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 -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
잭 홀런드 / ㅁ(미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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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멀어진 관심이라, 잠깐 생각했는데, 백자평 중에 '누구는 페미니즘 책으로 읽겠지만, 내게는 안티페미니즘 책으로 읽혔다'(https://blog.aladin.co.kr/771186155/12808177) 는 걸 보고 궁금해서 읽었다. 


여기 저기 주워들은 게 많았어서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2131800) 동양의 사고가 그러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남의 나라 이야기를 꽤나 성실히 듣는 와중에, 그리스의 이원론적 철학이 기독교의 결벽적인 신과 만나서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듣는다. 이야기들이라서 재미있다. 세상을 굴리는 하나의 축으로서 이야기가 남아서, 어떤 형상들을 만드는지 본다. 태어난 게 죄라니, 참 나, 그게 뭐야,라고 기독교에 대해 들었을 때 느꼈던 어린 날의 반발심이 되살아나는 믿음들이다. 태어난 게 죄고, 성교가 죄고, 야, 참 쓸모없는 믿음인데, 이런 믿음을 왜 만들었을까? 선과 악이 분명하고, 언제나 선을 택해야 하는 가혹한 신의 차별적인 사랑 아래서 차별적인 사랑을 받겠다는 거야? 이런 믿음을 가지고 어떵게 공동체를 꾸리고, 어떻게 아이를 낳고, 어떻게 제 정신으로 살 수 있어? 먹고 자고, 사랑하고 삶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것들을 이렇게까지 경멸하면서 어떻게 제 정신으로 살 수 있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왜 서양의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를 믿었을까?  그러면서, 도대체 저런 믿음으로 어떻게  지금까지 존속하는가, 의문을 가진다. 

종교가 권력과 결탁했기 때문에, 차별하는 신의 그늘 아래로 너무 많이 들어와서 지금 어쩌지 못하는 상태에 봉착한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믿지 않는 자를 처단하던 신의 이름이 지금 작동할 수 없는 세계 가운데, 극단의 믿음들이 다시 창궐하는 건 이미 그 안에 품고 있는 이기심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논어 세번 찢다,를 읽었을 때 이런 대목을 만났다 '중국의 전통과 서양의 전통은 사실 다‘구분‘을 말하고 있으나, 정치와 종교, 승려와 속인의 관계가 다르며 구조도 완전히 상반된다. 저들의 전통은 정치와 종교의 합일이다. 즉 종교는 통일되었고 국가는 다원화되었다. 반대로 우리의 전통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이다. 즉 국가는 통일되었고 종교는 다원회되었다. 만일 기어코 천일합일을 논해야 한다면, 그 역시 저들의 것이지 우리의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전통은 정치를 부각시키는 것이고, 저들의 전통은 종교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저들의 상태가 훨씬 더 원시적이다. -p248' https://blog.aladin.co.kr/hahayo/10881133) 

권력과 결탁한 종교의 강력한 힘 아래에서 광신은 작동하고, 마녀사냥과 탈레반이 등장한다. 스스로의 믿음의 기준에서 벗어난 자들을 처단할 수 있다는 생각은 권력과 결탁하여 힘을 발휘한다.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 광신은 다시 작동한다. 

나의 믿음의 바탕이 저런 게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의 믿음의 이야기들은 저 믿음의 방식으로 보면 엉망진창이고, 비논리적이고, 관용적이다. 나는 나의 동양적 가치관의 토대를 좋아한다. 이런 태도들이 물론 서양에도 있다는 것도 안다. 이반 일리치를 만났을 때(https://blog.aladin.co.kr/hahayo/13206446), 행복의 경고 속의 할머니를 만났을 때, 서양에도 없는 건 아니구나 생각했다. 존재하는 데 아마도 권력과 결탁한 광신 가운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원론과 피라미드 식의 위계적인 사고 안에서 무능한 어떤 것으로 평가받았다고도 생각한다. 그 사회 안에서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어떤 쓸모 가운데, 기독교에 식민주의에 여성학살에 동조자가 되었다. 초기 기독교가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존재로 보고, 여성에게 성교나 출산의 의무를 지우지 않는 -아마도 성교 자체를 죄악시 하는 태도 때문에- 것 때문에 죽음의 위협을 회피하고자 하는 가운데, 여성들을 통해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는 묘사가 보였다. 


도덕적인 규제가 인간 본성을 거스를 때 필연적으로 위선이 나타난다. (80%)


동양에 대한 이야기는 짧고 피상적이다. 여아 살해와 가부장제에 대해 말하지만 저자에게는 미지의 영역이니 딱 적당한 분량이다. 


좋은 말들을 많이 쓰고, 별 하나를 뺀 건, 이라영 님이 붙인 글에 자기반성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여성혐오의 장면으로 언급하는 것은, 탈레반이나 기독교 원리주의, 공산주의에서 여성들의 자기치장 욕구를 어떻게 억압하는지에 대한 것들이다. 서양의 위계적인 사고 가운데, 화장을 하기보다 책을 읽어 지성을 드높이라던 여성주의자의 발언도 빠지지 않는다. 이게 지금의 탈코르셋에 대한 말들처럼 보여서 나는 해방감을 느꼈는데, 이라영님은 오해한 거라고 말한다. 누구보다 여성혐오적인 여성주의자의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존재하는 가운데, 자신의 본성을 들여다보고 쓸데없이 허황한 말들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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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3-01 1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최근 읽은 책과도 연결이 되는 부분이 있어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별족님 주소링크 추가하실때 (작성시)우측에 있는 링크에 넣어 올리심 모바일에서도,PC에서도 바로연결이 됩니다. ^^*
 
[전자책] 랩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출판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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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저기 좋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다 늦게 이북으로 읽었는데 도대체 딸이 이 사람 같았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은 뭐지, 싶다. 엄마는 되지 못하겠고 아빠가 되 주겠다는 건 뭐지, 그럼 아이는 아빠만 둘인 건가, 도대체, 엄마랑 아빠의 차이는 뭐지.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서양인들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사는 사람들이 쓴 책은 안 읽나, 싶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잠을 안 자고, 이렇게까지 대충 먹는데- 자기가 쓰는 자신의 책이니 과장일 수도 있지만- 자기 딸이 이 사람 같았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은 도대체 뭔가 싶다. 어디서든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할 필요가 있지만, 몸을 축내면서 하는 성공을 자기 자식에게 바라는 부모는 과연 부모인가 의심하기까지 한다. 

그렇다, 나는, 먹고 자는 데 진심인, 살아가는 데 성공이 도대체 뭔가 의심하는, 아무도 날 성공이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내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한 것,이다. 쉬지 않는 머리로는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무들에 대해 쓴 부분들은 좋았다. 신기하기도 하고,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연구실의 삶에 대한 부분,이나 조교와의 관계는 병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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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2-26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별족 2022-02-26 09:23   좋아요 0 | URL
?
 
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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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지기 활동을 하던 딸아이에게 도서관에서 여름방학에 읽으라고 보내 준 책이다. 재밌다면서 내게도 읽어보라고 했다. 어느날은 자신은 저만치 따로 있는데, 2학년 여자아이들과 도서관 사서선생님이 이 책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듣는데, 사서선생님이 아이를 혼자 키우게 한 아이의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다는 거다. 자신은 그 아빠가 나쁘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고, 그 어려운 와중에 아이를 키워내는 엄마들이 참 멋있었다고 내게 말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 엄마가 아이를 혼자 키운 이유, 아이가 그 아빠를 같이 욕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서 나도 책을 읽었다. 

책 소개에 있는 대로, 하와이의 사진신부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 소녀 셋이 사진만 보고 결혼하고 머나먼 하와이에서 삶을 꾸린다. 팍삭 늙은 남자가 젊은이의 사진을 보내기도 해서 처음 신랑을 만나는 날은 웃음보다 울음이 나고, 소녀들은 그래도 살아서 엄마가 된다. 주인공인 소녀는 그래도 젊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는데, 식민지 조선이 조국인 이 사람들에게 조국의 안위는 중차대한 관심사고 독립에 대한 열망도 커서 그 안에서 세력이 나뉘어 독립운동을 한다. 그러니까, 아빠가 엄마에게 아이를 혼자 키우게 하고 떠난 건 독립운동 때문이었다. 내 아이들에게 독립된 조국을 주고 싶어서, 아빠는 아이와 엄마를 두고 떠났다가 병들고 지친 몸으로 돌아온다. 엄마는 아빠없이, 사진신부로 온 친구들과 세탁소를 꾸리면서 아이들을 키운다. 강인하고 멋있다. 

독립운동을 위해 가족을 돌보지 않은 아빠를, 그저 나쁘다고 할 수 있나. 여자들의 이야기라 남자는 많은 순간 사라지고 없는 이야기다.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남자의 삶이나 상황은 묘사되지 않는다. 여자들의 이야기만 있는 가운데, 여자들의 어려움이 과장된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운데 남자들에게 어떤 희생이 있었을지도 알 수 있지 않는가.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은 살아남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배제시키기까지 한다면 어떻게 국가가 공동체가 존속할 수 있을까. 그리고, 국가없는 여성의 삶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과거의 이야기들, 현재 많은 나라들의 이야기들 가운데, 나는 독립운동을 했던 아빠를 욕할 수 없는 딸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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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겨울호랑이님의 "<윤석열 X파일>과 <굿바이, 이재명>을 읽고... 이들의 차이점과 공통점"

씨네21을 정기구독할 때, 영화진흥공사 사장(정확하지는 않)님의 부고 기사가 실렸던 적이 있습니다. 공무원이고 낙하산이었던 그 사장님이 어떻게 영화인들의 마음을 얻었고, 어떻게 영화인들을 위해 일을 했는가,에 대한 그 많은 기사를 보면서, 저는 아 사람들이란 사람의 일이란 참 복잡하구나, 생각했었죠. 그 사장님이 마음을 얻었던 방법은 영화인의 모든 애사에 가셨었다고, 환영받지 못하는 자리에 열심히 가셨다는 거였어요. 가서 말하고 들으면서 마음을 얻었다고. 그 때, 저는 젊었고, 한겨레의 어떤 말들과 그 기사가 부딪친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좋은 사람이란 뭘까, 정치를 한다는 건 뭘까, 마음을 얻는다는 건 뭘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랬던 것도 같아요. 지금은 그런 충돌-만나서 좋은 사람과 정치를 했을 때 훌륭한 사람이 거의 상반되는- 때문에 선거가 과연 좋은 걸까 의심하는 지경이기도 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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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라는 책을 읽고 '동양과 서양은 다르다'(https://blog.aladin.co.kr/hahayo/10530930) 라는 서평을 쓴 적이 있다. 

많은 서평들에 그런 생각들을 썼고, 동양이나 서양으로 태그를 달았지만, 그래도 어딘가 빠진 게 있으려나 다시. 


1. 생각의 지도, 플루언트

https://blog.aladin.co.kr/hahayo/2508428

 

2009년에 읽었다. 서양의 학자가, 동서양 사고방식의 차이를 묘사하는 책이다. 동양인인 내게 가끔 설명이 비는, 서양인에 대한 설명은 적고, 동양인에 대한 설명은 많은 책이었다. 원숭이와 코끼리를 묶는 서양인과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는 동양인에 대해, 어항을 묘사하기 위해 서로 다른 것들을 말하는 동양인과 서양인을 말한다. 

플루언트,라는 책에서 본 내용인지도 모르겠네. 동양인과 서양인은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식으로 세상을 품고 살아간다는 이야기였는데.  (https://blog.aladin.co.kr/hahayo/8913535)

 

2. 요재지이

요재지이,를 질로 들여서는 후루룩 읽었다. 읽고 신기한 이야기들 가운데, 아, 동양인과 서양인은 다르네, 생각한 이야기는 이런 거였다. 부인이 못생겼다고 머리를 바꿔치는 이야기.

나는 중학교 때였던가, 미래소설 가운데, 머리만 남아 있는 어떤 존재가 그대로 살아남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아, 신기하네. 서양 사람들은 뇌가 남아있으면 그 사람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동양사람들은 심장-몸-이 남아 있으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신기해했다.

지금은 미래물에서 몸 전체를 잃고 뇌 한조각만 남겨서는 그게 바로 그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읽기도 했다. 현대의 나는 유심칩을 갈아끼우면서, 뇌에 남는 정체성을 실감하고 있는 것도 같다.

 

3. 행복의 경고 https://blog.aladin.co.kr/hahayo/9118347

 

2017년에 읽었다.

책 속에서 작가의 할머니는 작가의 노트에 '행복은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있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데 있다' 라고 적어주고 작가의 어머니에게 타박을 듣는다. 그 말이 가지는 어떤 지혜에도 불구하고, 현대 산업사회, 서구 문명사회에서 환영받을 수 없는 태도라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어머니의 어떤 태도, 자신의 딸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 위로 향하는 한계없는 서구의 어떤 태도를 나는 보는 것 같은 마음이 되었다. 

 

 


너무 흩어져서, 태그로 찾아 읽는 편이 좋겠다. 요재지이,는 아무래도 안 쓴 거 같아서 남겨놔야지. 

 

동양과 서양은 다르다. 나는, 서양의 문명이 어린 마음을 고양시키는 방식으로 팽창했다고 생각한다. 자국 내 불가능한 팽창이나 성장은 외부의 식민지를 요구했고, 지구 상 모든 세상이 열려버린 지금은 우주로 뻗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멋진 새 옷을 입고, 커다란 집이나 차를 우쭐거리며 자랑하고 싶은 어린 마음을 부채질하고,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위계지우고 그 위계 가운데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어린 마음을 부추긴다. 어린 마음들은 고양되고, 각자의 역할, 각자의 기여, 공동체의 수고, 지구를 구성하는 하나의 존재, 자연과 공존하는 작은 존재인 스스로를 용납하기 어렵다.

남자에겐 가능한데, 여자는 왜 안 돼!라는 억울한 마음은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마음이어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어린 마음이라서 이해하기 부끄럽다. 그 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나중에 나이들면 부끄러울까봐 걱정스럽다. 어린 남동생의 자유분방함을 내버려두는 엄마에 대한 억울함으로 나도 팬티만 입고 집 밖을 뛰쳐나갔다가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개진 적 있는데 왜 모르겠는가.

복잡하고 어려워서 이해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단순하고 어린 마음이라서 이해할 수 있지만 말리는 거다. 지나간 다음 흑역사로 박제될 거라서, 지나간 다음 자신에게 부끄러워질 말들이라서. 뭐, 나도 그 날들 다 지나서 지금이기는 하니, 그 사람들도 알게 되면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지금의 문화가 자라지 않기로 결심한 건가 싶어서 걱정스럽다. 어른이 되지 않는 문화 가운데, 과연 깨닫는 순간이 있을까. 단순하고 평범한 삶을 그래도 꾸준히 살아간다면 깨닫게 될 것들을, 스스로의 특별함에 대한 강한 믿음 가운데 결국 깨닫지 못할까 걱정한다. 어린 마음에 수도 없이 뱉어낸 자신의 말에 갇혀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시간을 흘러보내고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깨달음 얻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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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02-14 2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양이 어리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그런데 서양이 얼마나 어린지 평소 궁금했는데 제가 여러 책을 읽어 본 바로는 대략 약 2000년 어린 것 같습니다. ㅋ 맞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별족 2022-02-14 17:54   좋아요 1 | URL
ㅋ 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