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금강 지음 / 불광출판사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의 기억은 참으로 희한하다. 엊그제 일을 까맣게 잊는 반면 오래전에 있었던 짧은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리기도 한다.




십 오륙년 전, 사찰에서 보낸 하루가 바로 그런 경우다. 계절은 여름에 들어서서 해는 길어졌지만 산중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도로를 따라 암자를 찾아가는 길, 좌우로 펼쳐진 논에선 개구리들의 합창이 무르익어갔다. 개굴개굴개굴....귀가 멍할 정도로 크게 다가오던 소리에 익숙해질 즈음 어느새  사찰의 초입에 이르렀다.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우리에게 주지 스님은 차 한 잔을 건네셨는데 그때의 입 안 가득 퍼지던 쌉싸래한 차 맛이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향기로웠다. 낯선 곳, 낯선 방에서 쉬이 잠들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세다 얼핏 선잠에 빠진 날 깨운 건 낮으면서도 청명한 목탁소리였다. 잠에 취한 모든 생물과 미물을 깨우는 도량석 목탁소리. 언제 잠들었냐는 듯 번뜩 정신이 차리고 문을 여는 순간, 내 입에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깊은 산중의 암자, 이른 새벽, 도량을 감싸고 있는 안개, 바람결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목탁과 풍경소리, 엄숙하고도 장엄함이 감돌던 새벽 예불...마치 꿈속에서나 볼 것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을 읽으며 난 오래전 작은 암자에서의 하루가 떠올랐다. 스님이 조용히 건네시던 맑은 차, 새벽안개가 내려앉은 사찰, 피부에 닿는 차가운 공기마저 신선하게 느껴지던 새벽 사찰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전라남도 해남의 땅끝마을, 달마산 중턱 쇠락해가던 사찰 미황사는 마치 깊은 잠에 빠진 천지만물이 도량석 목탁소리로 깨어나듯 금강스님의 원력으로 서서히 깨어나게 된다. 누구든 마음속에 부처가 있다는 석가의 가르침처럼 금강스님은 만나는 이마다 부처를 대하듯 정성을 다했다. 이어 템플스테이와 참선수행 프로그램 ‘참사람의 향기’, 어린이 대상의 한문학당, 산중음악회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깊은 산중에 머물러 있는 불교가 아니라 보다 많은 이들과 호흡하기를 염원하는데, 그 스님의 마음에 보답하듯 미황사는 이제 해마다 많은 이들이 찾는 사찰이 되었다.




시작하는 겨울, 일어나는 봄, 길 위의 여름, 깊어가는 가을로 이어지는 책을 매일밤 잠자리에 든 아이에게 조금씩 읽어줬다. 하루의 일과에 지친 마음을 내려놓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어가는 책을 귀로 들으며 아이는 잠투정도 잊고 곤히 잠들었다. 잠든 아이의 평온한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여기에도 부처가 깃들어있겠지. 내게 깃든 부처를 뵙기 위해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를 마음에 담아본다. 오래전 그 날의 청정한 새벽예불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