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펼쳐보는 크로스 섹션 - 18가지 건축물과 교통기관의 내부를 본다 한눈에 펼쳐보는 크로스 섹션
리처드 플라트 지음, 최의신 옮김, 스티븐 비스티 그림 / 진선아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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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이란 나이 터울 때문인지 두 아들은 너무나 다르다. 성격이 다르고 취향도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두 아들의 공통 관심사가 있으니 바로 자동차! 탈것에 관한 걸 너무 좋아라한다는 거다. 내의도 자동차나 비행기, 우주선 그림이 있는 걸 사줘야 입이 헤벌쭉 벌어진다. 책도 마찬가지다. 이야기 책이든, 지식을 다룬 책이든 교통기관에 관한 거라면 무엇이라도 OK! 그래서 선택했다. <한 눈에 펼쳐보는 크로스 섹션>.




역시나 탁월한 선택이었다. 책을 받자마자 두 아들 간에 쟁탈전이 벌어졌다. 서로 먼저 보겠다고, 자기 책이라며 티격태격 우선권을 다투기 시작했다. 이 책의 무엇이 서로 다른 두 녀석을 순식간에 사로잡았을까.




우선 책이 무척 크다. 레이먼드 브릭스의 <곰>을 보며 우와! 놀랐는데 이 책도 그만큼이나 크다. 커다란 책의 양면 가득 펼쳐진 거대한 건축물과 교통기관들! 시원하고 큼지막한 책은 아이들을 압도하고 아이들은 책에 금방 매료된다.




크기만 한 것도 아니다. 정밀하고 꼼꼼하며 자세하다. ‘크로스 섹션’이 가로, 세로로 자른 그림을 의미하듯이 이 책은 거대한 성이나 천문대, 여객선, 잠수함, 대성당, 오페라 하우스 같은 건축물이나 교통기관을 가로로, 세로로 잘라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거대한 [성]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으며 각각의 부분이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알 수 있다. 계단이 시계방향으로 둥글게 지어진 것도 모두 성을 방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식료품을 저장하고 고기를 보관하는 장소가 가장 지저분한 오물구덩이 근처에 있는 점은 다소 의문스러웠다. 해양 여객선인 [크루즈선], 퀸 메리 호는 자유의 여신상을 6개 늘어놓은 것보다 길어서 뉴욕은 이 배를 위해 특수한 부두를 건설할 정도였다고 한다. 책의 한 면이 다시 펼쳐져 4면에 걸쳐서 도서관은 물론 산책로, 수영장, 테니스 코트, 일광욕 갑판을 갖춘 퀸 메리를 보고 있으니 왠지 타이타닉호의 실물을 보는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작은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증기기관차]. 역시 4쪽을 펼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관차의 내부 구조를 비롯해 가열된 증기가 어디를 거쳐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천문대와 잠수함, 탄광, 탱크, 해저유전, 점보제트기, 오페라 하우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우주왕복선에 대해 마치 설계도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내부의 모습이나 구조를 그려놓고 각 부분마다 자세한 설명을 해놓아서 이해하기 쉽도록 되어 있다.




한가지 재밌는 건 책에 수록된 건축물이나 교통기관의 대부분에 엉덩이를 드러내고 볼 일을 보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탱크엔 없었다. 그 이유가 바로 탱크엔 화장실이 없기 때문이라는데...그렇다면 탱크에 탄 사람은 대소변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걸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보라. 한 눈에 쫘아~악 펼쳐보는 크로스 섹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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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의 해학 - 사찰의 구석구석
권중서 글.사진 / 불광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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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찰에 드나들기 시작한 건 걸음마를 떼기도 전이었다고 한다. 불교신자인 친정엄마 등에 업혀 한 달에도 몇 번씩 사찰을 다녔으니 햇수로만 따지면  불교와 나의 인연은 거의 내 나이와 맞먹는 셈이다. 이쯤되면 불교에 관해서, 불교의 교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통달했을 법도 한데 실은 그렇지 못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찰은 사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학창시절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마다 찾았던 사찰은 결혼하고도 한동안 가족나들이의 장소에 불과했다.




그랬던 것이 박물관의 ‘불교 미술의 이해’란 강좌를 통해 조금씩 달라졌다. 사찰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모든 것들이 저마다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가람의 배치에서부터 불상이나 불화, 탑, 석등, 처마 밑의 풍경, 하물며 작은 문양에 이르기까지 사찰의 경내엔 부처님의 가르침과 범부의 염원을 담은 것들로 가득했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내 앞에 펼쳐진 느낌! 신선한 충격이란, 바로 그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불교 미술의 해학>이란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저자가 직접 전국의 사찰을 다니며 여러 불교미술(그림과 조형물)을 원색사진을 곁들여 풀어놓은 글을 읽고 있자니 마치 흥미로운 강좌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예전의 강좌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았던(어쩌면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부분을 설명해놓은 대목에선 눈동자가 저절로 커지는 것 같았다.




책은 주제에 따라 크게 여섯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사찰의 곳곳을 유심히 보면 토끼와 거북을 비롯해 용이나 호랑이, 물고기 와 같은 동물을 볼 수 있는데, 그 동물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지 ‘사찰에 숨은 동물 찾기’에서 알려주는 것을 시작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호위병’에서는 사찰의 대웅전에 이르기까지 거쳐야하는 여러 문 중에서 천왕문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사천왕처럼 부처님을 보호하고 지키는 임무를 띤 용왕이나 금강역사, 아수라, 야차, 가릉빈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또 ‘근엄한 부처님 장난치는 아라한’에선 사찰의 대웅전에서 뵐 수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 불상을 비롯해서 관세음보살이나 미륵불, 가섭과 아난 존자에 대해 알려주는데 각각의 보살과 제자들의 면면을 알 수 있는 대목을 유머와 재치있는 표현(앗! 이것은 뭐야? 긴 귀에 붉은 귀걸이는 무엇이람?)으로 풀어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외에도 사찰의 예불 때마다 범종을 울리는 의미와 아침과 저녁 예불에서 범종을 치는 횟수가 다른 이유는 무엇인지, 시대마다 범종의 문양이 어떻게 달라졌으며 경내에 무심히 서 있는 석등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나무와 돌 그리고 쇠에 새긴 해학), 우란분절인 백중과 49재 공양에 담긴 의미(수행과 염원의 승화)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장엄한 사찰 속에 모셔져 있기에 석가모니 부처님도 불교도 지엄하리라 여겼다. 그런데 저자의 안내를 받으며 사찰의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녀보니 불교란 종교가 부처님이, 여러 보살과 제자들이 예전에 비해 몇 배 친근하게 와닿았다. 사찰을 찾은 이를 제일 먼저 맞는 천왕문의 사천왕, 엄청난 크기와 무서운 표정에 지레 겁을 먹기 일쑤였는데 거기에도 익살과 유머가 숨어있다니! 미처 몰랐다. 새로웠다. 마치 두 눈을 가리고 있던 막이 걷힌 느낌이랄까.




크고 화려한 것, 웅장하고 번듯한 것들에만 눈길이 오래 머물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무심히 놓여있는 것, 작고 사소한 것들을 찾아봐야겠다. 봄날 지천에 널린 야생화를 보려면 허리를 굽히는 수고를 해야 하듯 부처님의 가르침과 염원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선 사찰의 구석구석 자리잡고 있는 것들에 눈길을 건네야겠다. 그들이 건네는 무언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보자.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유심히 보는 만큼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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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 - 우리 시대 작가 25인의 가상 인터뷰
장영희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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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저자가 풀어놓은 이야기를 읽는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책읽기는 그저 책에 적힌 글자와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저자와 독자의 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이든, 실제이든 저자가 자신이 일궈놓은 독특한 세계, 지식의 세계를 책이란 매개체를 통해 독자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거라고, 책이 곧 저자와 독자의 소통의 장이 아닐까. 그렇다면 책 읽기는 결코 만만하지 않은 행위임이 틀림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치우지는 것이 아니라 행간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짚어보고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 저자들을 직접 만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렇다고 '당신의 책에서 이러이러한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고 의문이 듭니다. 그러니 알려주시오'라고 편지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저자가 모두 국내에, 생존해있는 사람이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는 책이 그래서 반가웠다. 이 책은 '우리시대 작가 25인의 가상 인터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의 이름난 작가나 평론가, 교수들이 자신이 만나고 싶고 대화하고 싶은 인물들과 가상의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을 수록한 책이다. 크게 3개의 테마, '말하지 못한 '나'를 고백하다', '20세기가 21세기에 답하다', '예술의 자세, 삶의 자세'로 나누어 각각의 테마에 맞는 주제를 가지고 두 인물이 인터뷰를 갖는다.




그런데 이 책의 가장 큰 묘미는 '가상의 인터뷰'이란 독특한 형식이 아니다. 대화를 나누는 두 인물이 기존의 상상을 초월한다. 현존하는 사람이 오래전에 유명을 달리한 인물이나 상상의 인물과 인터뷰를 하는가하면 현존하지 않는 인물(두 사람 모두 고인이 됐거나 작품 속의 등장인물)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를테면 작고한 장영희 교수님이 <모비딕>의 에이헤브 선장과, 맛깔난 고전 평론가 고미숙이 <허생전>의 허생과, 소설가 복거일이 조지 오웰과, 평론가인 고형진이 시인 백석과 가상의 인터뷰를 나눈다. 인터뷰를 하는 인물이 독특한 것처럼 형식도 다양하다. 두 인물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게 대부분이지만 때론 편지의 형식(을 취하기도 하고 인터뷰 대상인 인물을 잠깐이라도 만나기 위해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비록 가상의 공간(?)에서 상상이긴 했지만 자신의 문학과 예술, 삶, 학문의 중심이자 바탕이 되는 인물, 이른바 '전설'적인 스승들과의 인터뷰. 서로가 작가이기에 통하는 내밀한 대화를 엿보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본문의 내용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문학의 전설이 된 23명(프란츠 카프카와 백석이 중복)에 대한 25건의 인터뷰는 단순히 수박 겉핥기식의 대화가 아니었다. 인터뷰 하는 이의 작품 속의 등장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해 그에게 있어 뿌리이자 핵심이 되는 것들, 삶의 방식이자 철학을 논하기도 했는데 그들의 대화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 건 아마도 인터뷰의 대상이 된 인물과 그의 작품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문학에 대한 이해나 지식이 얕아서 책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인상적인 대목은 많았다. 대학시절 <모비딕>을 읽은 이후로 박사논문을 썼고 이후 매학기 학생들과 에이헤브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는 고 장영희 교수의 인터뷰를 보면서 <모비딕>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비딕>이 멜빌이 너새니얼 호손을 만난 이후 완전히 개작이 되었다는 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김진경과 도깨비 김씨와의 인터뷰에서 도깨비가 자신의 성을 김씨라고 부르는 이유를 비롯해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의 경기때마다 열렬히 응원하는 붉은 악마가 어디에서 기인한 건지도 알 수 있었다. 그런가하면 독립운동가 신채호가 평론가 이명원에게 보낸 편지글을 통해 역사와 문학의 의미와 참된 글쓰기란 무엇인지 짚어보는 대목에서 나의 글쓰기도 돌아보게 됐다.




가상 인터뷰로나마 자신에게 문학의 스승이었던 이들과 대화를 나눈 이들의 얘기를 글로 만나고 나니 문득 그들이 부러우면서도 궁금해진다. 만약 나에게 누군가를 인터뷰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난 과연 누구에게 인터뷰를 청하게 될까? 어떤 이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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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빛 - 검은 그림자의 전설 안개 3부작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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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네요. <천사의 게임>이란 책이었어요. 음산한 대저택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기이한 이야기를 읽으며 마치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듯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최근 그의 초기작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9월의 빛>이라는 제목인데, 표지는 전작인 <바람의 그림자>나 <천사의 게임>과 비슷한, 몽환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더군요. <천사의 게임>을 어렵사리 읽었기에 당분간 그의 책은 안 읽을 줄 알았는데 출간되자마자 냉큼 집어 들었습니다. 그의 글은 묘하게 중독성이 있거든요.




책은 ‘이레네에게’ 보내는 누군가의 편지로 시작됩니다. ‘9월의 빛’과 ‘등대’, ‘영국인 해변’, ‘크래븐무어의 잔해’, ‘서쪽 날개’라며 써 내려간 편지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의문을 품자마자 아르망 소벨의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아르망 소벨의 죽음은 아내 시몬에게 곧 시련이었어요. 남편이 엄청난 빚을 남겼거든요. 행복했던 소벨 가족은 순식간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오직 절망만이 가득한 그들에게 다행히 희망의 불씨가 찾아듭니다. 시몬이 남편의 옛 친구를 통해 노르망디 해변의 한 저택에 일자리를 얻게 되면서 두 아이, 딸 이레네와 아들 도리안과 함께 떠납니다.




이후 책은 노르망디의 작은 해변 마을을 배경으로 장난감 발명가이자 제작자인 라자루스 얀의 대저택, 크레븐무어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라자루스의 친절하고 극진한 환대로 시몬과 아이들은 그들만의 작은 집에서 모처럼 평온한 나날을 보내는데요. 그들 각자는 라자루스와 그의 저택에 흐르고 있는 어둡고 기이한 분위기에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거대한 저택 안을 가득 메운 괴상하고 섬뜩한 인형과 로봇, 동상들, 거울에 비치지 않는 라자루스, 절대 뜯어보면 안된다는 다니엘 호프만의 편지, 그리고 절대 들어가면 안된다는 20년째 불치의 병을 앓고 있다는 아내의 침실과 서쪽 날개의 방...




한편 이레네는 대저택에서 일하는 한나의 사촌인 이스마엘에게서 특별한 감정은 느끼는데요. 어느날 이스마엘에게서 등대섬에 관한 얘길 들은 이레네는 그의 요트를 타고 등대섬을 찾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에게서 9월의 가면무도회가 열리던 날 바다로 갔다가 사라졌다는 여인의 일기장을 건네받게 됩니다.




오늘 나는 처음으로 그림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림자는 어둠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눈에 들어 있는 게 뭔지 알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힘, 즉 증오다. 나는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고 조만간 이곳에서 악몽이 시작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101~102쪽.




폭풍이 몰아치기 전의 고요함처럼 평온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시몬 가족의 일상은 어느날 한나가 의문을 죽음을 맞으면서 깨어지고 맙니다. 비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한나는 출입이 금지된 방에 들어갔다가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어둠의 그림자를 깨우고 그로 인해 잔혹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는데요. 어둠 속에 갇혔다가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는 또다른 희생자, 시몬과 두 아이를 노리고 점점 다가오기 시작하는데요. 사악한 기운으로 또다른 희생자를 찾아 그의 삶과 영혼을 앗아가는 존재, 그림자. 과연 그림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책의 부제인 '검은 그림자의 전설'은 뭘까요?




<천사의 게임>과 사뭇 다르면서도 몽환적인 공통된 분위기를 지닌 <9월의 빛>. 선혈이 낭자하거나 잔인한 표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책을 읽다보면 수시로 소름이 돋고 섬뜩한 기운을 느끼곤 했습니다. 마치 책에서처럼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욕망과 어둠, 공포, 사악함을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풀어내는 글은 어찌보면 스티븐 킹과 닮았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듯 숨가쁘게 책장을 넘기고 나서 보니 <9월의 빛>은 <안개의 왕자> <한밤의 궁전>과 함께 샤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3부작 연작소설 중 첫번째 이야기란 걸 알게 됐습니다. 어둠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그림자 때문에 바짝 긴장하긴 했지만 사폰의 또다른 이야기는 역시 기대가 됩니다. 어떤 이야기가 숨었을지. 또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그의 작품 <바람의 그림자> <천사의 게임>은 물론 이번 <천사의 게임>에서도 등장한 의문의 신사 안드레아스 코렐리, 그에 대한 의문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을지....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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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
닉 혼비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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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피치> <하이 피델리티> <어바웃 어 보이>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픽션> 국내에 출간된 닉 혼비의 작품이 많은데도 내가 읽은 그의 책은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가 유일하다. 그가 책에 품고 있는 연정과 일상을 엿볼 수는 있었지만 지성과 감성, 거기에 유머까지 만족시킨다는 글을 제대로 느껴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드디어 그의 소설 <슬램>을 만났다.




영어에 약해서 영어로 된 제목을 만날 때마다 좌절감을 맛본다. ‘SLAM’? 대체 무슨 뜻이여? ‘슬램덩크’의 ‘슬램’하고 같은 건가? 표지그림과 관계있으려나? 검색해봐도 ‘쾅 닫다’ ‘세게 놓다’ ‘맹비난하다’라고만 나올 뿐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역시 본문을 읽으며 짐작할 수밖에.




책은 만사가 제법 그럴듯하게 굴러가고 있었다는 고백으로 시작된다. 엄마가 허접한 남자친구를 떼어냈고 선생님에게서 미술에 소질이 있다는 얘길 들었으며 애먹던 스케이트 트릭 두 가지를 습득했고 무엇보다 앨리시아를 만났다는 것에 ‘하하’ 웃음을 날리는 주인공은 바로 16살의 샘 존스. 중년의 내가 보기엔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것에 그가 좋아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바로 그의 엄마가 자신을 16살에 낳았다는 거다. 때문에 집안 대대로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슬픈(?) 내력이 있기에 샘은 자신만큼은 부모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짐은 그저 다짐일 뿐, 반드시 현실로 이뤄지지는 않는가보다. 샘이 그렇게도 꺼리던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앨리시아가 임신하는 바람에 16살인 자신이 곧 아빠가 된다는 게 아닌가.




여자친구보다 스케이트 보드 친구들과 어울리길 좋아하고 자신의 우상인 토니 호크의 포스터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걸 즐겼던 샘. 하지만 현실은 그를 순간의 실수로 인해 성인이 되기도 전에 아빠가 되어야하는 상황으로 몰아붙인다.  그러자 샘은 현실에 혼란과 두려움을 느끼고 지방의 작은 도시로 도피해버리고만다. 그리고 환상 속에서 자신의 미래,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있는 걸 보게 되는데....




이 책이 십대의 임신을 소재로 해서였을까. 몇 년 전에 읽었던 <이름없는 너에게>란 책이 생각났다. 주인공이 예상치 못했던 임신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다는 대목은 닮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예전의 작품에선 안타까운 감정이 크게 도드라졌는데, 이 책은 여자친구의 임신이란 심각하고 불안한 상황을 저자가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왠지 자신의 인생이 아찔한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는 듯하지만 이것 역시 삶의 한 부분이며 성장하는 과정이라며 일러주는 것 같았다. 지성과 감성, 유머까지 만족시킨다는 닉 혼비의 다른 작품도 만나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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