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 볶음에 바치다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도쿄에서도 변두리의 작은 마을에 가면 ‘코코야’란 이름의 가게가 있습니다. 일본어를 모르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지만 아기자기한 가게 이름만 보면 옷이나 액세서리 같은 작은 소품을 판매할 것 같은데. 아닙니다. 반찬 가게라고 하네요. 놀랍죠? 근데 더 놀라운 게 있습니다. 바로 가게의 주인장인데요. 나이가 ‘환갑’, 60세가 넘었습니다. 사장만 이 아니라 두 명의 점원 모두 60세를 넘겼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할머니’ 소리 들으며 손주들 재롱에 여생을 편히 보낼 때인 것 같은데 이 분들에게 그런 소리를 꺼냈다간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는 꾸지람을 들을 것 같습니다.

 

‘코코야’의 세 여인, 사장인 코코와 마쓰코, 이쿠코를 보고 있으면 나이를 먹는다는 게 뭔가 의문이 듭니다. 나이 60을 넘기면 누구나가 그렇듯이 그네들 역시 말 못할 사연 하나씩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남편과 이혼했거나 첫사랑을 잊지 못하거나 남편과 사별하여 때로 외롭지만 그것으로 인해 어둡고 우울한 일상을 보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코코는 인생에서 ‘공격’을 최고의 모토로 삼을 정도로 활달하고 진취적이에요. 좋은 재료로 정성껏 밥을 짓고 맛깔 나는 반찬을 만들어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파는 것 자체를 즐기면서 살아갑니다. 시도 때도 없이 재잘재잘 수다를 떠는가하면 때론 감성에 젖어 추억에 잠기고 그러면서도 씩씩하게 가게를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들 나이가 정말 60세가 넘는 거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으니까요. 그들이 풀어놓는 살아온 이야기, 음식 얘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래, 살아온 만큼 슬픔이나 아픔이 생기는 건 당연한 순리니까 거스르려고 하지 말고 지금부터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으로 메우면 되지 뭐. 이런 생각도 듭니다.

 

얼마전 심한 감기몸살을 앓고 난 이후로 입맛을 잃었습니다.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고 무언가 먹고 싶은 것조차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싶어서 억지로라도 먹고 나면 속이 더 거북했습니다. 왜 이럴까 신경은 쓰였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겠다고 속으론 웃었어요. 하지만 문제는 다른데서 생기더군요. 제가 입맛을 잃으면서 음식을 만드는 횟수도 줄어버린 거지요. 가족들의 식탁이 점점 초라해지던 어느날 보게 된 책이 바로 이 <양배추 볶음에 바치다>였습니다. 처음엔 표지에 그려진 갖가지 음식 재료를 보면서 그냥 만화<심야식당>처럼 음식을 이야기하는 책인가 보다 했는데요. 평범하게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누군가 맛있게 먹는 일상이 소중한 추억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며칠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배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먹는 것 자체가 우리를 구성하고 만드는 것” “앞으로 뭘 먹느냐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직결된다고 생각한다.”고 말이지요. <양배추 볶음에 바치다>를 읽고 나서일까요? 그 말이 화악 와 닿더군요. 혹시 그 배우도 이 책을 읽은 걸까요?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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