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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 집을 나가다 - 가족 밖에서 꿈꾸는 새로운 삶 스물여덟 가지
언니네트워크 엮음 / 에쎄 / 2009년 6월
평점 :
친정에 하나, 시댁에 하나. 아직 결혼하지 않은 언니와 시누이의 숫자다. 사십대 중반의 친정언니는 눈과 이상이 높아서, 삼십대 후반의 시누이는 결혼에 대해 썩 좋지 않은 느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둘은 다른 이유로 결혼이 늦어지고 있지만 묘하게 공통점을 갖고 있다. 금슬이 그다지 좋지 않은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하지만 언젠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그때 결혼하겠다고 한다. 그때가 대체 언제지?
손에 초록이 묻어나올 것 같은 잔디 위를 언니가 펄~쩍 뛰고 있다. 발랄하고 경쾌함이 물씬 느껴지는 표지의 <언니들, 집을 나가다>에는 스물여덟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호기심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읽어갔다. 그들이 비혼을 선언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고 부모의 도움 없이 어떻게 홀로 서기를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의문, 과연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걸까.
“그래요, 비혼하세요. 그럼.” 비혼 선고로 시작된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눈물 흘리지 않고 가족과 이별하기’에서는 부모가 이혼을 했거나 계속되는 학대로 인해 상처를 받고 독립을 결심하게 이야기가 실려 있고, 제2부 ‘이토록 다양한, 결혼하지 않고 잘 살기’에는 본격적으로 비혼과 독립에 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어렵사리 독립을 하게 된 사연부터 서로 비슷한 사정과 마음을 가진 이들이 함께 사는 이야기, 결혼 후 자신의 반려자가 겪을 수많은 불이익 때문에 비혼을 결심하게 됐다는 남자의 이야기도 있었다. 마지막 3부 ‘뻔한 질문 따윈 두렵지 않아’에서는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심심찮게 맞딱뜨리게 되는 뻔한 질문들에 대해 비혼자들이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뒀던 대답을 내놓고 있다.
책은 결혼하지 않은 비혼자들의 얘기를 담고 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결혼했지만 시댁과의 문제 때문에 ‘착한 며느리’는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이혼한 사람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얘기를 읽으면서 속이 후련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불편했다. 한 채의 집에 함께 살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선 희망을, 중증장애를 가진 이가 스스로 자신을 책임지기 위해 독립하는 모습은 아픔을 느꼈다.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가족으로 인한 깊은 상처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사연은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생채기를 안겨주고 등을 돌리고 마는 친정언니와 엄마의 모습이 겹쳐져서 마음이 부대꼈다.
올해, 결혼 11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시’자가 붙으면 뭔가 달라도 다르다고 무던할 거라 여겼던 시댁식구와의 트러블, 자신의 엄마에게 무조건적인 희생과 애정을 바라는 남편,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모든 잘못은 내게 있다고 여기는 차가운 시선들을 느낄 때마다 이럴거면 결혼, 왜 했지? 내가 이러려고 결혼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성인이 되어 결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드리워진 탯줄을 끊어내지 못하는 남편과 자신의 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으로 가슴 한 구석엔 멍이 하나씩 늘어가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비혼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다. 다만 자신의 삶을 마주하고 홀로서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자세와 용기를 닮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