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
프랑크 틸리에 지음, 박민정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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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그럴 때가 있다. 자다가 설핏 눈을 떴는데 주변이 낯설게 여겨질 때. 방 안의 가구가, 벽에 걸린 사진이 눈에 익지 않아서 내가 잠든 곳이 과연 어딘지 생각하다가 다시 잠들기도 하고 오히려 잠에서 깰 때도 있다. 무의식과 의식, 그 사이의 언저리에서 벌어지는 혼동이나 착각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만약 그런 게 아니면? 착각이나 혼동, 악몽이 아니라면?

 

사방이 어둠에 잠겨 있다.…… 이곳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50세의 조나탕 투비에. 그가 기억하는 것은 병원에 입원한 아내 프랑수와즈의 병실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너무나 익숙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는 것. 아, 몸이 안 좋아서 역한 맛이 나는 시럽을 마셨다. 이것이 전부였다. 이후 어딘지 알 수 없는 빙하의 동굴에서 잠에서 깬 그가 맞닥뜨린 것은 오른손에 채워진 족쇄였다. 자신이 기르는 체코슬로바키아 울프독 포카라가 함께 있어 잠시 위안이 되긴 했지만 머리에 철가면을 쓴 남자, 미셸 마르퀘를 만나면서 혼돈에 빠진다. 두 사람의 등에 ‘누가 도둑일 것인가?’ ‘누가 거짓말쟁이일 것인가?’라고 적힌 천 조각이 붙어 있는데다 철가면에는 폭발물이 장전되어 있어서 서로 50미터 이상 떨어지면 폭발한다는 내용의 편지가 발견된 것이다.

 

자신들이 왜 이 낯선 곳으로 끌려와 갇혀 있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운 가운데 그들은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오른쪽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남자, 파리드 후마드. 그의 등에 적힌 문구는 ‘누가 살인자일 것인가?’였다. 족쇄가 채워진 두 사람과 철가면을 쓴 사람. 제한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의문투성이의 사건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분노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시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를 의심하기 된다. 급기야 감추었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상황은 더욱 파국으로 치닫는데.....

 

어느날 갑자기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오로지 생존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또 선택을 강요하는 그래서 다소 불편한 소설이었다. 프랑크 틸리에의 작품은 <현기증>이 처음이다. 그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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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책과 연애하다 - 통섭의 책 읽기 경계를 허무는 도서관
안정희 지음 / 알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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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망은,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바로 작은도서관이다.

 

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기도 전에 아동문학에 발을 들여놓았다. 동화 읽는 어른 지역모임에서 그림책과 동화를 읽기 시작해서 급기야 어린이 독서지도사 교육을 받았다. 동기는 단순했다. 내 아이를 좀 더 알고 싶다는 것. 나와 닮았지만 전혀 다른 아이의 마음이 궁금했다. 수많은 그림책과 동화 속에서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뻔히 보이지만 감춰져 있고 꽁꽁 숨겨진 듯 의외의 장면에서 아이들의 순수함이, 재기발랄한 모습들이 톡톡 튀어나왔다. 그림책이나 동화는 그저 어린이들이 보는 ‘쉽고 단순한 책’이 아니란 걸 실감하게 됐다.

 

그즈음이었다. 외형이나 내용에서 천편일률적으로 규격화된 전집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어린이 책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어린이책 전문가의 검증과 부모들이 추천하는 단행본이 서가를 가득 메우고 일과 중에 동화를 읽어주거나 어린이를 위한 공연이 열리기도 하고 엄마들이 도우미로 활동하는 도서관. 바로 느티나무 도서관이었다. 아동문학 작가의 염원이 볼로냐국제도서전의 초청이라면 내겐 느티나무 도서관이 그랬다.

 

느티나무 도서관이 2000년에 개관한 이후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도서관의 서가를 가득 메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베스트셀러에 연연하지 않고 사람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 사소하지만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배움의 동기를 찾을 수 있는 책으로 가득한 느티나무 도서관은 모든 도서관이 나아가야할 바를 보여준다.

 

<도서관에서 책과 연애하다>의 저자는 느티나무 도서관의 북큐레이터인 안정희씨. 그는 법학을 전공했음에도 책이 좋아서 책과 일상을 함께 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전쟁 중에도 인간의 내면이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미스터 핍>, 책을 읽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기억전달자>를 통해 저자는 ‘인간에게 ‘책’과 ‘읽기’는 삶 그 자체(38쪽)’라고 말한다. 책이 존재하는 공간인 서점, 헌책방, 북카페, 개인의 서재가 저마다 어떻게 다른지 짚어주고 책이 어디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책의 의미도 달라지기 때문에 가끔은 책을 도서관처럼 열린 공간에서 읽으면 시야가 확장되는 걸 느낄 수 있다고 전한다.

 

책은 인류가 후대에 전승코자 하는 정신이자 기억이다. 그 오래고 방대한 ‘인류의 기억’인 서가 앞에 서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ㅡ 61쪽.

 

소설가 김연수와 시인 문태준의 일화를 소개하는 대목은 놀랍다. 그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일찍이 작가를 꿈꾼 김연수와 작가를 꿈꾸지 않았지만 저절로 시가 흘러나왔다는 문태준. 두 작가의 이야기 속에서 도서관이란 공간의 무궁무진함을 느낄 수 있다. 취학 전 아이는 부모가 도서관에 바로 데리고 들어가지 말라는 것도 의외였다. 아이가 되도록 빨리 책을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아이가 도서관 주변의 환경을 관찰하면서 익숙해지는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도서관이 가장 필요한 시기가 중, 고등학교 때라고 하는데 요즘의 청소년에게 도서관은 공부의 장소로 여겨지고 있어 안타까웠다. 학창시절의 나는 도서관에서 책으로 빼곡한 서가 사이를 걷다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곤 했는데 내 아이도 그럴까? 때론 원하는 책을 찾지 못해 서가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더라도 그것 역시 소중한 경험이고 추억이라는 걸 내 아이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다 우리 집을 방문한 이는 모두 한결같이 묻는다. “여기 이 책들, 전부 읽었어요?” 난데없는 질문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젠 당당하게 말한다. “에이, 설마 다 읽었겠어요? 그래도 일단 차례를 훑어보니까 대충 어떤 내용인지는 알아요.” 내 아이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책을 읽는 중인지, 외면 받는 책은 무엇인지 아이 방을 정리하면서 짐작해본다. 방 안 여기저기 쌓여있고 아무렇게나 펼쳐진 책들을 보면서 핏줄의 무서움을 새삼 느끼면서 오늘도 난 아이와 함께 할 책을 찾고 있다.

 

무엇보다 내 눈에, 내 마음에 아이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내 아이가, 다음에는 다른 아이들이, 그렇게 책과 더불어 나와 아이는 진정으로 가족이 되었다. 내 인생이 통째로 변하기 시작했다. ㅡ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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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7-15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북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신선합니다.
장바구니에 쏙 들어갑니다~~
 
고종석의 문장 한국어 글쓰기 강좌 1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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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그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 지인을 통해서, 혹은 책을 통해서 그가 좋은 글, 올바른 글을 쓰는 문장가라는 걸 여러 차례 접했다. 허나 그의 글을 만날 기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읽어야 하는 책보다 좀 더 흥미롭고, 좀 더 구미가 당기는 책에 끌렸다.

 

그러다 기회가 찾아왔다. 고종석의 책, 그것도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사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지금까지 수차례 읽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읽고 나서 왠지 위축되는 기분이 들곤 했다. 저자가 권하는 글쓰기의 방식,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오롯이 내 것이 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저자의 방식을 녹여내어 나만의 글쓰기로 담아내질 못했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글쓰기를 게을리 했다는 것. 해서 이번 <고종석의 문장>은 어떨지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읽었다. 결코 유쾌하지 못한 기분을 또 한 번 맛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더구나 글쓰기, 문장에 관한 책치고는 두께도 상당해서 시작부터 조금 걱정이 됐지만 결론은...뭐, 좋았다. 그렇다고 글쓰기에 대한 중압감을 느낄 수 없는 책이었느냐,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글이란 것이 무엇인지, 왜 글을 쓰려고 하는지, 어떤 것이 올바른 글, 제대로 된 글인지 알려주는 글쓰기의 기본을 짚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종석의 문장>은 저자가 2013년 9월부터 그해 12월까지 숭실대에서 진행한 글쓰기 강연을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해서 본문의 문장은 구어체로, 대상이 학생이었기에 내용도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서술되어 있다. 책은 가장 먼저 ‘글은 왜 쓰는가?’를 묻는다. 글을 왜 쓰는지, 그것을 짚어보기 위해 저자는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생계 때문이 아니라면 글을 쓰는 동기는 대략 네 가지가 있다고. 자신이 돋보이고 싶은 이기심 때문이거나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듣고 글로 남기고 싶은 미학적인 열정, 후세의 사람들을 위해 사실과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는 역사적인 충동, 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서라고 하는데 나의 글쓰기의 동기는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후에는 세계의 유일무이한 언어, 한국어에 대한 이해, 한국어다운 글쓰기에 관해이야기하는데 언어학자인 저자의 이력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정치평론가로 알려진 촘스키가 원래는 언어학자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시작으로 한국어가 얼마나 풍부한 음성을 지닌 언어인지 강조한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의 [청산별곡]은 ‘ㄹ’소리의 향연이라고 하는데 소리내어 읽어보니 어떤 의미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평집 <자유의 무늬>를 교재삼아서 글을 쓸 때 주의해야 할 것들, 미처 모르는 오류들을 하나씩 짚어준다. 이를테면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그런데’ 같은 접속부사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쓰지 않는 것이 좋다는 거나 ‘~적’ ‘~의’는 일본식 표현이라 가급적 빼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아름답고 정확한 글쓰기란 무엇일까’ 책장을 덮으면서 생각해본다. 아름답고 정확한 글은 무엇보다 논리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논리적인 글을 위해 아직 배우고 느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됐다. 그런 다음엔 쓰고, 또 쓰고. 꾸준히 글을 쓰는 것. 그것만이 나의 글이 앞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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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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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시나요? 우리 인간이 원래는 두 개의 머리와 두 쌍의 팔, 다리를 가졌다는 것을. 서로 같은 性(두 남성 또는 두 여성)이거나 다른 性(여성과 남성)이 등을 마주 대고 있었던 인간의 힘은 무척 강했습니다. 인간은 자만에 빠진 나머지 신에게 도전하기에 이르지요. 교만한 인간을 그냥 둘 수 없었던 신은 인간을 둘로 자르고 마는데요. 인간은 그때부터 평생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등이 맞붙은 하나의 몸에서 신에 의해 절반으로 갈라진 자신의 나머지 반쪽을……. 플라톤의 <향연>에 수록된 이야기인데요. 다소 파격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인간이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는 일련의 것들이 모두 태초에 인간이 서로 등이 붙었기 때문이라는 사랑의 근원,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플라톤의 향연이냐! 바로 그 ‘사랑’ 때문입니다. 서로 다르거나 같은 性의 인간들이 보여주는 ‘사랑’. 까마득한 과거에 헤어진 반쪽을 찾아 헤매는 거라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랑’. 사랑이지만 사랑이라 할 수 없고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현실인지 환상인지조차 확실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일렁임으로만 존재하는 몸짓, ‘그들의 사랑’. 바로 <소소한 풍경> 때문입니다.

 

 

소설가이자 대학교수인 ‘나’는 어느날 한 제자의 전화를 받습니다.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 보셨어요?” 뜬금없이 질문에 ‘나’는 순간 당황하지만 이내 제자 ㄱ을 떠올립니다. 자신의 수업시간에 보여준 ㄱ의 소설과 독특한 면모. ‘나’는 ㄱ을 찾아 소소시로 향합니다. 웃으며 선인장의 가시를 이야기하는 ㄱ과 헤어지고 돌아온 ‘나’는 호숫가 외딴 집의 쓸쓸함에 서서히 침잠해갑니다. 이후 소설은 ㄱ, ㄴ, ㄷ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어린 시절 오빠를 잃고 부모님마저 사고로 잃은 ㄱ은 비슷한 아픔을 품고 있는 남자1을 만나 결혼합니다. 하지만 결혼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혼자가 된 ㄱ은 소소의 자신의 옛집으로 돌아오지요. 그런 어느날 ㄱ은 낯선 남자를 보게 됩니다. 이웃집 외벽에서 하루종일 물구나무를 서는 그를 ㄱ은 자신의 집으로 들이는데요. 그는 ㄴ입니다. 전남편인 남자1과 정반대의 ㄴ. 그와의 일상이 어색하거나 불편하지도 않은 어느 날 ㄱ은 또 한 명의 낯선 이와 함께 하기 시작하는데요. 자신이 살 곳을 찾다가 ㄱ과 ㄴ이 마무는 집으로 스며들게 된 그녀는 ㄷ입니다. 저마다 가슴에 잊을 수 없는 상처를 품고 사는 그들의 생활이 시작되는 거지요.

 

 

두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 단순히 이것만 보면 서로 엇갈린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질 듯한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性을 구태여 의식하려 하지 않아요. 서로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고 그저 덩어리져서 함께 살아갑니다. 태초의 인간이 두 몸이 붙은 것처럼 그들은 셋이 원래부터 하나인 듯 했습니다. 물이 흐르듯 지극히 자연스러운 형태라고 할까요? 하지만 어느날 ㄴ이 우물에 떨어져서 목숨을 잃으면서 완벽하게 조화로워 보였던 그들의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소소한 풍경>을 보는 내내 저자의 이름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정말 내가 아는 그 ‘박범신’의 작품이 맞나? 의문을 품었습니다. 기억 속의 박범신은 인간의 욕망과 어둠을 때론 기이할 정도로 깊게 파고 드는 화려하고도 역동적인, 선이 굵은 이야기를 자아낸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만난 박범신은 달랐어요. 물론 최근 몇 년간 그의 작품을 만나지 않아서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세 명의 남녀가 함께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위험하고도 독특하고 기이한 사랑을 전하는 <소소한 풍경>. 왠지 불편하게 와 닿았습니다. 왜, 무엇 때문일지 알기 위해선 아무래도 그의 다른 이야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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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은 왜 바다로 갔을까? - 청소년, 인문학에 질문을 던지다 꿈결 청소년 교양서 시리즈 꿈의 비행 5
최재천 외 7인 지음 / 꿈결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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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엄마, 뽀로로! 여기 얘, 뽀로로야! 뽀로로 있으니까 이거 봐도 돼?”

며칠 전입니다. 설거지하랴 저녁 준비하랴 정신없는데 작은 아이가 제 책을 갖고 설레발을 치는 거예요. 내 책에 뽀로로는 무슨...쓸데없이 소리하지 말고 니 책 읽어! 하고 호통을 쳤는데요. 나중에 보니 아뿔싸! 표지에 정말 뽀로로가 있네요. 펭귄이면서 난데없이 튜브도 하나 차고....얘가 정체성의 혼란이 왔나? 싶어 쿡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금세 의문이 생겼습니다. 펭귄이 바다로 가는 건 당연한 건데 대체 왜 궁금한 거지?

 

 

살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에게, 조금씩 자라면서 친구와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는데요. 즉각적으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이 있는가 하면 며칠, 몇 달, 혹은 영영 답을 구하지 못하는 질문도 있습니다. <펭귄은 왜 바다로 갔을까?>는 바로 그런 질문에 대한 책인데요. 질문자가 청소년이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입시전쟁을 치르는 그들은 당연한 거라고 여기고 있던 것,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 왜 물어보는지 이유조차 알 수 없는 것들을 물어봅니다. 누구에게? 해답을 주거나 함께 고민해줄 수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질문의 주제는 모두 여덟 가지(환경, 역사, 고전문학, 사회, 과학, 동양철학, 문학, 예술)인데요. 하나의 주제 안에 여러 개의 질문이 곁들여 있습니다. 다소 황당하고 엉뚱한 질문도 있지만 해당 전문가(해당 분야 책을 집필한 저자)는 성실하게 답변해 주는데요. 그 내용이 어른인 제가 봐도 정말 재밌습니다.

 

 

제일 먼저 소개된 주제는 ‘환경’으로 책의 제목인 ‘펭귄은 왜 바다로 갔을까?’에 대해서인데요. 생태학과 어린이백과사전을 집필한 최형선님이 답변을 합니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생물들도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한다면서 도도새가 왜 멸종했는지 그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너무 좋은 환경 속에서 살다보니 도도새는 자신이 하늘을 나는 새라는 것조차 잊을 만큼 나태해졌다고. 그에 비해 펭귄은 조류이면서도 하늘을 나는 대신 헤엄치는 기술을 발달시켰고 빨리 달릴 수 있도록 훈련해서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말입니다. 치타 역시 약점이 많았지만 자신의 장점인 달리기를 끊임없이 연마한 끝에 ‘달리기의 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춘기가 한창 외모에 관심을 가지는 시기여선지 ‘아름다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요. 김종갑님이 사춘기때 나타나는 몸의 변화를 비롯해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며 어떨 때 아름답다고 하는지 설명해주는데요. 아름다움은 단순히 시각적인 것뿐 아니라 내면적인 아름다움이 어떤 것보다 더 가치 있다고 강조합니다. ‘과학’ 분야에서는 과학자이면서 다양한 책을 집필한 최재천님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는데요. 자신이 과학자라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문을 연 그는 타잔을 동경했던 어린 시절을 비롯해서 영장류 연구에 몰두했던 의미있는 경험, 인간과 유사한 삶을 살아간다는 개미의 놀라운 세계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말하면서 어떤 일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라고 조언합니다.

 

길을 가다가도 수시로 멈춰서 사방을 손짓하며 “엄마, 이게 뭐야? 저건 뭐야?”하고 묻던 아이들이 어느새 자라서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키가 자란 만큼 품는 의문도 달라집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궁금했던 어린 아이는 이제 자신이 알고 싶어집니다. 나는 누구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데요. 책 속에서 답변을 해주신 여러 전문가가 매번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진실한 삶인지 몇 번이고 거듭해서 강조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겠지요.

 

인문학은 어렵다고 합니다. 아니, 인문학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들도 많은데요. 인문학이란 ‘인간이 이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하고, 해야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학문’이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청소년기가 어쩌면 인문학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닐까 하는데요. <펭귄은 왜 바다로 갔을까?>를 비롯한 ‘꿈의 비행’시리즈가 좋은 길잡이가 될 거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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