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로 떠나는 문양여행 - 궁궐 건축에 숨겨진 전통 문양의 미학 인문여행 시리즈 17
이향우 지음 / 인문산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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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엔 공기청정기와 정수기를 점검 나온 직원의 휴대폰을 무심코 보게 됐다. 소박한 꽃모양을 단순하게 규칙적으로 배열해서 이루어진 그것은 문살의 문양이었다. 업무에 방해가 될까봐 평소엔 꼭 필요한 얘기가 아니면 되도록 조용히 있는 편인데 그날은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봤다. “죄송하지만 휴대폰에 있는 문살, 어디서 찍으신 거예요?” 뜬금없는 질문이 귀찮았을텐데 그분은 흔쾌히 알려주었다. “정말 예쁘죠. 진천 대흥사에서 찍은 거예요알고 보니 불교신자인 그분은 어쩌다 여행을 가면 꼭 주변 사찰을 둘러보는데 그때 찍은 거라고.


 

한옥의 굴뚝에 매료된 적이 있다. 큰아이가 어렸을 때 참석한 박물관 수업에서 답사로 우리의 건축양식이 잘 보존된 곳을 몇 군데 둘러 보았는데 그때 눈에 들어온 게 굴뚝의 모습과 굴뚝을 장식한 문양이었다. 음식을 만들고 보온을 위해 불을 피우고 그 연기가 나가는 곳인 굴뚝을 이렇게 아름답게 꾸몄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궁궐로 떠나는 문양여행>이 출간되었을 때 반가웠다. 우리의 문양을 본격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거란 생각에. 무엇이든 알아두면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시대에 따른 유행이나 인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 누구에게나 아름다움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인의 미적 정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격조 있는 검박함에 있다. - 11


 

저자 이향우님은 <문양여행>이 첫만남이다.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저자소개를 유심히 봤는데 우리궁궐지킴이로 활동하면서 우리 궁궐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책을 힐링여행 시리즈로 여러 권 출간했다는 걸 알게 됐다. 궁궐과는 지리적으로 먼 곳에 살아서 궁궐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데 저자를 통해 우리 궁궐의 사소한 것들까지 제대로 알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은 [궁궐 건축에 숨겨진 전통 문양의 미학]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궁궐의 문양과 상징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한국인의 미학과 미의식’ ‘조선 궁궐의 상징과 의미’ ‘궁궐의 서수 조각과 장식’ ‘궁궐 꽃담의 문양와 은유’ ‘색의 언어, 단청’ ‘궁궐 편액의 전통 문양이렇게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동양인의 생활 미술 속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동물로 신성시되어왔던 용은 황제나 왕에 비유되어 왕권을 상징하며, 각기 다른 성격과 능력을 지닌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실재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인간의 끊임없는 상상력을 통해 천태만상의 모습으로 천변만화의 능력을 가진 동물이 동양문화권의 용이다. 따라서 정전 월대의 답도나 정전 내부의 소란반자 등 왕이 위치하는 곳에는 용을 두어 왕권을 상징했다. - 50


 

저자는 본격적으로 문양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전에 궁궐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문양의 종류를 먼저 일러준다. 문양은 크게 실물이나 동물, 자연 형태의 사물을 형상화한 형상 무늬’, 직선이나 곡선의 교차로 이뤄지는 추상적인 기하 무늬’, 장수나 행복 같은 좋은 일을 상징하는 길상문자문으로 나뉘고 각각의 무늬마다 세부적으로 다시 몇 개의 문양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흔히 어처구니로 알려져있는 궁궐 지붕의 추녀마루에 있는 토우는 정식명칭이 잡상이라고 한다. 악귀의 침입을 막기 위함이라는 잡상을 중국 것과 비교할 수 있도록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것이 더 독특해서 좋았다.


 

광화문의 해치상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다. 해치라는 명칭이 어떤 과정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해치의 형상이 중국과 우리가 어떻게 다른지, 해치상의 부분적인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해치상이 원래 있었던 위치가 어디인지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명칭을 해치’ ‘해태모두 사용하고 있어 혼동을 주기 쉽고 내용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해치가 처음 제자리를 잃게 된 시점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청사 건축 공사로 인해 경복궁 담이 헐리고 궁궐터에 길이 뚫리는 등 모든 것이 망가지던 때였다. - 121

 


담장이나 벽면을 무늬로 아름답게 꾸며놓은 담장을 꽃담’ ‘화초담이라고 부른다. 초기엔 아랍에서 수입한 타일을 이용해 담장을 장식하기도 했지만 성리학을 국가 통치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화려함을 멀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흔한 벽돌이나 깨진 기왓장을 이용해 소박하고도 아름답게 치장할 줄 알았던 옛사람들의 감각은 지금 현대인의 시각으로 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만들어 진 지 100년이 넘은 경복궁 자경전 서쪽 담에 펼쳐진 꽃담 문양은 가까이 볼수록 형상을 만든 기법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매화, 모란, 국화, 석류 등의 형상 무늬와 장, 춘 등의 길상문, 그리고 귀갑문, 만자문 등의 기하 무늬로 구성된 자경전 꽃담은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채워져 오늘날까지도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 177.

 


일반적인 신국판보다 다소 작은 사이즈의 책에는 컬러 사진이 가득하다. 어찌 보면 글자보다 사진이 더 많다고 여겨질 정도다. 본문 곳곳에 자리한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제각각 다른 문양이어서 더욱 놀랍다. 볼거리 측면에서 완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이지만 내용면에서는 조금 아쉬웠다. ‘궁궐 건축의 문양은 한국문화의 정수를 드러내는 집결체라고 하는데 여러 종류를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저자의 책을 처음이어서 이전의 책과 연결짓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다. 언제든 궁궐을 방문하는날 꼭 챙겨야 할 책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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