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번지는 유럽의 붉은 지붕 - 지붕을 찾아 떠난 유럽 여행 이야기 In the Blue 5
백승선 지음 / 쉼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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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9년 6월. 신선한 충격,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가족의 기념일이나 일신상의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구요. 책에서 이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됐어요. 바로 여행서인데요.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상황이 못 되기에 여행서를 멀리했던 제가 여행서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는 대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바탕이 훤하게 드러나보일 정도의 투평한 수채화풍의 그림, 붉은 오렌지빛 지붕을 한 집들과 맑은 바다가 어우러진 표지를 보는 순간 제 속의 바리케이트가 무너지면서 무장해제 되어버린 거지요. 바로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를 만나면서부터 말입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구나. 책장 가득 빼곡한 글이 아니라 이렇게 사진으로도 많은 것을 전할 수 있구나. 여기에 직접 가볼 수 있다면. 언젠가는...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크기의 책을 보는 내내 전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풍경은 보고 또 보고, 그곳의 자세한 부분까지 들여다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벨기(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를 만나고, 불가리아(사랑이 번지는 곳, 불가리아)를 시야에 담고, 폴란드(선율이 번지는 곳, 폴란드)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해마다 번짐 시리즈를 만났기에 올해는 어느 곳일까. 어떤 모습을 만나게 될까 기다려지곤 하는데요. 이번에 만난 <추억이 번지는 유럽의 붉은 지붕>은 번짐 시리즈의 특별편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느 한 나라와 지역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지붕을 찾아 떠난 유럽 여행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유럽의 트레이드 마크로 통하는 ‘붉은 지붕’과 ‘잿빛 지붕’이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주된 대상입니다.


책은 크게 ‘붉은 지붕’과 ‘잿빛 지붕’으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붉은 지붕이 인상적인 도시는 ‘보헤미아의 진주’라고 불리는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의 붉은 지붕과 마을을 돌아 흐르는 블타바 강을 시작으로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를 통해 처음 만난 크로아티아의 성벽도시 두브로브니크와 신비로움과 분주한 일상이 어우러진 스플리트, 붉은 지붕이 이어진 골목 사이를 곤돌라가 누비고 다니는 곳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르네상스가 꽃을 피웠던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도시 피렌체, 군인과 여인의 가슴 아픈 사랑이 서려 있는 몬테네그로의 페라스트와 섬 전체가 최고급 호텔로 변모한 스베티 스테판, 어느날 갑자기 떨어진 폭탄으로 목숨을 잃은 22명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리기 위해 연주복을 입고 사고현장에서 22일 동안 묵묵히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연주한 첼리스트의 사연에 가슴이 저렸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 거인이 하늘에서 던진 꽃이 호수로 변했다는 낭만적인 전설이 전해지는 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 호수로 이어지구요. 잿빛 지붕의 도시, 프랑스 파리에서는 건물의 꼭대기에 있는 작은 빨간 것들이 뭘까 궁금했는데요. 건물의 방 개수만큼 빨간 굴뚝이 늘어서 있다는 설명에 정말 신선하고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추억이 번지는 유럽의 붉은 지붕>은 한마디로 지금까지 만난 번짐 시리즈의 종합판이자 특별판이면서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의 예고편(?)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좁을 골목을 사이로 장난감 같은 붉은 지붕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골목 사이사이로 드리워진 빨랫줄에 널린 빨래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을 보면서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한인식당의 주인아저씨에게 속아서 스위스의 쉴트호른에 오르고 유럽의 지붕이라는 융프라우를 보게 됐다고. 그 대목을 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런 속임수라면 난 언제든, 얼마든지 환영이라고.


“집은 사람을 닮는다”는 말이 있다.

그 지붕 아래에 사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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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엘리엇 부 지음 / 지식노마드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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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야! 독특하다. 독특해!


‘독특’이란 말이 저절로 나오는 책을 만났습니다. 뭐가 독특하냐면요. 우선 제목.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이게 책의 제목인데요. ‘자살’과 ‘커피’가 대체 무슨 관계가 있길래 미혼남녀 짝을 맺어주듯이 이렇게 같이 썼을까? 하루에도 몇 잔씩, 아니 한 잔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왠지 서운한 ‘커피’의 반대편에 ‘자살’을 올려놓을 수 있는 대담함, 의외성. 눈에 확 띄더군요. 이렇게 참신하고 독특한 제목의 책은 막상 읽었을 때 실망하기도 쉽다는 걸 경험으로 알지만. 그래서 혹시 낚이는 거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속내가 너무너무 궁금하더군요.


책의 내용도 독특합니다. 500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의 대부분은 동서양의 유명한 인물들의 흑백사진과 그들의 남긴 짤막한 말 한마디가 수록되어 있는데요. 휘리릭 넘기면서 잠깐 읽어보니 유명인들의 말만 추려서 수록해놓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명인의 말과 더불어 그에 대한 저자의 감상과 느낌, 생각을 짧게 남겨놓았는데요. 그게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열심히 일하는 것은 일부일처제만큼이나 과대평가되어 왔다. - 휴이 ‘킹피쉬’ 롱

제기랄! 그래서 어쩌라고? - 엘리엇 부. (67쪽)


사람들의 욕망과 욕정은 언제나 똑같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똑같기만? 확대, 재생산까지 한다. - 엘리엇 부. (93쪽)


오호, 작품일세. 내 생전 이런 건 또 처음보네...


그럼 이제 본문을 볼까? 해서 책장을 넘겼는데요. 이것도 역시 독특하더란 말이지요. 예를 들자면 본문에 해당하는 제일 첫 페이지 ‘내가 생각하는 천국은 도서관이다’라는 글에는 소제목에서부터 번호가 있는데요. 처음 읽을 땐 번호가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장 문장마다 번호가 있을땐...? 분명 뭔가 있습니다. 해서 본문의 아래를 보니. 세상에, 본문의 해당 문장이 누가 한 말인지, 어떤 작품에 나온 문구인지 일일이 제시되어 있더란 말입니다. 이거 혹시...? 해서 얼른 몇 장을 연거푸 넘겨봤는데 역시나, 거기도 문장마다 번호가! 순간 입이 떡 벌어지더군요.


 인생에는 오직 쫓기는 자와 쫓는 자, 분주한 자와 지친 자만이 있을 뿐이다. - 스콧 피츠제럴드.

나는 지친 자. 그래서 회사를 때려 치웠다. - 엘리엇 부. (125쪽)


과거는 서론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럼, 현재가 본론? 괜찮네, 그거! - 엘리엇 부. (141쪽)


이게 가능해?


하나하나가 저마다 다른 이의 말과 경구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조합이, 책의 문장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무척 궁금했는데요. 저자는 그것을 자신만의 독서법에 의한 거라고 말합니다.


그럼 대체 어떤 독서법이냐가 궁금해지는데요. 저자는 평소에 스무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고 합니다. 스무 권의 책을 쌓아두고 한 권을 조금씩 읽다가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데요. 그게 무턱대고 읽는 게 아닙니다. 하나의 주제와 관련된 부분을 집중적으로 읽으면서 여러 작가의 관점을 동시에 파악한다고 하는데요. 그걸 ‘비선형적 독서’라고 하구요. 272명의 ‘친구’와 거기에 저자의 ‘수집’과 ‘기록’의 결과가 이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인 거지요.


민주주의는 통계의 오용이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수학도, 민주주의도 머리 터지게 복잡하다. - 엘리엇 부. (327쪽)


절망과 불운의 억울함이 가족의 일상을 마비시켰다. - 프란츠 카프카.

이 양반은 다 좋은데 생각이 너무 많아. - 엘리엇 부. (409쪽)


엘리엇 부. 당신, 정말 독특한 양반이야!


저자는 자신을 과학자이자 공학도라고 소개합니다. 지난 10여 년간 세상에서 최고로 바쁜 비즈니스맨이었다구요.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느끼게 됩니다. 지금처럼 바쁜 일상이 아닌 가족과 함께, 책과 함께 하는 일상을 살아야겠다고 말이지요. 이후로 그는 하와이에 머물고 있는데요. 독특함이 살아있는 저자의 생각과 느낌들. 또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 아빠와 미스터 인크레더블 같은 뚱보들이 제일 쎄다구! - 면희 부.

뚱보라도 슈퍼히어로라 해주니 다행이군. - 엘리엇 부.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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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이븐 - 에드가 앨런 포 단편집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40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심은경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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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3살. 큰아이 또래였을 때,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학교 수업이 마치면 우리는 매일 친구 집에 우루루 몰려가서 숙제도 하고 수다를 떨곤 했다. 그런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우리들에게 무서운 얘기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구미호’ ‘천년호’ 같은 온갖 무서운 것들을 모두 섭렵한 우리는 흔쾌히 환영했는데. 그때 친구가 꺼낸 이야기가 바로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였다.


“그때 갑자기, 어디서 아기 울음소리 같은 게 들리는 거야. 계~속! 사람들이 벽을 마구 부수기 시작했어. 그랬더니 세상에, 검은고양이가 죽은 여자 시체 위에 떡~하니 앉아 있는 거 있지!” “끼아~악!”

사실 그때 나는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책으로 읽었을 때보다 친구들과 모여앉아 이야기를 들을 때 더 무섭게 느껴졌다. 음산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한껏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친구와 그 친구의 이야기에 완전 몰입해서 침을 꼴깍 삼키며 듣던 우리들. 등 뒤로 쪼로록 흐르던 식은땀과 온몸에 오소소 돋던 소름과 소스라치게 놀라서 지르던 비명까지. 포의 [검은 고양이]하면 지금도 생각나는 어린 날의 추억이다.


최근 <더 레이븐>을 통해 다시 에드가 앨런 포를 만났다. 어렸을 때 멋모르고 읽었던 포의 단편들을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다니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은 포의 작품을 크게 공포, 추리, 환상 세 부분으로 나누었는데 그 유명한 ‘검은 고양이’를 시작으로 ‘아몬틸리도 술통’ ‘절름발이 개구리’ ‘도둑맞은 편지’ ‘황금벌레’ ‘모르그 가 살인사건’ ‘마리 로제 수수께끼’ ‘리지아’ ‘어셔가의 몰락’와 같은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시 ‘갈가마귀’를 비롯해 열네 편의 단편들은 모두 추리소설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포의 작품세계를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것들로 통한다. 오랑우탄의 등장으로 참혹한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포의 대표작 ‘모르그 가 살인사건’과 ‘도난당한 편지’는 추리소설의 고전다운 면모를 느낄 수 있었고 ‘모르그 가 살인사건의 속편’이라는 ‘로제 마리 수수께끼’는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으며 ‘황금벌레’는 복잡한 암호풀이극의 전형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일까. 아니면 공포나 추리, 미스터리 소설을 자주 접해서일까. 책에 수록된 이야기에서 예전의 느낌이 살아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는데 바로 본문의 글자가 너무 작다. 한 페이지에 28줄이 들어가는 편집은 책의 부피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다른 책에 비해 조밀한 행간은 가독성은 떨어지게 했다. 본문 곳곳에 인용된 편지나 신문기사의 글자가 특히 더 작아서 어두운 실내에서 책을 읽을 때면 쉽게 피로해지는 단점이 있다. 물론 이건  시력이 좋거나 젊은 사람들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예전의 추억을 다시 살려보기 위해 책을 펼쳐든 중년의 독자에겐 치명적이다. 이후 재출간이 될 때엔 본문의 편집을 새롭게 바꾸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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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들의 섬
브루스 디실바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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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입니다. 한낮의 도로가 뿜어낼 뜨거운 열기는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지인과의 약속도 해가 비치지 않을 때 잡으려고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그래서 저는 최선의 방법을 택합니다. 되도록 시원한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고선 언제나 조금 일찍 집을 나서는데요. 약속장소에 만나기로 한 이가 도착하기 전까지 그 짧은 시간에 읽는 책은, 정말 기막히게 맛있습니다. 약간 어수선한 듯한 주위가 오히려 책에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지 집에서 혼자 조용히 책을 읽을 때보다 왠지 책장이 더 잘 넘어가더라구요. <악당들의 섬>이란 책을 보고 드디어 여름이구나, 직감했습니다. 본격적인 스릴러를 읽을 계절이 되었단 사실이 무엇보다 반가웠습니다.

 

소설은 로드아일랜드 주의 작은 마을 마운트 호프를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작은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서로의 사정을 환하게 꿰뚫고 있기 마련인데요. 바로 그런 작은 마을에서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잔혹한 연쇄 살인사건이냐고요? 그렇지는 않고 화재가 계속 일어나는데요. 문제는 누구도 그 화재의 원인을 모른다는 겁니다. 주택에 난 불로 인해 이웃과 소방관들이 목숨을 잃을만큼 큰 화재인데도 말이지요.

 

바로 이때 우리의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표면에 나섭니다. 그의 이름은 멀리건. 신문기자가 직업인데요. 마운트 호프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그는 마을에서 연이어 일어나는 화재사건을 주목합니다. 성장기를 함께 보낸 소꿉친구이자 현재 여자소방대장인 로지를 통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취재합니다. 그러다 지금까지 일어난 화재 중 2건을 제외한 나머지가 방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고 화재가 일어나던 당시 군중들의 사진을 바탕으로 사건의 진실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기 시작하는데요. 연쇄 방화범이 누구인지 화재를 일으키는 이유나 목적이 무엇 때문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이지만 그런 그에게 어느새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됩니다. 과연 멀리건은 멈출 줄 모르는 짙은 화염이 자신은 물론 마을 사람들 모두를 집어 삼켜버리기 전에 사건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요? 연쇄 방화사건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요?

 

<악당들의 섬>40년 경력의 베테랑 기자가 쓴 작품이란 점에 호기심이 생겼지만 그보다 띠지에 수록된 마이클 코넬리의 찬사는 보는 순간 저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대체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해서 자꾸자꾸 책장을 넘기게 됐는데요. 소설에서 눈에 띄는 건은 단연 주인공인 멀리건이었습니다. 자신의 과거, 추억이 어린 마을에 일어난 연쇄 방화 사건을 추적하고는 있지만 첨단조사기법을 도입해서 철저하고 세밀하게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의 특성대로 사건의 주변 관계자나 정보원을 활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탐정역할을 맡기엔 엉성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이라고 생각되지만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점차 날카로운 면모를 띄면서 이야기는 서서히 절정으로 향해 갑니다.

 

작가가 기자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인지 문장은 흡입력 있으면서도 매끄럽습니다. 툭툭 튀어 나오는 유머러스한 대목도 인상적이었구요. 물론 부분적으로 어색한 대목도 있었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할 만큼 거슬리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독자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치는 반전에 있어서는 조금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지만(어느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악당들의 섬>이 첫 작품이란 점을 고려할 때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브루스 디실바. 후속작이 기다려지는 작가임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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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에게 묻는 심리학
김태형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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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란 학문을 알게 된 건 여고 때였습니다. 아이들이 돌려보던 잡지 속에 간혹 심리테스트가 수록되어 있으면 호기심에 눈을 반짝였지요. 노트나 연습장에 답을 적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내면이 어떤지, 어떤 상황인지 찾아보곤 했는데요. 심리학이 무척 흥미롭고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때 심리학에 대해 배우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심리학’과 인연이 없는지 교양과목으로도 수강하지 못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도서관에서 심리학에 관한 책을 뒤적여봤습니다. 그 유명한 프로이트의 책이었는데요.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도통 알 수가 없더군요. 오기가 생겨서 대출과 반납, 연장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까지 시도해봤지만 책장은 호락호락 넘어갈 기미도 보이지 않고. 결국엔 덮어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로 한동안은 심리학을 잊고 지냈는데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아이의 심리, 인간의 심리를 알기 위해 다시 심리학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다행히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책이어서 인간의 심리를 쉽게 풀이해놓은 덕분에 예전보다 비교적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읽다가 포기해버렸던 기억, 찜찜한 기분은 해소가 되질 않더군요. 평범한 대중들에게 심리학은 그렇게 접근 불가능한 학문인가? 의문이 생겼습니다.


<거장에게 묻는 심리학>은 심리학의 거장으로 통하는 프로이트(예전에 애를 먹었던), 융, 프롬, 매슬로의 이론에 대한 책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들의 이론을 무작정 들이대지 않습니다. 프로이트와 융, 프롬, 매슬로의 이론과 사상이 집대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책,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프로이트는 <세계관에 대하여>로,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융의 <무의식에 대한 접근>으로, 사회심리학자인 프롬의 <인간의 마음>을, 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시자인 매슬로의 <존재의 심리학을 향하여>란 책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저자는 이 책들을 단순히 해설하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프로이트를 비롯한 융, 프롬, 매슬로의 이론과 주장 중에서 ‘계승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혁신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판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무의식이란 개념을 도입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 그의 <세계관에 대하여>에서 저자는 프로이트의 이론이 여러 오류로 인해 현재에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분석학은 심리치료나 문화예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정신분석학이 어떤 것인지 알려줍니다. 먼저 ‘세계관’의 개념을 짚어본 다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과학적 세계관을 기초로 했는데 그로 인해 종교와 철학적 세계관과 등을 돌리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뿐만 아니라 프로이트는 인류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인식하는 마르크스 주의와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는데 당시 무엇이 쟁점이 되었는지 간략하게 설명해줍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철학과 이론, 세계관이 한계점을 드러내고 주변으로부터 끊임없이 비판받았지만 그럼에도 세계관이라는 주제를 회피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과학적인 철학이 등장하여 자신의 정신분석학이 새롭게 변모하기를 간절히 바랬을 거라고.


심리학의 거장 중의 거장인 프로이트, 융, 프롬, 매슬로. 그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그들의 사상과 철학, 이론이 집대성되어 있는 책의 흐름과 핵심을 짚어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이론과 철학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데 그런 거장을 네 명이나 한꺼번에! 역시 쉽지 않더군요. 생각보다 어렵고 난해했지만 심리학적 원론, 이론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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