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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 - 우리 시대 작가 25인의 가상 인터뷰
장영희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저자가 풀어놓은 이야기를 읽는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책읽기는 그저 책에 적힌 글자와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저자와 독자의 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이든, 실제이든 저자가 자신이 일궈놓은 독특한 세계, 지식의 세계를 책이란 매개체를 통해 독자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거라고, 책이 곧 저자와 독자의 소통의 장이 아닐까. 그렇다면 책 읽기는 결코 만만하지 않은 행위임이 틀림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치우지는 것이 아니라 행간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짚어보고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 저자들을 직접 만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렇다고 '당신의 책에서 이러이러한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고 의문이 듭니다. 그러니 알려주시오'라고 편지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저자가 모두 국내에, 생존해있는 사람이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는 책이 그래서 반가웠다. 이 책은 '우리시대 작가 25인의 가상 인터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의 이름난 작가나 평론가, 교수들이 자신이 만나고 싶고 대화하고 싶은 인물들과 가상의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을 수록한 책이다. 크게 3개의 테마, '말하지 못한 '나'를 고백하다', '20세기가 21세기에 답하다', '예술의 자세, 삶의 자세'로 나누어 각각의 테마에 맞는 주제를 가지고 두 인물이 인터뷰를 갖는다.
그런데 이 책의 가장 큰 묘미는 '가상의 인터뷰'이란 독특한 형식이 아니다. 대화를 나누는 두 인물이 기존의 상상을 초월한다. 현존하는 사람이 오래전에 유명을 달리한 인물이나 상상의 인물과 인터뷰를 하는가하면 현존하지 않는 인물(두 사람 모두 고인이 됐거나 작품 속의 등장인물)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를테면 작고한 장영희 교수님이 <모비딕>의 에이헤브 선장과, 맛깔난 고전 평론가 고미숙이 <허생전>의 허생과, 소설가 복거일이 조지 오웰과, 평론가인 고형진이 시인 백석과 가상의 인터뷰를 나눈다. 인터뷰를 하는 인물이 독특한 것처럼 형식도 다양하다. 두 인물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게 대부분이지만 때론 편지의 형식(을 취하기도 하고 인터뷰 대상인 인물을 잠깐이라도 만나기 위해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비록 가상의 공간(?)에서 상상이긴 했지만 자신의 문학과 예술, 삶, 학문의 중심이자 바탕이 되는 인물, 이른바 '전설'적인 스승들과의 인터뷰. 서로가 작가이기에 통하는 내밀한 대화를 엿보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본문의 내용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문학의 전설이 된 23명(프란츠 카프카와 백석이 중복)에 대한 25건의 인터뷰는 단순히 수박 겉핥기식의 대화가 아니었다. 인터뷰 하는 이의 작품 속의 등장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해 그에게 있어 뿌리이자 핵심이 되는 것들, 삶의 방식이자 철학을 논하기도 했는데 그들의 대화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 건 아마도 인터뷰의 대상이 된 인물과 그의 작품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문학에 대한 이해나 지식이 얕아서 책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인상적인 대목은 많았다. 대학시절 <모비딕>을 읽은 이후로 박사논문을 썼고 이후 매학기 학생들과 에이헤브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는 고 장영희 교수의 인터뷰를 보면서 <모비딕>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비딕>이 멜빌이 너새니얼 호손을 만난 이후 완전히 개작이 되었다는 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김진경과 도깨비 김씨와의 인터뷰에서 도깨비가 자신의 성을 김씨라고 부르는 이유를 비롯해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의 경기때마다 열렬히 응원하는 붉은 악마가 어디에서 기인한 건지도 알 수 있었다. 그런가하면 독립운동가 신채호가 평론가 이명원에게 보낸 편지글을 통해 역사와 문학의 의미와 참된 글쓰기란 무엇인지 짚어보는 대목에서 나의 글쓰기도 돌아보게 됐다.
가상 인터뷰로나마 자신에게 문학의 스승이었던 이들과 대화를 나눈 이들의 얘기를 글로 만나고 나니 문득 그들이 부러우면서도 궁금해진다. 만약 나에게 누군가를 인터뷰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난 과연 누구에게 인터뷰를 청하게 될까? 어떤 이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