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 부부 건축가가 들려주는 집과 도시의 숨겨진 이야기들
임형남.노은주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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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꽃보다 할배>에서 스페인편이 방송됐다. 이전의 유럽과 대만편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스페인편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가우디의 기이할 만큼 아름다운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과 요정의 나라에 온 것 같은 구엘공원,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음악으로 알려진 알함브라 궁전의 정교하고 섬세한 장식과 안뜰, 아찔한 협곡 위에 세워진 마을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그 두 마을을 잇는 누에보 다리로 유명한 론다는 스페인 최고의 절경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어느 한 곳이라도 인상적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궁금했던 건 다름 아닌 이야기였다. 자연과 인간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곳,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어떤 일상과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부부 건축가가 들려주는 집과 도시에 숨겨진 이야기들’이라는 부제가 달린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에서는 집이 단순히 나무나 돌,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딱딱한 건물이 아니라고 한다. 어떤 집이나 건물에는 그 곳만의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라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좋은 건축, 집을 지을 수 있다고 하는데. 무심코 지나친 동네의 여러 건물들, 고단한 일상이 녹아있는 집에 숨어있는 이야기, 왠지 솔깃해진다.

 

 

저자는 사람과 집, 사람과 건축의 숨은 이야기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일상 속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상황, 즐겨보는 책이나 영화, 음악과 공연에 대해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해서 점점 대화를 확장시켜 그와 관련한 건물, 건축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거나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짚어준다. 이를테면 제일 먼저 소개된 ‘맥거핀 효과’에서는 중요한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닌 속임수나 미끼에 대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빌미로 시작된 미국의 이라크전쟁, 금강산댐에 대응하기 위해 건설한 평화의 댐을 예를 들어 ‘현실에서의 맥거핀은 이렇게 전쟁을 일으키거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까지 악용되곤 하는 것(23쪽)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다음 기존 도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획한 도시 ‘뉴타운’의 허와 실을 꼬집는다.

 

 

‘도서관’편도 인상적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 말문을 꺼낸 저자는 중세 도서관 특유의 깊고 어두운 분위기에 매료되었다면서 도서관에서의 추억을 털어놓는다. 책을 읽는 장소인 도서관에 공부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가 공부는 않고 열람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일탈’을 일삼으며 수많은 책에 빠져들었는데 그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하나의 궁금증이 다른 것으로 이어지는 지식의 미로, 그 강렬한 경험을 가슴에 새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혼란스런 입구를 통해 밝고 높은 실내로 들어온다. 그리고 어두운 서가에서 책을 꺼내들고 밝은 창 쪽으로 가서 책을 읽는다.(189쪽)’

 

 

건축은 ‘집이나 성, 다리 따위의 구조물을 그 목적에 따라 설계하여 짓는 것’이라고 한다. 주어진 한정된 공간을 사람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통해 만난 것은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의 일상 속 이야기였고 우리의 문화이며 더 나아가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사람과 집, 사람과 길, 도시와 건축. 그 속에 깃든 숨은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이런 경험, 흔치 않다. 저자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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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 독서에 관하여 위대한 생각 시리즈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유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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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잡으면 끝을 본다.’ 예전엔 그랬다. 한 번 읽기 시작한 책은 끝까지 읽어야 된다고, 그걸 당연하게 여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읽는 도중에 덮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처음 기대에 못 미치거나 비슷한 내용의 글이 반복되는 자기계발서, 아무리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을 때인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후자의 경우였다. 모두 11권인 책은 1권에서부터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깊은 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가 두서없이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 헤매고 다니는 것처럼 그것을 지켜보는 책 밖의 나도 기억의 미로에 던져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읽다가 덮고, 읽다가 덮고...를 몇 번 반복하다가 그만 밀쳐두고 말았다. 언젠간 읽겠지...하면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름이 표지인 <독서에 관하여>가 출간되었을 때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완독하지 못한 씁쓸함. 결코 유쾌하지 않은 경험. 내가 이정도 밖에 안 되나 하는 자괴감 같은 것들이 불쑥 고개를 들었지만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프루스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나면 그의 작품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뿔싸! 내가 크게 오해를 했다. 아니, 잘못 알고 접근했다는 게 옳은 표현일 듯하다. <독서에 대하여>는 프루스트의 책읽기에 대한 글이 아니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쓰기 이전에 번역가와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했다고 한다. 특히 존 러스킨에게 매료되어 그의 책을 두 권 번역하고 역자 서문을 남겼는데 ‘독서에 관하여’는 러스킨의 <참깨와 백합>, ‘러스킨에 의한 아미앵의 노트르담’은 <아미앵의 성서>에 덧붙인 글이다. 즉, 프루스트가 러스킨의 글을 번역하고 나서 독자들을 위해 책의 내용이나 저자의 의도 같은 걸 설명한 역자 서문과 유명 화가, 미술에 관한 글을 수록된 책이 바로 <독서에 관하여>이다.

 

문제는 이 글, 역자 서문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서문치고는 글의 분량이 제법 길다. 어린 시절의 책읽기와 일상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으로 시작된 ‘독서에 대하여’는 러스킨의 <참께와 백합>에 수록된 두 개의 강연에 대해 설명한다. 도서관 설립을 지원하기 위해 옛 성현의 경지에 이르는 길은 오직 독서이며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독서를 주제로 한 ‘왕들의 보물’과 여성은 저마다 마음의 화원을 가지고 있다면서 여성의 교육과 의무, 역할에 대한 강연 ‘여왕들의 정원’에서 드러난 러스킨의 생각과 주장을 짚어주면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더해서 전하고 있다. ‘러스킨에 의한 아미앵의 노트르담’은 아미앵의 여행안내서라고 할 수 있는 <아미앵의 성서>에 붙인 서문인데 본문에서 러스킨이 썼던 표현과 여정에 자신의 경험을 더해서 풀어놓았다. 러스킨과 프루스트가 추천하는 여정이란 어떨지...상상해봤지만 아미앵을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쉽지 않았다.

 

이후로는 샤르댕, 렘브란트, 귀스타브 모로, 모네 같은 당시의 유명 화가와 미술작품에 대한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미술평론가로서의 프루스트를 만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나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감흥을 무척 세밀하고 아름답게 표현해 놓아서 때론 그림이 마치 눈앞에 펼쳐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흑백이지만 본문에 수록된 그림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프루스트의 글은 역시 쉽지 않았다. 수식어가 많은 긴 문장에 본문의 문단 나눔도 거의 없다시피 해서 책을 읽다가 한 눈이라도 팔면 다시 되짚어가며 읽어야했다. 본문의 아래에 위치한 각주도 시선을 분산시켜 책의 몰입을 방해했지만 꾹꾹 눌렀다. 러스킨에 매료되어 그의 뒤를 따르듯 했던 프루스트가 자신만의 색깔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프루스트의 문장은 아직 낯설지만 한편으론 기대가 된다. 이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만나게 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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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사는 집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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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언니에게서 몇 장의 사진이 톡으로 날아왔습니다. 중장비를 동원해서 땅을 파고 수도관을 묻는 사진에 ‘웬 공사장?’하고 의아했는데 언니 가족이 살 집을 짓기 시작한 거였습니다. 십여 년이 넘게 인도에서 생활한 언니 가족은 귀국하자마자 거창에 자리를 잡더군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처음엔 조금 걱정이 됐습니다. 일 년에 몇 번 한국을 드나들긴 했지만 최근 국내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를텐데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새로이 뿌리를 내리겠노라고, 귀농을 하겠다고 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형부의 소원은 농부가 되는 것이었고 언니는 그 뜻을 따라 농부의 아내가 되어 인생이모작을 시작했는데요. 그런 언니 가족에게 집을 짓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충분히 알 것 같았구요. 나도 언젠가는 우리 가족을 위한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습니다.

 

<건축가가 사는 집>은 제목에서 끌린 책입니다. 다른 이를 위해 집과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건축가가 자신이 살 집은 짓는다면 어떻게 할까 궁금했거든요. 거기다 저자가 주택전문 건축가로 알려진 나카무리 요시후미. 집을 순례하고 집을 짓는 것에 대해 그가 쓴 몇 권의 책이 예전에 국내에서도 출간됐고 눈도장도 찍어둔 책이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건축가가 집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절호의 기회가 왔구나 싶었습니다.

 

한창 젊은 무렵부터 주택 건축에 빠져서 살았던 저자가 쉰을 앞둔 나이에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자신이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심장을 두근대게 했고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동경했던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저자는 여행을 떠납니다. 20세기 주택의 역사에 오래도록 남을 기념비적인 주택을 찾아 일본은 물론 미국과 대만, 네덜란드 등을 하나하나 순례해 나갑니다.

 

그래서 책의 구성도 정말 단순합니다. 모두 스물네 채의 집이 소개되어 있는데요. 저자는 그 곳의 거주자이자 설계를 했던 건축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건축가가 갖고 있는 집에 대한 생각, 신념은 무엇인지 자신이 살 집을 지을 때 어떤 것에 가장 중점을 두었는지를 풀어내는데요. 집의 설계도면과 내부 모습을 알 수 있는 사진과 함께 수록되어 있어서 건축가의 생각이나 인생관을 더욱 잘 느끼게 해줍니다.

 

스물네 채의 집을 둘러보는 것은 실로 순식간이었습니다. 건축가의 개성을 그대로 빼닮은 듯 스물네 채의 집은 모두 하나같이 독특했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벽면과 더블 엑스 형태의 계단이 인상적이었던 ‘적층의 집’, 폐선 직전의 낡은 페리가 주택과 스튜디오로 탈바꿈한 ‘닐스의 페리보트 하우스’, 울창한 숲으로 전면 창을 내고 지그재그로 집을 펼쳐놓은 듯한 ‘지그하우스/재그하우스’, 둥근 지붕을 얹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카사ㅡK’, 외관이 독특한 ‘도그하우스’. 급경사인 대지의 특징을 살려서 폭이 좁고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놓고 그 끝에 한순간에 열리는 공간과 아름다운 정경을 배치한 ‘보통의 집’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하야시 선생은 자신의 책을 통해 “설계는 내가 앉을 곳을 결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라고 했지요. 그리고 그 코너를 ‘주방 겸 식당 겸 서재 겸 난로가 있는 라운지’라 칭하며 ‘옛 농가의 주인장이 머무는 화롯가 자리를 연상하면 딱 맞을 장소’라고 했지요. 그러니 이 집의 거주자가 될 하야시 쇼지 씨가 이 집의 설계자인 본인 스스로에게 ‘긴장을 풀고 릴렉스 할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의뢰해 탄생한 공간이라 말해도 좋을 겁니다. -243쪽.

 

도심의 아파트가 아닌 나의 집을 갖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에서 머물 뿐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조금씩 변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어떤 집을 지을까’ 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딜까’를 찾는 것부터 해야된다면....전 아마 답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갑자기 가슴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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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 볶음에 바치다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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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도 변두리의 작은 마을에 가면 ‘코코야’란 이름의 가게가 있습니다. 일본어를 모르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지만 아기자기한 가게 이름만 보면 옷이나 액세서리 같은 작은 소품을 판매할 것 같은데. 아닙니다. 반찬 가게라고 하네요. 놀랍죠? 근데 더 놀라운 게 있습니다. 바로 가게의 주인장인데요. 나이가 ‘환갑’, 60세가 넘었습니다. 사장만 이 아니라 두 명의 점원 모두 60세를 넘겼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할머니’ 소리 들으며 손주들 재롱에 여생을 편히 보낼 때인 것 같은데 이 분들에게 그런 소리를 꺼냈다간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는 꾸지람을 들을 것 같습니다.

 

‘코코야’의 세 여인, 사장인 코코와 마쓰코, 이쿠코를 보고 있으면 나이를 먹는다는 게 뭔가 의문이 듭니다. 나이 60을 넘기면 누구나가 그렇듯이 그네들 역시 말 못할 사연 하나씩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남편과 이혼했거나 첫사랑을 잊지 못하거나 남편과 사별하여 때로 외롭지만 그것으로 인해 어둡고 우울한 일상을 보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코코는 인생에서 ‘공격’을 최고의 모토로 삼을 정도로 활달하고 진취적이에요. 좋은 재료로 정성껏 밥을 짓고 맛깔 나는 반찬을 만들어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파는 것 자체를 즐기면서 살아갑니다. 시도 때도 없이 재잘재잘 수다를 떠는가하면 때론 감성에 젖어 추억에 잠기고 그러면서도 씩씩하게 가게를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들 나이가 정말 60세가 넘는 거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으니까요. 그들이 풀어놓는 살아온 이야기, 음식 얘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래, 살아온 만큼 슬픔이나 아픔이 생기는 건 당연한 순리니까 거스르려고 하지 말고 지금부터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으로 메우면 되지 뭐. 이런 생각도 듭니다.

 

얼마전 심한 감기몸살을 앓고 난 이후로 입맛을 잃었습니다.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고 무언가 먹고 싶은 것조차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싶어서 억지로라도 먹고 나면 속이 더 거북했습니다. 왜 이럴까 신경은 쓰였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겠다고 속으론 웃었어요. 하지만 문제는 다른데서 생기더군요. 제가 입맛을 잃으면서 음식을 만드는 횟수도 줄어버린 거지요. 가족들의 식탁이 점점 초라해지던 어느날 보게 된 책이 바로 이 <양배추 볶음에 바치다>였습니다. 처음엔 표지에 그려진 갖가지 음식 재료를 보면서 그냥 만화<심야식당>처럼 음식을 이야기하는 책인가 보다 했는데요. 평범하게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누군가 맛있게 먹는 일상이 소중한 추억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며칠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배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먹는 것 자체가 우리를 구성하고 만드는 것” “앞으로 뭘 먹느냐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직결된다고 생각한다.”고 말이지요. <양배추 볶음에 바치다>를 읽고 나서일까요? 그 말이 화악 와 닿더군요. 혹시 그 배우도 이 책을 읽은 걸까요?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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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빛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5
이누이 루카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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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와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을 즐기지만 호러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읽으면서 수시로 머리카락이 삐죽 서고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는다면 결코 유쾌한 경험이라고 할 수 없다. 거기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뒷덜미가 서늘해지고 모골이 송연해진다면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게 호러물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꽃샘추위로 날씨가 싸늘한 때는 더. 하지만 최근 읽은 <여름 빛>은 왠지 끌렸다. ‘호러 여왕의 강림’이라는 문구가 표지에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기이한 푸른빛을 발하는 아이의 서늘한 눈매에 이미 꽂혀 버렸으니까. 난 생각했다. 이건 결코 소름끼치는 공포가 아닐 거라고.

 

제목이자 표제작인 [여름 빛]은 전쟁발발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서 시골의 친척집에 머물게 되는 소년 데스히코의 이야기다. 물자가 부족한 때 타지에서 들어온 데스히코는 마을 아이들의 괴롭힘을 받는다. 하지만 데스히코는 친구 다카시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다카시는 한쪽 얼굴에 검은 반점이 있는데 그것을 두고 사람들은 다카시를 임신한 엄마가 바다에 떠밀려온 상괭이라는 물고기를 먹고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마을에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죽는 사람들이 생길 때마다 다카시가 생전에 그들과 눈을 맞추었기 때문이라면서 다카시를 불길한 아이로 매도해버린다. 그런 어느날 다카시는 데스히코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자신의 눈빛이 어느 순간 푸른 빛을 내는지. 그리고 데스히코가 엄마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어느 도시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다카시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 강한 푸른 빛을 발하게 된다. 그 도시에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되는 걸까.

 

[백 개의 불꽃]은 초라한 외모를 한 언니 기미가 아름다운 동생 마치를 시기 질투하여 벌어지는 이야기다. 귀 주위에 작은 구멍 ‘액상’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진다는 얘기를 들은 기미는 자신이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생을 액막이로 삼는다. 매일 하나씩 백일 동안 백 개의 양초를 켜서 그것이 모두 다 타면 소원 성취한다는 것이다. 일생에 한 번밖에 하지 못하는 강력한 저주라는 ‘백 개의 불꽃의 액갚음’을 해버린 기미는 곧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집에 화재가 나서 동생이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는 것. 그 바람에 동생은 혼담도 무산되어 버리지만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미에게 기모노를 선물한다. 그 과정에서 기미는 동생의 귀에서도 ‘액상’을 발견하게 되는데... 선천성 이루공을 잘못 알고 오해함으로써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만 결국 자매는 서로의 진실된 마음을 알게 된다.

 

[이]에서 하세가와는 친구 구마노미도의 집에서 퇴원 기념 저녁을 한다. 회와 맥주, 버섯과 해물을 푸짐하게 넣은 해물탕을 다 먹고도 ‘먹고 싶다’는 생각에 끊이지 않는 것이 하세가와는 이상했다. 그 흰 살 생선 탓일까. 오른팔을 잃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원인이 ‘없어야 할 이빨에 당했’다는 건 또 뭘까. 궁금해 하는 하세가와에게 구마노미도는 말문을 연다. 삿포로 축제의 금붕어 낚시에서 건져 올린 화금붕어로 인해 시작되는 믿기 어려운 기이하고도 소름끼치는 일들을....

 

책은 1,2부로 나뉘어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1부와 2부의 분위기는 판이하게 다르다. 1부가 [여름 빛]을 비롯해서 [쏙독새의 아침] [백 개의 불빛]은 과거를 배경으로 기이하지만 그래도 온기가 느껴졌다면 2부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 [이] [Out of This World] [바람, 레몬, 겨울의 끝]을 통해 호러의 본모습, 잔인함과 잔혹함, 공포가 어떠한 것인지 확실하게 드러낸다. 거기에 약간의 여운까지....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엄청난 몰입감. 표지를 넘겨 덮을 때까지 쉼없이 내달렸다. 저자 이누이 루카는 <여름 빛>을 통해 처음 만났지만 그녀의 작품이라면 이후 언제라도 다시 만나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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