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우울 - 김영찬 비평집
김영찬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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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언어전달’을 합니다. 몇 개의 단어로 된 짧은 문장을 아이들에게 말하면 아이는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전달하고 그걸 엄마는 수첩에 적어 다시 유치원으로 보내 확인을 받는 건데요.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작은 아이는 그게 잘 안되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문장이 아닌 다른 말을 하거나 문장의 일부만 전달하곤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전 도대체 제일 처음, 선생님께선 어떤 말을 전달하신건가? 너무 궁금해서 조급증이 납니다.(어떨 땐 궁금증을 못 참고 유치원에 전화하기도 해요)




이번에 <비평의 우울>이란 책을 읽을 때도 그랬습니다. 책은 문학평론가인 저자가 2000년대 한국 소설에 대해 ‘문학의 안팎을 둘러보고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자 그간 썼던 글들을 모아서 출간한 책인데요. 이렇게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만나면 제가 알지 못했던 좋은 책을 소개받는 기분이 들어 궁금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어떤 한 작품과 제가 일 대 일,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다른 이를 거쳐서, 그의 생각과 가치판단에 의해 분석되고 평가된 글을 보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데요. <비평의 우울>은 후자의 경우였습니다.




저자는 2000년대 한국소설에서 ‘근대문학 형성기를 거쳐 해방 이후 지속되어온 문학사의 한 단계가 끝났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을 시작으로 현재의 한국문학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풀어놓습니다. 문학작품이 작가의 철학과 내면의 의식, 아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성찰, 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이나 가치관, 문학 제도 같은 것들이 당시의 사회 문제와 경제적인 변화와 맞물리면서 기존에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문학성이 결여되어 있다며 폄하하고 외면했던 대중문학과 장르문학적 상상력이 일부 젊은 작가들에 의해 ‘본격문학’에 도입되었는데요. 그것이 우리 문학의 큰 흐름으로 드러나면서 침체되어있던 문학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또 IMF라는 경제적인 큰 위기는 우리 삶을 갑작스런 변화구도로 몰아갔는데요. 그런 일련의 변화가 우리 문학에 녹아들면서 허무하고 우울한, 몽상적인 성향의 작품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책에는 김훈을 비롯해 박민규, 천명관, 정미경, 김연수, 김소진 등 여러 작가의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는데요. 제가 읽은 책이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서 저자의 분석과 논조에 몰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저 같은 일반 독자가 아닌 전문 비평가 혹은 관련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어선지 ‘루카치’ ‘가라티니 고진’ 같은 인물은 물론 관련 전문 용어에 대한 설명이 없는데다 본문에 소개된 소설의 목록을 정리해놓은 색인이 없었습니다. 평론가인 저자에게는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이 우울했듯이 전 일반 독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구성과 편집에 우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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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의 인생 여행
대니 월러스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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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암만 생각해도 전 참 둔한 것 같습니다. 어떤 주어진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민감하게 느끼는 감정을 전 무심히 지나칠 때가 종종 있는데요. 우선 패션 감각이 무딘 칼날 같습니다. 어떤 스타일의 옷이나 머리모양이 유행하든지 상관없이 나만 편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들... 나이도 그래요. 서른 살이나 마흔 살을 앞둔 이들이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걸 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게 있어 나이는 해가 바뀔 때마다 으레 하나씩 불어나는 숫자일 뿐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는 없거든요. (물론,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제 나이가 몇 살인가...는 신경쓰이긴 해요) 그래서 제목으로 특별한 나이를 전면에 내세운 책을 봐도 무심하게 지나쳤는데요. 그런 가운데 간혹 눈길을 끄는 책이 있습니다. 얼마전 <마흔 살의 책읽기>가 그랬고 <서른 살의 인생여행>도 호기심을 자극하더군요.




책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서른 살을 앞두고 있는 저자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어른이 되는 날이 임박했다는 걸 느낍니다. 맛있지만 건강엔 글쎄올시다인 음식들이 냉장고에서 사라지고 유기농에 공정무역제품이 자리잡고 간편한 맥주 대신 백포도주를 마시기 시작하는데요. 그럼에도 저자는 자신이 어른이 아니라 어린애라고 인식합니다. 그러다 초대를 받고 방문한 친구 집에서 놀라운 제안을 받는데요. 바로 대부모가 되어달라는 겁니다. 저자는 순간 큰 충격에 휩싸입니다. ‘대부모 ㅡ> 책임 ㅡ> 어른’ 이런 공식이 순식간에 그의 머리를 훑고 지나갑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저자에게 그의 어머니가 보낸 커다란 상자가 배달되는데요. 그 속엔 옛날 물건들이 가득했습니다. 추억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편지며, 비디오, 사진들...그리고 검정 수첩. 저자는 수첩을 보는 순간 알아챕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놓은 수첩을 넘기면서 저자는 생각합니다.




와, 정말 백만 년 만에 생각 난 이름이었다. 이 친구들은 모두 어디 있을까? 지금쯤 뭐가 되어 있을까? 모두들 행복할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들도 서른을 앞두고 있다. 그들은 서른이 되는 것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그들도 나와 같은 기분일까? 그들도...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을까? ― 62쪽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저자는 주소록에 적힌 열 두 명의 친구들을 만나야겠다고 마음 먹습니다. 그리곤 바로 전화를 걸기 시작합니다. 알파벳 A부터.




어릴 적 친구들을, 그것도 낡은 수첩 속의 오래전 전화번호만으로 만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미국이나 일본, 독일에 있는 친구도 있었는데요. 놀랍게도 너무나 먼 거리여서 저라면 만나기를 포기해버렸을 경우도 저자는 주저하지 않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시간이나 비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두요. 목적은 오직 하나. 보고 싶은 친구를 향해, 가자!!




나의 친구 찾기는 모두들 어딘가로 떠나고 모두들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이 사회에서, 인터넷이 단 1초 만에 무수한 사이버 친구들을 만들어 주는 이 세상에서 진짜 친구들이 우정을 다시 이어 갈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 418쪽




책을 읽으며 문득 어릴 적 친구들이 생각났습니다. 책에 나오는 영국의 친구 찾기 웹사이트 ‘프랜즈 리유나이티드’처럼 아이러브스쿨이란 동창 찾기 사이트에 가입해서 한창 신나게 들락거리던 때가 있었어요. 저자처럼 프랑스와 일본, 캐나다, 스위스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추억을 되새겨보라’며 어릴 적 즐겨먹던 불량과자들을 한 상자씩 보내기도 했는데요. 그것도 잠깐 한때일 뿐,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뭔지 모르게 어색하고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책 읽는 내내 저자가 참 대단하고 또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자가 서른 살을 앞두고 옛 친구들을 찾아나서는 여행을 떠났듯이 저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저자처럼.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건데요. 저자인 대니 월러스는 바로 짐 캐리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예스 맨]의 원작자였어요. 게다가 그가 6개월간 열심히 “예스!”를 외친 끝에 지금의 아내인 리지와 결혼하게 됐다니.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예스 프로젝트’에 이어 ‘친구 찾기 프로젝트’까지 성공적으로 해낸 저자의 용기와 과감한 행동력. 닮아보고 싶어요.




친구는 시간의 이정표다. 그리고 우리가 맺는 우정도 시간의 이정표다. ㅡ 4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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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피넛 1
애덤 로스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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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이 뜨겁습니다. 신문도 텔레비전도 사람들의 대화도 온통 한 가지 뿐이지요. 신비주의로 일관하던 두 유명 연예인의 비밀결혼과 이혼. 그 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또 한 명의 연인. 연속극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비련의 주인공들이 현실에 나타난 셈인데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소식이 터져 나오는 걸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아름다웠을 그들의 결혼은 왜 지켜지지 못했을까?”




‘결혼은 진정 무덤으로 향하는 길인가?’ ‘한 사람만을 믿고 신뢰하며 사랑하겠노라는 맹세는 정녕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가?’ 이 명제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했던 책이 있습니다. ‘데이비드 페핀이 처음 아내 살해를 꿈꾸었을 때’로 시작하는 소설 <미스터 피넛>입니다.




여기 세 명의 남자가 있습니다. 컴퓨터 게임 설계자이자 사장인 데이비드 페핀, 형사 헤스트롤, 전직 의사였던 형사 셰퍼드. 그들에겐 커다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아내의 죽음을 꿈꾼다는 것. 아니, 아내가 죽길 바란다고? 아내를 사랑하지 않나?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모두 아내를 사랑합니다. 결혼생활도 만족합니다. 그런데도 아내가 죽길 바란다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들은 그렇습니다. 일상 속에서 아내를 죽이고 살해하고 싶은 충동이 불쑥 불쑥 치밀어 갖가지 끔찍한 상상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 직접 아내에게 위해를 가하질 않습니다. 그저 어쩌다 우연히 아내가 불행한 사고를 당해 죽길 바랍니다.




그런 어느 날 결혼 13년 차인 데이비드의 아내 앨리스가 갑자기 목숨을 잃습니다. 한때 체중이 130킬로그램이나 됐지만 힘겨운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날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미모를 되찾은 앨리스. 그런 그녀가 땅콩 알레르기로 인해 죽고 맙니다. 그녀의 남편인 데이비드는 아내를 살해한 용의자로 지목받아 조사를 받는데요. 그때 데이비드를 심문한 형사가 바로 침대만 누워 있는 아내 때문에 쌓인 분노가 폭발 직전에 이른 헤스트롤과 예전에 아내를 죽였지만 무죄 선고를 받은 전직 외과의사 출산의 형사 셰퍼드입니다. 




아내를 죽인 용의자 데이비드와 아내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극에 달한 헤스틀롤, 아내를 죽인 전력을 가진 셰퍼드. 이 세 남자가 앨리스의 죽음으로 인해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데요. 그 만남으로 인해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앨리스의 죽음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있을까요?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죽음을 꿈꾸는 남자의 이야기가 초반엔 미스터리적인 요소로 다가왔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신혼의 단꿈에서 깨어나 결혼생활의 무력함과 매너리즘에 빠진 중년 부부에게 닥친 위기와 갈등,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을 이야기합니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는 한때 연인이었던 여인 이영애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예전에 영화를 볼 때는 그 대사가 사랑이 식어버린 연인에게 건네는 아쉬움, 질책의 의미라고 생각했는데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다른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이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변하지...? 어떻게 변할까요... 반쯤 벗겨진 껍질 속의 땅콩에 그려진 해골 모습마냥 왠지 섬뜩해지는데요. ‘미스터 피넛’이란 제목에 담겨진 의미와 함께 결혼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책 <미스터 피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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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재테크 - 100만원 들고 도전하는
양찬일 지음 / 팜파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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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재테크는 관심 밖이었다. 소비를 줄이고 절약, 저축해서 재산을 불려간다는 공식이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 것 같다. 분명 뭔가 좋은 방법이 있을텐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경제개념이 부족한 듯해서 관련서적을 찾아 읽기도 했지만 책에서 읽었던 대목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전 빌딩부자들의 성공담과 투자 노하우를 담은 책을 읽었다. 월세 수입으로 자그마치 수천, 수억을 벌어들이는 빌딩부자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더 이상 이대로 머물러선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홀벌이 월급만으로는 한 달 생활도 빠듯하지만 뭔가 특단의 조처가 절실했다. 그때 내 눈에 번쩍 띈 책이 있으니 바로 <똑똑한 재테크>다.




천 만 원이든 백 만 원이든 종잣돈이 있어야 재테크를 하지! 하던 차였기에 ‘100만원 들고 도전하는’이란 부제의 <똑똑한 재테크>는 어떤 재테크 비법이 수록되어 있을지 궁금했다. 책은 크게 ‘20대 돈 관리에 눈을 떠라!’ ‘20대, 월급 관리는 똑 소리 나게!’ ‘20대가 은행을 버리면 안 되는 이유!’ ‘20대를 위한 주자 첫 단추, 펀드’ ‘20대를 위한 주식 투자 상식’ ‘20대가 알아야 할 21세기형 투자법’ 이렇게 여섯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고 재테크를 시작할 때 꼭 알아둬야 할 사항들을 60가지 소개해놓았다.




제일 먼저 소개된 ‘돈이 있으면 더 행복해질까’를 보면서 우리 인간이 돈에 느끼는 상반된 감정과 이중적인 반응에 대해 알게 됐고 여자들이 결혼할 상대를 찾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외모도, 유머감각도 아니라 바로 ‘돈’이란 걸 뉴스기사를 실감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왜 돈을 쓰는가?’에 소개된 네 가지 소비 유형을 보면서 나는 어느 유형에 속하는지, 소비의 주체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었고 과다지출이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본문에 ‘계획적 소비로 이끄는 지출 노하우’를 짚어주는데 지름신의 총애를 받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외에도 언제부턴가 쓰지 않는 가계부의 중요성과 어떻게 작성하면 되는지(돈을 부르는 베스트 가계부 작성법), 현대인의 필요악 신용카드를 지혜롭게 사용하는 방법(똑똑한 신용카드 활용 7계명), 암만 봐도 모르는 각종 연금에 대한 설명(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연금 삼총사 해부하기) 등 일상 속에서 자주 접하는 금융지식과 노하우를 설명해놓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항목은 은행의 예금상품에 관한 부분이었다. 간혹 은행으로부터 ‘특판 예금’이라며 가입을 권유하는 전화나 문자를 받을 때마다 여유가 없다며 거절했는데, 여유자금은 이미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야 하는 건데 그야말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묻지 마. 다쳐!” 어느 드라마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대사는 나와 남편과의 대화에 종종 등장한다. “자기 주식 요즘 어때? 좀 벌었나?” “묻지 마라” “왜?” “다친다!” “이번 달 카드 결재금이 왜 이렇게 많은데?” “묻지 마. 다쳐” 어이가 없어선지 농담으로 던지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언제든 한 번 따지고 볼 일이다. 현재의 소비 패턴을 비롯해서 향후 노후를 대비한 재테크 전략.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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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독자 보통의 독자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인용 옮김 / 함께읽는책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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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이 첨엔 골짜기인 줄 알았어요. 밝은 별이 빛나는 밤의 정경을 그린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제가 골짜기라고 여겼던 건 바로 책 무더기였습니다. 차곡차곡 쌓인 책이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걸 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어머나, 세상에! 그리고 제 시선이 향한 곳은 그 책 무더기 사이에 놓인 작은 책상이었습니다. 노란빛 스탠드가 밝게 켜진 책상, 거기로 다가오는 한 여인의 그림자. 왠지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학창시절 겁도 없이 덤벼들었다가 난해함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포기하고 말았던 버지니아 울프, 이번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은 여지없이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책의 서두에 ‘보통의 독자’란 ‘특별한 문학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 독자’이고 격식을 차리지 않고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듯‘ 썼다는 문구에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책은 특별한 문학 훈련을 받지 않은 평범한 제가 읽기에 무난한 그런 글이 아니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제인 오스틴, 다니엘 디포, 몽테뉴, 조지 엘리엇, 조지프 콘래드를 비롯한 작가를 비롯해서 브론테 자매의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셰익스피어와 러시아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겉으로 드러난 형식만 보자면 <보통의 독자>는 여느 수필이나 문학 비평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문제는 내용의 깊이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문학작품을 읽을 때 글 속에 녹아있는 주제와 더불어 저자의 삶, 행간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데요. 그녀의 글은 각각의  작가의 삶과 당시의 시대상에 더 비중을 두었으며 하나의 장면, 배경 같은 것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풀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심 있는 작가이거나 읽었던 작품의 경우에는 그녀의 글이 난해할지라도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작가이거나 읽지 않은 작품에 대한 글을 읽을 때는 마치 몇 겹의 미로 속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내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나...절망적인 기분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책을 읽다가 덮고 읽다가 한숨 쉬고...이게 뭐가 보통이란 말이얏! 외치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예전에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읽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정치인이면서 한 정당의 대표인 그의 청춘시절엔 어떤 책이 있었을까...궁금해서 읽었다가 ‘이해하기 어려움’에 난감했던 적이 있는데, <보통의 독자>에 비하면 그나마 나았던 것 같은데요. 그건 아마 유시민의 ‘청춘’과 나의 ‘청춘’이 달랐듯이 <보통의 독서>도 마찬가지인 건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의 의미와 기준이 다른 거지요. 버지니아 울프가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당시 최고의 지성인으로 통하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엄청난 책 무더기 속에서, 수준 높은 독서와 깊이 있는 사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그녀는 작가의 길을 걷게 됐고 창작의 고뇌와 고통을 겪으며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창안해 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여겨집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하는 보통의 수준이 되지 못하기에 <보통의 독자>는 험난하고 힘겨운 책읽기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소득 없는 책읽기도 아니었습니다. 언제가 되더라도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만났을 때 그녀의 문학과 삶을 이해하는 밑바탕이 되어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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