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엄마의 느림여행 - 아이와 함께 가는 옛건축 기행
최경숙 지음 / 맛있는책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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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축에 관한 책을 연달아 만났다. 주택전문 건축가인 저자가 여러 나라의 유명한 집을 순례하면서 집을 짓는 것, 집이 갖는 의미에 대한 고찰을 담은 <건축가가 사는 집>, 부부 건축가가 집과 건물, 건축에 숨은 이야기를 일상과 잘 버무려 놓은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이번에 <건축가 엄마의 느림여행>까지. 건축가인 저자는 자신의 전문분야인 건축에 대해, 건축이 우리 일상에 지닌 의미는 무엇인지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놓았다.

 

<건축가 엄마의 느림여행>은 ‘아이와 함께 가는 옛 건축 기행’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건축가인 저자가 두 아이와 함께 전국의 옛 건축물을 돌아보면서 엮은 책이다. 그런데 단순한 여행, 답사기나 기행문이 아니다. ‘느림여행’이다. 사전적 의미의 여행(旅行)이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해서 제한된 짧은 시간에 많이 둘러볼수록 알찬 여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왜 ‘느림여행’이라 했을까? 여기에 이 책이 갖는 의미가 숨어있다.

 

책에는 모두 열네 번의 답사기가 수록되어 있다. 한 번의 답사마다 인근의 두 도시에 있는 전통건축을 네다섯 군데 묶어서 둘러보는 형식인데 해당 지역의 지도와 사진, 그림은 물론 관련 역사까지 함께 전해준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답사장소는 ‘담양’과 ‘나주’인데 대학시절 ‘첫 답사지가 바로 담양이었다’며 말문을 연다. 화려하지 않지만 자연과의 조화가 빼어난 ‘담양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 저자는 소쇄원까지 이르는 길에 더욱 공을 들인다. 물오리 떼가 노니는 계곡물과 우거진 대나무 숲, 맑은 계곡물, 천혜의 비경을 정원으로 들인 안목에 감탄을 한다. 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소쇄원도 누군가에게는 시시한 옛날 집에 불과하다는 것에 짙은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나주의 전통마을인 도래마을에서는 옛집의 구조를 요소요소 사진을 곁들어 설명하고 있다. 열 번째 답사지인 청도에서는 조선시대 내시 가문의 종가댁인 김씨고택을 찾는다. 그동안 내시가문에 종가댁이 있다는 걸 몰랐기에 고택의 구조가 일반 사대부기와 다르다는 것도 놀라웠다. 건물과 담으로 둘러싸여 폐쇄적인 안채가 북서쪽을 향해 있다는 대목에서 그들 가문의 애환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답사기나 여행서적은 목적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과 그곳의 역사, 남아있는 유적유물을 설명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하지만 <건축가 엄마의 느림여행>은 다르다. 사전에 정해둔 목적지는 분명 있으나 그곳을 향해 결코 질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목적지까지 이르기까지 최대한 천천히, 느리게 걷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옛 집이 앉은 땅의 모습, 마을 전경, 집 구조를 당시 살았던 이의 생활 속 이야기로 녹여내어 전한다. 아마 저자에게는 옛 건축물을 돌아보는 답사보다 두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과 여정에 더 중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느림여행’이라고 했겠지.

 

사교육과 조기교육으로 점점 자기 사색에서 멀어지는 아이들에게 전통건축 답사는 훌륭한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전통건축에는 항상 자연이 있고 옛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답사는 이 둘을 보러 가는 여정입니다. - 서문 중에서

 

지난 주말 가족과 시민공원을 찾았다. 주한미군이 주둔하던 곳이 부대가 이전하면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는데 바로 그곳에 시민공원이 들어섰다. 얼마전 개장한데다가 주말이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찾았다. 끝없이 밀려든 차량에 주차장은 물론 인근의 임시주차장마저 가득 메워버린 것을 보면서 이 <느림여행>이 떠올랐다. 이곳이 부산의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곳이라 하더라도 꼭 이렇게 유행을 쫓는 것처럼 찾아야 했을까. 바쁜 업무와 일상에 지친 남편과 나,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이가 사색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기에 여유를 두고 조사를 하고 공부를 해서 한가한 날 가족과 찾아서 느긋하게 즐기고 갔으면 좋았을걸... 내내 후회했다. 그나마 작은아이가 답답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신나게 뛰어놀았던 것이 위안이랄까. 나와 남편, 두 아이 모두가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여행을 찾는 것에 <느림여행>이 큰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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