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두고 읽는 니체 곁에 두고 읽는 시리즈 1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정은 옮김 / 홍익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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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 신입생일 때였어요. 음악감상실에서 클래식을 듣다가 전주 부분에서 귀가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귀 기울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의 낮은 음에서 시작해서 서서히 높은 음으로 확장되는 사운드가 마치 짙은 어둠이 가득한 곳에서 서서히 빛이 비치다가 어느새 사방이 밝은 빛으로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랄까요? 사방이 온통 어둠으로 뒤덮인 곳에서 길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일출을 맞이하는 것처럼, 고대의 암흑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어디선가 짠~하고 영웅이 등장하는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르는, 웅장하고 스케일이 큰 그런 음악이었는데요. 처음 듣는 음악이지만 단박에 감동을 받은 그 곡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제 1곡 서주부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만났습니다. 차라투스트라를.

 

그리고 몇 년 후 또 하나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알게 되었습니다.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읽고 그 사상에 끌리고 감동을 받아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작곡하게 되었다는 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그렇게 웅장한 곡을 작곡하는데 영감을 주는 원동력이 되었을까 궁금한 마음에 바로 책을 구입했는데요. 처음 시작할 때의 호기가 무색할 정도로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답니다.

 

<곁에 두고 읽는 니체>를 보는 순간 대책 없는 열정만이 가득하던 20대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읽으려고 구입했지만 어느샌가 기억에서 멀어지고 책장마저 누렇게 변해버린 니체의 책 한 권이.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도 그 언제가 언제일지 알 수 없는 혼란과 모호함으로 기억되는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저자가 사이토 다카시가 아니었다면 <곁에 두고 읽는 니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믿고 보는 사이토 다카시의 책이고,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니체의 말’이라는 부제가, 작은 등불이 어둠을 밝히는 표지 사진이 저를 이 책 <곁에 두고 읽는 니체>의 곁에 다가서게 만들었습니다.

 

‘니체는 내 평생의 친구다.’

<곁에 두고 읽는 니체> 프롤로그의 첫 문장입니다.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도 가벼운 관계가 아니라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찾게 되는 영혼의 벗’이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평소에 항상 곁에 두고 보며 삶의 지표로 삼고 있는 동반자 같은 책‘이라고 털어 놓는데요. 단 몇 개의 문장을 읽으면서 저자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니체는커녕 그의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는데 저자는 철학자 니체를 영혼의 벗이며 동반자처럼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다니. 난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회의가 들기도 했는데요. 저자의 주변에는 아마 저 같은 이들이 많은가 봅니다. 매일 정신없이 살아가다보면 언제든 높은 장벽을 만나게 되고 온갖 어려움에 마주하게 되는데요. 그럴 때마다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허덕이지 말고 니체의 문장, 말을 되새기며 힘을 얻으라고 조언을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경구(警句)나 격언(格言), 금언이나 잠언(箴言) 등을 일컫는 말로써 인생의 깊은 체험과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나타낸 짧은 글을 ‘아포리즘’이라고 하는데요. 니체는 이 ‘아포리즘’과 같은 글, 사상을 많이 남긴 철학자라고 하는군요. 때문에 니체의 말과 글을 자주 접하고 그 중에서 유독 가슴에 와 닿는 문구들을 되새겨두면 공부하다 어려울 때 찾아보는 일종의 ‘참고서’ 같은 역할을 기꺼이 해 줄 거라고 말이지요.

 

책은 크게 다섯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는데요. 저자가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글을 니체의 사상과 더불어 서술해놓았습니다. ‘한 발의 화살이 되어라’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몸의 소리를 들어라’ ‘꿀벌처럼 나누는 삶’ ‘창조적인 삶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큰 주제 아래에 몇 개의 에세이 같은 글,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는데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가장 기본으로 삼고 있는 것은 니체 사상의 엑기스라고 할 수 있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고 여기에 니체의 다양한 책의 글을 곁들여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냥 어렵고 난해하게만 여겼던 니체인데, 이렇게 만나니 내가 왜 어렵게만 여겼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니체의 사상을 쉽고 이해하기 수월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기쁜 날도, 슬픈 날도 있는 것처럼 우리에겐 끊임없이 응원해주는 이가 필요한 것처럼 때론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옳지 않은 행동이라며 따끔하게 일깨워주는 이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도 더 늦기 전에 니체를 만나야겠습니다. 저자처럼 제게도 니체가 영혼의 벗이자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요?

 

 

누구나 자기 미래의 꿈에 계속 또 다른 꿈을 더해나가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현재의 작은 성취에 만족하거나 소소한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다음에 이어질지 모를 장벽을 걱정하며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멈춰서는 안된다. -26쪽.

 

우리는 친구를 얻는 행복을 칭송한다. 사람들은 사진보다 우수한, 혹은 동등한 친구와 가깝게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말에 동의했지만, 만약 그런 친구를 얻을 수 없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 살라고 말했다. - 54쪽.

 

뱀이 허물을 벗지 못하면 끝내 죽고 말듯이 인간도 낡은 사고의 허물에 갇히면 성장은커녕 안으로부터 썩기 시작해서 마침내 죽고 만다. 따라서 인간은 항상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 사고의 신진대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97쪽.

 

한 번도 춤추지 않았던 날은 잃어버린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하나의 큰 웃음도 불러오지 못하는 진리는 모두 가짜라고 불러도 좋다. - 118쪽.

 

나는 단지 피를 쏟아서 쓴 것만 사랑한다. - 191쪽.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방법론을 담은 책은 많지만, 내게 맞는 것을 찾기는 어렵다. 타인의 방식이 내게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내가 던지는 ‘왜?’라는 물음의 내용을 나 스스로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왜 그 일을 하고 싶은가? 왜 그렇게 되려고 하는가? 왜 그 길로 가려고 하는가? 내면으로부터 이런 물음에 분명한 평가 기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왜?’라는 의문부호에 스스로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됨으로써, 이제 그 길을 가는 일만 남게 되는 것이다. - 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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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샐러드 레시피 - 매일매일 테이크아웃 샐러드
린 히로코 지음, 김보화 옮김 / 푸른숲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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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여태까지 중에 제일 더운 거 같애.”

“어? 자기 어제도 똑같이 말했는데. 오늘이 제일 덥다고. 알아?”

“그런가? 아우, 어쨌든 덥다 더워.”

휴일, 점심 먹은 그릇을 씻으면서 남편과 주고받은 말이다. 사실 요즘은 매일매일 똑같은 기사를 만나게 된다. ‘폭염’ ‘곳곳 폭염 기승’ ‘오늘밤도 열대야’ ‘폭염 속 일사, 화재사고 속출’. 하루 최고기온이 사람의 체온에 육박하는 날이 이어지면서 가족들은 점점 입맛을 잃었다. 지금 시기가 방학이란 점이 악조건으로 작용했다. 아이들은 늦게, 때론 점심이 가까운 시각에 일어나면서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럴 때일수록 체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건강을 생각해서 더 제대로 먹어야 한다고 말해도 그저 잔소리로만 여길 뿐. 한마디로 특단의 조치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 됐다. 뭔가 참신한 거 없을까?

<병 샐러드 레시피> 표지에서 투명한 유리병에 작게 썬 야채가 켜켜이 들어있는 모습을 보고 컵밥을 떠올렸다. 평소에 아이스커피를 테이크아웃한 투명한 컵에 밥이랑 반찬 몇 개로 층을 쌓거나 과일 두세 가지를 넣어 아이들이 학원가기 전에 간단하게 먹을 수 있도록 챙겨주곤 했는데 그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샐러드 위주라는 것과 내가 만든 것보다 영양이나 모양에서 더 뛰어나고 더 아기자기하고 예쁘다는 점. 이거라면 아이들이 가뿐하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좋아하는, 잘 먹는 걸 넣어서 만들면 색다른 기분도 느끼고 재밌게 먹을 수 있을거야. 틀림없이.

책은 병 샐러드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밀폐식 뚜껑이 있는, 입구가 넓은 유리병에 손질한 채소와 재료를 층층 쌓아 담는’ 것이 병 샐러드인데 1인분은 대략 240ml 정도. 본문에 소개된 레시피는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1인분을 기준으로 되어 있지만 분량을 2배 정도로 넉넉하게 하면 2~3명도 충분히 먹을 수 있다. 단, 병을 선택할 때 높이가 낮은 병은 드레싱이 위로 올라와서 채소가 물러질 수 있으니 적합하지 않다는 것만 기억하면 될 듯하다.

병 샐러드는 네 번의 과정을 거치면 된다. 병에 드레싱(1인분에 1큰술)을 넣는다. ㅡ> 토마토나 양파처럼 즙이 나오는 재료 혹은 콩이나 아보카도처럼 드레싱이 잘 스며들지 않는 재료를 넣는다. ㅡ> 옥수수나 파프리카처럼 날 것 그대로 드레싱으로도 쓸 수 있는 재료를 넣는다. ㅡ> 양상추 같은 잎채소처럼 아삭아삭한 식감을 살리고 싶거나 드레싱에 절이면 안 되는 재료를 넣는다. 병의 높이보다 수북하게 쌓일 정도로 재료를 담은 다음 손으로 꾹 눌러 공기를 빼가면서 뚜껑을 닫아서 병째로 냉장고에 넣어두면 장기 보관할 수 있다니 자투리 야채가 있을 때 만들어두면 급할 때 요긴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럼 병 샐러드는 어떻게 먹을까? 병째로 들고 포크로 떠서? 아니다. 먹기 직전에 병을 잘 흔들어서 드레싱이 재료에 고루고루 스며들게 한 다음 조금 우묵한 볼이나 접시에 그대로 거꾸로 쏟아놓으면 끝!

간단하면서도 보기 좋고 맛도 좋은 병 샐러드를 만드는데 필요한 드레싱으로 마요네즈 드레싱, 식초와 오일을 넣어 만든 프렌치 비네그레트, 간장 드레싱, 한식 드레싱 이 네 가지를 소개해놓았다. 웬만한 가정에 구비되어 있는 양념이나 채소를 기본으로 한두 가지 재료가 첨가된 샐러드가 대부분이어서 금방 해먹을 수 있는 것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마요네즈 드레싱을 기본으로 한 옥수수 샐러드나 게살과 옥수수 마카로니를 넣어 만든 샐러드는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고 짭조름한 간장 드레싱은 일식에 잘 어울리는 편이지만 코울슬로 샐러드나 팽이버섯과 유부 샐러드는 간단하게 별미로 먹기에 제격인 것 같다. 고추장을 넣어 매콤한 맛의 한식 드레싱으로는 콩나물이나 어린잎채소, 배추, 오이, 미역 등 평소에 반찬으로 자주 먹는 것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매콤달콤한 구운 가지 샐러드’는 지금 당장이라도 해먹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매콤한 맛을 즐기는 우리 부부에게는 술안주로도 딱이다.

뉴욕과 일본을 사로잡은 72가지의 병 샐러드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한식 드레싱은 가짓수가 가장 적은데 아무래도 저자가 일본인이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레시피가 아니다. 재료가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레시피에 얽매이지 말고 마음껏 응용해서 나만의 병 샐러드 레시피를 하나씩 쌓아가는 거. 그게 바로 요리하는 재미가 아닐까. 이번 여름, 내게 신나는 도전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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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인성사전 - 김용택 선생님이 들려주는
김용택 지음, 김세현 그림 / 이마주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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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진흥법이란 걸 아세요? 유치원은 물론이고 초,중,고에 이르기까지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계획하고 실시하도록 하는 법안인데요. 지난달인 7월 2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반세기쯤 살다보니 별의별 희한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인성교육을 일정시간 정해놓는 것도 그렇고 그것을 점수화해서 입시에 반영한다는 것도 그렇고. 한자에 해박하지 않아 여기에 딱 맞는 적확한 표현을 찾을 순 없는 게 아쉬운데요. 이것이 아이들의 인성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과연 지금보다 나아질까요? 오히려 이 어처구니없는 법 때문에 또 하나의 사교육이 생겨나는 건 아닐까요?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압니다. 아랫물이 탁하네, 더럽네 탓하기 이전에 우선 윗물이 맑아야 한다는 거.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님의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어린이 인성사전>인데요. 어린이들이 성장하면서 가슴에 깊이 새겨두어야 할 낱말을 선정한 다음 그 낱말과 어울리는 김용택님을 비롯한 여러 시인들의 시를 함께 수록해놓은 책입니다. ‘나를 사랑합니다’ ‘너를 이해합니다’ ‘함께 라서 행복합니다’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구요. 하나의 주제마다 여러 개의 낱말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긍정, 당당함, 도전, 만족, 부끄러움, 성실, 솔직함, 양심, 여유, 자존, 절제, 책임, 후회, 걱정, 관용, 배려, 우정, 이해, 존경, 친절, 협동, 효도, 감동, 공존, 나눔, 소통, 용서, 인정, 진심, 화해, 희망... 낱말 하나하나마다 지닌 의미가 모두 깊지요?

 

이를테면 제일 먼저 소개된 ‘긍정’을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런 시를 수록해 놓았습니다. ‘달리기를 했다. / 다해 1등, 재석이 2등, 나 3등 / 우리 반은 모두 세 명이다.’ 이어서 김용택님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최선을 다하면, 있는 힘을 다하면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그게 긍정입니다.’라고 말이지요. ‘절제’에 관한 대목도 눈길을 끕니다. ‘누가 내 머리에서/ 컴퓨터 좀 꺼 주세요. / 눈 감아도 / 꿈 속에서도 / 꺼지지 않는 컴퓨터 화면 / 컴퓨터 화면 속 전사들은 계속 싸우고 있어요,’ 컴퓨터 게임에 빠지다보면 잠자리에 들어서도 머릿속에선 게임이 계속되곤 하는데요. 이렇게 하루에도 여러 번 해야 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 사이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무언가에 깊이 빠져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려주고 스스로 절제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어린이와 청소년의 심리이해 감정표현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그때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게 생각납니다. ‘살아가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 여러 감정들이 올라오는데 그때마다 그 감정들에게 이름을 붙이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희.노.애.락. 단순하게 네 가지로 끝낼 게 아니라 더욱 세분화해서 말이지요. ‘기쁘다’는 감정도 그것이 감동적인 기쁨인지, 반가움에서 오는 기쁨인지, 가슴 벅찬 뿌듯함인지 돌아보라는 건데요.

 

 

인성에 관한 낱말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너를 이해’하고 ‘함께’ 하는 즐거움을 알기 위해 언제나 가슴에 지니고 다녀야 할 낱말과 생각들이 책 한권에 가득합니다. 개중에는 어른인 저도 일상에 쫓겨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고 잊고 있던 것들도 있어서 부끄럽기도 했구요. 아이에게 읽혀주려고 마련한 책인데 오히려 제 마음이 따스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성은 누가 가르치거나 교육하는 것보다 아이들 스스로 깨달음에 젖어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해결책이란 걸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생각을 넓히고 표현하는 습관을 기르다 보면 내가 생각하고 쓰는 말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새롭고, 신비롭고, 감동을 주는 나의 말이 다른 사람의 말을 만날 때 우리는 바르고 곧고 크게 자랍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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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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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 일본소설을 즐겨 읽는 내겐 친숙한 이름이다. 하지만 여기엔 엄청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저자 이름에 대한 친숙도에 비해 그의 작품과의 친숙도는 정반대라고나 할까? 집안 책장 어딘가엔 분명 그의 소설들이 자리잡고 있지만 실제로 읽은 작품은 겨우 두 개 정도? 그마저 승률은 1승 1패. 썩 좋지 않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대히트작이라고 손꼽히는 <악인>을 늘 노려만 보고 정작 읽지 않은 내가 그의 작품이 어떠하다고 평가할 순 없는 거 아닌가. 하지만 난 해마다 여름이 다가오면 다짐을 한다. “올해는 꼭 보고야 말리. <악인>을!” 근데 올해야말로 정말 보게 될 것 같다.

자, 이제 <분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방식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치오지 교외의 한 주택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낮 기온이 37도를 넘어서는 몹시도 무더운 날, 유치원 보육교사인 아내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입자에게 변을 당한다. 얼마 후 집으로 들어선 남편 역시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고 만다. 의문스러운 것은 이후 범인의 행각이다. 짧은 시간동안 순식간에 두 사람을 살해한 범인은 사건현장에 머물면서 간단하게 요기를 해결하고 피해자의 자전거를 타고 도주하는 대담성을 보인다. 물론 멀리가지 못해서 경찰의 검문을 받고 달아나는 바람에 범인의 몽타주와 함께 ‘야마가미 가즈야’라는 그의 이름이 밝혀져서 지명수배에 오른다. 그런데 그가 도주한지 1년이 지났지만 어디에서도 그가 목격되었다는 제보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대체 어디에 몸을 숨기고 있는 걸까? 사건당일 그가 피해자의 피를 묻혀 쓴 ‘분노’는 과연 무슨 의미일까?

풀리지 않은 의문만을 남겨놓은 채 소설은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사 개월 전 가출한 딸 아이코가 심신이 망가진 채로 도쿄의 유흥업소에 있다는 소식을 들고 마키 요헤이가 딸을 찾아 데려오면서 마키네 부녀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얼마전 동네에 왔다는 다시로 데쓰야라는 청년이 아이코와 가깝게 지낸다는 거였다. 후지타 유마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가까운 사람 몇 명을 제외하고는 가족에게도 감추고 지낸다. 호스피스 전문 병원에 입원 중인 엄마를 방문하고 돌아가면서 들른 사우나에서 나오토를 만나 관계를 갖는다. 툭하면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문제를 일으키는 엄마 때문에 여고생 고미야마 이즈미는 어쩔 수 없이 야밤도주 해서 오키나와의 외딴섬에서 살게 되는데 전학 간 학교의 동급생 지넨 다쓰야와 인근 섬을 찾았다가 폐가에서 지내는 의문투성이 남자 다나카를 만나게 되는데...

한편, 경찰 수사팀은 사건발생 1년이 지난 시점에 텔레비전 공개수사 프로그램에 ‘하치오지 부부 살인사건’의 범인을 공개수배하기에 이른다. 이전과는 다르게 컴퓨터 크래픽으로 야마가미 가즈야가 변장하거나 여장한 모습을 내보내는데 사진이 공개되자마자 경찰서의 제보전화가 계속해서 울리기 시작한다. 예상을 뛰어넘는 반향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불안한 파장을 불러왔다. 저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수배사진과 비슷한 또래의 젊은 남자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에 이른다.

아이들의 여름방학과 함께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날에 만난 <분노>. 추리소설을 읽을 때면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범인이 누구일까 짐작해가면서 읽었다. 살해동기도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라 자연히 관심은 무엇 하나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은 데쓰야, 나오토, 다나카 이 세 남자의 행적에 집중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치오지 부부를 살해한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알고 싶어서 끝까지 내달렸는데 정작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살인사건이나 범인 검거보다는 우리의 ‘삶’에 있었던 것 같다. 예전보다 편리하지만 그만큼 복잡하고 현란함 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우리가 얼마나 진심을 잃지 않고 진정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지, 오히려 독자들에게 되물어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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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터 10까지 비룡소 아기 그림책 36
척 머피 지음 / 비룡소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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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친구가 놀러오면 얼른 이 책부터 감춰야 해요
신기한 플랩북 보고 아이 친구는 자기 집에 가져가려고 떼쓰고
아이는 안 뺏기려고 울고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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