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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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시나요? 우리 인간이 원래는 두 개의 머리와 두 쌍의 팔, 다리를 가졌다는 것을. 서로 같은 性(두 남성 또는 두 여성)이거나 다른 性(여성과 남성)이 등을 마주 대고 있었던 인간의 힘은 무척 강했습니다. 인간은 자만에 빠진 나머지 신에게 도전하기에 이르지요. 교만한 인간을 그냥 둘 수 없었던 신은 인간을 둘로 자르고 마는데요. 인간은 그때부터 평생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등이 맞붙은 하나의 몸에서 신에 의해 절반으로 갈라진 자신의 나머지 반쪽을……. 플라톤의 <향연>에 수록된 이야기인데요. 다소 파격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인간이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는 일련의 것들이 모두 태초에 인간이 서로 등이 붙었기 때문이라는 사랑의 근원,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플라톤의 향연이냐! 바로 그 ‘사랑’ 때문입니다. 서로 다르거나 같은 性의 인간들이 보여주는 ‘사랑’. 까마득한 과거에 헤어진 반쪽을 찾아 헤매는 거라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랑’. 사랑이지만 사랑이라 할 수 없고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현실인지 환상인지조차 확실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일렁임으로만 존재하는 몸짓, ‘그들의 사랑’. 바로 <소소한 풍경> 때문입니다.

 

 

소설가이자 대학교수인 ‘나’는 어느날 한 제자의 전화를 받습니다.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 보셨어요?” 뜬금없이 질문에 ‘나’는 순간 당황하지만 이내 제자 ㄱ을 떠올립니다. 자신의 수업시간에 보여준 ㄱ의 소설과 독특한 면모. ‘나’는 ㄱ을 찾아 소소시로 향합니다. 웃으며 선인장의 가시를 이야기하는 ㄱ과 헤어지고 돌아온 ‘나’는 호숫가 외딴 집의 쓸쓸함에 서서히 침잠해갑니다. 이후 소설은 ㄱ, ㄴ, ㄷ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어린 시절 오빠를 잃고 부모님마저 사고로 잃은 ㄱ은 비슷한 아픔을 품고 있는 남자1을 만나 결혼합니다. 하지만 결혼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혼자가 된 ㄱ은 소소의 자신의 옛집으로 돌아오지요. 그런 어느날 ㄱ은 낯선 남자를 보게 됩니다. 이웃집 외벽에서 하루종일 물구나무를 서는 그를 ㄱ은 자신의 집으로 들이는데요. 그는 ㄴ입니다. 전남편인 남자1과 정반대의 ㄴ. 그와의 일상이 어색하거나 불편하지도 않은 어느 날 ㄱ은 또 한 명의 낯선 이와 함께 하기 시작하는데요. 자신이 살 곳을 찾다가 ㄱ과 ㄴ이 마무는 집으로 스며들게 된 그녀는 ㄷ입니다. 저마다 가슴에 잊을 수 없는 상처를 품고 사는 그들의 생활이 시작되는 거지요.

 

 

두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 단순히 이것만 보면 서로 엇갈린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질 듯한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性을 구태여 의식하려 하지 않아요. 서로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고 그저 덩어리져서 함께 살아갑니다. 태초의 인간이 두 몸이 붙은 것처럼 그들은 셋이 원래부터 하나인 듯 했습니다. 물이 흐르듯 지극히 자연스러운 형태라고 할까요? 하지만 어느날 ㄴ이 우물에 떨어져서 목숨을 잃으면서 완벽하게 조화로워 보였던 그들의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소소한 풍경>을 보는 내내 저자의 이름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정말 내가 아는 그 ‘박범신’의 작품이 맞나? 의문을 품었습니다. 기억 속의 박범신은 인간의 욕망과 어둠을 때론 기이할 정도로 깊게 파고 드는 화려하고도 역동적인, 선이 굵은 이야기를 자아낸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만난 박범신은 달랐어요. 물론 최근 몇 년간 그의 작품을 만나지 않아서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세 명의 남녀가 함께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위험하고도 독특하고 기이한 사랑을 전하는 <소소한 풍경>. 왠지 불편하게 와 닿았습니다. 왜, 무엇 때문일지 알기 위해선 아무래도 그의 다른 이야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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