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토마스 산체스 그림, 박미경 옮김 / 다산초당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뭔가, 동서양의 차이는 뭘까, 이런 생각을 계속 하면서 서양인 저자의 책을 보게 된다. 동양인이고 불교문화권 한자문화권에 살면서도 이런 책이 또 좋은 것은, 이미 많이 서구화되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스웨덴에서 경제를 공부하고 기업의 임원이 되려는 순간에 일을 그만두고 숲속 승려로 수련하였다. 오랜 수련을 마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승려가 아닌 삶을 살았다.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되는가, 뭐 그런 생각을 했다. 드라마틱한 변화라는 게 모두 다 선망하는 위치였기 때문에 더 많이 듣는다. 왕자였으면서도 그 모든 걸 버린 석가모니 부처에게 배움을 청한다. 현대라면 대기업 임원을 목전에 두고도 그 모든 걸 버렸다. 도대체 왜?라는 의구심으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인가, 싶다. 깨달음의 말들은 불교의 말들이라 그대로 좋다. 


17년 동안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에 매진한 결과,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가 얻은 초능력입니다. - 4%

펀게시판,에서 문화권마다 특정한 정신병이 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문화권의 특성 때문에 정신병의 양태가 달라진다. 무병이나 신병을 부르는 말이 서구문화에 있을까.  

기독교문화권은 결벽적인 신 때문에, 우리문화에서는 무병이나 신병이라고 부르는 것을 악마,라고 부르는 게 아닌가,라고도 생각한다. 


자신의 사고 과정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를 갈라놓는 것보다 우리가 공유하는 것을 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어디에서 왔든 어떤 이력을 지녔든 간에 우리의 내면이 작용하는 방식은 대체로 닮았습니다. 그 사실을 깊이 받아들이고 잊지 않는다면, 더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파악한 양 시늉하느라 기진맥진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대신 다른 사람과 서로 돕고, 나누고, 진정으로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인공위성처럼 고독하게 홀로 부유하지 않는 대신, 다른 사람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신, 서로의 존재가 위안이 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 배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남들의 아름답고 뛰어난 점을 발견하고도 그들만 못하다는 내면의 속삭임에 더는 시달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 17%

서양의 어떤 태도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이 서양인 스님이 공동체에 대해 배우는 과정은 더 극적인 것도 같다. 요새 나를 사로잡은 질문은 왜 미국은 총기규제를 못하나,이다. 코로나에 대응하는 서구선진국의 어떤 모습-마스크 규제를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 같은 것-이나,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데도 총기규제를 하지 못하는 미국의 모습은 함께 살아가는 걸 어렵게 하는 문화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실상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쉼 없이 떠들고 울먹이고 비난하고 비판하고 독설을 날리고 의문을 제기하고 불평을 일삼는 내 생각과 홀로 마주하는 것, 그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진정시키려 애써도 제 마음은 끊임없이 인신공격과 자기 회의로 반격을 가했습니다.- 18%


"저는 숲속 승려가 되고 싶어서 모든 걸 뒤로하고 왔습니다."- 22%

이 말은 특이하게 결핍이 드러나서 옮겨 놓는다. '모든 걸 뒤로 하고'가 필요한 말이었을까,라고 생각했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 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스님의 손바닥 안에 있었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다들 숨 죽이고 스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요. 스님을 몸을 살짝 내밀더니 극적인 효과를 내려고 한 번 더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습니다. 

"자, 다들 그 주문이 뭔지 궁금하시죠?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 40%

이걸 읽고 딸아이에게 알려주려고, 먼저 스님이 꺼낸 도입부를 흉내냈다. 궁금하지?라고 물었더니, 안 궁금하다고, 화나면 싸우고, 지면 지고, 이기면 기분좋을 거라고 했다. 이긴다고 기분이 좋다니, 조금 기다렸다가 가르쳐줬다. 


사람들이 우르르 나가자 결국 아잔 수시토 스님과 저만 남았습니다. 그 순간 제 모습은 아마 언짢음과 짜증으로 가득했을 겁니다. 그때 아잔 수시토 스님이 저를 온화하게 쳐다보면서 말했습니다. "나티코, 나티코. 혼돈은 자네를 뒤흔들지 모르지만 질서는 자네를 죽일 수 있다네." 

그렇습니다. 저는 또다시 주먹을 너무 세게 쥐었던 것입니다. 세상이 마땅히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다 안다고 상상한 것이지요. 그런데 세상의 모습이 제 생각과 맞지 않자 울컥한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저를 작고 어리석고 외롭게 만듭니다.- 51%

이건 책을 덮고, 기록하기 전에 밑줄을 빠뜨린 거 같아서 열심히 찾았다. 어른이 되는 건 혼돈을 버티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불확실성이나 혼돈에 화를 내는 것이 쓸모없다는 걸 깨닫는 게, 세상에 확실한 건 없다는 걸 깨닫는 게 매일매일 살아가는 중의 깨달음이라서, 질서가 필요한 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남겨두고 싶었다. 


조금 덜 통제하고 더 신뢰하길 바랍니다. 뭐든 다 알아야 한다는 압박을 조금 덜 느끼고, 삶을 있는 그대로 더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에게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되니까요.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돌아가지 않는 일을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자신을 원래보다 더 작고 초라하게 만들 필요 또한 없지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목을 옥죄며 살 것입니까, 아니면 넓은 마음으로 인생을 포용하며 살 것입니까? - 52%


우리가 사는 우주는 모든 것이 임의로 이루어지는 차갑고 적대적인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오지요. - 75%


태국에는 멋진 속담이 하나 전해 내려옵니다. '부처의 등을 도금한다'라는 말이지요. 태국의 신도들이 정기적으로 절을 찾아 참선한 다음 금종이와 촛불, 향을 보시하는 전통으로부터 유래한 것입니다. 태국의 불상들은 대개 이 금종이들로 금박을 입히거든요. 이 속담은 자기의 선행을 다른 이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보지 못한 불상의 등에 금박을 입힌다는 생각에는 그야말로 멋진 구석이 있습니다. - 83% 


이때 다른 누군가가 아는지 모르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만은 알 테니까요. 우리는 늘 자기 자신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과 기억은 우리가 앉아 있는 목욕물과도 같습니다.  - 84%


세상은 세상 그 자체의 모습으로서 존재하지 않지요. 세상은 우리의 모습으로서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 85%


"화가 나긴 하지만, 그 화는 아무 것도 차지하지 못합니다."라는 뜻이지요. 

이 이야기는 우리의 내면이 떠오르는 모든 감정을 품을 만큼 매우 깊고 넓을 때 삶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어둡고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피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그런 감정이 곧 우리 자신이라고 믿지 않길 바랍니다. 그것이 내면을 전부 차지하고 물들이게 두지 말길 바랍니다. 그런다면 분노나 억울함도, 시기와 미움도 더는 우리를 해치지 못하고 곧 후회할 일을 저지르게 하지도 못합니다. - 92%


왜 우리 문화권에서는 죽음과 싸우고, 죽음에 저항하고, 죽음을 부정하는 것을 영웅적이라고 묘사할까요? 죽음은 왜 늘 무찔러야 할 적이나 모욕으로, 실패로 그려질까요? 저는 죽음을 삶의 반대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탄생의 반대에 더 가깝지요. 증명할 순 없지만, 저는 늘 죽음 저편에 뭔가가 있다는 확신을 느껴왔습니다. 때로는 뭔가 경이로운 모험이 저를 기다린다는 느낌마저 들지요. - 95%

살아가는 게 혼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차례차례 논리를 쌓아서 계속 살아갈 동인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논리로는 삶을 설명할 수 없다. 삶이 삶이기 위해서는 죽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자살을 권장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의 어떤 태도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그런데, 어디선가 곡기를 끊는, 행위도 자살로 묘사하는 걸 보고 의아한 기분이 되기는 했다. 나는 지금의 연명치료는 원하지 않는다.- 능동이기보다 수동인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어떤 마음의 노력 가운데, 죽음이나 질병을 격리시켜서 죽음이나 질병을 없앨 수 있다는 식의 은유적 믿음이 현대에 존재한다는 면에서 이건 서구문화권만의 문제는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요일 낮에 딸아이가 보는 '놀라운 맞춤법 파괴 상황'을 정정해주고 그 저녁에 놀라운토요일을 보았다.

받아쓰기,하는 걸 보고 있자니 참 신기한 기분이 된다. 

사람은 듣고, 머릿 속에서 자신의 지식 안에서 정리한다. 들었더라도,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 그 말의 발화 상황과 어긋나면, 들은 걸 기억하지도 못하고 가끔은 아닐 거라고 단정한다. 

김세정의 밤산책을 받아쓰기,하는 2라운드에서, 키는 김동현이 특별히 솔직하니까 이렇게 풀리는 구나,라고 말하면서 김동현이 들은 '이억받고'에서 '이어폰'을 유추해낸다. 

아는 게 많거나, 그런 것들에 사로잡히면, 밤에 산책을 나가는 기분에 대한 노래를 들으면서 '이억받고'처럼 들렸어도, 그렇게 쓰지 못한다. 

들리는 대로 쓴다, 쉬운 말처럼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보이는 대로 본다, 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감각하는 모든 것은, 내 머릿속의 내 경험 안에서 정렬되고 선택되고 밖으로 나온다. 내 경험의 한계만큼, 내가 가지는 사고의 한계만큼 제약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작은 언제나 담백하게 들리는 대로, 보이는 대로의 묘사여야 하는데 너무 많이 알거나, 너무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에 의심을 가지고, 그대로 우선 받아들인 다음, 그런 다음에 같이 이야기나눠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답이 분명히 있는 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과정을 보는 것은 정답을 알 수 없는 가운데, 서로를 오해하고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현실을 잠시 잊게 해 준다. 좋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제 초3 딸과 아빠의 대화가 이상했다. 

"반려자가 뭐야"

"아빠한테 엄마같이 인생을 같이 가는 사람이야"

뭐 이상할 게 없는 대화인데, 남편이 아이가 보고 있는 폰을 안경까지 밀어올리면서 보고, 

"그런데 그건 그게 아니라, 반반 나눈다, 할 때 반에 려,라고 쓰는 거야."

라고 까지 하는 거다. 

옆에서 듣기에는 아무 문제 없는 대화이기는 한데, 실상 초3 딸은 공포의 맞춤법 모음캡처화면( https://www.bobaedream.co.kr/view?code=strange&No=4344955 -이건 아니고 폰 화면 하나에 가득차는 신기한 거였는데 못 찾았다) 보면서 말하는 거라. 발여자를 보면서 발려자라고 읽으면서 묻는데, 듣는 나나 남편은 '발려자'를 듣고 '반려자'를 생각하는 거였다. 

안 되겠다, 싶어서 내가 이건 다 맞춤법 잘 못 쓴 거니까, 제대로 써 줄게, 하고 써주려고 폰을 가져왔다. 그런데, 딸래미가 하는 짓을 내가 하고 있었다. 

덮집회의,를 보면서 아무래도 모르겠어서 남편에게 물어볼려고 소리를 내면 그 때 겨우 알게된다. 괴자번호,를 보면서도, 순합공간을 보면서도 그랬다. 그러면 엄청 웃겨서 안 웃을 수가 없었다. 

겨우 겨우, 그 틀린 맞춤법의 바른 맞춤법을 뒤죽박죽 써서 줬다. 46개나 되는데, 딱 하나는 설명하기부끄러워서 안 써 줬다.

글자를 볼 때 머릿 속으로 어떻게 소리가 날 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소리가 나는 건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다 싶은 지경이라, 놀라기도 했다. 

한글이 소리나는 대로 쓰는 소리글자라고 해도, 그 많은 말들은 한자에서 왔기 때문에 소리나는 대로 쓰면 이상해진다. 그러니까 소리는 가오캥이,라고 들려도, 머릿 속에서는 다시 가혹행위,로 정렬을 해야 의미를 알게 된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윤호가 회자정리,를 알아보겠다고 무수히 많은 말들을 검색하는 그 순간(https://blog.naver.com/tvntea/222295409940) 같은 거지. 

이렇게 소리난다는 게 재밌고, 소리나는 데로 이렇게 적는다는 게 재밌고, 아이랑 이렇게 낄낄대면서 이야기한다는 게 재밌었다. 

한자어가 많고, 오래되서 이제는 안 쓰는 말-외양간, 오라, 같은 말들-, 영어도 있다. 잘못 들을 수도 잘못 쓸 수도 있는 말들인데, 이렇게 소리나고 소리나는 대로 이렇게도 쓸 수 있어서 웃겼다. 재미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ttps://www.youtube.com/watch?v=iXAvkmaut5g&t=16s

미혼의 여성이 이 유튜브를 들어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글을 보았다. 이 유튜브의 제목 그대로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은 이상한 겁니다'와 초반 앞에 따 놓은 어그로 그대로 '그런 사람은 아이큐가 두 자리'라고. 아이가 셋인 나는 우선은 화가 많이 나서, 퇴근하는 차에서 남편에게 투덜거렸다. 남편이 그렇게 건너 들은 이야기는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되고 확인해야 한다고 해서 확인했다. 


왜 이렇게 말하는 걸까? 


나는, 아빠가 '나는 되는 사람만 찍어'라고 말했을 때 믿었다. 

선거 다음날 누구를 찍었냐고 물으면 아빠는 언제나 저렇게 대답했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나는 한참 후에나 알았다. 

무서운 시대였고, 정치적 입장은 숨겨야 했다는 걸, 아주 나중에야 알아차렸다. 


나는, 주토피아,를 보고도 역시 왜 어른들은 이렇게 말할까, 의구심을 가졌었다. 

(쥬디의 부모가 자신의 직업(농업)을 묘사하는 방식에 뜨악해하고, -요새는 내가 너무 곧이 곧대로 듣는 성정이 문제인가 싶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더 그렇지 않나요? 그러니까 그게 시니컬한 농담인 건가, 싶기도 하지만- https://blog.aladin.co.kr/hahayo/8604003 )

사람들은 순정하게 말하는 방식을 잊은 걸까. 


이런 나조차도, 아이를 막 키우기 시작했을 때,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나 어렸을 때 상처받았어요'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 때 내가 쓴 반어법은 음, 기억나지 않는다. 잘못을 한 아이에게 잘했다,고 했던가. 


나는 이야기,라는 것이 가지는 미묘한 왜곡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오즈의 마법사'는 '돌아갈 집에 대한 예찬'이지만, 뇌리에 남는 노래는 '오버 더 레인보우'고, '겨울왕국'은 사랑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지만, 또 뇌리에 남는 노래는 '렛잇고'같은 거다. 집의 소중함,에 대해 말하는 영화에서 '저기 무지개 너머에는 아름다운 것이 있을 거야,라는 노래가 남고, 사랑이 가장 힘이 세다고 말하는 영화에서 '가족을 내팽개치고 떠나는 노래'가 남는 거다. 

교수님은 하고 싶은 말을 마지막에 했고, 그게 전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건 결국 전해지지 않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역시, 나의 곧이 곧대로 듣는 성정이 문제인 건가. 


순정한 말들은 연약해서, 부끄럽고 깨지기 쉬워서 그런 걸까. 나의 부모가 나에게 했던 대답 같은 거였을까. 

상대가 더 잘 받아들일 만한 말들로 문을 열어야 상대가 듣기 시작하게 할 수 있어서 그런 걸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으니 그런 거였을까. 듣기 좋게 말하는 걸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아이에게 담백하고 정직하게 말하려고 노력하지만, 내 말은 내 뜻은 전해지고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eBook] 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루나 +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 옛날 옛적 판교에서 + 책이 된 남자 + 신께서는 아이들 + 후루룩 쩝접 맛있는
서윤빈 외 지음 / 허블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북으로 받아서 읽었다. 순서대로 읽으려다가 관심이 가는 대로 목차에서 골라 읽었다. 

루나를 읽고, 후루룩 쩝쩝 맛있는,을 읽고, 책이 된 남자,를 읽은 다음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옛날 옛적 판교에서는 순으로 읽었다. 후루룩 쩝쩝 맛있는,까지는 작가의 말까지 읽었는데, 다음에는 뭐 굳이,라면서 읽지 않았다. 이렇게 다 읽었다고 김보영님 심사평을 읽었는데, 안 읽은 소설 이야기가 있는 거다. 뭐지 싶어서 다시 목차를 보고, 인터넷 서점에서 책 검색해서는 그 쯤 되는 페이지를 열어서 겨우 '신께서는 아이들을'을 읽었다.- 이북 목차에 빠졌다고 백자평에 올리고 나서, 알라딘 고객센터에서 출판사에 연락해서 수정해주셨다. 지금은 목차에 나오더라. 알라딘에서 받아 본 이북이 아닌데-_-;;; 무척 감사했다.- 나의 질문은 아닌 이야기들이었다.


루나,는 설정 자체가 신기했다. 바닷 속의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와 같은 묘사로 우주에서 광물을 채취하는 공동체에 대해 묘사한다. 


후루룩 쩝쩝 맛있는,은 인간이 동물을 먹는 것의 역지사지 같이, 외계생명체가 인간을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무언가 그런 이야기기는 했지만, 뭔가 개그처럼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읽고는, 작가의 말에 빈정이 상해서 다음부터는 작가의 말을 설렁설렁 읽었다. 


책이 된 남자,는 배경도 이야기도 여기는 아니다. 이야기는 두 가지 층위에서 굴러간다. 중세의 책 사냥꾼이 수도원에서 책을 필사하고, 그 책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뇌가 절편처럼 썰려서는 책 속에 갇힌 남자와 책을 통해 대화하면서 그 남자가 책이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전개된다. 테드 창의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생각이 많이 났다. 아예 모르는 세상 이야기라, 옛날 이야기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블랙박스와의 인터뷰,는 전뇌화라는 설정으로 우주 식민지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미래의 인간은 이렇게까지 죽음이나 이별을 견디지 못할 것인가, 생각했다. 나는 인간이란 전인적 존재를  믿고 있어서 전뇌화한 존재들에 대한 묘사가 싫다. 뇌만이 살아있으면 나란 존재는 살아있다는 식의 어떤 묘사, 유심칩을 갈아끼우 듯이, 온 몸을 대체하는 미래가 무언가 싫어서 계속 화를 내고 있다. 타인과의 관계는 어디에 있는가, 싶은 이런 기술의 개발들은 누구에게 필요한가,라고 질문하기도 한다.


옛날옛적 판교에서는,은 뭐지 싶다. 


신께서는 아이들을,에 대해서도 뭐지, 싶었다. 작가의 말을 스치듯이 읽고는 아마도, 아이들에게는 심판이 기다리는 어른들의 저승말고 다른 저승을 주고 싶었나보다, 생각했다. 과학소설이라기 보다 환상소설이고 나는 무언가 내가 공격받는 인상을 받는다.  


내가 이야기의 쓸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마음 속에 품은 질문은 뭔지 열심히 찾는 사람이라서, 모든 이야기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겠어, 에 더하여 특별히 내가 싫어하는 주제들이라 그랬다. 블랙박스와의 인터뷰,나 후루룩 쩝쩝 맛있는,은 잘 읽히고 주제가 뭔지도 알겠는데 싫은 이야기였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영생을 추구하는 것은 끔찍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후루룩 쩝쩝 맛있는,은 이야기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작가의 말이 노골적이라 싫었다. 그 이야기는 우주 유머 같았다. 혈관만 교체해주겠다는 꽤 괜찮은 조건이 아닌가, 좀 키들거렸었거든. 그런데, 작가는 동물권에 대해서 말하면서 바꾸자고 덧붙였다. 아, 이야기는 그런 인상을 주지 않는데, 자신은 그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왜 쓰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이 영생,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왜 나는 '책이 된 남자'에는 싫다는 감상이 덜할까 생각했다. 아마도 후회에 대한 말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배경이 이국적이라 그런 걸 수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