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이븐 - 에드가 앨런 포 단편집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40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심은경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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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3살. 큰아이 또래였을 때,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학교 수업이 마치면 우리는 매일 친구 집에 우루루 몰려가서 숙제도 하고 수다를 떨곤 했다. 그런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우리들에게 무서운 얘기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구미호’ ‘천년호’ 같은 온갖 무서운 것들을 모두 섭렵한 우리는 흔쾌히 환영했는데. 그때 친구가 꺼낸 이야기가 바로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였다.


“그때 갑자기, 어디서 아기 울음소리 같은 게 들리는 거야. 계~속! 사람들이 벽을 마구 부수기 시작했어. 그랬더니 세상에, 검은고양이가 죽은 여자 시체 위에 떡~하니 앉아 있는 거 있지!” “끼아~악!”

사실 그때 나는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책으로 읽었을 때보다 친구들과 모여앉아 이야기를 들을 때 더 무섭게 느껴졌다. 음산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한껏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친구와 그 친구의 이야기에 완전 몰입해서 침을 꼴깍 삼키며 듣던 우리들. 등 뒤로 쪼로록 흐르던 식은땀과 온몸에 오소소 돋던 소름과 소스라치게 놀라서 지르던 비명까지. 포의 [검은 고양이]하면 지금도 생각나는 어린 날의 추억이다.


최근 <더 레이븐>을 통해 다시 에드가 앨런 포를 만났다. 어렸을 때 멋모르고 읽었던 포의 단편들을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다니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은 포의 작품을 크게 공포, 추리, 환상 세 부분으로 나누었는데 그 유명한 ‘검은 고양이’를 시작으로 ‘아몬틸리도 술통’ ‘절름발이 개구리’ ‘도둑맞은 편지’ ‘황금벌레’ ‘모르그 가 살인사건’ ‘마리 로제 수수께끼’ ‘리지아’ ‘어셔가의 몰락’와 같은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시 ‘갈가마귀’를 비롯해 열네 편의 단편들은 모두 추리소설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포의 작품세계를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것들로 통한다. 오랑우탄의 등장으로 참혹한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포의 대표작 ‘모르그 가 살인사건’과 ‘도난당한 편지’는 추리소설의 고전다운 면모를 느낄 수 있었고 ‘모르그 가 살인사건의 속편’이라는 ‘로제 마리 수수께끼’는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으며 ‘황금벌레’는 복잡한 암호풀이극의 전형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일까. 아니면 공포나 추리, 미스터리 소설을 자주 접해서일까. 책에 수록된 이야기에서 예전의 느낌이 살아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는데 바로 본문의 글자가 너무 작다. 한 페이지에 28줄이 들어가는 편집은 책의 부피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다른 책에 비해 조밀한 행간은 가독성은 떨어지게 했다. 본문 곳곳에 인용된 편지나 신문기사의 글자가 특히 더 작아서 어두운 실내에서 책을 읽을 때면 쉽게 피로해지는 단점이 있다. 물론 이건  시력이 좋거나 젊은 사람들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예전의 추억을 다시 살려보기 위해 책을 펼쳐든 중년의 독자에겐 치명적이다. 이후 재출간이 될 때엔 본문의 편집을 새롭게 바꾸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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