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독자 보통의 독자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인용 옮김 / 함께읽는책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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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이 첨엔 골짜기인 줄 알았어요. 밝은 별이 빛나는 밤의 정경을 그린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제가 골짜기라고 여겼던 건 바로 책 무더기였습니다. 차곡차곡 쌓인 책이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걸 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어머나, 세상에! 그리고 제 시선이 향한 곳은 그 책 무더기 사이에 놓인 작은 책상이었습니다. 노란빛 스탠드가 밝게 켜진 책상, 거기로 다가오는 한 여인의 그림자. 왠지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학창시절 겁도 없이 덤벼들었다가 난해함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포기하고 말았던 버지니아 울프, 이번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은 여지없이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책의 서두에 ‘보통의 독자’란 ‘특별한 문학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 독자’이고 격식을 차리지 않고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듯‘ 썼다는 문구에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책은 특별한 문학 훈련을 받지 않은 평범한 제가 읽기에 무난한 그런 글이 아니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제인 오스틴, 다니엘 디포, 몽테뉴, 조지 엘리엇, 조지프 콘래드를 비롯한 작가를 비롯해서 브론테 자매의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셰익스피어와 러시아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겉으로 드러난 형식만 보자면 <보통의 독자>는 여느 수필이나 문학 비평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문제는 내용의 깊이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문학작품을 읽을 때 글 속에 녹아있는 주제와 더불어 저자의 삶, 행간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데요. 그녀의 글은 각각의  작가의 삶과 당시의 시대상에 더 비중을 두었으며 하나의 장면, 배경 같은 것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풀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심 있는 작가이거나 읽었던 작품의 경우에는 그녀의 글이 난해할지라도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작가이거나 읽지 않은 작품에 대한 글을 읽을 때는 마치 몇 겹의 미로 속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내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나...절망적인 기분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책을 읽다가 덮고 읽다가 한숨 쉬고...이게 뭐가 보통이란 말이얏! 외치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예전에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읽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정치인이면서 한 정당의 대표인 그의 청춘시절엔 어떤 책이 있었을까...궁금해서 읽었다가 ‘이해하기 어려움’에 난감했던 적이 있는데, <보통의 독자>에 비하면 그나마 나았던 것 같은데요. 그건 아마 유시민의 ‘청춘’과 나의 ‘청춘’이 달랐듯이 <보통의 독서>도 마찬가지인 건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의 의미와 기준이 다른 거지요. 버지니아 울프가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당시 최고의 지성인으로 통하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엄청난 책 무더기 속에서, 수준 높은 독서와 깊이 있는 사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그녀는 작가의 길을 걷게 됐고 창작의 고뇌와 고통을 겪으며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창안해 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여겨집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하는 보통의 수준이 되지 못하기에 <보통의 독자>는 험난하고 힘겨운 책읽기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소득 없는 책읽기도 아니었습니다. 언제가 되더라도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만났을 때 그녀의 문학과 삶을 이해하는 밑바탕이 되어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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