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위한 아티스트 웨이 - 예술적 감성을 가진 아이 키우기
줄리아 카메론 지음, 이선경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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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와 초2. 두 녀석은 형제인데도 서로 너무나 다릅니다. 생김새(체격이 크고 둥근 큰아이, 가늘고 긴 둘째)가 다르고 성격(내성적, 외향적)이 다르며 식성(육식, 가리지 않음)도 다릅니다. 두 녀석이 어쩌면 저렇게 다를까 신기할 때도 있지만 반면에 비슷한 점도 있어요. 둘 다 로봇에 빠져 살고 즐겨 읽는 책이 같다는 것. 최숙희의 <열두 띠 동물 까꿍놀이>와 하야시 아키코의 그림책들을 마르고 닳도록 읽었고 온갖 차 사진을 모아놓은 책은 표지가 테이프로 도배가 될 정도로 봤는데요. 이렇게 좋아해서 여러 번 읽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읽고 나서 저를 곤란하게 만드는 책도 있습니다.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란 책인데요. 팬티만 입은 두 남매가 붓으로 자신의 몸과 집안 곳곳에 물감을 칠하고 튀기면서 상상속에서 정글의 숲과 동물도 만나고 바다를 헤엄치는 내용인데요. 이 책만 보고 나면 꼭 아이들이 자기도 물감놀이 하고 싶다고 떼를 쓰는 거예요. 간단한 놀이가 아이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쑥쑥 키운다는 걸 저야 왜 모르겠습니까만, 뒷정리를 감당하는 게 벅차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네다섯 살 쯤 되는 아이가 색색깔의 물감을 칠한 손바닥으로 눈을 가린 <부모를 위한 아티스트 웨이> 표지사진을 보니 문득 아이들의 어릴적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의 나는 물감으로 칠갑한 손을 장난스레 덥썩 잡아줬던가? 아니면 지저분하다고 진저리를 치면서 욕실로 끌고 갔던가...?

 

장난이 가득한 아이의 모습과 ‘예술적 감성을 가진 아이 키우기’란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아티스트 웨이>는 아이의 창의성을 키워주기 위해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총 12장(章)에 걸쳐 하나하나 짚어주는데요. 가장 먼저 아티스트 웨이의 기본 개념에 대해 알려줍니다. 모닝 페이지(부모가 매일 아침 혼자 조용히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는 일기를 쓰는 것), 창조여행(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와 아이가 함께 장소와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작은 여행을 떠나는 것), 일간 하이라이트(부모와 아이가 매일밤 자기 전에 하루 일과 중 가장 좋았던 순간을 이야기하는 것) 이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일은 위대한 모험과도 같다. 어린 아이를 돌보는 그 몇 년간은,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사랑과 성장에 대해 눈을 뜨게 하는, 인생에서 가장 고무적인 시기일 것이다. 이때를 잘 이용해 부모 본인과 아이의 창의성 훈련에 집중하면, 충분히 서로 사랑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 - 18쪽.

 

책에는 아이의 창의성과 예술적 감성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요인으로 12가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안정감 기르기’인데요. 부모가 된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지만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까 부모가 먼저 안정감을 찾아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이도 자연스레 안전함을 느끼고 창조성이 살아난다고 하네요. 뿐만 아니라 아이는 주변 세상과의 연결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에 산이나 공원을 산책하고 애완동물을 기르면서 생명과 계절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연결성 기르기’, 아이가 그림이나 음악 연주, 이야기하기, 글짓기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지해주는 ‘의식의 흐름 기르기’, 아이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립심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해줘야 한다는 ‘독립심 기르기’ 등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저자가 직접 경험했거나 주변 사람의 실제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어서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언제나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때론 작은 일에도 감격에 겨웠고 목청이 다 보일만큼 크게 웃음을 짓곤 했지만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고 분노했으며 아이 앞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아이의 타고난 성향과 재능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또래 아이들과의 경쟁을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잘못된 건 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핑계 아닌 핑계를 하면서.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잊고 있던 것, 나중으로 미뤄뒀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창의성과 예술적 감성을 차치하고 나는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언제든 자신을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거울 같은 사람이었을까. 만약 아이들에게 “나는 너에게 좋은 엄마였니?”라고 물어본다면 아이는 뭐라고 대답할까....

 

창의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예술의 세계를 보여주면, 단순한 즐거움뿐 아니라 과거 세대와 연결되는 공감대도 생가기 마련이다. 우리의 열정과 역사를 자녀와 공유하면, 아이들은 자기들도 그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소중한 사실을 몸소 배운다. 도한 열정과 관심사를 인정하면, 아이들의 작은 꿈에 날개가 생긴다. -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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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초등국어질문사전 101가지 초등질문사전 3
박현숙 외 지음, 한은옥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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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지요? 2013년에 초등 교육과정이 대폭 개편되었습니다. <듣기.말하기.쓰기>와 <읽기>로 되었던 국어교과가 <국어>와 <국어활동>으로, 수학은 ‘스토리텔링’이 강화가 되었으며 <바른생활><슬기로운 생활><즐거운 생활>은 통합되어서 <봄><여름><나><가족>(1,2학년군의 경우)... 등으로 교과서가 구분되었습니다. 실생활과 접목시켜서 지식전달보다 활동위주의 교육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요.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다릅니다. 한마디로 너~무 어렵습니다. 특히 국어교과가 많이 까다로워졌어요.(학교 선생님들께서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이미 출간된 그림책이나 동화의 일부 혹은 전부를 그대로 수록해서 아동의 발달에 맞게 활용하는 점은 좋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개개인의 능력이나 이해정도가 천차만별인 점을 놓고 볼 때 현재의 국어교과는 불친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낱말, 활동으로 채워진 교과서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오죽했으면 엄마들 사이에서 개편된 국어교과를 잘 따라가려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겠습니까.

 

<101가지 초등국어 질문사전>의 출간이 그래서 반가웠습니다. 사교육이 아닌 엄마표 학습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알고 싶었거든요. 거기다 책의 저자가 모두 현직 초등학교 선생님이시라니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뭔지 알면 제 아이를 가르치는데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책의 구성은 예전 국어교과의 편성과 비슷합니다. ‘듣기.말하기’ ‘읽기’ ‘쓰기’ ‘문법’ ‘문학’으로 구분해서 매 부분마다 약 20개씩 선정해서 총 101가지의 질문과 답변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우선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인 만큼 기상천외하고 엉뚱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토론은 말싸움이 아닌가요?’ ‘칭찬에는 무슨 힘이 있어, 기분을 좋게 하나요?’ ‘놀면서 공부할 수는 없나요?’ ‘안중근 의사는 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고요?’ ‘우리 동네 이야기는 왜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 걸까요?’ ‘사과를 방귀라고 부르면 안 될까요?’ ‘시키는 말을 들으면 왜 이렇게 하기 싫을까요?’....등 어떻게 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정말 사소하고 엉뚱한 질문인데요. 이런 것들을 모두 국어교과와 연결해서 설명해줍니다. 토론이 말싸움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토론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짚어주고 안중근 ‘의사’에서는 모르는 낱말이 나올 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도움이 된다면서 국어사전을 찾는 방법을 일러주며 사과를 방귀라고 부르고 싶다는 아이에게는 하나의 물건을 부를 때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에서는 서로 약속’을 한다고 알려주는데요. 매 꼭지의 내용이 2~3쪽 정도의 길이에 활자도 아이가 보기 수월하게 큼직합니다. 또 그림과 사진, 표를 곁들여 놓아서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으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궁금했던 것, 아이들에게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답변도 간혹 눈에 띄었습니다. 별 일 아닌데도 다투면서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다며 화를 내는 큰 아이에게(동생이 제 설명을 못 알아들어요-43쪽)는 무턱대로 화내지 말고 동생의 수준에 맞게 자세하게 얘기해주라고 해야겠다는 것과 갖고 싶고 사고 싶은 장난감이 많은 작은 아이에게(갖고 싶은 물건이 둘일 때 잘 선택하는 방법은?-134쪽)는 저자의 조언대로 ‘비교와 대조’에 대해 설명해주면 되지 않을까요? 아이의 무궁무진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국어학습까지 할 수 있는 방법, 이 책으로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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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엄마의 느림여행 - 아이와 함께 가는 옛건축 기행
최경숙 지음 / 맛있는책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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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축에 관한 책을 연달아 만났다. 주택전문 건축가인 저자가 여러 나라의 유명한 집을 순례하면서 집을 짓는 것, 집이 갖는 의미에 대한 고찰을 담은 <건축가가 사는 집>, 부부 건축가가 집과 건물, 건축에 숨은 이야기를 일상과 잘 버무려 놓은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이번에 <건축가 엄마의 느림여행>까지. 건축가인 저자는 자신의 전문분야인 건축에 대해, 건축이 우리 일상에 지닌 의미는 무엇인지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놓았다.

 

<건축가 엄마의 느림여행>은 ‘아이와 함께 가는 옛 건축 기행’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건축가인 저자가 두 아이와 함께 전국의 옛 건축물을 돌아보면서 엮은 책이다. 그런데 단순한 여행, 답사기나 기행문이 아니다. ‘느림여행’이다. 사전적 의미의 여행(旅行)이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해서 제한된 짧은 시간에 많이 둘러볼수록 알찬 여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왜 ‘느림여행’이라 했을까? 여기에 이 책이 갖는 의미가 숨어있다.

 

책에는 모두 열네 번의 답사기가 수록되어 있다. 한 번의 답사마다 인근의 두 도시에 있는 전통건축을 네다섯 군데 묶어서 둘러보는 형식인데 해당 지역의 지도와 사진, 그림은 물론 관련 역사까지 함께 전해준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답사장소는 ‘담양’과 ‘나주’인데 대학시절 ‘첫 답사지가 바로 담양이었다’며 말문을 연다. 화려하지 않지만 자연과의 조화가 빼어난 ‘담양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 저자는 소쇄원까지 이르는 길에 더욱 공을 들인다. 물오리 떼가 노니는 계곡물과 우거진 대나무 숲, 맑은 계곡물, 천혜의 비경을 정원으로 들인 안목에 감탄을 한다. 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소쇄원도 누군가에게는 시시한 옛날 집에 불과하다는 것에 짙은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나주의 전통마을인 도래마을에서는 옛집의 구조를 요소요소 사진을 곁들어 설명하고 있다. 열 번째 답사지인 청도에서는 조선시대 내시 가문의 종가댁인 김씨고택을 찾는다. 그동안 내시가문에 종가댁이 있다는 걸 몰랐기에 고택의 구조가 일반 사대부기와 다르다는 것도 놀라웠다. 건물과 담으로 둘러싸여 폐쇄적인 안채가 북서쪽을 향해 있다는 대목에서 그들 가문의 애환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답사기나 여행서적은 목적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과 그곳의 역사, 남아있는 유적유물을 설명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하지만 <건축가 엄마의 느림여행>은 다르다. 사전에 정해둔 목적지는 분명 있으나 그곳을 향해 결코 질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목적지까지 이르기까지 최대한 천천히, 느리게 걷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옛 집이 앉은 땅의 모습, 마을 전경, 집 구조를 당시 살았던 이의 생활 속 이야기로 녹여내어 전한다. 아마 저자에게는 옛 건축물을 돌아보는 답사보다 두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과 여정에 더 중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느림여행’이라고 했겠지.

 

사교육과 조기교육으로 점점 자기 사색에서 멀어지는 아이들에게 전통건축 답사는 훌륭한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전통건축에는 항상 자연이 있고 옛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답사는 이 둘을 보러 가는 여정입니다. - 서문 중에서

 

지난 주말 가족과 시민공원을 찾았다. 주한미군이 주둔하던 곳이 부대가 이전하면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는데 바로 그곳에 시민공원이 들어섰다. 얼마전 개장한데다가 주말이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찾았다. 끝없이 밀려든 차량에 주차장은 물론 인근의 임시주차장마저 가득 메워버린 것을 보면서 이 <느림여행>이 떠올랐다. 이곳이 부산의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곳이라 하더라도 꼭 이렇게 유행을 쫓는 것처럼 찾아야 했을까. 바쁜 업무와 일상에 지친 남편과 나,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이가 사색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기에 여유를 두고 조사를 하고 공부를 해서 한가한 날 가족과 찾아서 느긋하게 즐기고 갔으면 좋았을걸... 내내 후회했다. 그나마 작은아이가 답답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신나게 뛰어놀았던 것이 위안이랄까. 나와 남편, 두 아이 모두가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여행을 찾는 것에 <느림여행>이 큰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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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 부부 건축가가 들려주는 집과 도시의 숨겨진 이야기들
임형남.노은주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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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꽃보다 할배>에서 스페인편이 방송됐다. 이전의 유럽과 대만편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스페인편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가우디의 기이할 만큼 아름다운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과 요정의 나라에 온 것 같은 구엘공원,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음악으로 알려진 알함브라 궁전의 정교하고 섬세한 장식과 안뜰, 아찔한 협곡 위에 세워진 마을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그 두 마을을 잇는 누에보 다리로 유명한 론다는 스페인 최고의 절경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어느 한 곳이라도 인상적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궁금했던 건 다름 아닌 이야기였다. 자연과 인간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곳,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어떤 일상과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부부 건축가가 들려주는 집과 도시에 숨겨진 이야기들’이라는 부제가 달린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에서는 집이 단순히 나무나 돌,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딱딱한 건물이 아니라고 한다. 어떤 집이나 건물에는 그 곳만의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라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좋은 건축, 집을 지을 수 있다고 하는데. 무심코 지나친 동네의 여러 건물들, 고단한 일상이 녹아있는 집에 숨어있는 이야기, 왠지 솔깃해진다.

 

 

저자는 사람과 집, 사람과 건축의 숨은 이야기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일상 속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상황, 즐겨보는 책이나 영화, 음악과 공연에 대해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해서 점점 대화를 확장시켜 그와 관련한 건물, 건축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거나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짚어준다. 이를테면 제일 먼저 소개된 ‘맥거핀 효과’에서는 중요한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닌 속임수나 미끼에 대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빌미로 시작된 미국의 이라크전쟁, 금강산댐에 대응하기 위해 건설한 평화의 댐을 예를 들어 ‘현실에서의 맥거핀은 이렇게 전쟁을 일으키거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까지 악용되곤 하는 것(23쪽)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다음 기존 도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획한 도시 ‘뉴타운’의 허와 실을 꼬집는다.

 

 

‘도서관’편도 인상적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 말문을 꺼낸 저자는 중세 도서관 특유의 깊고 어두운 분위기에 매료되었다면서 도서관에서의 추억을 털어놓는다. 책을 읽는 장소인 도서관에 공부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가 공부는 않고 열람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일탈’을 일삼으며 수많은 책에 빠져들었는데 그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하나의 궁금증이 다른 것으로 이어지는 지식의 미로, 그 강렬한 경험을 가슴에 새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혼란스런 입구를 통해 밝고 높은 실내로 들어온다. 그리고 어두운 서가에서 책을 꺼내들고 밝은 창 쪽으로 가서 책을 읽는다.(189쪽)’

 

 

건축은 ‘집이나 성, 다리 따위의 구조물을 그 목적에 따라 설계하여 짓는 것’이라고 한다. 주어진 한정된 공간을 사람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통해 만난 것은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의 일상 속 이야기였고 우리의 문화이며 더 나아가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사람과 집, 사람과 길, 도시와 건축. 그 속에 깃든 숨은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이런 경험, 흔치 않다. 저자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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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 독서에 관하여 위대한 생각 시리즈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유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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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잡으면 끝을 본다.’ 예전엔 그랬다. 한 번 읽기 시작한 책은 끝까지 읽어야 된다고, 그걸 당연하게 여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읽는 도중에 덮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처음 기대에 못 미치거나 비슷한 내용의 글이 반복되는 자기계발서, 아무리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을 때인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후자의 경우였다. 모두 11권인 책은 1권에서부터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깊은 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가 두서없이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 헤매고 다니는 것처럼 그것을 지켜보는 책 밖의 나도 기억의 미로에 던져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읽다가 덮고, 읽다가 덮고...를 몇 번 반복하다가 그만 밀쳐두고 말았다. 언젠간 읽겠지...하면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름이 표지인 <독서에 관하여>가 출간되었을 때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완독하지 못한 씁쓸함. 결코 유쾌하지 않은 경험. 내가 이정도 밖에 안 되나 하는 자괴감 같은 것들이 불쑥 고개를 들었지만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프루스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나면 그의 작품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뿔싸! 내가 크게 오해를 했다. 아니, 잘못 알고 접근했다는 게 옳은 표현일 듯하다. <독서에 대하여>는 프루스트의 책읽기에 대한 글이 아니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쓰기 이전에 번역가와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했다고 한다. 특히 존 러스킨에게 매료되어 그의 책을 두 권 번역하고 역자 서문을 남겼는데 ‘독서에 관하여’는 러스킨의 <참깨와 백합>, ‘러스킨에 의한 아미앵의 노트르담’은 <아미앵의 성서>에 덧붙인 글이다. 즉, 프루스트가 러스킨의 글을 번역하고 나서 독자들을 위해 책의 내용이나 저자의 의도 같은 걸 설명한 역자 서문과 유명 화가, 미술에 관한 글을 수록된 책이 바로 <독서에 관하여>이다.

 

문제는 이 글, 역자 서문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서문치고는 글의 분량이 제법 길다. 어린 시절의 책읽기와 일상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으로 시작된 ‘독서에 대하여’는 러스킨의 <참께와 백합>에 수록된 두 개의 강연에 대해 설명한다. 도서관 설립을 지원하기 위해 옛 성현의 경지에 이르는 길은 오직 독서이며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독서를 주제로 한 ‘왕들의 보물’과 여성은 저마다 마음의 화원을 가지고 있다면서 여성의 교육과 의무, 역할에 대한 강연 ‘여왕들의 정원’에서 드러난 러스킨의 생각과 주장을 짚어주면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더해서 전하고 있다. ‘러스킨에 의한 아미앵의 노트르담’은 아미앵의 여행안내서라고 할 수 있는 <아미앵의 성서>에 붙인 서문인데 본문에서 러스킨이 썼던 표현과 여정에 자신의 경험을 더해서 풀어놓았다. 러스킨과 프루스트가 추천하는 여정이란 어떨지...상상해봤지만 아미앵을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쉽지 않았다.

 

이후로는 샤르댕, 렘브란트, 귀스타브 모로, 모네 같은 당시의 유명 화가와 미술작품에 대한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미술평론가로서의 프루스트를 만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나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감흥을 무척 세밀하고 아름답게 표현해 놓아서 때론 그림이 마치 눈앞에 펼쳐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흑백이지만 본문에 수록된 그림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프루스트의 글은 역시 쉽지 않았다. 수식어가 많은 긴 문장에 본문의 문단 나눔도 거의 없다시피 해서 책을 읽다가 한 눈이라도 팔면 다시 되짚어가며 읽어야했다. 본문의 아래에 위치한 각주도 시선을 분산시켜 책의 몰입을 방해했지만 꾹꾹 눌렀다. 러스킨에 매료되어 그의 뒤를 따르듯 했던 프루스트가 자신만의 색깔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프루스트의 문장은 아직 낯설지만 한편으론 기대가 된다. 이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만나게 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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