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 그때가 더 행복했네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1
이호준 지음 / 다할미디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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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처럼 층층이 올라간 논둑길을 허리 굽은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표지 사진 을 한참 들여다봤다. 여긴 어딜까. 요즘 같은 세상에 도대체 어디에 이런 정경이 남아있을까.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이란 책 제목 그대로다. 우리가 못 느끼는 사이에 조금씩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것들을 저자인 이호준님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진으로 찍어서 책 한권에 담았다. 그런 풍경들을 한데 모으면서 저자는 ‘그때가 더 행복했네’란 부제를 붙였다. 왜 지나간 옛 시절, 그때를 더 행복했다고 하는지 궁금했다.

 

 

책은 ‘청보리에 일렁이던 고향풍경’ ‘ 연탄. 등잔, 그 따뜻한 기억’, ‘술도가. 서낭당이 사라진 뒤’, ‘완행열차와 간이역의 추억’ 4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모두 40개의 추억과 풍경을 풀어놓았다. 그 중엔 저자가 자신의 추억과 경험담이 담긴 것도 있지만 여행이나 취재, 혹은 가까운 이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사진과 함께 전하고 있다.

 

 

각각의 내용이 연결성이 없기 때문에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달음에 읽기보다 틈나는대로 손에 들고 펼쳐지는 부분을 읽어도 좋다. 어떤 부분을 읽어도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책의 서술방식에 있다. 저자가 자신의 추억담을 천편일률적으로 들려주는 게 아니라 내용이나 소재, 장소에 따라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이 다르다.

 

 

소심한 소년이 참외서리에 대한 일화를 털어놓는가하면(원두막) 좀 모자란 대장장이 조씨의 아들 만복이와 친구인 아이의 눈을 빌어 대장장이가 쓸모없는 쇳덩이를 괭이나 칼로 만드는 광경을 보여주기도 하고(대장간) 총각선생님과 마을 누나의 결혼담(보리밭), 부지런한 바우영감이 몇 년동안 일한 새경 대신 받은 산자락을 다랭이논으로 만드는 고단한 광경(다랑논), 너른 바다에서 노는 게 질린 악동 멸치들이 엄마 멸치 몰래 밀물을 타고 들어와 숨바꼭질하다가 어부의 뜰채에 잡히기도 하고(죽방렴) 오줌싸개 아이가 키를 머리에 쓰고 이웃집에 소금 얻으러 가서 망신을 당하고(키질) 산만한 덩치에 힘이 장사인 선생님은 학교의 유일한 악기인 풍금 치는 게 서툴러 음악시간마다 아랫배가 아픈데 그걸 알기나 하는지 아이들은 킥킥 웃기만 했다고(풍금) 털어놓고 있다.

 

 

하나의 소재나 풍경에 따라 가슴에 와닿는 느낌도 달랐다. 사라져가는 시골의 풍경이나 정경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게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다가오고 누구나 어렵던 보릿고개 시절, 배고픔에 허덕이던 때의 추억은 가슴 한켠에 아릿한 슬픔과 아픔을 남기고 어린 시절의 놀이나 동네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에선 그리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이 한 권의 책을 정말 쉬엄쉬엄 읽었다. 찐쌀을 입안 가득 넣고 불려서 천천히 꼭꼭 씹어먹듯 조금씩 한 두 개 꼭지씩 읽어나갔다. 그리고 오늘 책장을 덮으면서 떠오른 생각은 ‘그래, 그때 참 행복했지’. 살아온 세월동안 일어난 모든 일을 기억할 수 없듯이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주위에서 하나씩 둘씩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것.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의 시야에서 뇌리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기에 오히려 더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이 땅 위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해야 한다는 짐 같은 지고 살아온 저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다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촉촉이 젖은 눈으로 바라보고 그것들을 하나둘 사진으로 찍고 기록한 저자가 너무나 고맙다. 덕분에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지나가버리는 시간의 회오리 속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시간도 십년, 혹은 이십년 후엔 그리운 날들이 될거란 생각을 하니 손에 힘이 들어가고 괜시리 설렌다. 내 아이들에게 언제든 돌아가고픈 푸근한 고향을 만들어줘야겠다.

 

 

* 지난 4월 시댁에서. 구비구비 돌아가는 골목길이 이곳엔 아직도 남아있다. 햇살이 좋은 한낮이면 골목마다 놀러나온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모처럼의 낮잠을 방해한다. 하지만 이 풍경도 곧 사라지게 된다. 몇 년전에 재개발이 확정되서 올해말이나 내년초가 유효기간인 이 풍경을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이끌려 찾아간 구멍가게에서 사온 과자 한봉지의 추억을 내 아이는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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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고질병인 편두통이 시작되려고 한다. 여고시절 국민윤리에서 철학부분은 봐도봐도 이해가 안됐다. 겨우 외웠다가도 시험에선 정답만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통에 매번 틀렸다. 철학자들은 쉽게 말해도 될텐데 왜 이렇게 어려운 말을 해서 날 골탕먹이나...생각했다. 대학때도 마찬가지였다. 신입생때 교양필수로 수강했던 철학은 내게 공인된 낮잠시간이 되버렸다. 에이, 이 넘의 철학. 이제 다시는 보나봐라....절대 안 봐!! 다짐을 했다.

 

 

그런데 다짐이란 건 깨어지기 위해 존재하나보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만나게 된 그림책엔 저마다 철학이 숨어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지혜를 비롯해 예절, 지식, 가치관...들을 알록달록한 이쁜 색깔로 포장해놓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아이가 한 번 두 번...횟수를 거듭해서 책을 읽다보면 그 속에 숨어있던 핵심, 정수, 알맹이에 조금씩 녹아든다. 얼마전에 만난 에릭 바튀의 철학그림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에릭 바튀가 누군가. 언뜻 <새똥과 전쟁>이 생각난다. 빨간 나라, 파란 나라가 사소한 이유로 전쟁을 벌인다는 내용의 그림책을 큰아이가 유치원 다닐무렵 부지런히 읽어줬다. 아이에게 친구들끼리 편갈라서 놀면 안돼...하고 몇 마디 하면 쉽게 끝날 일을 이 그림책 한 권으로 대신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가 세계 어린이책 3개상인 볼로냐 국제도서전 올해의 작가상을 비롯해 BIB 비엔날레 대상, 국제 어린이문학회 옥토곤상을 수상한 작가였다니...좋은 작가를 또 한명 알게 됐다.

 

 

에릭 바튀의 철학 그림책 <작은 행복>. 그는 이 책에서 말한다.

 

 

행복이란 작은 우산을 펴는 것처럼 간단하지.

 

 



<작은 행복> 이 그림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은 우산의 이동을 따라간다. 어느 날 아침 날아가버린 작은 행복은 제발 돌아오라고 소리쳐도 멀리 멀리 달아난다. 작은 행복을 놓쳐버린 ‘나’는 가장 먼저 작은 행복을 걱정한다.

 

 

“나 없이 어떡하려고 그러지? 번개에 맞아 불타기라도 하면 어쩌지? 붉은 하늘 저편으로 영영 날아가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래도 돌아오지 않는 작은 행복. ‘나’는 슬며시 심술이 난다.

 

 

“비바람에 혼자 떨고 있을 작은 행복을 떠올려 봐. 심술궂은 바람이 작은 행복을 데려갔다고.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하지.”

 

 

 뾰족해진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마음이 누그러들고 ‘나’는 조금씩 마음을 놓는다.

 

 

 “작은 행복은 언젠가는 꼭 돌아올 거야. 작은 행복은 꽃잎처럼 장난을 치고, 춤을 추려고 하늘로 날아올랐던 거니까. 작은 행복은 장난꾸러기이거든.”

 

 

한 편의 짧은 시 같기도 하고 명상집의 일부를 읽는 느낌도 드는 <작은 행복>. 처음 읽을땐 이 책이 도대체 무슨 얘길하나...싶었다. 며칠에 걸쳐 연거푸 읽고 나서야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냐. 우리 가까이에 있어. 네 곁을 봐. 작은 행복이 보이지?’란 말을 ‘바람에 날아간 작은 우산’에 빗대어 표현한 게 아닐까. 바람에 날려 놓쳐버린 우산을 잡으려고 달려갔지만 작은 우산이 내 손을 피해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걸 우리가 행복을 찾으려고 방황하는 모습으로 나타낸 듯하다.

 

 

어린 시절 집 주변에 머물러 있던 아이의 행동반경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연히 본격적으로 넓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생각이나 사고는 그렇지 않다. 좀 더 깊게 생각하고 넓게 바라보는 시각을 어릴 때부터 대화와 그림책을 통해 조금씩 연습하고 길러줘야 한다. 오늘 책을 읽고 한 가지 생각을 했다면 내일은 두 가지...이런 식으로 말이다.

 

 

사실 이 책은 9살 큰아이에겐 좀 어려운 책이었다.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매번 일일이 상황을 설명해주지 않는한 잘 이해하지 못했다. 최소한 초등고학년 정도가 되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는다. 지금은 어렵게 첫 발을 내딛었지만 내일은 두 걸음을 걸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아이와 함께 나도 조금씩 성장하는 느낌이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질문’이란 소타이틀을 붙인 <생각의 탄생>. 이 책은 모두 30권의 그림책으로 이뤄졌는데 관계/ 자아/ 성장/ 세계관 등 4개의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또 <에릭 바튀 철학 그림책 읽기>라는 가이드북이 있어서 한 권의 그림책을 읽고 생각을 어떻게 넓혀나가면 되는지 참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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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1 - 일타 큰스님 이야기
정찬주 지음 / 작가정신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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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집주변 포교원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전시회'가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를 비롯해 아난존자, 용수보살, 쫑카바 라마, 성철 스님 등의 사리를 친견할 수 있다고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찾았다. 주로 다니는 병원 건물의 한 층에 자리잡은 작은 포교원이 그날은 무척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사리는 법당 한 가운데 전시되어 있었는데 크기에서부터 모양, 색깔, 종류가 정말 가지각색으로 다양했다. 그걸 줄지어서 친견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표정과 법당안의 차분한 공기에 까불대던 큰아이도 조용히 발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인연>은 불교계의 큰 스님이신 일타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이다. 그동안 <산은 산 물은 물>을 비롯해 <하늘의 도> <만행> <야반삼경에 춧불춤을 추어라> <암자로 가는 길> 등 수많은 불교 관련 책을 집필한 작가 정찬주의 새로운 작품인데 1년 5개월이란 긴 시간을 거쳐 탄생했다고 한다.

 

붉고 노란 낙엽의 계절 가을, 평일이라 한적한 해인사를 한 남자가 찾아온다. 그의 이름은 고명인.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7일이 지났고 천주교와 유교형식의 장례를 치렸지만 그래도 뭔가 못다한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던 모양이다. 어머니 생전에 함께 일타스님의 법문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고자 해인사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혜각스님을 만나 일타스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일타스님의 행적지를 돌아보는 수행길에 동행하게 된다.

 

부모님 모두 불심이 깊었기에 어린 나이에 자연스럽게 불교의 교리에 젖어든 일타스님.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와 함께 출가한 어머니를 따라 불도의 길을 걷게 된다. 일타스님에겐 출가한 가족이 무척 많다. 외할아버지를 비롯해 어머니와 아버지, 외삼촌, 누나..등 사십명이 넘는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그런데 불교에 귀의하게 된 동기나 계기는 저마다 달랐다. 가족 중에 진정한 불제자가 한명 나오기도 힘든데 사십명이라니...정말 대단한 가족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타스님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어머니를 다시 만나는 부분은 무척 안타까웠다. 보고 싶은 마음에 목이 메일 정도였는데 그런 아들을 너와 어머니의 인연을 끊은지 오래됐으니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말라며(79쪽) 냉랭하고 차갑게 대하는 스님. 세속의 인연을 끊는다는 게 이런 건가...싶기도 했다. 아들에게 자신의 다친 발을 보이며 우리 삶에 있어 인과란 게 어떠한 것인지 깨닫고 그것을 얘기해주는 부분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불가에서는 전생에 쌓인 업이 현생으로 이어져 있기에 우리의 삶이 고통의 연속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자기 마음 속 깊은 곳에 화두를 심고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고 해탈하는 것이 수레바퀴처럼 계속 돌고 도는 그 고리를 끊는 유일한 길이라고 한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 일타스님은 스스로 오른손의 손가락을 연비하시고도 모라자서 다음생엔 미국에서 태어나서 불교를 전파하겠노라는 원을 세우셨을까...싶다.

 

일타스님의 행적을 따라 다니면서 생전에 머물었던 사찰과 일타스님이 모신 여러 큰스님, 성철스님이나 서암 큰스님에 대한 일화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벗어나 저마다 가슴에 품은 화두를 풀어내는데 서로 도움을 주고 애쓰는 모습들에서 인연이란 과연 무엇인가...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또 일타스님의 행적에 따라 그 분이 머무셨던 해인사라든가 내원사, 통도사, 광덕사와 같은 사찰의 사진도 실려 있었는데 내가 다녀온 사찰이 나오는 대목엔 유난히 반가웠다. 다음에 가면 일타스님의 자취를 한번 찾고 느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는 깨달음의 철학이라고 한다.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읽는 불교서적인데다가 한없이 자비로운 관음보살 같은 일타스님의 일대기에 한동안 잊고 있던 불씨 하나를 다시금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불기 2552년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왔다. 해마다 이날이면 사찰을 찾는다. 어두운 세상을 연등의 불빛이 밝혀주듯 내 마음의 어둠에도 작은 등불 하나를 밝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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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
달시 웨이크필드 지음, 강미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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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검색창에 ‘루게릭병’을 쳤다. 제법 많은 검색결과가 떴다. 공식병명은 ‘근위축성 측산경화증’. 척수신경이나 간뇌의 운동세포가 서서히 파괴돼 근육이 위축되고 마비되는 질환이라고 한다. 1930년대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즈의 루 게릭 선수가 이 병으로 숨지면서 ‘루게릭병’이라고 불리게 됐다고 한다.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인 스티브 호킹 박사를 비롯한 프로농구 박승일 코치가 앓고 있는 것 역시 이 루게릭병이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푸른 물 위를 달리는 다리가 그려진 표지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 이 책의 저자인 달시 웨이크필드는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아름다운 나이인 33세에 ALS 진단을 받는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영문학을 가르치던 활동적이고 씩씩한 여성의 삶이 바로 그 날부터 바뀌기 시작한다.

 

2003년 2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것을 시작으로 2004년 12월말까지. 그녀는 기록을 남겼다. 1년 10개월동안 ALS로 인해 그녀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병의 원인조차 파악되지 않은 불치병과 싸우면서도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던 그녀의 아름다운 용기가 이 한 권의 책에 담겨있다.

 

달시는 호수에서의 수영을 즐기고 달리기와 하이킹을 좋아하는 활달한 여성. 남자친구와 헤어진 그녀는 자신이 좋은 엄마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고 여기고 아기를 절실히 원하게 된다. 정자은행을 통해 인공수정을 계획하던 중 운명의 반쪽, 스티브를 만난다. 30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사는 스티브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사랑을 키워가고 있던 달시는 어느날 충격적인 얘길 듣는다.

 

“달시, 이건 심각할 수도 있어. 보스턴에 가면 ‘운동뉴런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게 될 거야.”.... 운동뉴런증후군이라고? “ALS지.” 나는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 ALS가 대체 뭐람? “루게릭병이라고도 해.” -33쪽.

 

루게릭병. 팔과 다리를 비롯해 얼굴의 근육이 마르고 굳어지면서 대부분 발병한 지 2~5년 사이에 호흡마비로 사망한다는 병에 달시는 절망한다. 그녀는 활달하고 개구쟁이 기질이 있는 아이들, 버릇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진흙탕에도 기꺼이 뛰어 들어가 놀 줄 아는 아이를 기르고 싶었고 딸이 있다면 언제나 조심할 필요없이 책임과 위험도 기꺼이 감수하라고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상태를 더 악화시키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느냐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인공수정을 하고 임신에 성공한다.

 

ALS로 인해 하루하루 조금씩 변해가는 자신의 몸을 지켜보면서 그녀는 많은 걸 떠올린다. 더 이상 달릴 수 없지만 자신의 몸 안엔 달리는 사람의 영혼이 있음을, 잃어버린 것보다 아직 남아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감사하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쇼핑몰에서 허리가 고무줄로 된 청바지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행복한 나머지 기절할 지경이라니...

 

나도 안다, 사실 진실을 말하자면 ALS는 내게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낼 수 있는 용기를, 아직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할 수 있는 용기를, 웃음과 품위, 그리고 기쁨을 찾아낼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 132쪽.

 

우리 아기와 함께 점차 살이 져갈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잘 알고 있다. -168쪽.

 

그녀는 문득문득 그리워한다. ALS 진단을 받기 이전에 아주 활동적이고 건강했던 여성이었던 자신을 사람들이 저 세상으로 간 배우자를 그리워하듯이 옛날의 자신을 그리워하고(134쪽) 거리에서 뛰거나 자전거를 탄 사람을 보면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 소원한다.

 

내 아들과 함께 이 산 저 산을 다니며 하이킹을 하고 싶다...스티브가 나이가 들면 그를 곁에서 보살펴주고 싶다. 어느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냥 평범한 서른 넷이 되었으면 좋겠다. 통증도 없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고, 나는 영원히 살겠구나 하고 생각할만큼 순진한 서른 넷 말이다. - 202쪽.

 

달시 웨이크필드. 그녀는 지금까지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만났던 불치병에 걸린 연약한 주인공이 아니었다. 내가 왜, 무슨 잘못을 했길래,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길래 이런 몹쓸병에 걸렸느냐고 목소리 높여 하소연하거나 불평을 하지도 않았다. 마지막 날을 언도받은 삶이 곧 죽어간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커다란 도전은 때로 소소한 일상의 고마움을 깨우쳐주는데 자신은 지금 그런 것들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희망을 잃지 않았다.

 

치료법이 나올 시간은, 증세가 역전될 시간은, 기적이 일어날 시간은 아직 있다. 아직 시간은 있다. - 196쪽.

 

내가 말하고 걷는 법을 잊어버리는 사이 샘은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는 법과 미소짓는 법, 다리를 움직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니 참 이상한 일이다.(...) 샘을 안고 있을 때면 아이를 낳으면 인생이 바뀔거라고 말하던 사람들의 말이 종종 생각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ALS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을지라도 말이다. - 206쪽.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호흡하고 음식을 먹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걷거나 뛰고 자전거를 타는 소소한 일상이 이렇게 소중할 수도 있구나...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끌어안고 산책을 하는 이런 일들이 애절하게 그리워질수도 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로 인해 우리의 일상, 나의 삶이 그야말로 기적의 연속이란 걸 알게 됐다.

 

1년 10개월이란 기간동안 달시 웨이크필드, 그녀는 열심히 달렸다. 얼마남지 않은 자신의 삶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는 아름다운 용기를 보여준 그녀의 기록, 그녀의 달리기는 눈부시리만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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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봄 나들이를 갔다.

 

우리 동네에서 벚꽃이 가장 이쁜 곳....

해마다 봄만 되면 이렇게 아름답게 단장하는 이 곳이

재개발 때문에 조만간 없어지게 된다.

아쉽다.

이곳에서 만나는 벚꽃행렬이

올해가 마지막이 아닐까....

파란 하늘에 군데군데 떠가는 하얀 구름,


화창한 날씨에 꽃구경 나온데다가 머리에 꽃을 꽂아주니

더 신이 난 작은아이...^--^



내친김에 송정바닷가로 향했다.

연날리기 하는 큰아이.

오랜만에 연날리니 잘 안되니?


혀는 왜 쏙...내밀고 있지??


 


난생 처음 바닷가탐방에 나선 작은 아이.


파도치는 백사장에 갔을땐 날 꼭 붙잡고 떨어지지 않더니


모래위에 내려놓으니 이번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야!!!!!
엄마, 이게 뭐야? 

손에서 뭐가 스르르르 흐르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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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8-05-11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표정이 참 해맑아요~~~ 약간은 쌀쌀함이 느껴지는 싱그러운 봄바다도 참 좋지요.

몽당연필 2008-05-11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표정은 언제봐도 변화무쌍하지요.
전 언제나 무덤덤...한 표정인데...ㅠㅠ
애들 얼굴보면서 표정 연습 좀 할까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