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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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1초 전의 나와 1초 후의 내가 다른 것이다

언제인지 모르겠다. 이어령 교수가 인터뷰에서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학교든 어디에서든 배운 것을 모두 뺐을 때 남는 것이 바로 내 생각인데, 요즘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고. 남들이 뭐라고 하면 그게 전부인 줄 알고 거기에 따라간다고. 주머니 속 지갑은 조심하면서 왜 자신의 뇌는 관리하지 않느냐며 우리 머리는 쓰레기통이 아니라고 일갈하셨다.


 

이어령 교수는 이 시대의 지성을 대표하는 석학이라고 불린다. 평론가에서 교수, 언론인에 이어 문화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창의성창조란 단어가 늘 따라다녔다. 그런 그가 몇 년 전 암 투병 중임을 밝혔다. 그러면서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한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고 암을 관찰하며 지낸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손바닥과 손등을 떼어놓을 수 없듯이 죽음이 바탕에 있기에 삶이 있다는 그의 말에 삶 그 자체를 오롯이 느끼며 살아가는 건 어떤 것일까 고민했다.


 

그의 마지막 수업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인터뷰어 김지수와 이어령 교수의 매주 화요일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수업을 진행했다. 루게릭을 앓는 모리 교수를 제자가 찾아가 인생이야기를 나누었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처럼.


 

나는 이제부터 자네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네. 이 모든 것은 내가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을 하며 깨달은 것들이야. 이해하겠나? 어둠의 팔뚝을 넘어뜨리고 받은 전리품 같은 것이지.” - [다시, 라스트 인터뷰] 중에서


 

저자는 이어령 교수와 16차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한다. 사전에 주제를 정해두지 않았기에 질문 요지도 없이 진행된 만남은 열여섯 꼭지의 글로 탄생했다. 매일 밤 죽음과 팔씨름을 한다고 털어놓은 교수는 삶과 죽음을 육체와 영혼에 마음을 더해 삼원론으로 설명한다. 마음을 비워야 그 자리에 영혼이 들어갈 수 있다며 죽음과 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신이 없다고 한 놈이 신을 보는 거라네.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작 신을 못 봐.”라며 니체를 언급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저자와의 인터뷰가 교수에게도 기다려지는 시간인지 자네가 매주 화요일 날 만나러 오겠다rh 하는 건, 나를 위해 테니스 코트를 만들어주는 것과 같네. 공을 던져주면 나는 스매싱도 하고 멀리도 보낼 수 있지.”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어린왕자>에서 왕자와 여우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오랜 투병 생활로 매일 아침 눈을 뜰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는 삶에서 누군가와 만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교수의 삶에 활력이 되었던 건 아닌가 싶다.


 

영화가 끝나고 ‘the end’ 마크가 찍힐 때마다 나는 생각했네. 나라면 저기에 꽃봉오리를 놓을 텐데. 그러면 끝이 난 줄 알았던 그 자리에 누군가 와서 언제든 다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을 텐데. 그때의 라스트 인터뷰가 끝이 아니고, 다시 지금의 라스트 인터뷰로 이어지듯이. 인생이 그래.” - [큰 질문을 경계하라] 중에서


 

교수는 어릴적부터 지적 호기심이 남달랐다고 한다. 무엇 하나 그냥 넘어가는 일 없이 꼬투리를 잡는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면서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이 얼마나 허망한지 꼬집는다. ‘야단맞을까 두려워 딴소리 안 하고, 고분고분 둥글둥글 살면 무엇이 진실인지 평생 모르고 살게 된다. 깨달은 지식이 주는 환희, 그 앎의 기쁨을 선생님이 가르쳐주지 않았고 학교가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그 말에 문득 의문이 생겼다. 내가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잘하고 있는 거라고 여겼던 것들이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프레임에 갇혀 사는지 스스로 깨달아야 해. 어린애 눈으로 보면 직관적으로 알아. ‘, 이상하다!’ 그런데 고정관념의 눈꺼풀이 눈을 덮으면 그게 안 보여. 달콤한 거짓말만 보려고 하지.” - [고아의 감각이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중에서

 


평소 존경하던 스승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면? 생전에 스승을 조금이라도 더 만나 그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어쩌면 유언이 될 수도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스승의 모습과 말씀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수많은 이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던 저자는 늘 수첩에 메모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날 교수와 대화 도중 녹음 스위치를 누르게 된다. 스승과의 대화를, 그의 마지막 수업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지닌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도, 더이상 어찌할 수도 없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음을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게 삶인데도 마치 영생을 누릴 것처럼 살아가는 건 아닌지.


 

저자와 이어령 교수가 열여섯 번의 화요일에 마주 앉아 진행한 대화를 조금씩 읽었다. 어려운 얘기도 쉽게 단칼에 베듯 풀어내는 교수의 어투가 그대로 녹아든 글은 읽다 보면 속도가 붙어 책장 넘김이 빨라졌다. 막무가내로 달리기보다 억지로라도 속도를 늦춰야 했다. 어떤 날은 한 꼭지씩, 어떨땐 몇 일 간격을 두고 한두 꼭지를, 천천히 읽었다. 배우기만 한 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고 했기에, 티끌만큼이라도 내 것인 생각을 쌓아보려 했지만 어느 것이 내 것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웠다. 내게도 스승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 스승이 필요한 당신에게 이 특별한 수업의 초대장을 건넨다. 위로하는 목소리, 꾸짖는 목소리, 어진 목소리…… 부디 내가 들었던 스승 이어령의 목소리가 갈피마다 당신의 귓전에도 청량하게 들리기를. - [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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