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1 - 일타 큰스님 이야기
정찬주 지음 / 작가정신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달 집주변 포교원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전시회'가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를 비롯해 아난존자, 용수보살, 쫑카바 라마, 성철 스님 등의 사리를 친견할 수 있다고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찾았다. 주로 다니는 병원 건물의 한 층에 자리잡은 작은 포교원이 그날은 무척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사리는 법당 한 가운데 전시되어 있었는데 크기에서부터 모양, 색깔, 종류가 정말 가지각색으로 다양했다. 그걸 줄지어서 친견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표정과 법당안의 차분한 공기에 까불대던 큰아이도 조용히 발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인연>은 불교계의 큰 스님이신 일타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이다. 그동안 <산은 산 물은 물>을 비롯해 <하늘의 도> <만행> <야반삼경에 춧불춤을 추어라> <암자로 가는 길> 등 수많은 불교 관련 책을 집필한 작가 정찬주의 새로운 작품인데 1년 5개월이란 긴 시간을 거쳐 탄생했다고 한다.

 

붉고 노란 낙엽의 계절 가을, 평일이라 한적한 해인사를 한 남자가 찾아온다. 그의 이름은 고명인.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7일이 지났고 천주교와 유교형식의 장례를 치렸지만 그래도 뭔가 못다한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던 모양이다. 어머니 생전에 함께 일타스님의 법문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고자 해인사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혜각스님을 만나 일타스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일타스님의 행적지를 돌아보는 수행길에 동행하게 된다.

 

부모님 모두 불심이 깊었기에 어린 나이에 자연스럽게 불교의 교리에 젖어든 일타스님.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와 함께 출가한 어머니를 따라 불도의 길을 걷게 된다. 일타스님에겐 출가한 가족이 무척 많다. 외할아버지를 비롯해 어머니와 아버지, 외삼촌, 누나..등 사십명이 넘는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그런데 불교에 귀의하게 된 동기나 계기는 저마다 달랐다. 가족 중에 진정한 불제자가 한명 나오기도 힘든데 사십명이라니...정말 대단한 가족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타스님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어머니를 다시 만나는 부분은 무척 안타까웠다. 보고 싶은 마음에 목이 메일 정도였는데 그런 아들을 너와 어머니의 인연을 끊은지 오래됐으니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말라며(79쪽) 냉랭하고 차갑게 대하는 스님. 세속의 인연을 끊는다는 게 이런 건가...싶기도 했다. 아들에게 자신의 다친 발을 보이며 우리 삶에 있어 인과란 게 어떠한 것인지 깨닫고 그것을 얘기해주는 부분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불가에서는 전생에 쌓인 업이 현생으로 이어져 있기에 우리의 삶이 고통의 연속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자기 마음 속 깊은 곳에 화두를 심고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고 해탈하는 것이 수레바퀴처럼 계속 돌고 도는 그 고리를 끊는 유일한 길이라고 한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 일타스님은 스스로 오른손의 손가락을 연비하시고도 모라자서 다음생엔 미국에서 태어나서 불교를 전파하겠노라는 원을 세우셨을까...싶다.

 

일타스님의 행적을 따라 다니면서 생전에 머물었던 사찰과 일타스님이 모신 여러 큰스님, 성철스님이나 서암 큰스님에 대한 일화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벗어나 저마다 가슴에 품은 화두를 풀어내는데 서로 도움을 주고 애쓰는 모습들에서 인연이란 과연 무엇인가...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또 일타스님의 행적에 따라 그 분이 머무셨던 해인사라든가 내원사, 통도사, 광덕사와 같은 사찰의 사진도 실려 있었는데 내가 다녀온 사찰이 나오는 대목엔 유난히 반가웠다. 다음에 가면 일타스님의 자취를 한번 찾고 느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는 깨달음의 철학이라고 한다.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읽는 불교서적인데다가 한없이 자비로운 관음보살 같은 일타스님의 일대기에 한동안 잊고 있던 불씨 하나를 다시금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불기 2552년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왔다. 해마다 이날이면 사찰을 찾는다. 어두운 세상을 연등의 불빛이 밝혀주듯 내 마음의 어둠에도 작은 등불 하나를 밝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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