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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불빛의 서점 -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
루이스 버즈비 지음, 정신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한 달 용돈을 받던 그 날, 난 서점으로 달렸다. 횡단보도 앞에서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는 잠깐동안에도 길 건너 서점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시간 날 때마다 서점을 들락거리며 눈도장 찍어둔 책. 그 많은 책들 중에서 겨우 한 권 밖에 고를 수 없어 얼마나 고민했던지. 간신히 한 권을 구입하고 나오면서도 품에 안지 못한 책들이 눈에 밟혔다. 집에 가자마자 다음에 구입할 책들을 메모하면서 생각했다. 서점 주인은 얼마나 좋을까. 그 많은 책 맘대로 읽을 수 있고. 진짜 부럽다.
서가 사이로 뒤쪽 책장의 책들이 언뜻 보이는 표지의 <노란 불빛의 서점>을 보고 학창시절 열심히 달려간 서점이 떠올랐다.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노란 불빛의 서점>은 책을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하는 한 남자, 루이스 버즈비가 털어놓은 책과 서점에 대한 고백서이자 회고록이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서점으로 간다’고 말문을 연 저자는 서점예찬론을 펼치기 시작하는데 어떤 면에서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불치병에 걸린 것에서부터 사방에 둘러싸인 책들을 보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지만 서점 여기저기에 널린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을 보면 의기침해진다는 대목은 어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여기있었네 싶다. 하지만 열 다섯 살에 <분노의 포도>를 만난 것을 계기로 6개월만에 존 스타인백의 작품을 모두 읽었다는 대목은 놀랍고 존경스러웠고 그의 친구가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읽고 술에 취해 해롱거렸다는 에피소드에선 쿡, 웃음이 터졌다.
업스타트 크로 서점과 프린터스 서점에서 10년 동안 직원으로 일하고 출판사 외판원으로 7년을 지낸 저자는 책과 서점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책의 부분 명칭이나 양장본과 페이퍼백의 차이, 철필로 글자를 새긴 점토판에서 파피루스 두루마리....같은 책의 발달사를 비롯해 한 권의 책이 출판되어 박스에 담기고 서가로 옮겨지거나 독자에게 판매되지 않은 책이 반품되어 절판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들을 거치는지 알 수 있었다. 또 책 뒷표지에서 볼 수 있는 ISBN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책 한 권의 가격에 어떠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조목조목 얘기하면서 한 권의 책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걸 강조하고 있었다.
처음엔 책을 사랑한 나머지 서점 직원이 된 남자의 추억들이 담겨있지 않을까 했는데 읽다보니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많은, 그것도 처음 알게 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고 때론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된 것도 있었다.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이란 책에서 읽었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가 출간에 얽힌 얘기를 풀어놓은 대목은 왜그리도 반갑던지...이젠 정말 <율리시즈>를 책장에서 해방시켜줘야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됐다.
여고때부터 다니기 시작해서 결혼하고 친정에 들렀을때 아이의 손을 잡고 찾았던 동네서점이 결국 두어달 전에 문을 닫았다.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 블록 모서리에 있던 서점. 환하게 불이 밝혀진 서점 내부에 가득한 책을 들여다보며 왠지 푸근하고 설레기까지 했던 서점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마치 정든 친구가 멀리 떠난 것처럼 안타까웠다. 어쩌면 직접 서점에 나가기보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는 나의 행동도 정든 서점을 하나씩 사라지게 하는 원인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숙명적으로 세상의 모든 서점에 이끌리는 인간이라던 저자가 일요일 오후 아이와 함께 동네서점을 찾았듯이 나도 그렇게 해봐야겠다. 세상의 모든 서점이 아닌 책에 이끌리는 숙명을 따라서 매주 일요일마다 서점에서의 한가로운 시간을 즐겨봐야지...아이와 함께 서로가 읽을 책을 골라주기도 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어진다. 어느새 다가올 일요일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