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윌스미스가 아카데미시상식에서 크리스 록을 때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둘 다 나쁘지만 윌 스미스가 아예 매장되는 것은 과하지 않나,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으려나. 아이는 유튜브 읽어주는 남자,에서 보고 어느 정도 서구의 반응이 수긍이 되더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유튜브를 찾아 보았다. (http://https:www.youtube.com/watch?v=_atVK7RjUmA) 여기서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서구권,은 윌스미스가 크게 잘못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가족을 그런 식으로 말하면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이 많다. 그렇지만, 그건 맥락을 오해하고 있는 거다. 윌 스미스 가족의 지금까지의 어떤 태도가 그런 농담을 가능하게 했고, 윌 스미스는 그 전까지 웃다가 부인을 보고 나가서 때린 거라면서, 제목조차 '여자에게 휘둘려 모든 것을 잃고 있는 남자'다.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조종해, 감정적으로든 뭐로든, 조종해서 자신의 뜻 대로 움직이게 만들었어. 그러면 누가 더 나쁜 사람이야? 조종한 사람, 조종당해서 나쁜 짓을 한 사람."

"둘 다 나쁘지. 연예계에서 벌어진 일도 그랬잖아?"

"그래, 둘 다 나쁘지. 둘 다 나쁜데, 우리 나라는 조종한 사람을 더 나쁘다고 말하는 문화인 거고, 나는 그게 더 좋은 문화라고 생각해. 윌 스미스 부인이 윌 스미스를 조종해서 자신의 혼외정사를 수용하게 했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혼돈의 정체성을 넘기고, 윌 스미스를 불안하게 만든 것도 나쁘고, 크리스 록이 말로 그런 윌 스미스를 자극하는 것도 나쁘다고." 

물어본 것에 대해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뭔가 부족해서 쓰고 싶다. 

유튜브 읽어주는 남자,는 계속 남자는 질서, 여자는 혼돈,이고 질서가 혼돈을 정리하지 못해서 아이들이 폴리 아모리에 플루이드 젠더, 따위의 이상한 소리나 하고 있는 이 가족의 문제가 윌 스미스가 가장으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으로서 가족의 질서를 잡지도 못 했으면서, 그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가부장 노릇을 하겠다고 폭력으로 행사했다고 문제삼는다.


내가, 폭력은 절대 안 되,를 수긍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말로 자극하는 것에도 당연 책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나는 역시 윌 스미스의 업계퇴출이 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유읽남,조차 그 동영상 제목을 그렇게 뽑은 걸 보면, 그 부인을 가장 나쁘다고 생각하는 거 갈다. 나도 윌 스미스가 좋은 여자를 만나지 못한 것 같다. 


폭력은 절대 안 된다,라는 말은 '폭력이 무엇인가'를 정의해야 한다. 언어폭력도 폭력이고, 방임도 폭력이고, 시선도 폭력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직접적인 폭행,만 폭력인 양 저런 말을 붙인다는 데 의아하다. 브런치에서 '모욕에 맞서는 방법'(https://brunch.co.kr/@youngmusic/139) 이라는 글을 보고 공감하고는, 저자의 책에 나는 공감할까 의심했다. 한국이 폭력이 허용되는 나라라서 윌스미스 옹호론이 크다는 글(https://brunch.co.kr/@brunchog1f/17)도 보이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은유로서 말하자면, 남성의 방식이 물리적인 충돌과 폭력이라면, 여성의 방식은 대화와 교묘한 괴롭힘이나 조종이다. 남성의 폭력이 제도적으로 여러가지 해결책들을 만들어왔다면, 여성의 폭력은 문화를 통해 제어되어 왔다. 문제를 해결하는 긍정정인 방식은 대화가 맞지만, 말 그 자체가 무해한 것은 아니다. 말로도 사람을 찌르고 죽일 수 있다. 말이라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점점 말들도 법적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남성적인 문화에서는 교묘한 괴롭힘을 비열하다고 보지만, 여성적인 문화에서는 물리적 폭력을 미개하다고 본다. 그래서 물리적 폭력은 여성적인 문화에서 더 적고, 여성적인 문화권에서는 교묘한 괴롭힘이나 말을 이용한 조종에도 물리적 폭력만큼의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라는 오래된 경구처럼,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여성적인 문화는 생각하는 거다. 강한 힘을 우위에 두는 남성적인 문화는 부드러운 통제나 조종조차 제압하지 못하는 남성의 문제로 보는 게 아닌가 싶다. 서구권에서 윌 스미스가 심하게 비난받는 이유는 서구의 문화가 남성적이기 때문이고-부인을 통제하지 못한 것이나 가부장이 되지 못한 것조차 윌 스미스의 잘못이다!-, 한국에서 윌 스미스가 옹호되는 이유는 한국의 문화가 여성적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https://blog.aladin.co.kr/hahayo/13486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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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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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미국인이 쓴 환상문학. 이다. 테드 창,일 때는 그 신선함에 놀랐는데, 켄 리우에 대해서는 조금 물러나게 되는 게 있다. 단편모음집인데, 첫 소설은 아, 사람들이 왜 좋다는지 알겠어, 하다가 계속 여러 개를 읽게 되니까, 동양에 대한 서양의 감정은 뭘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와 언어에 관심이 많은 중국계 미국인 작가가 쓴 이야기가 주목을 받는데는, 동양으로 관심이 옮아간 탐욕스러운 서구 문학계의 태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하는 거다. 테드 창보다, 더 많이 중국적인 이야기들이라서 그런 것도 같다. 731부대나, 종군위안부, 대만에서의 228학살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야기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한자에 대한 이야기도 지나치게 노골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아, 내가 이런 인상을 받은 데는 '모노노아와레'가 일본인이라는 존재를 묘사한 방식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 것도 같다. 동아시아를 다루지만, 일본과 중국과 대만이 등장하고, '모노노아와레'의 일본인은 무언가 서구인의 환상으로 빚은 존재 같다. 


첫번째 이야기인 종이동물원,은 매매혼으로 미국에 이주한 엄마와 결국 떨어져 나온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언어와 문화가 단절되는 애닯은 이야기로 읽힌다. 

그저 어린아이의 환상이나 잘못된 기억이라고 읽으면서, 감정적으로 고양되었었는데, '즐거운 사냥을 하길' 속의 여우요괴와 요괴퇴마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중국공산당의 포로가 된 자국의 군인이 세뇌를 당했다고 생각했다는 전쟁시기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거다. 동양인을 도롱뇽 정도로 생각하는 서구인이 지금 다시 동양인을 미지의 영역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의심하게 되더라. 


천생연분,이나 레귤러는 중국적이라는 인상은 받지 않았다.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만, 신선하다, 에서는 물러나게 되는 거다. 레귤러는 상처받은 형사가 나오는 범죄물에 몸을 기계로 대체하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를 넣는 방식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파나 모노노아와레는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떠나는 인류에 대한 이야기인데, 파의 이야기는 일본만화가가 그린 2001 Space fantasia(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83262)의 충격을 넘어서지 못한다. 

 

파자점술사,나 태평양횡단터널 약사, 송사와 원숭이 왕,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은 작가가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건 알겠지만 이야기가 잘 얽혔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파자점술사가 배경으로 삼은 대만의 본성인과 외성인(이 번역을 굳이 그렇게 했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번성런과 와이성런이라고 번역하고 괄호 안에 한자를 넣었더라)의 대립을 미국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이야기는 그런대로 감정적 동요를 일으킨다. 마지막 거인(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2026),을 떠올렸는데 어른이 아니라 아이라 좀 더 용서가 되는 이야기였다. 태평양횡단터널 약사,는 일본이 패망하지 않은 대체역사,라서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송사와 원숭이 왕은 배경으로 하는 역사를 확인하려고 검색했더니 이야기 속의 책이 위서일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https://blog.daum.net/shanghaicrab/16157384).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은 내가 역사의 해석이라는 것이, 가서 본다고 정확하겠어?라고 회의하는 사람이라서 미국인의 어떤 태도라는 것이 싫었다. 딱 그런 설정의 SF(아이작 아시모프의 '죽은 과거'(https://namu.wiki/w/%EC%A3%BD%EC%9D%80%20%EA%B3%BC%EA%B1%B0, https://arca.live/b/physics/7958164?p=1)를 세계 SF걸작선(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9075)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게 훨씬 좋았다. 

 

언어에 대한 관심 때문에 여전히 파자점술사,의 몇 대목을 옮겨놓고 싶었다. 

 

"마법이 깃든 말은 오해받는 경우가 많지. 그 아이들과 자네가 다 같이 '국'을 마법의 말로 여겼을 때, 그 말에는 일종의 힘이 깃들어. 허나 그 힘은 무지에 기반한 헛된 마법이었네. 마법과 힘이 깃든 말으 그것 말고도 많지만, 그런 말을 쓰려면 먼저 사색과 사유가 필요해" -p164, 파자점술사

 

내가 다른 종류의 마법을 깨닫기 시작한 게 바로 그 무렵이었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어. '일본은 위대하고 중국은 약해 빠졌다, 일본은 동아시아 전체가 번영하기를 바라므로 중국은 일본의 뜻을 받아들여 항복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이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본'이 무언가 원하는 게 가능할까? '일본'이나 '중국'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아. 그건 그저 낱말일 뿐, 지어낸 것일세. 일본 사람 한 개인이 위대할 수는 있겠지. 중국 사람 한 개인이 뭔가 바랄 수도 있을 테고. 하지만 '일본'이나 '중국'이 무언가 바라고, 믿고, 받아들인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나? 나라 이름 같은 건 다 공허한 낱말일세. 신화일 뿐이야. 그런데 그 신화에는 강력한 마법이 깃들어 있어서 희생을 강요하지. 사람을 양처럼 살육하라고 강요하는 거야. -p171, 파자점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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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때 마음이 불편한 대목이 있었다. 

책의 저자는 근근히 공부를 이어가는 대학원생일 때, 명절을 맞아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선배와 선생님께 드리는 이야기를 한다. 선물을 드리는데, 선배가 '뭐하러 하느냐, 안 해도 된다'라고 말하는데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가'싶어 상처받았다고 쓴다. 

그럴 수는 있지만, 나는 나도 그렇게 말할 사람이라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모든 선물이 그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후배들이, 해외여행에서 돌아와서 여행지의 과자 따위를 돌릴 때, 나도 그렇게 말한다. 그럴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걸 받을 자격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 나의 자격은 주는 사람이 정하는 거고, 선물은 주는 사람 마음이기는 하지만, 또 선물은 그렇게 선,하지만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학생일 때 군대도 안 간 젊은 영어선생님이 친구가 그 선생님께 준 음료수를 면전에서 다른 사람에게 건넬 때 '준 사람 성의는 생각도 안 하세요?'라고 따진 적도 있는데, 지금은 선물이 선물이려면, 준 순간 그 사람의 처분에 맡겨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선물과 함께 건네지는 나의 마음은, 받는 사람의 마음에 빚이 된다. 

다른 의견 속에 궁금해서 적어놓은 책 '세계에서 제일 이상한 사람은 누구인가(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3478318&start=slayer)도 문화에 따라 선물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유튜브에서 은괴와 초콜릿 중에 고르라는 인터뷰 내용을 보고 초콜릿을 고른 사람이 교육수준이 낮아 은이 비싼 줄 몰라서라는 해석을 보고도(https://www.youtube.com/watch?v=ga-oNV-OVxc&t=533s) 나는 역시 의심하는 거다. 누구나 더 가치있는 걸 원할 거라는 WEIRD한 서구인의 시각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선물하는 사람은 뇌물이 아니더라도 댓가를 바란다. 노골적이고 경제적인 무언가는 아니더라도, 최애가 내 선물을 들고 사진이라도 SNS에 올려주기를 바라는 거 같은 것. 그게 어렵나, 하면 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참. 

지금의 나는 선물이 선물이려면, 건네 준 순간 모든 처분은 상대에게 있다는 걸 받아들인다. 

그리고 선물은 어쩌면 우월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 속의 저자가 가지는 슬픈 마음-나는 이런 작은 선물조차 할 수 없는가-은, 선물을 하면서 느끼려는 어떤 뿌듯한 마음이 좌절되서라고 생각하는 거다. 늘 무언가를 받던 작은 존재였다가, 이제 줄 수도 있는 존재가 되면 스스로 기분이 좋은 걸 안다. 

선물은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다. 상대가 감사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정말 끔찍한 -바느질도 못하는 주제에 옷을 만들어 선물하려고 한 적이 있고, 1년 중 처음 생일을 맞은 언니가 언제나 그 끔찍한 선물을 수령했다- 선물을 제 기분에 신이 나서 여기 저기 뿌린 적도 있고. 남편이랑 아이들 게임 다운받아 주는 걸로 싸운 적도 있고, 어린 친구에게 '책은 싫어요'라는 귓속말을 들은 적도 있다. 내가 하는 선물에도 의도가 있고, 나는 그 의도를 자제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취향을 권하는 마음, 너보다 나의 취향이 나을 거라는 자부심, 같은 게 선물을 고를 때 있다는 거다. 어렵고 귀한 분께 몇 날 며칠 선물을 고르지 못하는 마음과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쉽게 골라서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나의 우월감의 표현이고 나의 취향의 어쩌면 강권이고, 그래서 나는 쉽게 선물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무언가를 골라 선물하고 싶던 마음이, 그래 역시 돈을 주고 직접 고르라고 하는 편이 좋겠지,로 바뀌었다. 내가 엄마에게 주고, 엄마가 다시 아이에게 주는 용돈의 트라이앵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받고 싶은 마음보다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것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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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굉장히 오글거리고 어이없는 드라마를 볼 거니까, 먼저 들어가서 자라고 남편에게 말하고 봤다. 완전 클리셰 폭탄인데, 왜 재미있을까, 생각이 많다. 

로맨스의 환상이 응축되어 드러난다. 

직장에 다니는 여자주인공은 친구의 맞선자리에 대신 나가서는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과 만난다. 적당히 떼어내는 게 목표였던 맞선에서, 일은 꼬여버렸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있는데 저래도 되나 싶은 설정도 보이고, 스토킹방지법도 있는데 좋아한다고 할 때까지 고백한다는 장면도 있다. 드라마 유튜버도 요즘 남자는 저렇게 고백 안 하니까, 잘 생각하고 대답하라고 조언하더라. 

시대에 뒤떨어진? 이제는 한 물 간 줄 알았던 신데렐라 설정에, 법적으로 문제삼을 수 있는 지뢰같은 설정도 많고, 완전 클리셰 폭탄인데 말이지. 그걸 재밌다고 보는 나는 뭐란 말인가. 

클리셰들에도 불구하고, 왜 좋았던 걸까. 카카오페이지까지 깔고, 원작웹소설과 웹툰도 보고 있다. 처음 깐 카카오페이지라서, 도대체 기다무는 누군데, 이 많은 소설과 웹툰을 쓸 수 있을까, 오해했다. (기다리면 무료,의 준 말이었다.) 인스타에 김세정과 안효섭과 설인아와 김민규를 팔로우 추가도 했다. 

그걸 다 보고 뭔가 분석적인 글을 쓰려고 했으나, 내가 무슨, 싶어서 그냥 쓴다. 


읽으려고 쌓아둔 책 중에 '충분히 좋은 엄마' 본문은 '새엄마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라진다면, 새엄마에 대한 편견이 사라질 거라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로 시작한다. 정확한 인용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고 싶다.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새엄마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그 이야기가 어떤 면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 신데렐라 스토리의 클리셰도 무언가 그런 게 있어서일 거라고 생각한다. 클리셰 안에, 무언가를 담고 있다. 그건 사랑의 본질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추구하는 무엇일 수도 있다. 


드라마와 웹소설을 비교하다가, 둘 다 뭐가 좋았던가 생각하다가, 여성과 남성의 전형적인 어떤 태도들에 눈이 간다. 현대인들은 수동성보다 능동성을 선호한다. 능동성을 고양시키라고 그게 강한 거라고, 그런데 나이먹고 늙어가는 중인 나는 수동성이 더 강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애초에 태어난 건 자체가 나의 선택이 아니고, 나의 가족이 나라가, 고향이, 시대가 나의 선택이 아닌데,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삶은 얼마나 가능할 수 있겠나, 싶은 순간들이 있다. 살아간다는 것의 수동성 가운데서, 일찌감치 마음을 정하고 돌진하는 남자 주인공과, 상황에 떠밀려 휩쓸리는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보는 거다. 나쁘지 않아, 삶의 파도에 휩쓸리는 것이,라는 마음이 된달까. 휩쓸리는 파도 속에 사랑이 꽃피는 로맨스의 세계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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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IU 2022-04-29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다무는 누군데 ㅎㅎㅎ 넘 귀여우셔요
사내맞선, 저도 넘 잼나게 읽고 봤어요. 클리셰 범벅도 캐릭터, 스토리가 좋으면 충분히 즐길수 있는거죠

별족 2022-04-29 11:34   좋아요 0 | URL
웃어주셔서 감사^^. 웹소설과는 많이 달라서 실망하는 원작 팬들도 많다던데, 드라마도 재밌게 보셨군여.
 
다른 의견 - 싸우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만족스럽게 대화하기 위한 9가지 원칙
이언 레슬리 지음, 엄윤미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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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사무실에 사달라고 하고, 내가 빌려 읽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몰라서 못하는 건 아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역지사지-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라-나,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그러니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둬야 한다-,나 상대에게도 체면이란 게 있다,는 이야기. 서로 다른 우주를 가진 상대를 인정하고, 궁금해하면서 진실하게 대화하라는 이야기. 그래야 겨우 조금이나마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이야기. 그게 책 한권에 가득찬다. 성공한 이야기도 실패한 이야기도 그 안에 있다. 

뭐 몰라서 못하나, 싶은 이야기를 내가 스스로 확신에 차서 상대를 몰아붙이지는 않는가 생각하면서 그래도 끝까지 읽었다. 내가 말만 많고 행동은 굼뜨는 한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갈등상황에서 내가 어땠는지 또 생각했다. 결국 실패한 설득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레딧에 있다는 'Change my view'라는 포럼(https://www.reddit.com/r/changemyview/)과 서양의 교육받고 산업화된 민주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상한 사람들인지 썼다는 '세계에서 제일 이상한 사람은 누구인가(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3478318&start=slayer)라는 책이 궁금해서 검색도 했다.-번역된 책은 없는 거 같다-. 

반납해야 하는 책이라서 포스트잇을 떼어내면서 옮겨 적는다. 


감정은 이성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 그게 감정이 감정인 이유다. 그런데 우리는 왜 사람들에게 어떻게 느끼라고 가르치려 하는가? 우리가 이성적인 설득의 힘을 과신하는 것과 갈은 이유에서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복잡한 진짜 마음을 가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이다.-p169~170

 

힘의 역학관계에서 불리한 편에 서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타인의 마음을 잘 읽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대화를 나눌 때 관계의 상황을 읽어낸다. 심리적 통찰을 영향력으로 바꾸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p192(넬슨 만델라가 빌욘을 만나는 장면에 보탠 말)

 

상처 입은 사람들은 위험하다. 폴리스 솔루션스의 강사 마이크 오닐은 멤피스에서 만난 교육생들에게 현직 경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료 경찰관들이 수갑을 찬 용의자를 친구나 가족 앞에서 구타하는 경우를 보았다고. 이는 잘못된 행동일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행동이다. 체포 현장에서 모욕을 주는 것은 '당신의 동료를 죽일 수도 있는' 행동이다. 강의실에 무거운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용의자들은 모욕당한 것을 잊지 않는다. 몇 년 후에라도 경찰에게-어느 경찰관에게라도- 되갚아줄 기회를 찾는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패턴이다. -p199

 

그러나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는 정확한 정보를 안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이익을 바로 얻지 못한다. 반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쪽의 신념을 표출하는 것은 즉각적인 이익을 준다. 소속감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옳은 편에 서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을 많이 쓴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온 신념을 바꾼다는 것은 그 신념을 공유해온 사람들을 잃게 되는 일이다. -p236

 

리스트는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 고객에게 사과를 한다면 그들이 우버를 다시 이용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버 경영진을 설득하려면 사과의 가치를 숫자로 환산해 제시해야 했다.-p258

이건, 왜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서구식으로 설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어떤 것이라서 남겨놓는다. 우리는 알고 있지만, 이런 것을 요구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국가와 조직의 경영자가 위원회가 내리는 어떤 판단에 그건 아니지 않냐고 말만 해서는 아무 것도, 아무도 듣질 않아서 그런 다는 걸, 나도 알고는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협상을 지켜볼 관중도 없을 것이었다. 뢰드-라르센은 워싱턴 평화 회의에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 때문에 대화가 양극화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고국에서 지켜보는 관객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체면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압박이 있었다.-p269-270

 

우리는 질서를 추구하는 동시에 자유를 추구한다. 우리가 양편 중 어느 한 방향으로 너무 멀리 갈 때 문제가 생긴다. 질서가 지나치게 강한 사회는 숨 막히고 억압적인 곳이 된다. 일관성이 없는 사회는 불안하고 생경한 곳이 된다. 정신 건강의 문제는 질서를 너무 강하게 추구(강박증)하거나 카오스를 추구(정신분열증)할 때 생긴다. - p279~280

 

의견 대립이 유혈 스포츠가 될 필요는 없지만, 피를 전혀 묻히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도 안 된다. 모든 공공의 논의가 디너파티에서의 대화처럼 매끄럽게만 흘러간다면, 고통스러운 비명과 분노의 외침은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가끔은 어떤 규칙을 어기고 있는지, 누구의 감수성을 다치게 하는지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고 논쟁에 뛰어들어야 할 때가 있다. - p340

 

정중함은 표피적인 것이나 겉치레가 아니다. 공통의 규칙을 지킨다는 것은 칼 턴불의 실험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자유롭게 대화가 흐르도록 열어주는 것이다. 언어학자 로빈 레이코프는 정중하게 행동하는 세 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강요하지 말 것. 선택지를 줄 것. 상대방을 기분좋게 할 것. 나는 이 가이드라인의 간결함이 마음에 든다. -p350

 

핵심원칙

먼저, 유대를 만들라.

줄을 놓아주라.

체면을 세워주라

나의 이상한 점을 먼저 보라

호기심을 가지라

실수를 기회로 만들라.

대본에서 벗어나라.

제약 조건을 공유하라.

목적 없이 화내지 마라.

진심으로 행동하라.

 

* 좋다면서도 별을 하나 깎은 건, 서양인 저자의 최초의 최고의,라는 식의 어떤 말들이 서구식이라서. 재수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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