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 글쓰기 수업 - 논픽션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
잭 하트 지음, 정세라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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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휴대폰으로 랭킹 뉴스를 보다가 너무 놀랐다면서 캡처 사진을 올려주었는데요. 그걸 보니 글쓴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노발대발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어요. 기사 제목만 보면 유명 방송진행자의 아들은 크게 사고를 쳐서 공개사과를 했고 어느 유명인은 암투병 하다 요절했으며 아이돌이 수녀가 됐다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는 건데요. 실제 내용은 제목과는 완전 딴판이었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현재의 일처럼 관심을 끌거나 극중 배역이 수녀인 것을 [공식입장]이라는 꼬리말을 붙여 놓았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비판을 늘어놓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언론의 현주소이며, 매년 언론신뢰도가 세계 주요 46개국 중에서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알겠다고.


 

언론의 이런 행태를 일명 제목으로 장사한다고 합니다. 선정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클릭하도록 유도해서 그만큼 광고수익을 높인다는 겁니다. 이것뿐인가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언론들이 특정후보에게 노골적인 프로포즈 작업에 들어갔지요. 모든 후보에게 공평하고 공정하게 기사를 써달라고 요구하기가 민망하고 부끄러울 정도로 받아쓰기 기사, 편향 기사, 왜곡 기사 등이 만연합니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기사의 6하원칙을 설마 우리 기자들이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글쓰기 능력이 부족한 건가요? 우리 언론, 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른 걸까요?


 

황금관을 쓴 펜촉 주위로 휘황찬란한 빛이 가득합니다. 이 펜촉은 얼마나 특별하기에? <퓰리처 글쓰기 수업>, 제목만 보면 미국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퓰리처상을 수상할 수 있을 정도로 글쓰기 수업을 시킨다는 걸까? 대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기에?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퓰리처 글쓰기 수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논픽션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이란 바로 부제에 있습니다. 글쓰기를 다룬 많은 책이 소설창작과 관련해 문장과 구성을 이야기했다면 이 책은 논픽션(nonfiction), ‘상상으로 꾸민 이야기가 아닌, 사실에 근거하여 쓴 작품으로 수기, 자서전, 기행문과 같은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저자의 글쓰기 수업을 받은 이 중에 다수가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니 더욱 기대가 됩니다.


 

책은 총 1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구요. 각장의 주제는 [스토리, 구조, 시점, 목소리와 스타일, 캐릭터, 장면, 액션, 대화, 주제, 취재, 스토리 내러티브, 해설 내러티브, 그 밖의 내러티브, 윤리 의식]으로 구분되어 있는데요. 이것만 보면 마치 픽션 글쓰기에 관한 책 같은 느낌이 들지만 저자의 주장은 다릅니다. 논픽션의 글이라 할지라도 경직된 글을 쓰기보다 마치 소설처럼, 소설의 형식을 가미해서 글을 쓰면 독자들이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된다는 겁니다. 논픽션 글은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의미 같아요.


 

저자가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바로 스토리텔링입니다. 상대방에게 전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듯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전달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는 건데요. 첨단 기술로 인간의 뇌를 분석하니 스토리텔링을 담당하는 영역을 확인했다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스토리텔링 능력을 갖고 있다면서 문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스토리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스토리의 흐름을 결정했다면 그다음 짚어야 할 것은 글의 구조를 시각화하는 작업인데요. 여기에 수학 교과서에서 자주 접하는 그래프가 동원됩니다. 글쓰기 책에서 난데없이 웬 그래프인가, 싶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는 과정을 포물선 그래프를 통해 설명하는데요. 소설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단계로 진행되는 것처럼 논픽션 글도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소설처럼 글을 세부적으로 나눈다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들에게 장면마다 어떤 액션과 대화를 할 것인지 꼼꼼하게 미리 설계를 해보라는 건데요. 본문에는 이런 그래프들이 곳곳이 수록되어 있고 저자의 설명대로 하면 어쩐지 글을 쓰기가 훨씬 수월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직 실습을 해보진 않았지만요)


 

지금까지 논픽션은 사실을 다루는 글이라는 것에 얽매어 사실 전달에만 골몰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글은 일어난 일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재미나 흥미와는 거리가 멀고 그래서 사람들이 읽지 않는 글이 되고 마는 것이죠. 반대로 논픽션에 재미와 흥미가 도드라지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사실을 왜곡하고 그래서 글의 신뢰를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책의 마지막에 글쓰는 이의 윤리 의식을 언급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글쓰기를 다룬 책으로서는 분량이 400쪽 훌쩍 넘습니다. 다소 부담을 느낄 수 있지만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자신의 글을 좀 더 풍성하고 알차게 업그레이드 하고자 한다면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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