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미술의 해학 - 사찰의 구석구석
권중서 글.사진 / 불광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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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찰에 드나들기 시작한 건 걸음마를 떼기도 전이었다고 한다. 불교신자인 친정엄마 등에 업혀 한 달에도 몇 번씩 사찰을 다녔으니 햇수로만 따지면  불교와 나의 인연은 거의 내 나이와 맞먹는 셈이다. 이쯤되면 불교에 관해서, 불교의 교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통달했을 법도 한데 실은 그렇지 못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찰은 사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학창시절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마다 찾았던 사찰은 결혼하고도 한동안 가족나들이의 장소에 불과했다.




그랬던 것이 박물관의 ‘불교 미술의 이해’란 강좌를 통해 조금씩 달라졌다. 사찰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모든 것들이 저마다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가람의 배치에서부터 불상이나 불화, 탑, 석등, 처마 밑의 풍경, 하물며 작은 문양에 이르기까지 사찰의 경내엔 부처님의 가르침과 범부의 염원을 담은 것들로 가득했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내 앞에 펼쳐진 느낌! 신선한 충격이란, 바로 그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불교 미술의 해학>이란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저자가 직접 전국의 사찰을 다니며 여러 불교미술(그림과 조형물)을 원색사진을 곁들여 풀어놓은 글을 읽고 있자니 마치 흥미로운 강좌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예전의 강좌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았던(어쩌면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부분을 설명해놓은 대목에선 눈동자가 저절로 커지는 것 같았다.




책은 주제에 따라 크게 여섯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사찰의 곳곳을 유심히 보면 토끼와 거북을 비롯해 용이나 호랑이, 물고기 와 같은 동물을 볼 수 있는데, 그 동물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지 ‘사찰에 숨은 동물 찾기’에서 알려주는 것을 시작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호위병’에서는 사찰의 대웅전에 이르기까지 거쳐야하는 여러 문 중에서 천왕문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사천왕처럼 부처님을 보호하고 지키는 임무를 띤 용왕이나 금강역사, 아수라, 야차, 가릉빈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또 ‘근엄한 부처님 장난치는 아라한’에선 사찰의 대웅전에서 뵐 수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 불상을 비롯해서 관세음보살이나 미륵불, 가섭과 아난 존자에 대해 알려주는데 각각의 보살과 제자들의 면면을 알 수 있는 대목을 유머와 재치있는 표현(앗! 이것은 뭐야? 긴 귀에 붉은 귀걸이는 무엇이람?)으로 풀어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외에도 사찰의 예불 때마다 범종을 울리는 의미와 아침과 저녁 예불에서 범종을 치는 횟수가 다른 이유는 무엇인지, 시대마다 범종의 문양이 어떻게 달라졌으며 경내에 무심히 서 있는 석등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나무와 돌 그리고 쇠에 새긴 해학), 우란분절인 백중과 49재 공양에 담긴 의미(수행과 염원의 승화)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장엄한 사찰 속에 모셔져 있기에 석가모니 부처님도 불교도 지엄하리라 여겼다. 그런데 저자의 안내를 받으며 사찰의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녀보니 불교란 종교가 부처님이, 여러 보살과 제자들이 예전에 비해 몇 배 친근하게 와닿았다. 사찰을 찾은 이를 제일 먼저 맞는 천왕문의 사천왕, 엄청난 크기와 무서운 표정에 지레 겁을 먹기 일쑤였는데 거기에도 익살과 유머가 숨어있다니! 미처 몰랐다. 새로웠다. 마치 두 눈을 가리고 있던 막이 걷힌 느낌이랄까.




크고 화려한 것, 웅장하고 번듯한 것들에만 눈길이 오래 머물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무심히 놓여있는 것, 작고 사소한 것들을 찾아봐야겠다. 봄날 지천에 널린 야생화를 보려면 허리를 굽히는 수고를 해야 하듯 부처님의 가르침과 염원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선 사찰의 구석구석 자리잡고 있는 것들에 눈길을 건네야겠다. 그들이 건네는 무언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보자.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유심히 보는 만큼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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