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의 인생 여행
대니 월러스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암만 생각해도 전 참 둔한 것 같습니다. 어떤 주어진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민감하게 느끼는 감정을 전 무심히 지나칠 때가 종종 있는데요. 우선 패션 감각이 무딘 칼날 같습니다. 어떤 스타일의 옷이나 머리모양이 유행하든지 상관없이 나만 편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들... 나이도 그래요. 서른 살이나 마흔 살을 앞둔 이들이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걸 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게 있어 나이는 해가 바뀔 때마다 으레 하나씩 불어나는 숫자일 뿐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는 없거든요. (물론,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제 나이가 몇 살인가...는 신경쓰이긴 해요) 그래서 제목으로 특별한 나이를 전면에 내세운 책을 봐도 무심하게 지나쳤는데요. 그런 가운데 간혹 눈길을 끄는 책이 있습니다. 얼마전 <마흔 살의 책읽기>가 그랬고 <서른 살의 인생여행>도 호기심을 자극하더군요.




책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서른 살을 앞두고 있는 저자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어른이 되는 날이 임박했다는 걸 느낍니다. 맛있지만 건강엔 글쎄올시다인 음식들이 냉장고에서 사라지고 유기농에 공정무역제품이 자리잡고 간편한 맥주 대신 백포도주를 마시기 시작하는데요. 그럼에도 저자는 자신이 어른이 아니라 어린애라고 인식합니다. 그러다 초대를 받고 방문한 친구 집에서 놀라운 제안을 받는데요. 바로 대부모가 되어달라는 겁니다. 저자는 순간 큰 충격에 휩싸입니다. ‘대부모 ㅡ> 책임 ㅡ> 어른’ 이런 공식이 순식간에 그의 머리를 훑고 지나갑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저자에게 그의 어머니가 보낸 커다란 상자가 배달되는데요. 그 속엔 옛날 물건들이 가득했습니다. 추억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편지며, 비디오, 사진들...그리고 검정 수첩. 저자는 수첩을 보는 순간 알아챕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놓은 수첩을 넘기면서 저자는 생각합니다.




와, 정말 백만 년 만에 생각 난 이름이었다. 이 친구들은 모두 어디 있을까? 지금쯤 뭐가 되어 있을까? 모두들 행복할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들도 서른을 앞두고 있다. 그들은 서른이 되는 것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그들도 나와 같은 기분일까? 그들도...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을까? ― 62쪽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저자는 주소록에 적힌 열 두 명의 친구들을 만나야겠다고 마음 먹습니다. 그리곤 바로 전화를 걸기 시작합니다. 알파벳 A부터.




어릴 적 친구들을, 그것도 낡은 수첩 속의 오래전 전화번호만으로 만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미국이나 일본, 독일에 있는 친구도 있었는데요. 놀랍게도 너무나 먼 거리여서 저라면 만나기를 포기해버렸을 경우도 저자는 주저하지 않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시간이나 비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두요. 목적은 오직 하나. 보고 싶은 친구를 향해, 가자!!




나의 친구 찾기는 모두들 어딘가로 떠나고 모두들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이 사회에서, 인터넷이 단 1초 만에 무수한 사이버 친구들을 만들어 주는 이 세상에서 진짜 친구들이 우정을 다시 이어 갈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 418쪽




책을 읽으며 문득 어릴 적 친구들이 생각났습니다. 책에 나오는 영국의 친구 찾기 웹사이트 ‘프랜즈 리유나이티드’처럼 아이러브스쿨이란 동창 찾기 사이트에 가입해서 한창 신나게 들락거리던 때가 있었어요. 저자처럼 프랑스와 일본, 캐나다, 스위스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추억을 되새겨보라’며 어릴 적 즐겨먹던 불량과자들을 한 상자씩 보내기도 했는데요. 그것도 잠깐 한때일 뿐,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뭔지 모르게 어색하고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책 읽는 내내 저자가 참 대단하고 또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자가 서른 살을 앞두고 옛 친구들을 찾아나서는 여행을 떠났듯이 저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저자처럼.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건데요. 저자인 대니 월러스는 바로 짐 캐리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예스 맨]의 원작자였어요. 게다가 그가 6개월간 열심히 “예스!”를 외친 끝에 지금의 아내인 리지와 결혼하게 됐다니.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예스 프로젝트’에 이어 ‘친구 찾기 프로젝트’까지 성공적으로 해낸 저자의 용기와 과감한 행동력. 닮아보고 싶어요.




친구는 시간의 이정표다. 그리고 우리가 맺는 우정도 시간의 이정표다. ㅡ 4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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