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어디 가?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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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임신과 두 번의 출산을 했다. 특히 두 번째는 노산이라 더욱 걱정이 됐다. 아기가 아무 이상없이 무사히 태어나야할텐데...빌고 또 빌었다. 혹시나 불길한 꿈을 꾸진 않을까 싶어서 매일밤 잠자리에 드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나고 두 돌이 지났지만 지금도 간혹 불안과 두려움이란 것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민다. 또래보다 왠지 부족하고 처진다고 느껴질 때마다 걸음마가 늦거나 말이 늦으면 혹시나 내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전전긍긍한다. 그런데 나의 이런 걱정과 불안이 누군가에게 있어선 꿈같은 일이 될 수도 있다니. 미처 생각지 못했다.




장-루이 푸르니에는 프랑스의 방송연출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데 어떤 일이든 유머와 감동을 자아내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자신의 두 아들에 대해 털어놓았다. 자그마치 40년 동안이나 숨겨왔던, 그것도 장애를 가진 두 아들을 얘기한다.




작년 말에 읽었던 책에서 하나의 수정란이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단 한 지점에서라도 유전자 복제에 실수가 발생하거나 한 쌍의 염색체 비분리 현상만 일어나도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했다. 그러니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엄마의 몸속에서 500분의 1, 아빠의 몸속에서는 5억분의 1이라는 좁은 관문을 뚫은 엘리트 유전자라고 했는데 저자에겐 아니었다.




누구나 기대해 마지않는 첫아기.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기가 지체아란 진단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첫아기인 마튜가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장애를 가져서 평생 정상이 아닌 채 살아갈 거란 말을 듣는다. 그리고 2년 후 똑같은 상황이 다시 반복된다. 두 살 터울로 태어난 토마 역시 마튜와 같은 장애아란 것. 마른하늘에 날벼락이고 세상의 종말이나 다를바 없다. 저자는 그걸 두 번 겪었다고 말한다.




하늘이 두 쪽 나는 슬픔, 세상의 종말을 연거푸 두 번이나 겪었지만 저자는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을 대상으로 농담을 하며 허허허 하고 웃는다. 어딘가로 공을 던져 찾으러 나서던 마튜, 입으로 부릉부릉 소리를 내던 마튜가 열 다섯 살이 되어 척추수술을 받지만 3일후 몸을 꼿꼿이 편 채로 세상을 떠났을 때조차 저자는 아이가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감행한 수술이 결국 성공을 거둔 셈이라고 했다. “아빠 어디 가?”란 말을 끝없이 반복하던 둘째 토마가 점점 멍하니 자신만의 세계로 빠질 때조차 슬퍼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슬픈 삐에로처럼 입은 애써 웃음을 짓지만 눈물을 참는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자는 사랑하는 두 아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아쉬워했다. 자신이 어릴 때 좋아했던 만화 <땡땡>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없어서 함께 영화나 음악을 듣고 책을 보거나 시디를 골라주지 못해서, 여행하면서 만나는 아름다운 경치를 함께 즐기지 못해서, 보다 많은 사진을 찍어주지 못해서,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때 아이들의 나이에 어울리는 선물을 주지 못해서, ‘사랑하다’란 말을 아이들이 평생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안타까워했다.




<아빠 어디 가?>는 저자가 그동안 채 표현하지 못했던 두 아들에 대한 사랑,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담담하게 녹여낸 책이다. 짧막한 글들로 이뤄진 책은 일단 손에 잡고나면 놓지 못한다. 소설도 아닌데 다음이 궁금해서 계속 책장을 넘기다보니 어느새 마지막장을 읽고 있었다. 처음엔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다. 이건 언제적 얘기일까. 아이들이 몇 살 때일까. 그런데 곧 알게 됐다. 마튜와 토마에겐 날짜와 나이가 상관없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난감했다. 저자의 가슴 속에서 40년간이나 머물면서 저절로 무르익고 다듬어진 얘기를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웃음과 절망 사이에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고 있는 글에 어지럼증을 느껴서일까. 내가 도무지 감당해내지 못할 슬픔과 안타까움에 그 느낌을 제대로 잡아내는 것조차 힘겨웠다. 나 역시 아이를 기르는 부모인지라 그의 얘기에 왈칵 눈물을 쏟고 싶었는데...저자는 그걸 허락지 않았다. 이겨내라고. 눈물을 참아내라며 먼저 굳은 의지를 보였다. 나라면 어땠을까. 자신이 없다. 솔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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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 이레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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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히말라야 도서관>이란 책을 읽었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에 도서관을 세운 남자, 존 우드. 그가 신성한 대륙이라 할만큼 오지인 히말라야에 도서관과 학교를 세워나가는 여정이 담겨 있었는데, 책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 잊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다. 그의 인생과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는 계기가 된 단 한 마디의 말. “책을 가지고 다시 와주세요.” 간절한 염원이 담긴 말 한마디는 때로 상상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레그 모텐슨도 그랬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정을 쏟았던 여동생 크리스타가  간질발작으로 갑자기 죽자 그는 K2에 오른다. K2의 정상에 동생의 목걸이를 놓는 것으로 그녀를 추모하려 했던 모텐슨. 하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조난당하고 만다. 사경을 헤매던 그를 도와준 것은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 코르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정성스런 보살핌으로 모텐슨은 차츰 건강을 회복하면서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이방인인 자신을 도와준 코르페 마을 사람들에게 보답하고자 했다. 남은 돈을 털어 교과서나 학용품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학교란 건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이들이 허허벌판의 얼어붙은 맨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교과서도 선생님도 없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모텐슨은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꼭 해야 할 의미있는 일은 바로 이곳에 학교를 세우는 거라 여겼다. 그는 말한다. “제가 학교를 지어드리겠습니다.” “약속하죠.”

미국으로 돌아간 모텐슨은 학교를 짓는데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데 전념한다. 오래된 차안에서 생활하고 병원 야간근무를 하면서 틈틈이 편지를 보낸다. 정치가나 사업가, 언론인 같은 사람들에게 후원금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500통이 넘게 보내지만 단 한 통의 답장을 받는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인을 통해 산악인이자 과학자인 장 회르니 박사를 알게 되고 그에게서 학교를 짓는데 필요한 1만2천달러의 후원금을 받는다.

 

어렵사리 모은 돈을 가지고 들뜬 마음으로 다시 히말라야를 찾은 모텐슨. 그의 앞엔 수많은 난관이 놓여있었다. 학교를 짓기 위한 판자나 못 같은 건축자재며 자잘한 도구를 구입하는 것부터 그걸 코르페 마을로 옮기는 것까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코르페보다 먼저 자신들의 마을에 학교를 지어야 한다며 사람들은 옥신각신 다투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모텐슨은 코르페 마을에 가서 자신이 학교를 지을 자재를 구했다는 소식을 전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코르페까지 건축자재를 운반하려면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다리가 없었던 것. 결국 모텐슨은 다리를 만들기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데....

이후로도 모텐슨의 힘겨운 여정은 계속된다. 장 회르니 박사로부터 받은 후원금으로 다리를 놓고 운명적인 여인 타라 비숍과 사랑에 빠져 엿새 만에 결혼했다. 그리고 드디어 코르페에 학교를 짓지만 모텐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웃의 작은 마을에도 학교를 지어나갔다. 그 와중에 탈레반에 납치되어 감금되기도 했지만 이슬람 어린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자 했던 그에게 있어  고난은 과속방지턱에 불과했다. 코르페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신 세 잔의 차에서 시작된 인연은 78개의 학교로 이어졌고 그로인해 수많은 아이들이 교육을 받게 됐다. 그야말로 기적을 이뤄냈다.

 

500쪽 가까이 되는 두툼한 책이지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문장이나 이야기의 흐름이 마치 소설처럼, 아니 재현드라마를 글로 옮겨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많은 이에게 전하는 감사의 말이 가득한 후기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세상에 태어나 글자를 깨우치고 책을 읽고 교육을 받는다는 것에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알고보니 온통 감사한 일 투성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다만 한가지, 책 뒤편에 있는 지도를 앞쪽에 수록했다면 책을 읽는데 더 도움이 됐을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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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도깨비 책귀신 1
이상배 글, 백명식 그림 / 처음주니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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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도깨비. 제목이 참 재밌다.

 

우선 ‘도깨비’가 뭔가.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한 잡된 귀신’으로 초인적인 괴력과 재주를 갖고 있는 존재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이 죽은 후에 생기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오래 쓰다가 버린 물건, 즉 헌 빗자루나 짚신, 부지깽이, 오래된 가구 같은 것들이 밤이 되면 도깨비로 변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여타귀신과 달리 사람들에게 악한 일을 하지 않는다. 대신 황소를 지붕 위에 올려놓거나 큰 산을 움직이는 짓궂은 장난을 많이 하지만 그 반면에 잘 사귀면 신통력으로 금은보화를 가져다주는 도움을 주기도 한다는데...바로 그 도깨비가 책을 읽는단다. 정말? 호기심이 발동한다.

 

책의 주인공은 바로 고리짝 도깨비다. 구두쇠 영감이 돈을 모아놓는 고리짝에서 나온 도깨빈데 주인을 닳아 돈 냄새를 좋아한다. 어느날 구두쇠 영감의 돈을 훔쳐서 달아난 고리짝 도깨비는 나무 밑동에 난 구멍에 돈을 쌓아놓고 지낸다. 껑충 큰 키에 온몸은 털북숭이, 머리에 패랭이 모자를 쓰고 사람 행세를 하면서 돈을 쓸어 모으자 빗자루 도깨비와 공책도깨비가 찾아온다. 좁은 나무 밑동에 세 도깨비가 자리를 잡자 지나던 개들이 짖어대고 그들은 이사하기로 마음먹는다. 

 

경치가 좋은 명당을 발견한 세 도깨비가 이사하려고 그 곳을 먼저 찾은 사람들을 훼방놓기 시작한다. 이를 눈치 챈 선비는 도깨비들에게 내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선비가 내놓은 문구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하는데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공책 도깨비마저 알 수가 없었다. 이에 세 도깨비들은 밥보다 책읽기를 좋아한다는 세종대왕을 찾아가는데....

 

사람이 오래 쓰고 버려둔 물건이 도깨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데 이 책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세 도깨비들은 선비와의 문답내기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세 가지의 기쁨을 알게 된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세종대왕의 심부름으로 서점을 찾는 기쁨과 책을 구입하는 기쁨, 거기에 한 가지 더! 책을 읽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느끼게 된다.

 

‘人不通古今(인불통고금)이면 馬牛而襟据(마우이금거)니라.’ ‘사람이 고금(고금)의 일을 알지 못하면, 마소에 옷을 입히는 것과 같다.’ 명심보감을 읽지 않아서 이 문장이 정확하게 어떤 뜻인지 알 수 없지만 옛 선인들의 지혜와 가르침이 담겨있는 책을 읽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닦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 게 아닌가 싶다.

 

책을 읽으면서 내 아이들을 생각해보게 됐다. 책을 읽는 기쁨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는 기쁨과 책을 구입하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지 못했던 것 같아 가슴이 뜨끔했다.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할 기쁨과 환희의 순간을 내가 방해한 게 아닌가...싶어서.

고리짝 도깨비, 빗자루 도깨비, 공책 도깨비. 이들은 선비와의 문답 내기에서 어떻게 됐을까. 이겼을까? 졌을까? 그리고 서점을 찾는 기쁨과 책을 구입하는 기쁨, 책을 읽는 기쁨을 알게 된 세 도깨비가 어떻게 됐을까?...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면...지금 당장 책을 펼쳐보라고 권하고 싶다. 100쪽이 넘는 책이지만 삽화가 많아서 쉽게 넘어가고 저학년들도 재밌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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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 - 값싼 위로, 위악의 독설은 가라!
김별아 지음 / 문학의문학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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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그녀를 알지 못한다. 그녀의 작품을 아직 읽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 이 책이 그녀와 나의 첫 만남이다.




<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 제목이 참 의미심장하다. 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을까. 이미 몇 편의 소설을 출간한 작가의 산문집. 그녀의 내면과 생각, 삶, 생활들을 엿볼 수 있을거라 생각해서 선택한 책이었다. 그런데 제목이 ‘모욕의 매뉴얼’이라니. 나 같은 평범한 아줌마가 아니라 그녀처럼 유명작가도 모욕을 받을만한 일이 있을까. 순하고 아름다우면서 고분고분한 내용이 아니라 고슴도치처럼 뾰족뾰족하리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놀랐다. 김별아. 그녀와 난 의외로 비슷한 점이 참 많았다. 그녀는 유명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이 사회의 2등 인간인 여자이고, 홀몸으로 움치고 뛸 수 없는 애 딸린 아줌마’였다. 거기다 성격마저 비슷했다. 나 역시 그녀처럼 외향적으로 보이면서도 의외로 소극적이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고심하고 때론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그냥 넘어가버리는 ‘제 밥그릇도 제대로 못 챙기는 헛똑똑이’였다. 누군가와 다툼이나 논쟁을 하거나 시댁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나의 생각과 의견을 조목조목 얘기하지 못한다. 그러다 나중에, 그것도 잠자려고 자리에 누우면 그제서야 아이고 이 바보야 그땐 이렇게 대꾸했어야지...하며 가슴을 치고 후회하지만 상황은 물 건너갔고 버스는 이미 떠났다. 어쩔수 없이 나 혼자서 가슴에 담아두고 끙끙 앓는 수밖에.




그녀는 달랐다. 더 이상 '싸우지 않을 수는 없다. 모욕을 참고 견디는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며 ‘당장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지나지 않더라도’ 싸워서 ‘작은 결실이라도 축적’해야 큰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싸우려면 잘 싸워야 한다. 싸움은 이기기 위해 해야 한다’면서.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옷을 보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옷 꼬라지 운운하는 할아버지에게 대뜸 쏘아붙인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을 때의 매뉴얼대로 ‘남이 뭘 입든 무슨 상관이냐’고. 지하철에서 책을 읽던 난 그녀의 통쾌한 대답에 순간 ‘그렇지! 잘했어’라며 큰소리를 칠 뻔했다. 지금까지 내뱉지 못하고 내내 막혀있던 말들이 터져나온 기분이었다. 또 낯선 것에서 불편하고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인생이 무엇인지 느끼고 싶어 아이를 떼어놓고 인도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부자 되기를 꿈꾸는 세태 속에 무엇이 진정한 부자인지 꼬집고 인간의 오만함이 저지른 실수를 안타까워한다. 그런가하면 ‘고전이라니까 읽고, 유명하다니까 읽고, 읽지 않으면 말하지 말라니까 읽’었던 자신의 독서를 의무방어적이었다고 고백하는 글에선 나의 책읽기를 돌아보게 했다.




짧막한 글이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미처 보지 못하고 생각지 못했던 부분, 입으로 내뱉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얘길 하고 있었다. 그냥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아줌만데 내가 무슨...하며 모른척 외면해왔던 일들을 그럼 안된다고 ‘세상이, 세상 사람들이 나를 부당하게 모욕해 올 때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고 적절하게 맞받아칠 수 있는지 고민’해보라며 말을 건네는 기분이 들었다. 불혹을 맞은 여인이 막 불혹을 넘긴 또 한명의 여인의 손을 잡고 생각의 방식을 바꿔보고 때론 오롯이 외로워할 줄도 알아야 불행해지지 않는다며 일깨워줬다. 통쾌함을 선사했다. 첫 만남을 기념하는 선물이라도 하듯. 나도 할 수 있을까. 그녀처럼 나도 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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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3-23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끌리는 책이네요.
한방 날려버리는 게 좋을 수 있죠.
눌러두면 병이 되어요.^^
 
아파트에 미치다 -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 이숲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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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미쳤어.” 요즘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일간지에 아파트 시세표가 실리는 날엔 수위가 좀 더 높아진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10년이 넘은 아파트가 어떻게 평당 천만 원이 넘냐고!!” “미쳤어, 미쳤어. 아파트가 미쳐도 단단히 미친거야.”




어릴 때 잠깐 아파트에 산 걸 제외하면 결혼하기 전까지 줄곧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그러다 결혼하면서 지금까지 줄곧 같은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는데 올해로 10년이 넘었다. 신혼일 때나 아이가 한명일 땐 몰랐는데 아이가 두 명이 되니 집이 예전보다 좁게 느껴졌다. 좀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지만 터무니없이 오른 아파트값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내면서 집, 특히 아파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아파트에 미치다>란 책을 손에 잡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피사의 사탑 모양 삐딱한 아파트의 이미지에 붉은 글씨로 ‘미치다’라고 적힌 표지의 이 책을 보는 순간 ‘그래 대체 아파트가 뭐길래!’ ‘아파트에서 안 살면 어디가 덧나나?’하는 생각에 불이 붙었다.




책은 모두 10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집이란 무엇이며 왜 집이 중요한지로 말문을 연 저자는 아파트란 말이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의 대표적 경관이 산이었는데 그 산이 모두 아파트에 자리를 내어줄 정도로 대한민국엔 아파트천지가 되어 ‘논두렁/밭두렁 아파트’도 생겨나고 있다면서 외국에선 서민들이 주거하는 걸로 인식된 아파트가 왜 유독 한국에서 지역을 막론하고 크게 확산되고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살기를 바라는지, 거기엔 어떤 배경이 있는지 등의 문제를 제시하고 살펴본다. 아파트를 좀 더 자세히 분석하기 시작한다. 아파트의 무엇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는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아파트를 선호하고 열광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서구의 거주 양식인 아파트가 우리나라에선 어떻게 바뀌었는지, 아파트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우리의  아파트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것들을 사회현상과 연관지어 조목조목 설명해놓고 있다.




‘현대 한국의 주거사회학’이란 학술지 분위기의 부제 때문에 처음엔 책의 내용도 딱딱하고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넘어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왠지 아쉬움이 남았다. 좀 더 좋은 동네, 되도록 넓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현상과 문화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그 대안은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그에 대한 의문들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파트에 미치다>란 제목만을 보고 내가 이 책에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책 제목의 ‘미치다’는 여기서 두 가지 의미로 쓰인 게 아닌가 싶다. ‘미치다’에는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거나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는 의미와 ‘공간적 거리나 수준 따위가 일정한 선에 닿다.’ ‘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 책에선 후자에 더 비중을 둔 건 아니었을까.




큰아이는 간혹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는데 우리 집에 들어서는 아이들의 첫마디는 “어, 집이 작네?”하는 거다. 실패한 신시가지라고 평가받는 동네지만 그 속에서도 아파트의 크기에 대한 기준은 존재했고 냉혹했다. 어느 아파트 몇 동에 사는 것만으로도 그 집의 수준이 고스란히 드러나다니. 미처 생각지 못했다. 여고동창회에서 누구는 아파트 분양 받고 팔아서 몇 천을 벌었다더라 하는 말이 나돌아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얼마전까지는. 그저 누구에게 빚을 내서 살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는 왜 좁은 집에서 사느냐, 넓은 집으로 이사가면 안되냐는  아이의 말에.




기회가 된다면 그리고 낯선 곳에서 생활할 용기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외지로 나가고 싶다. 거실에서 조금이라도 뛰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눈초리를 치켜뜨고 주의를 주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맘껏 뛰어놀게 하고 싶다. 작지만 마당이 있어서 꽃과 나무를 가꾸고 개를 키우며 살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그런 내게 있어 지금의 아파트는 그야말로 머리에 꽃을 꽂은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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