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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책 읽는 가게입니다
아쿠쓰 다카시 지음, 김단비 옮김 / 앨리스 / 2021년 11월
평점 :
읽어야 할 책은 많고, 읽고 싶은 책도 갈수록 쌓인다. 혼자서 재미 삼아 읽는 책이라면 때로 느긋하게 게으름을 피워도 되지만 누군가와 함께 읽는 책이라면 게으름은 일찌감치 멀리 내던져야 한다. 수시로, 틈나는 대로, 책을 읽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면 언제, 어떤 공간, 어느 순간이든 책을 펼쳐 든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쇼핑몰 앞에서 지인을 기다릴 때, 라면이나 계란을 삶기 위해 물이 끓어오르기 전에...
책읽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사실 집이다. 복장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책 읽다 지겨우면 간식을 챙겨먹어도 되고 컴퓨터로 세상을 돌아다닐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점들이 종종 독서의 방해요소가 되기도 한다. 편안함이 지나쳐 잠이 들기도 하며 잠깐 휴식이 장시간 딴짓이 되기가 일쑤다. 해서 난 카페에서의 독서를 좋아하고 즐긴다. 지인과의 약속이 있을땐 한두 시간 먼저 나가서 커피를 주문해서 책을 읽고, 혼자서도 자주 카페를 찾곤 한다. 적당한 조명과 적당히 구석진 최적의 자리에 앉은 날은 몇 시간 동안 몇 잔의 음료를 주문하곤 한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 카페에서의 독서는 예전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어쩌다 찾은 카페 내부에 사람들이 많으면 출입조차 꺼려지니까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책을 읽지만 솔직히 좀 많이, 아쉽다.
<어서오세오, 책 읽는 가게입니다>란 책이 출간되었을 때 신기했다. ‘책 읽는 가게’라면 북카페인가? 아니면 서점과 도서관 그 중간 어디쯤일까? 궁금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르게 주르룩 넘기며 훓어 보니 본문에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이건 뭐지? 싶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북카페나 서점이나 도서관에 대한 것이라면 당연히 사진이 있을 것 같은데, 책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조용히 혼자 책을 읽고 있다. 내게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말이 거창했다. 너무 멋을 부렸다. 나는 그저 독서가 즐겁고, 독서가 좋고, 독서가 취미다.그게 다다. 밥을 먹는 것처럼 해야만 하는 일이다. 깨달음이나 배움, 성장 같은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즐거우면 된다. 독서는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좋다. 왜냐하면 독서는 나에게 꼭 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유쾌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최고의 취미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취미니까 더욱 즐겁게, 더욱 기쁘게, 더욱 알차게 누리고 싶다. - 5~6쪽
<어서오세요., 책 읽는 가게입니다>는 한마디로 책을 읽기 위해 가게에 방문한 사람들이 책을 읽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저자의 경험담과 노력이 녹아있는 책이다.
우선 저자 아쿠쓰 다카시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책만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했다. 일상의 공간인 집은 산만한데다 유혹이 너무나 많았으니까. 해서 북카페를 탐색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책이 있는 것과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조용한 찻집에서도 시도해 보지만 담배가 걸림돌이었고 도서관도 의외로 책 읽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저자는 고심한다. 대체 책을 읽는 이 단순한 행위를 하는 것이 왜 이렇게 힘겨운지.
쾌적한 독서시간을 보장해주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상상은 해도 그 영역에 손을 댈 주자가 없다. 그것이 ‘읽다’가 처한 상황이다. - 94쪽
독서할 곳이 이렇게도 없는 건 ‘회전율’이나 ‘좌석 가동률’이나 ‘객단가’ 같은 계측 가능한 성질뿐 아니라,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내포하는 부정적인 성질 때문이 아닐까 - 115쪽
영화에는 영화관이, 골프에는 골프 연습장과 필드가, 스키에는 스키장이, 요가에는 요가 스튜디오가 있듯이 독서에도 그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책을 실컷 읽을 수 있는 곳을 고심하던 저자는 드디어 도쿄의 낡은 건물 2층에 책 읽는 사람을 위한 공간 ‘책 읽는 가게’를 오픈하게 된다. ‘후즈쿠에’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책 읽는 사람을 위한 장소를 다룬 책이어서 저자가 어떻게 책 읽는 가게를 열게 되었는지, 책 읽는 사람에게 책 읽을 공간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책의 절반가량 꼼꼼하게 풀어놓았다. 이후에는 책 읽는 가게를 이용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내용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1부와 2부 사이에 수록된 [책 읽는 가게의 안내문과 메뉴]가 눈길을 끌었다.
‘책 읽는 가게’이기 때문에 ‘천천히’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지켜야 할 것들이 있었다. 일행과의 대화는 금지되어 있고, 사진 촬영은 셔터음에 주의해야 하며 펜 사용시 딸칵거리거나 펜을 놓거나 열정적으로 쓸 때 소음을 삼가야 하며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도 역시 자제해달라고 한다. 책 읽는 사람이 책 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산만해질 수 있는 것들을 모두 꼼꼼하게 짚어 놓았는데 이 정도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싶다.
존중은 자칫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신경을 쓰는 것과 종이 한 장 차이다. 내 안의 무엇인가를 내놓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희생과 부담이 따를지도 모른다. 공공영역 내에서는 사적인 행동과 제도하에서의 행동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 199쪽
책 읽는 사람을 위한 책 읽는 행위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은 꼭 필요하다. 나의 꿈이 도서관과 북카페가 결합된 공간을 여는 것이어서 가까이에 ‘후즈쿠에’ 같은 곳이 있다면 찾아가보고 싶다. 어떤 일이든 자금 마련이 우선이지만 해당 공간을 직접 경험하면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까. 책 읽는 사람을 위한 공간을 다룬 흥미로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