠가는 꼭 작품으로 만들어야지...했던 것이 바로 클림트의 [키스]였다. 그 어떤 것보다 황홀하고 매혹적인, 그러면서도 왠지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는 그림을 십자수로 담아보려 했는데. 아직도 꿈만 꾸고 있다. 매혹의 키스를...




수많은 키스 장면을 모자이크해서 살짝 도드라지게 표현한 입술. 관능적이면서도 에로틱한 느낌을 자아내는 책 <키스를 부르는 그림>. Culture & Art Series의 첫 번째 책으로 ‘키스’를 소재로 한 유명화가와 조각가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은 크게 ‘빛과 환희, 즐거운 입맞춤’, ‘어둠의 세계, 비극의 입맞춤’, ‘황홀의 순간, 관능의 입맞춤’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23개로 나누어진 키스의 모습들을 살펴보니 각각의 키스마다 담겨있는 감정들이 모두 조금씩 다르게 다가왔다. 더없이 아름다운 키스가 있는가하면 짙은 칠흑 같은 어둠이 물씬 배어나오는 키스가 있었다. 따스하고 포근함이 가득한 키스가 있는 반면 인간의 욕망과 불안, 배신이 느껴지는 키스도 볼 수 있었다.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감정, 기쁨과 슬픔, 사랑, 연민, 질투, 배신, 욕망의 표현을 모두 키스를 통해 전하고 있는 작품들이었는데, 이미 알고 있는 것도 많았지만 책에서 처음 만난 작품도 있었다.




마르크 샤갈의 키스를 담은 여러 그림 중에서 너무나 유명한 그림 [생일]. 사랑하는 연인간의 키스를 보며 사랑의 몽환적인 느낌을, 아이를 안고 입을 맞추는 엄마의 모습을 담은 메리 카시트의 그림에선 한없는 포근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반면 [유다의 키스]처음 충격적인 순간을 포착한 그림도 있었다. 입을 맞춤으로써 예수를 배신하게 된 유다, 입맞춤으로 인해 엄청난 혼란을 불러오지만 그럼에도 평온함을 유지한 예수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런가하면 베일 같은 것을 뒤집어쓴 채 키스 하는 르네 마르리트의 [키스]에서는 낯섦과 의문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클림트의 [키스]! 사랑의 절정, 최고로 황홀한 순간을 담은 그림이 불가능한 사랑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니...




무엇보다 가장 독특했던 작품은 역시,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키스]였다. 딱딱한 바윗덩어리에 불과했던 것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 사랑의 일체감을 단순하지만 확연하게 드러낸 작품을 보며 평화로움과 진정한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코는 어떻게 해야 하죠? 늘 궁금했어요.....언제나 코가 훼방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처음으로 키스를 하던 마리아처럼 책을 읽으며 나 역시 궁금했다. 키스를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저자가 조용히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수많은 작품에서 보여지는 키스가 그저 사랑을 드러내는 낭만적인 감정의 표현이 전부가 아니란 걸 느꼈다. 자신의 감정과 삶을 작품 속에 녹여낸 수많은 예술가들을 또 다른 시각으로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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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 스페인·라틴아메리카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후안 룰포 외 지음, 김현균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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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부터 국내의 몇몇 유명출판사에서 세계문학들을 내보이고 있다. 기존에 이미 출간된 작품이 새롭게 번역하거나, 새로운 판형과 표지로 출간되고 있는데 간혹 지금까지 출간된 적이 없는 새로운 작품이 있어서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그 중에 창비 세계문학이 있다.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지금까지 많이 알려진 저자의 장편이 소개되는 것에 비해 창비 세계문학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일본...처럼 국가나 주요지역으로 묶어서 해당 나라 작가의 단편들을 모아놓았다는 점이 독특하다.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는 창비 세계문학의 [스페인/라틴아메리카편]이다.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었지만 스페인/라틴아메리카 작가의 작품을 그다지 많이 접하지 못했기에 만나기 전부터 기대가 됐다. 책은 19명  작가들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목차를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작가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와 <운명의 딸>의 이사벨 아엔데 단 두 명에 불과했다. 그것도 작가의 이름만 알고 있을 뿐, 실제로 작품을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300쪽이 안 되는 책에 19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어서 각각의 단편은 길이가 그다지 길지 않다. 이그나시오 알데꼬아의 [영 산체스]이 50페이지에 가까운 가장 긴 단편이라면 아우구스또 몬떼로소의 [일식]처럼 단 두 페이지짜리 단편도 있었다. 그 중에 인상적인 작품을 꼽자면 목장주에게 갚아야 될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암소 꼬르데라를 팔아야하는 처지에 놓은 목장 주인과 어릴적 엄마요 할머니 같던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전쟁터에 불려가는 이야기를 담은 [안녕 꼬르데라!], 곱게 잘 자란 소녀를 보며 지난 날 소녀가 태어나던 순간과 어릴적 모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는 삐오 바로하의 [마리 벨차], 공장 노동자인 주인공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판으로 복서의 길을 걷는 이그나시오 알데꼬아의 [영 산체스], 마치 테이프를 거꾸로 돌리듯 이야기의 서술방식이 과거로 과거로 이어지는 알레오 까르뻰띠에르의 [씨앗으로 돌아가는 여행]은 예전에 읽었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스페인버전(?)을 보는 듯했다. 의문을 품게 했던 제목이자 표제작인 후안 룰포의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는 35년 전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이에게 복수하려는 멕시코군 대령과 그에게 자비를 구하려는 암살범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스페인의 비극적인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 많은데다 영미소설에 비해 자주 접하지 못한 나라의 작품, 그것도 전쟁이나 가난, 혁명, 독재정치처럼 비극적인 주제를 담고 있어서인지 각각의 단편들은 생각만큼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루에 두 세 개 정도의 단편을 읽고 나서 틈틈이 책의 내용을 곱씹어야 하는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각 단편마다 저자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내용에 대한 간략적인 설명과 ‘더 읽을거리’를 수록해놓고 있어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현재 총 9권으로 구성된 창비 세계문학. <스페인/라틴아메리카편>외에 다른 나라편에는 어떤 작품이 수록되어 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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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금강 지음 / 불광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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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은 참으로 희한하다. 엊그제 일을 까맣게 잊는 반면 오래전에 있었던 짧은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리기도 한다.




십 오륙년 전, 사찰에서 보낸 하루가 바로 그런 경우다. 계절은 여름에 들어서서 해는 길어졌지만 산중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도로를 따라 암자를 찾아가는 길, 좌우로 펼쳐진 논에선 개구리들의 합창이 무르익어갔다. 개굴개굴개굴....귀가 멍할 정도로 크게 다가오던 소리에 익숙해질 즈음 어느새  사찰의 초입에 이르렀다.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우리에게 주지 스님은 차 한 잔을 건네셨는데 그때의 입 안 가득 퍼지던 쌉싸래한 차 맛이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향기로웠다. 낯선 곳, 낯선 방에서 쉬이 잠들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세다 얼핏 선잠에 빠진 날 깨운 건 낮으면서도 청명한 목탁소리였다. 잠에 취한 모든 생물과 미물을 깨우는 도량석 목탁소리. 언제 잠들었냐는 듯 번뜩 정신이 차리고 문을 여는 순간, 내 입에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깊은 산중의 암자, 이른 새벽, 도량을 감싸고 있는 안개, 바람결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목탁과 풍경소리, 엄숙하고도 장엄함이 감돌던 새벽 예불...마치 꿈속에서나 볼 것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을 읽으며 난 오래전 작은 암자에서의 하루가 떠올랐다. 스님이 조용히 건네시던 맑은 차, 새벽안개가 내려앉은 사찰, 피부에 닿는 차가운 공기마저 신선하게 느껴지던 새벽 사찰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전라남도 해남의 땅끝마을, 달마산 중턱 쇠락해가던 사찰 미황사는 마치 깊은 잠에 빠진 천지만물이 도량석 목탁소리로 깨어나듯 금강스님의 원력으로 서서히 깨어나게 된다. 누구든 마음속에 부처가 있다는 석가의 가르침처럼 금강스님은 만나는 이마다 부처를 대하듯 정성을 다했다. 이어 템플스테이와 참선수행 프로그램 ‘참사람의 향기’, 어린이 대상의 한문학당, 산중음악회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깊은 산중에 머물러 있는 불교가 아니라 보다 많은 이들과 호흡하기를 염원하는데, 그 스님의 마음에 보답하듯 미황사는 이제 해마다 많은 이들이 찾는 사찰이 되었다.




시작하는 겨울, 일어나는 봄, 길 위의 여름, 깊어가는 가을로 이어지는 책을 매일밤 잠자리에 든 아이에게 조금씩 읽어줬다. 하루의 일과에 지친 마음을 내려놓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어가는 책을 귀로 들으며 아이는 잠투정도 잊고 곤히 잠들었다. 잠든 아이의 평온한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여기에도 부처가 깃들어있겠지. 내게 깃든 부처를 뵙기 위해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를 마음에 담아본다. 오래전 그 날의 청정한 새벽예불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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