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빛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5
이누이 루카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추리와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을 즐기지만 호러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읽으면서 수시로 머리카락이 삐죽 서고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는다면 결코 유쾌한 경험이라고 할 수 없다. 거기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뒷덜미가 서늘해지고 모골이 송연해진다면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게 호러물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꽃샘추위로 날씨가 싸늘한 때는 더. 하지만 최근 읽은 <여름 빛>은 왠지 끌렸다. ‘호러 여왕의 강림’이라는 문구가 표지에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기이한 푸른빛을 발하는 아이의 서늘한 눈매에 이미 꽂혀 버렸으니까. 난 생각했다. 이건 결코 소름끼치는 공포가 아닐 거라고.

 

제목이자 표제작인 [여름 빛]은 전쟁발발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서 시골의 친척집에 머물게 되는 소년 데스히코의 이야기다. 물자가 부족한 때 타지에서 들어온 데스히코는 마을 아이들의 괴롭힘을 받는다. 하지만 데스히코는 친구 다카시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다카시는 한쪽 얼굴에 검은 반점이 있는데 그것을 두고 사람들은 다카시를 임신한 엄마가 바다에 떠밀려온 상괭이라는 물고기를 먹고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마을에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죽는 사람들이 생길 때마다 다카시가 생전에 그들과 눈을 맞추었기 때문이라면서 다카시를 불길한 아이로 매도해버린다. 그런 어느날 다카시는 데스히코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자신의 눈빛이 어느 순간 푸른 빛을 내는지. 그리고 데스히코가 엄마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어느 도시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다카시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 강한 푸른 빛을 발하게 된다. 그 도시에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되는 걸까.

 

[백 개의 불꽃]은 초라한 외모를 한 언니 기미가 아름다운 동생 마치를 시기 질투하여 벌어지는 이야기다. 귀 주위에 작은 구멍 ‘액상’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진다는 얘기를 들은 기미는 자신이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생을 액막이로 삼는다. 매일 하나씩 백일 동안 백 개의 양초를 켜서 그것이 모두 다 타면 소원 성취한다는 것이다. 일생에 한 번밖에 하지 못하는 강력한 저주라는 ‘백 개의 불꽃의 액갚음’을 해버린 기미는 곧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집에 화재가 나서 동생이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는 것. 그 바람에 동생은 혼담도 무산되어 버리지만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미에게 기모노를 선물한다. 그 과정에서 기미는 동생의 귀에서도 ‘액상’을 발견하게 되는데... 선천성 이루공을 잘못 알고 오해함으로써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만 결국 자매는 서로의 진실된 마음을 알게 된다.

 

[이]에서 하세가와는 친구 구마노미도의 집에서 퇴원 기념 저녁을 한다. 회와 맥주, 버섯과 해물을 푸짐하게 넣은 해물탕을 다 먹고도 ‘먹고 싶다’는 생각에 끊이지 않는 것이 하세가와는 이상했다. 그 흰 살 생선 탓일까. 오른팔을 잃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원인이 ‘없어야 할 이빨에 당했’다는 건 또 뭘까. 궁금해 하는 하세가와에게 구마노미도는 말문을 연다. 삿포로 축제의 금붕어 낚시에서 건져 올린 화금붕어로 인해 시작되는 믿기 어려운 기이하고도 소름끼치는 일들을....

 

책은 1,2부로 나뉘어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1부와 2부의 분위기는 판이하게 다르다. 1부가 [여름 빛]을 비롯해서 [쏙독새의 아침] [백 개의 불빛]은 과거를 배경으로 기이하지만 그래도 온기가 느껴졌다면 2부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 [이] [Out of This World] [바람, 레몬, 겨울의 끝]을 통해 호러의 본모습, 잔인함과 잔혹함, 공포가 어떠한 것인지 확실하게 드러낸다. 거기에 약간의 여운까지....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엄청난 몰입감. 표지를 넘겨 덮을 때까지 쉼없이 내달렸다. 저자 이누이 루카는 <여름 빛>을 통해 처음 만났지만 그녀의 작품이라면 이후 언제라도 다시 만나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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