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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 가?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2월
평점 :
두 번의 임신과 두 번의 출산을 했다. 특히 두 번째는 노산이라 더욱 걱정이 됐다. 아기가 아무 이상없이 무사히 태어나야할텐데...빌고 또 빌었다. 혹시나 불길한 꿈을 꾸진 않을까 싶어서 매일밤 잠자리에 드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나고 두 돌이 지났지만 지금도 간혹 불안과 두려움이란 것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민다. 또래보다 왠지 부족하고 처진다고 느껴질 때마다 걸음마가 늦거나 말이 늦으면 혹시나 내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전전긍긍한다. 그런데 나의 이런 걱정과 불안이 누군가에게 있어선 꿈같은 일이 될 수도 있다니. 미처 생각지 못했다.
장-루이 푸르니에는 프랑스의 방송연출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데 어떤 일이든 유머와 감동을 자아내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자신의 두 아들에 대해 털어놓았다. 자그마치 40년 동안이나 숨겨왔던, 그것도 장애를 가진 두 아들을 얘기한다.
작년 말에 읽었던 책에서 하나의 수정란이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단 한 지점에서라도 유전자 복제에 실수가 발생하거나 한 쌍의 염색체 비분리 현상만 일어나도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했다. 그러니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엄마의 몸속에서 500분의 1, 아빠의 몸속에서는 5억분의 1이라는 좁은 관문을 뚫은 엘리트 유전자라고 했는데 저자에겐 아니었다.
누구나 기대해 마지않는 첫아기.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기가 지체아란 진단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첫아기인 마튜가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장애를 가져서 평생 정상이 아닌 채 살아갈 거란 말을 듣는다. 그리고 2년 후 똑같은 상황이 다시 반복된다. 두 살 터울로 태어난 토마 역시 마튜와 같은 장애아란 것. 마른하늘에 날벼락이고 세상의 종말이나 다를바 없다. 저자는 그걸 두 번 겪었다고 말한다.
하늘이 두 쪽 나는 슬픔, 세상의 종말을 연거푸 두 번이나 겪었지만 저자는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을 대상으로 농담을 하며 허허허 하고 웃는다. 어딘가로 공을 던져 찾으러 나서던 마튜, 입으로 부릉부릉 소리를 내던 마튜가 열 다섯 살이 되어 척추수술을 받지만 3일후 몸을 꼿꼿이 편 채로 세상을 떠났을 때조차 저자는 아이가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감행한 수술이 결국 성공을 거둔 셈이라고 했다. “아빠 어디 가?”란 말을 끝없이 반복하던 둘째 토마가 점점 멍하니 자신만의 세계로 빠질 때조차 슬퍼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슬픈 삐에로처럼 입은 애써 웃음을 짓지만 눈물을 참는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자는 사랑하는 두 아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아쉬워했다. 자신이 어릴 때 좋아했던 만화 <땡땡>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없어서 함께 영화나 음악을 듣고 책을 보거나 시디를 골라주지 못해서, 여행하면서 만나는 아름다운 경치를 함께 즐기지 못해서, 보다 많은 사진을 찍어주지 못해서,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때 아이들의 나이에 어울리는 선물을 주지 못해서, ‘사랑하다’란 말을 아이들이 평생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안타까워했다.
<아빠 어디 가?>는 저자가 그동안 채 표현하지 못했던 두 아들에 대한 사랑,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담담하게 녹여낸 책이다. 짧막한 글들로 이뤄진 책은 일단 손에 잡고나면 놓지 못한다. 소설도 아닌데 다음이 궁금해서 계속 책장을 넘기다보니 어느새 마지막장을 읽고 있었다. 처음엔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다. 이건 언제적 얘기일까. 아이들이 몇 살 때일까. 그런데 곧 알게 됐다. 마튜와 토마에겐 날짜와 나이가 상관없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난감했다. 저자의 가슴 속에서 40년간이나 머물면서 저절로 무르익고 다듬어진 얘기를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웃음과 절망 사이에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고 있는 글에 어지럼증을 느껴서일까. 내가 도무지 감당해내지 못할 슬픔과 안타까움에 그 느낌을 제대로 잡아내는 것조차 힘겨웠다. 나 역시 아이를 기르는 부모인지라 그의 얘기에 왈칵 눈물을 쏟고 싶었는데...저자는 그걸 허락지 않았다. 이겨내라고. 눈물을 참아내라며 먼저 굳은 의지를 보였다. 나라면 어땠을까. 자신이 없다. 솔직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