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 조선의 책과 지식은 조선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을까?
강명관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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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인 것 같다. 교과서로 알고 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조선의 모습을 만났다. 장터 투전판의 노름꾼에서부터 뒷골목의 폭력조직, 도둑, 기생, 특히 관료로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과거시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오늘날 수능시험장이 최첨단 기기를 동원한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갖가지 대책을 세우는 것처럼 그 옛날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명예나 권력과는 거리가 먼 민초들, 주류에서 벗어난 비주류들의 삶의 공간인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조선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것이었다.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고 ‘야사’로 지나치고 말았을 이야기지만 정말 흥미로웠다. 나로 하여금 새로운 조선의 모습을 만날 수 있게 한 책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시작으로 저자 강명관의 책을 기회가 닿는대로 읽었다.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를 읽으면서 ‘조선’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맞추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이번에 만난 책이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내게 있어 ‘조선’이란 이름의 퍼즐을 성공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핵심적인 조각이 아닐까 싶다. 다름 아닌 ‘책’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저자는 서두에 이렇게 말한다. ‘만약 인류의 역사가 진보를 향한 변화라면, 그 변화의 이면에 아주 복잡한 요인이 있다면, 책 역시 반드시 거기에 끼일 것이다.’ 즉, 인류의 역사는 책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인류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방향을 결정짓는 요인이기에 ‘책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이 책은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라는 제목이 곧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대변해준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책의 역사를 다루기 이전에 저자는 고려시대의 출판, 인쇄는 어떠했는지 알려준다. 당시 고려는 출판을 전담했던 관청에서 서적을 출간했는데 ‘내서성’에서 ‘비서성’ ‘비서감’ ‘전교서’ 등 관청의 명칭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책의 인쇄와 보급을 맡았던 ‘서적포’, 왕과 신하들이 학문을 강론하는 장소였던 ‘서적소’를 비롯해 주로 어떤 책을 만들었는지, 고려의 국가도서관과 거기에 구비된 장서는 무엇이었는지 살펴본다. 그런 다음 구텐베르크보다 88년 앞섰다는 조선의 금속활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세계 최초’를 강조하지 않는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일부 지배층에서 독점하던 지식이 대중화 되어 서구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에 비해 조선의 금속활자는 국가가 인쇄, 출판에 관한 모든 것을 독점하면서 발전할 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고 꼬집는다.

 

1446년, 조선은 획기적인 대변혁이 일어난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것이다. 문자를 통해 백성들을 가르치려는 의도로 한글이 창제되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글로 쓴 책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한글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한글로 쓴 책은 임진왜란 이전에는 없었고 그 이전에는 오로지 번역의 형태로 존재했다고 한다. 왜냐면 조선 역시 고려와 마찬가지로 책의 인쇄, 출판이 국가가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한 지배층이 자신들의 체제 유지에 이로운 책만을 찍어냈다. 백성들을 위해 쓴 <삼강행실도>조차 한자로 되어 있어 이해를 돕는 그림을 덧붙였다 하더라도 길거리 아이들과 여염 부녀자들까지 쉽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이후 저자는 책의 출판과 인쇄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책이 어떻게 쓰이고 인쇄출판이 어디서 이루어졌는지, 어떻게 읽고 유통되었는지, 책값은 얼마였는지, 책의 제작에 필요한 종이는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등 조선시대의 책과 관련된 다양한 궁금증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는데 얼마전 읽었던 책을 통해 알게 된 ‘책쾌’였다. 서적매매의 중개인으로 ‘책쾌’가 맡은 역할이 컸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조선,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세 나라 중에서 조선만 서점이 없었다는 것은 정말 충격이었다.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서점이 등장했다고 짐작할 뿐.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산소가 혈관을 타고 온 몸을 골고루 순환해야 건강하듯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경험과 지혜, 지식을 글로 남기고 그 지식을 한데 모은 책이 나라 곳곳에, 백성 모두에게 고루 주어져야 하는데 조선은 그렇지 못했다. 지금까지 조선시대의 역사를 대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갑갑했는데 그게 어쩌면 당시 지식의 보급이 원활하지 못했기에 일어났을 거라 생각하니 실로 안타깝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제작한 나라’면 뭐하는가.

 

책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이자 문화의 역사다. 책의 역사를 따라가면 인간이 쌓아올린 문화의 역사를 볼 수 있다. -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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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2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2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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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歷史), 지난 과거의 중요한 사실을 기록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역사 때문에 새해 벽두부터 나라 안이 들썩였다. 지난해 친일파를 애국지사로 기록하고 일제 식민시대를 미화하며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 방식에서도 문제점을 보이는 등 왜곡된 역사를 서술한 교학사 역사 교과서에 대해 논란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다 일부 고등학교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면서 해당학교의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여러 시민단체에서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그 결과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던 학교에서 채택을 포기하면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률은 0%대에 그쳤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역사관이 어떠한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지만 정부에서 교과서를 직접 제작하는 ‘국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또 한번의 논란이 예견되고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 연산군.

 

이런 차에 보게 된 책이 <역사 e 2>이다. 이 책은 EBS 역사채널e에서 제작된 <역사 e>를 모아서 책으로 엮은 것인데, 한국사의 주요한 사건과 그 이면에 감춰진 기록과 인물들을 찾아내 영상과 함께 새롭게 조명해놓은 프로그램이다. 한 회당 방송시간은 약 5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 속에 담아낸 내용은 실로 크다.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고리타분한 역사, 그마저도 박물관을 찾아야 만날 수 있었던 역사의 흔적과 단면들을 세련된 영상과 간략한 설명을 통해 보다 가깝고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 ‘세상에 버릴 사람, 없다’, 2부 ‘사라진 것들, 되살리다’, 3부 ‘시대의 맥박, 살아 있다’. 여기에는 각각 일곱 개, 모두 21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실제 방송 대본과 몇 장의 사진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방송은 여기가 끝이었으나 책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각각의 주제마다 한정된 시간, 짧은 문장으로 풀어내지 못한 것들을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 부분이 ‘핵심’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제일 먼저 소개된 ‘책의 신선, 책쾌’는 서점이 거의 없었던 조선시대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책을 유통시킨 서적중개상 ‘책쾌’에 관한 이야긴데, 책쾌가 처음 등장한 시기부터 책쾌로 인해 도서 대여점이 등장하고 여성들의 독서클럽이 생기기도 했다는 것, ‘조신선’이라 불리던 조생이 책쾌 중에서 특별했다는 것은 상세설명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하나의 주제가 끝날 때마다 참고자료를 소개해놓아서 관심 있는 부분을 더 찾아볼 수 있도록 배려해놓은 부분도 돋보였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늘 강조했던 것은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것, 흐름을 파악하라는 거였다. 하지만 <역사 e 2>는 달랐다. 울창한 숲이 아니라 그 속의 나무 한 그루, 가지 하나까지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의 숨겨진 뒷이야기, 누군가 일부러 들추지 않으면 사라지고 잊혀지고 말았을 야사(野史)를 소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역사에 흥미와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것은 책의 후반에 가서야 빛을 발한다. 초반에 새롭고 신선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묵직해진다. 도쿄 전범 재판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일들, 명문가의 자제로 독립운동의 자금, 에너지를 도맡았지만 그것을 알리지 않고 파락호라는 오명을 써야했던 김용환, 24살 꽃다운 나이에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던 윤봉길 의사....등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될 심오하고 원대한 의미를 가슴 깊이 심어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단재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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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MINI+ 전집 세트 - 전6권 셜록 홈즈 MINI + 전집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꿈꾸는 세발자전거 옮김, 시드니 패짓 외 그림 / 미다스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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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였던 것 같다. 말로만 듣던 <셜록>을 처음 봤다. <셜록 홈즈>시리즈는 이미 초등학생 때 모조리 섭렵해버려서인지 이후로는 그다지 흥분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큰아이를 위해 장만했던 <셜록 홈즈>를 다시 읽어보기도 했지만 예전만 못했다. 해서 사람들이 너도나도 “셜록” “셜록”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왠 뒷북?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러다 늦은 밤, 우연히 보게 된 <셜록>. 아, 이건 정말이지 대~박! <셜록>은 셜록 홈즈를 21세기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영국드라마인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셜록 홈즈와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셜록 홈즈’였다. 분명 유전자는 같지만 완전히 다른 환경과 베네딕트 컴버배치라는 배우를 만나면서 셜록 특유의 독특하면서도 괴팍한, 천재적인 면이 더욱 돋보였다. 한마디로 ‘깔맞춤’한 듯한 느낌? 그래선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도 마치 처음 만나는 것마냥 신선하게 다가왔다. 발음에서 미국식 영어와는 사뭇 다른 영국식 영어와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대사를 이해하고 따라가기가 처음엔 낯설기도 했지만 <셜록>시즌1과 시즌2를 보면서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스릴과 흥분이 스멀스멀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리고 시즌3가 언제쯤 나올까. 이제나저제나 기다릴 때 만나게 된 책, 그것이 바로 <셜록 홈즈 MINI +>이다.

 

<셜록 홈즈 MINI +>의 첫인상은 ‘MINI’, 작다는 거다. 성인치고는 손이 작은 내가 한 손으로 쥐어도 될만큼 작고 앙증맞다. 이래서 제목이 ‘MINI’인가? 그럼 ‘+’ 요건 또 뭔가 했다. 그런데 의문은 바로 풀렸다. Mini(내 손에 작은 책으로), Memory(영원히 기억될), Masterpiece(불후의 명작을 읽으며)의 첫 글자를 따서 ‘M’, 여기에 학습적인 요소가 더했기에 ‘+’를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의 의문이 풀리자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셜록 홈즈에 대체 어떤 학습적인 요소를 더했다는 거지? 이건 책장을 넘기면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본문을 읽다보면 중간중간에 ‘붉은색의 굵은 고딕체’로 된 단어를 볼 수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수능의 국어에서 자주 출제되는 단어라고 한다. 수능국어 빈출 단어라고 하니까 왠지 어려울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셜록 홈즈 MINI +>의 ‘주홍색 연구’를 기존에 출간된 H출판사의 <주홍색 연구>와 비교해보니 H출판사에서는 ‘나는 봄베이 부두에 내리자마자 내가 배속된 부대가 이미 적지 깊숙이 들어가 있다는 을 알았다.’라는 대목이 <셜록 홈즈 MINI +>에서는 ‘나는 봄베이에 도착하자마자 제5연대가 산지 통로를 이용해 이미 적진 깊숙이 전진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로 표기되어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구어체를 문어체로 번역했다는 것 외에는 큰 차이점이 없었다.

 

구어체를 문어체로.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사소한 것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흔히 영유아기의 아이들을 기르는 부모가 범하기 쉬운 실수 중에 하나가 바로 아이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라고 한다. 금쪽 같은 아이를 위해서라면 아이가 혀짧은 소리로 “까까”라고 하는 모습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이쁘더라도 그대로 “까까줄까?”라고 할 것이 아니라 “간식 먹고 싶어? 과자 줄까?”라고 해야 한단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고급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조금씩 이끌어주는 것, 좀 더 성장한 아이와는 일상 속에서 대화할 때도 가끔은 주어, 목적어, 보어, 서술어를 넣은 ‘완전한 문장’을 아이가 구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라고 논술강좌 선생님께서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생활 속에서 구술, 논술을 연습하고 훈련하라는 건데 <셜록 홈즈 MINI +> 시리즈가 좋은 교재가 될 듯하다. 전제, 유용, 정황, 근거....등의 단어(때로 한자까지 더해진)들을 흥미진진한 셜록 홈즈 이야기로 만나면서 익숙해지면 이후 다른 문장과 다른 주제를 담은 글 속을 만나더라도 이미 숙지하고 있는 단어가 있기에 해당 내용을 유추하고 추론해낼 수 있지 않을까.

 

<셜록 홈즈 MINI +전집>은 모두 여섯 권이다. 예리한 관찰력을 지닌 천재탐정 셜록 홈와 그의 조력자인 왓슨이 처음 만게 되는 <주홍색 연구>를 시작으로 홈즈와 왓슨의 환상적인 콤비가 돋보이는 <바스커빌 가의 개>, <공포의 계곡>, <네 사람의 서명>과 같은 장편과 ‘코난 도일 선정 베스트 단편 12작품’이 수록된 <베스트 컬렉션 12>, 네 개의 장편을 원문으로 접할 수 있는 <The Best Novels Collections>도 곁들여져 있다. 크기가 작아서 소지하기에도 간편하다. 가방에 두세 권을 넣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다만 중년의 내게는 본문의 글자가 작아서 안경을 끼고 봐야 하지만 그거야 나이가 들어서인데 어쩌겠는가.

 

“엄마, 셜록 옛날에 다 읽었다 안했어?”

“어, 다 읽었지”

“근데 왜 또 읽어?”

“어? 궁금하니까. 읽어보고 싶으니까.”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읽을 때는 무언가 계기가 필요하다. 뒤이어 벌어질 사건과 전개상황을 알기에 시시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단서나 실마리, 복선을 접하지 않을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기다리고 기다려서 드디어 만나게 되는 <셜록 시즌3>와 함께 조만간 출간될 <셜록 홈즈 Y 베스트 컬렉션>. 정말 기대된다.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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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주의 인물
수잔 최 지음, 박현주 옮김 / 예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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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Lee)는 헨들리가 폭탄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그를 얼마나 싫어했는지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날것의, 한 번도 파헤쳐보지 않은 생각의 광맥이 폭발로, 순간 훤히 드러나버렸다. - 11쪽.

 

책은 시작부터 초 강경수로 나왔다. 폭탄이 터졌고. 폭발로 인해 누군가(헨들리)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리(Lee)는 헨들리를 싫어한다. 아니, 미워한다.

 

에이, 뭐야. 답이 나왔네. 리가 범인이네!

딩동댕~!하면 좋겠지만 그러면 이야기가 안된다.

아~니. 그럼 뭐야? 누구냐고.

바로 그 ‘뭐’이자 ‘누구’인지를 찾아내기 위한 책이다. <요주의인물>은.

 

소설의 주인공은 리. 육십 대 후반의 수학자이자 대학교수다. 냉소적이고 사교성이 없는 백발의 교수는 대체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법. 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검은 잉크로 채운 몽블랑 만년필을 손에 쥐고 기다렸다. 학생들이 교수실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그래서 자신에게 상담을 요청하기를. 언제나 교수실 문을 살짝 열어두고서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학생이 리의 방을 찾는 일은 없었다. 학생들은 리를 외면했다. 옆방의 헨들리는 달랐다. 젊음과 빛나는 재능을 겸비한 교수가 머무는 공간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헨들리와 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간혹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은 벽 너머의 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면서 리는 헨들리를 미워하게 됐다.

 

그런 어느 날, 헨들리에게 소포가 하나 배달된다. 두꺼운 마분지로 만든 작은 상자 에는 개봉하면 터지도록 설계된 폭탄이 들어있었다. 연구실에서 혼자서 조용히 상자를 열어보던 헨들리는 엄청난 폭발에 말려들었고 옆방의 리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폭발로 아수라장이 된 가운데 누군가 처음으로 리의 연구실로 들어왔다. 폭발물 처리반이었다.

 

작은 도시의 대학에서 벌어진 폭발 사건은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고 학교 역시 충격으로 어우선했다. 그리고 사건 이틀 후 리에게 발신인이 분명하지 않은 편지가 도착한다. 리를 ‘자네’라 칭하면서 ‘오랫동안 자네를 인정하고 존경해왔다’는 ‘옛날 동료이자 친구’의 편지에 리는 혼란에 빠지고. 어느새 자신이 사건의 ‘요주의인물’이 되어 버린 것을 알게 되는데....

 

누가 폭탄을 보냈는가. 범인의 목적은 무엇인가. 소설은 이 두 가지를 추적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리는 ‘옛날 동료이자 친구’라는 범인을 찾기 위해 지난 과거, 오래전의 친구 게이더와 그의 아내였지만 리와 사랑에 빠져 두 번째 아내가 된 아일린을 비롯한 과거 속의 인물과 일들을 돌아보게 된다. 기회의 땅 미국에서 이민자임을 거부하고 미국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쳤던 리. 그런 그에게는 가족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났음에도 미국이란 나라는 자신을 여전히 미국인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않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한다.

 

소설은 갑작스런 폭발로 아수라장이 된 현실과 리의 과거가 서로 엇갈리고 겹치듯이 진행되는데 템포가 무척 느리다. 폭발 사건의 범인을 추척해 가는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있긴 하나 전체적인 작품에서 볼 때 그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지루할 만큼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다 보면 어느새 다음 굴곡에 다다라 있었다. 미국이란 사회에 스며들고자 했지만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외면당한 이의 좌절과 처절한 회한, 회오와 같은 심리를 저자는 마치 미세한 결을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만큼 철저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책의 저자인 수잔 최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한국계 소설가라는 것과 이전에 출간된 작품이 국내에 번역되기도 한 미국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이것뿐이었다면 난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거다. 읽을 책이 얼마나 많은데, 내 나이에 몇인데, 섣부른 모험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표지를 보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무성한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들이 줄지어 선 거리의 벤치에 지팡이를 짚고 앉은, 검은 안경 외에 누군지조차 알아볼 수 없는 사람. 갑자기 그가 품고 있는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한없이 소슬한 거리에 외로이 앉은 그의 옆에 앉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졌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결코 쉽지 않은 책이었다. 하지만 ‘참을성 있는 독자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주는 작품’이라는 번역자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며칠 전에 봤던 인터넷 기사에 따르면 소설을 읽으면 뇌의 특정 부위에 변화가 나타난다고 한다. 뇌세포의 변화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마치 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데 이런 현상은 책을 읽고 나서도 며칠동안 지속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내내, 책장을 덮고 나서도,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나는 왠지 삭막하고 스산한 벌판에 외로이 서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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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가 아이의 미래를 바꾼다 - 부모만 모르고 있는 아이의 스포츠 잠재력을 찾아라
21세기교육연구회 지음 / 테이크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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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마다 저희 집에서는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8시 큰아이의 검도수련 때문에 30분전부터 일어나라, 더 잘래, 10분만, 5분만...이러고 있으면 급기야 남편의 불호령이 떨어지는데요. 큰아이는 그제서야 뭉그적대며 일어나서는 엉터리 양치에 눈곱만 간신히 떼고는 투털대며 현관문을 나섭니다. 주말 아침에 늦잠자고 싶은 마음, 저야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운동이라고 해봐야 매일 등하교 하는 30~40분이 유일하기에 주말에 하는 검도 두 시간만은 빼먹지 말았으면 하는 거지요. 그래서 아이의 컨디션이 아주 나쁘지만 않다면 시험 때도 여지없이 깨워서 보내는데요.

 

 

작은애는 좀 다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까다롭고 엄격한 선생님을 만나서인지 학교에 흥미를 붙이지 못했는데요. 주말 아침의 방과후 수업인 생활체육은 정말 좋아라합니다. 평소엔 학교가기 싫어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다가도 금요일 밤에 잠들 땐 "엄마, 내일 생활체육이지?" 꼭꼭 확인할 정도니 상당한 발전을 했지요. 지금은 생활체육에 방과후 축구까지 하니까 운동을 통해 학교에 흥미를 붙인 경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두 녀석 모두 제 속으로 낳은 게 분명한데 어쩌면 이다지도 다른지...

 

 

6년 터울의 성향이 정반대인 아들 둘을 키우다보니 자연히 궁금한 것이 많아지더군요. 기질과 성향에 서로 다르니 각자의 취향이나 식성도 차이점을 보이더라구요. 그에 맞춰 저의 양육방식이나 교육방법도 당연히 달라야 되고. 어느날엔가 문득 그렇다면 스포츠는 어떨까? 의문이 생기더라구요. 느긋한 곰 큰애와 날래고 잽싼 천방지축 강아지 작은애에게 맞는 스포츠는 뭘까?

 

 

아이에게 맞는 스포츠 종목은 성향에 따라 선택해야 한다. 성향에 맞는다는 것은 아이가 쉽게 흥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흥미를 느끼면 스스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그 종목과 성향이 맞지 않는 아이에 비해 시너지 효과가 크다.(▪▪▪) 종목을 선택할 때는 성향을, 진로를 결정할 때는 재능을 고려하면 된다. - 63~64쪽.

 

 

'부모만 모르고 있는 아이의 스포츠 잠재력을 찾아라'는 부제를 단 <스포츠가 아이의 미래를 바꾼다>는 아이들에게 왜 스포츠 교육을 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은 먼저 '운동을 하면 공부할 시간이 없다', '운동은 공부 못하는 머리 나쁜 아이가 한다'는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수학을 못해서 고민이라는 부모에게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는 대뜸 "아이가 운동을 싫어하죠? 체육을 못하죠?"하고 답변을 하는데요. 마치 동문서답 같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지만 바로 여기에 우리 몸무게의 2.5%밖에 안 되는 뇌의 숨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뇌와 운동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더군요.

 

 

생각하고 공부하는 뇌가 어떻게 만들어질까? 아이의 집중력과 이해력, 분석력을 높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부모들의 고민이 아닐까 하는데요. 집중력과 이해력, 분석력 같은 것은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시냅스, 뉴런이라는 단어로 배웠던 것처럼 신경세포들이 체계적 구조적으로 잘 연결이 되야 가능한데요. 이것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냐? 그건 아니구요. 인위적인 훈련을 통해서도 가능하고 합니다. 어떻게? 규칙적이고 꾸준한 움직임, 신체활동이 필요한데요. 이것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운동'이라는 겁니다.

 

 

이후 책은 운동을 통해 명문대에 진학하거나 취미로 시작한 운동으로 세계에서 이름난 선수로 이름을 날리는 경우, 신체적인 약점을 고치려다 시작한 운동으로 운명이 달라진 프로 선수 등의 사례를 통해 운동, 스포츠를 통해 아이의 적성과 창의력이 얼마나 향상되고 어떻게 발휘되는지 전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스포츠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고 각광 받는 종목인 축구, 야구, 골프, 수영, 스케이트를 선정해서 각각의 스포츠가 어떤 아이에게 맞는지를 비롯해서 운동을 시작하는 시기와 어디서 배울 수 있는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해당 스포츠를 할 때 필요한 비용이나 경비는 어느 정도인지 세세하게 짚어줍니다.

 

 

축구는 단체 운동이기 때문에 예의범절과 사회 규칙을 배우는 데 좋다. 아이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시작하지만 반대로 아이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축구를 선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인내력과 끈기가 부족한 아이, 밖에서 뛰어노는 것보다는 집에서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 힘과 에너지가 넘쳐 과한 행동을 보이는 아이, 또래들과 어울리는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 등 요즘 아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 행동 개선에 많은 도움을 준다. - 101쪽.

 

 

저자는 말합니다. 코흘리개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장장 12년간 학교에서 체육수업을 받지만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할 줄 아는 스포츠가 하나라도 있느냐고. (음악, 미술을 포함한) 체육시간을 국영수 과목의 보충하는 시간으로 보내지 않았냐고. 순간 정곡을 콕 찔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스포츠는 운동선수를 기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 전문가들이 왜 하나같이 운동, 운동 강조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아이의 좋은 성적을 위해서, 그리고 아이의 숨겨진 재능을 찾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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