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불빛의 서점 -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
루이스 버즈비 지음, 정신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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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한 달 용돈을 받던 그 날, 난 서점으로 달렸다. 횡단보도 앞에서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는 잠깐동안에도 길 건너 서점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시간 날 때마다 서점을 들락거리며 눈도장 찍어둔 책. 그 많은 책들 중에서 겨우 한 권 밖에 고를 수 없어 얼마나 고민했던지. 간신히 한 권을 구입하고 나오면서도 품에 안지 못한 책들이 눈에 밟혔다. 집에 가자마자 다음에 구입할 책들을 메모하면서 생각했다. 서점 주인은 얼마나 좋을까. 그 많은 책 맘대로 읽을 수 있고. 진짜 부럽다.



서가 사이로 뒤쪽 책장의 책들이 언뜻 보이는 표지의 <노란 불빛의 서점>을 보고 학창시절 열심히 달려간 서점이 떠올랐다.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노란 불빛의 서점>은 책을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하는 한 남자, 루이스 버즈비가 털어놓은 책과 서점에 대한 고백서이자 회고록이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서점으로 간다’고 말문을 연 저자는 서점예찬론을 펼치기 시작하는데 어떤 면에서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불치병에 걸린 것에서부터 사방에 둘러싸인 책들을 보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지만 서점 여기저기에 널린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을 보면 의기침해진다는 대목은 어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여기있었네 싶다. 하지만 열 다섯 살에 <분노의 포도>를 만난 것을 계기로 6개월만에 존 스타인백의 작품을 모두 읽었다는 대목은 놀랍고 존경스러웠고 그의 친구가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읽고 술에 취해 해롱거렸다는 에피소드에선 쿡, 웃음이 터졌다.



업스타트 크로 서점과 프린터스 서점에서 10년 동안 직원으로 일하고 출판사 외판원으로 7년을 지낸 저자는 책과 서점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책의 부분 명칭이나 양장본과 페이퍼백의 차이, 철필로 글자를 새긴 점토판에서 파피루스 두루마리....같은 책의 발달사를 비롯해 한 권의 책이 출판되어 박스에 담기고 서가로 옮겨지거나 독자에게 판매되지 않은 책이 반품되어 절판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들을 거치는지 알 수 있었다. 또 책 뒷표지에서 볼 수 있는 ISBN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책 한 권의 가격에 어떠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조목조목 얘기하면서 한 권의 책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걸 강조하고 있었다.



처음엔 책을 사랑한 나머지 서점 직원이 된 남자의 추억들이 담겨있지 않을까 했는데 읽다보니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많은, 그것도 처음 알게 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고 때론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된 것도 있었다.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이란 책에서 읽었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가 출간에 얽힌 얘기를 풀어놓은 대목은 왜그리도 반갑던지...이젠 정말 <율리시즈>를 책장에서 해방시켜줘야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됐다.



여고때부터 다니기 시작해서 결혼하고 친정에 들렀을때 아이의 손을 잡고 찾았던 동네서점이 결국 두어달 전에 문을 닫았다.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 블록 모서리에 있던 서점. 환하게 불이 밝혀진 서점 내부에 가득한 책을 들여다보며 왠지 푸근하고 설레기까지 했던 서점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마치 정든 친구가 멀리 떠난 것처럼 안타까웠다. 어쩌면 직접 서점에 나가기보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는 나의 행동도 정든 서점을 하나씩 사라지게 하는 원인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숙명적으로 세상의 모든 서점에 이끌리는 인간이라던 저자가 일요일 오후 아이와 함께 동네서점을 찾았듯이 나도 그렇게 해봐야겠다. 세상의 모든 서점이 아닌 책에 이끌리는 숙명을 따라서 매주 일요일마다 서점에서의 한가로운 시간을 즐겨봐야지...아이와 함께 서로가 읽을 책을 골라주기도 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어진다. 어느새 다가올 일요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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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세계 과학사
쑨자오룬 지음, 심지언 옮김 / 시그마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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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가장 싫어했던 과목 중 하나가 화학이다. 원소기호나 주기율표를 암기하는 건 그래도 나았다. 문제는 바로 분자식. 마치 암호처럼 늘어지고 가지를 친 그것들이 여러개 연결된 것들이 암만 봐도 복잡하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학력고사 선택과목도 당연히 화학을 뺀 생물, 물리를 했고 대학도 생물학과를 지망했다. 지긋지긋한 화학이여 영원히 바이바이~를 외쳤다. 그런데 웬걸? 일반화학을 비롯해 생화학, 유기화학...같은 과목이 매년 전공필수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이미 입학한 마당에 물릴 수도 없어서 골머리를 싸매어가며 공부하고 겨우 학점을 땄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멍청하고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었나 싶다. 과학이 피자 조각처럼 물리, 생물, 화학, 지구과학으로 나뉜 학문도 아닌데 화학을 질색팔색하면서 생물을 전공하겠다고 덤볐다니....바보가 따로 없다. 과학이 얼마나 오묘하고 넓고 깊은 학문인지 깨달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걸 대충 흘려보내고 말았던, 어이없는 행동에 보상심리라도 작용한걸까.  요즘은 기회가 되면 다양한 과학서적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지도로 보는 세계 과학사>을 읽게 된 계기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세부적인 과학기술이나 지식은 차치하고 우선 전체적인 흐름, 윤곽을 파악하고 싶었다.




‘BC 7000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과학의 발전사를 총망라한 과학 일대기’ 표지 제일 위에 작은 글씨로 적힌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과학사를 단순히 처음부터 일렬로 배치하는 형식이 아니다. 세계지도를 이용해서 어느 시기에 어떠한 과학기술이 발달하였고 당시 동서양에선 어떤 과학적 사건들이 있었는지 한 눈에 찾아보고 비교해볼 수 있다. 그것도 각각의 소단원마다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세계지도를 수록되고 있어서 여러모로 참고가 된다.




예를 들어 제1장 ‘과학의 기원’에서 1단원 ‘고대문명의 과학’을 보면 왼쪽아래 BC 7000년경 중국에서 굽거나 손으로 만든 도기가 있었다는 짤막한 글과 함께 세계지도에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청동기 문명이 출현되었으며 메소포타미아에서의 수메르 문명과 설형문자, 최초로 농업이 시작된 나일강 유역,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문명이 탄생했다는 사항들을 표시해놓고 있다. 지도를 통해 전체적으로 굵직굵직한 일들을 알려주고 그다음부터는 보다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 사진과 그림을 곁들여 설명해놓고 있다. 이런 형식으로 ‘중세시대의 과학기술’, ‘근대과학의 서광’ ‘과학혁명’ ‘과학기술의 고속 발전’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오늘날의 눈부신 첨단과학이 있기까지 과학이 어떤 흐름으로 발전해왔는지 느낄 수 있다.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눈에 띄었다. 저자가 중국인이어선지 각종 그림이나 자료, 내용들이 중국의 과학 위주로 서술되었다. 또 책 뒷부분에 본문의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 색인이 없다. 때문에 궁금한 점이 있으면 책을 일일이 앞뒤로 뒤적여야했다. 일반 책보다 큰 판형에 두툼한 책을 이리저리 찾아야하다니...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하지만 가장 큰 흠은 바로 이 책의 장점이자 핵심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세계지도에 수록된 설명글의 글자가 지나치게 작다는 거다. 글자가 본문의 양옆의 배치된 그림이나 사진의 설명글 정도만 되도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지도부분은 양 페이지를 접을 수 있는 형식으로 편집을 수정하면 어떨까 싶다.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우리 ‘한국 과학기술의 요람’인 대덕연구단지를 비롯한 많은 연구기관들에서 일하던 연구원들이 비정규직이란 것 때문에 대거해고를 당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인원이  자그마치 40%에 달한다는 거다. 우리의 과학을 지탱하고 이끌어갈 연구원, 전문인력이 절반가까이 해고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의 과학기술이 뿌리채 흔들릴 수도 있다.




정말 어이가 없다. 기초과학의 하나인 생물을 전공할 거라면서 화학은 공부 안 해도 된다고 여겼던 20여 년 전의 나와 지금의 정부시책이 대체 뭐가 다른가.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은 곧 나라의 발전이요, 힘이다. 과학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원동력이자 튼튼한 발판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을 보니 이러다 머지 않은 미래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날이 닥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참으로 안타깝고 또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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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 A
조나단 트리겔 지음, 이주혜.장인선 옮김 / 이레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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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혼자서 심야영화를 본다고 하면 지인들은 깜짝 놀란다. 무섭지 않느냐고. 그럼 난 무서운 거 없다고. 횡단보도만 하나 건너면 바로 집이라 위험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사실이 그러니까. 하지만 어쩌다 한번씩 털이 삐죽삐죽 서고 소름이 끼칠 만큼 무서울 때가 있다. 늦은 밤 가장 두려운 존재를 만났을 때다. 그건 한 맺힌 귀신도 폭력배나 술 취한 사람도 아니다. 바로 십대 청소년들. 그것도 서너 명이 무리지어 있으면 그 곁으로 발걸음 떼는 것조차 두렵다. 언제부터일까. 한창 감수성 예민하고 활달하며 사랑으로 충만할 시기의 아이들이 사람들에게 두려운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


창밖으로 상체를 드러내고 어딘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 어딜 보고 있는 걸까. <보이A>. 표지부터 왠지 공허한 기운이 감돈다.


‘코끝을 스치는 냄새도 오랜만이었다’로 책은 시작한다. 잭이란 이름이 평범하면서도 근사한 이름이어서 선택했다는 보이A. 드디어 감옥이 아닌 공간에서 태양을 바라보게 됐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도 자랐던 동네도 모두 버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죄를 범했는지 아무도 모르는 낯선 동네에서 잭 버리지가 되어 살아가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말투를 고치고 응원하는 축구팀에 대해 공부하고 과거도 만들어냈다. 더구나 곁에는 오랫동안 자신을 돌봐주고 힘이 되어주던 테리가 있는데도 그는 왠지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무엇 때문일까.


보이A. 그는 어렸을 때 늘 따돌림 당하던 아이였다. 그러다 우연히 보이B를 만나고부터 그의 일상이 달라진다. 친구와 함께 한다는 게 뭔지 몰랐던 A는 B를 만나면서 모처럼 만족스런 날들을 보낸다. 하지만 A는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B는 엄마들이 절대로 같이 어울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인물이라는 걸.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A는 곧 끔찍한 범죄에 휘말리고 만다. 10살의 어린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사법처리를 받게 되는데....


이 책은 1993년 영국 리버풀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한 쇼핑센터에서 두 살 난 아이가 실종되어 대대적인 수색을 벌이지만 결국 주검이 되어 발견됐는데 당시 그 아이를 살해한 범인이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들이었다는 것이다. 전국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이 사건으로 인해 영국은 CCTV 천국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며 그로 인해 사람들이 얼마나 분노로 치를 떨었는지 하는 것이 아니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했다. 그래서 주변 상황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사건의 이면에 숨은 것들을 들춰내고자 했다. 사건의 중요한 핵심은 고스란히 남겨둔 채 오로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는 것, 사회적 이슈로 만들 수 있는 사항들을 부풀려서 과장해서 전달됐을 경우 그로 인해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했던 게 아닐까.


몇 달 전, 소년범을 다룬 책을 읽었다.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지만 미성년자란 이유로 가벼운 처벌에 그치고 마는데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몇 년 후 당시 사건의 범인이었던 소년들이 연이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그를 추적하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처음 책을 읽으면서 가졌던 ‘대체 누가 범인일까’하는 생각들은 책장이 넘어가면서 ‘갱생이란 무엇인가’ ‘한 번 지은 죄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씻을 수 없는가.’란 의문으로 확대되었다.


새로운 곳에서 제 2의 삶을 시작한 보이A는 직장과 동료, 사랑하는 연인이 생긴다. 자신의 과거를 밝힐 수 없다는 죄책감이 여전히 그를 괴롭혔지만 그래도 행복한 날들을 보낸다. 그러다 우연히 한 소녀의 생명을 구하면서 그는 영웅이 된다. 그런데 그 일이 오히려 자신의 목을 죄는 올가미가 될 줄이야....


‘갱생이란 무엇인가’ ‘한 번 지은 죄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씻을 수 없는가.’ 다시 생각해보지만 쉽사리 답을 내릴 수가 없다. 내 주변의 누가 알고 보니 범죄자였다면 그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변함없는 태도로 그를 대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이것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건 수학문제를 푸는 것처럼 정답이 나오는 게 아닐뿐더러 쉬운 일도 아니다. 그저 가장 합리적이고 적절하며 올바른 해답을 기대할 뿐...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키가 어느새 내 어깨를 훌쩍 넘어버렸지만 아직 순수하고 여린 아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나 요령도 조금씩 터득하고 있다. 몇 년 후 아빠만큼 키가 크고 목소리도 굵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때가 되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이 아이를 두려운 눈을 쳐다보는 건 아닐까. 이율배반적인 생각이지만 제발 그렇지 않기를...


소설 <보이A>를 읽을 때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상영소식을 들었는데  지방에선 상영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자신의 죄를 가슴에 담고 잭이 되어 속죄하며 살고자 했던 보이A를 어떻게 영화에 담아냈을까 꼭 보고 싶었는데....너무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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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 집을 나가다 - 가족 밖에서 꿈꾸는 새로운 삶 스물여덟 가지
언니네트워크 엮음 / 에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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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에 하나, 시댁에 하나. 아직 결혼하지 않은 언니와 시누이의 숫자다. 사십대 중반의 친정언니는 눈과 이상이 높아서, 삼십대 후반의 시누이는 결혼에 대해 썩 좋지 않은 느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둘은 다른 이유로 결혼이 늦어지고 있지만 묘하게 공통점을 갖고 있다. 금슬이 그다지 좋지 않은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하지만 언젠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그때 결혼하겠다고 한다. 그때가 대체 언제지?




손에 초록이 묻어나올 것 같은 잔디 위를 언니가 펄~쩍 뛰고 있다. 발랄하고  경쾌함이 물씬 느껴지는 표지의 <언니들, 집을 나가다>에는 스물여덟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호기심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읽어갔다. 그들이 비혼을 선언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고 부모의 도움 없이 어떻게 홀로 서기를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의문, 과연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걸까. 




“그래요, 비혼하세요. 그럼.” 비혼 선고로 시작된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눈물 흘리지 않고 가족과 이별하기’에서는 부모가 이혼을 했거나 계속되는 학대로 인해 상처를 받고 독립을 결심하게 이야기가 실려 있고, 제2부 ‘이토록 다양한, 결혼하지 않고 잘 살기’에는 본격적으로 비혼과 독립에 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어렵사리 독립을 하게 된 사연부터 서로 비슷한 사정과 마음을 가진 이들이 함께 사는 이야기, 결혼 후 자신의 반려자가 겪을 수많은 불이익 때문에 비혼을 결심하게 됐다는 남자의 이야기도 있었다. 마지막 3부 ‘뻔한 질문 따윈 두렵지 않아’에서는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심심찮게 맞딱뜨리게 되는 뻔한 질문들에 대해 비혼자들이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뒀던 대답을 내놓고 있다.




책은 결혼하지 않은 비혼자들의 얘기를 담고 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결혼했지만 시댁과의 문제 때문에 ‘착한 며느리’는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이혼한 사람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얘기를 읽으면서 속이 후련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불편했다. 한 채의 집에 함께 살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선 희망을, 중증장애를 가진 이가 스스로 자신을 책임지기 위해 독립하는 모습은 아픔을 느꼈다.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가족으로 인한 깊은 상처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사연은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생채기를 안겨주고 등을 돌리고 마는 친정언니와 엄마의 모습이 겹쳐져서 마음이 부대꼈다.




올해, 결혼 11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시’자가 붙으면 뭔가 달라도 다르다고 무던할 거라 여겼던 시댁식구와의 트러블, 자신의 엄마에게 무조건적인 희생과 애정을 바라는 남편,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모든 잘못은 내게 있다고 여기는 차가운 시선들을 느낄 때마다 이럴거면 결혼, 왜 했지? 내가 이러려고 결혼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성인이 되어 결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드리워진 탯줄을 끊어내지 못하는 남편과 자신의 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으로 가슴 한 구석엔 멍이 하나씩 늘어가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비혼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다. 다만 자신의 삶을 마주하고 홀로서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자세와 용기를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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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불패 - 이외수의 소생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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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전 일거다. 이외수님의 책을 처음 읽은 게. 요상한 제목의 <하악하악>이란 책을 처음엔 머뭇거리며 읽다가 나중엔 푹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소제이 털썩, 쩐다, 대략난감, 캐안습, 즐! 이었던가? 촌철살인! 그의 짧고 유쾌한 글을 읽으며 시종일관 무릎을 쳤다. 그렇지! 바로 이거야. 새롭게 출간된 <청춘불패>란 책을 보면서 그때의 흥분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이외수의 소생법’이란 부제가 달린 <청춘불패>는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조면 어떠하고 오리면 어떠한가’,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아픔을 느낀다’,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나아가라’, ‘그대가 그대 인생의 주인이다’ 이 4개의 장에는 각각의 주제에 해당하는 4개의 글이 있는데 독특한 건 그 글에 어떠한 대상, ‘부모를 증오하는 그대에게’라든가 ‘열등감에 사로잡힌 그대에게’, ‘장애로 고통받는 그대에게’라는 식으로 지목해 둔 글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술을 좋아하거나 외도를 일삼는 부모와 개떡 같은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한 이들은 가슴속에 부모를 증오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데 저자는 그런 이의 등을 쓸어주며 이런 말을 건넨다. "자네의 마음과 심정, 상처, 다 이해하네. 나라도 그랬을걸. 하지만 자네의 부모님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일로 큰 상처를 받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감싸안고 계실 거라 생각하네. 그러니 이해해주게나. 아무리 나쁜 아버지라도 나쁜 자식이 되기를 원치는 않는다네."




무슨 사용설명서도 아닌데 글마다 읽을 대상을 따로 구분해둘 필요가 있을까 했는데, 읽다보니 나름 의미가 담긴 대목이 아니었나 싶다.




청춘! 이 말이 품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인터넷으로 ‘청춘’을 검색해보니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에 걸치는 나이. 세상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가능성, 끊임없는 도전으로 충만한 시절이 아닌가. 그리고 열정!! 자신이 매료되고 몰두하고 싶은 일이나 연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바치는 모습은 실로 아름답다. 마치 탐스런 꽃망울을 마악 터트린 붉은 장미처럼.(책장 가득한 꽃향기 때문일까)




저자는 이런 청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게 바로 이 <청춘불패>다. 때론 실패하고 자신감이 꺾여 의기소침해 있더라도 금방 훌훌 털어낼 수 있을 거라고 곁에서 용기를 북돋워준다. 괜찮아. 할 수 있어. 건투를 빌어!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이십대 전후한 청춘들을 위한 글인데 왜 불혹을 넘긴 나에게도 이렇게 절실하게 와 닿는걸까. 저자에 비하면 그래도 청춘이어서? 기나긴 인생여정에 나이가 소용없기 때문에?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책을 읽는 동안 난 그렇게 느꼈다. 곁에서 주먹을 불끈 쥐어주고 박수를 치며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이외수를. “할 수 있어! 아줌마~아! 홧티~잉!! ”







그대에게만 은밀하게 힌트를 주겠다. 누구든 머리로 인생을 살아가지 않고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갈 때 절로 정답을 알게 되리니. 그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대가 있으므로 세상이 더욱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그대여, 진심으로 건투를 빈다. -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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