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요시다 슈이치. 일본소설을 즐겨 읽는 내겐 친숙한 이름이다. 하지만 여기엔 엄청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저자 이름에 대한 친숙도에 비해 그의 작품과의 친숙도는 정반대라고나 할까? 집안 책장 어딘가엔 분명 그의 소설들이 자리잡고 있지만 실제로 읽은 작품은 겨우 두 개 정도? 그마저 승률은 1승 1패. 썩 좋지 않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대히트작이라고 손꼽히는 <악인>을 늘 노려만 보고 정작 읽지 않은 내가 그의 작품이 어떠하다고 평가할 순 없는 거 아닌가. 하지만 난 해마다 여름이 다가오면 다짐을 한다. “올해는 꼭 보고야 말리. <악인>을!” 근데 올해야말로 정말 보게 될 것 같다.

자, 이제 <분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방식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치오지 교외의 한 주택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낮 기온이 37도를 넘어서는 몹시도 무더운 날, 유치원 보육교사인 아내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입자에게 변을 당한다. 얼마 후 집으로 들어선 남편 역시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고 만다. 의문스러운 것은 이후 범인의 행각이다. 짧은 시간동안 순식간에 두 사람을 살해한 범인은 사건현장에 머물면서 간단하게 요기를 해결하고 피해자의 자전거를 타고 도주하는 대담성을 보인다. 물론 멀리가지 못해서 경찰의 검문을 받고 달아나는 바람에 범인의 몽타주와 함께 ‘야마가미 가즈야’라는 그의 이름이 밝혀져서 지명수배에 오른다. 그런데 그가 도주한지 1년이 지났지만 어디에서도 그가 목격되었다는 제보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대체 어디에 몸을 숨기고 있는 걸까? 사건당일 그가 피해자의 피를 묻혀 쓴 ‘분노’는 과연 무슨 의미일까?

풀리지 않은 의문만을 남겨놓은 채 소설은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사 개월 전 가출한 딸 아이코가 심신이 망가진 채로 도쿄의 유흥업소에 있다는 소식을 들고 마키 요헤이가 딸을 찾아 데려오면서 마키네 부녀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얼마전 동네에 왔다는 다시로 데쓰야라는 청년이 아이코와 가깝게 지낸다는 거였다. 후지타 유마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가까운 사람 몇 명을 제외하고는 가족에게도 감추고 지낸다. 호스피스 전문 병원에 입원 중인 엄마를 방문하고 돌아가면서 들른 사우나에서 나오토를 만나 관계를 갖는다. 툭하면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문제를 일으키는 엄마 때문에 여고생 고미야마 이즈미는 어쩔 수 없이 야밤도주 해서 오키나와의 외딴섬에서 살게 되는데 전학 간 학교의 동급생 지넨 다쓰야와 인근 섬을 찾았다가 폐가에서 지내는 의문투성이 남자 다나카를 만나게 되는데...

한편, 경찰 수사팀은 사건발생 1년이 지난 시점에 텔레비전 공개수사 프로그램에 ‘하치오지 부부 살인사건’의 범인을 공개수배하기에 이른다. 이전과는 다르게 컴퓨터 크래픽으로 야마가미 가즈야가 변장하거나 여장한 모습을 내보내는데 사진이 공개되자마자 경찰서의 제보전화가 계속해서 울리기 시작한다. 예상을 뛰어넘는 반향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불안한 파장을 불러왔다. 저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수배사진과 비슷한 또래의 젊은 남자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에 이른다.

아이들의 여름방학과 함께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날에 만난 <분노>. 추리소설을 읽을 때면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범인이 누구일까 짐작해가면서 읽었다. 살해동기도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라 자연히 관심은 무엇 하나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은 데쓰야, 나오토, 다나카 이 세 남자의 행적에 집중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치오지 부부를 살해한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알고 싶어서 끝까지 내달렸는데 정작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살인사건이나 범인 검거보다는 우리의 ‘삶’에 있었던 것 같다. 예전보다 편리하지만 그만큼 복잡하고 현란함 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우리가 얼마나 진심을 잃지 않고 진정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지, 오히려 독자들에게 되물어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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