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언트 - 영어 유창성의 비밀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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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제였더라. '옆에 한국사람 없으면, 더 잘 말할 수 있어'라고 말한 적 있다. 하고 싶은 말의 수준이라는 것이 얄팍하기 그지없는데, -이게 뷔페인가요? 나 이게 얼마인가요? 정도- 옆에 한국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품평이 무서워서 입이 안 떨어지는 내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배울만큼 배웠지만, 유창해지기 전까지 말하기보다 듣고 품평하기를 즐기는 사람들 속에서 영어,처럼 계급적인 언어를 입밖으로 꺼내기가 어렵다는 거지. 뭐, 더 잘 말한다고 해도 부끄러운 수준인 건 알고 있다. 다국적의 사람들이 영어로 수업받는 교육에 갔다가 '대학은 졸업했느냐'라는 질문도 받아봤다. 그건, 그 나라가 공식어로 영어를 쓰는 나라였다는 것은 차치하고, 내가 형편없는 영어 말하기를 구사하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는 거지. 그때의 나는 잘하고 싶었지만, 지금의 나는, 도대체 왜,라는 지경이다. 아이쿠, 공식어가 영어가 아니어서 나라에 말과 글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어이쿠, 내가 살면서 여즉 영어쓰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데, 만났어도 하고 싶은 말이 없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까도 싶고. 영어를 아무리 잘 해도, 하고 싶은 말이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싶어가지고는 그래 영어공부 그만하자, 가 되었다.

책은, '인문학적 지식이 풍부하다'는 서재 분의 소개 때문에 읽기로 한 거였고, 동기부여를 위한 도입부에 뚱해졌다가(일본에서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하는 박사도 노벨상을 받거든, 그러니까, 언어가 아니라 내용이라고), 영어의 구조나, 우리말의 구조, 동서양 사고방식의 차이 등을 재미나게 읽다가, 유창해지려면, 이것저것 하라는 대목에서 더 읽기 싫어진 거다.

아, 영어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의사소통하기 위해 구사했던 방식이구나. 영어에 유창해진다는 것은, 그 문화에 유창해지는 거라서, 차라리, 영어를 못하는 이방인으로 나를 대할 때, 그 사람이 내게 더 관대해지는 거구나, 까지 읽은 다음이니. 아 도대체 왜 유창해지겠어,가 되는 거다.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할 수 있어야 소통이 되지요,라고 묻는다면, 아, 제가 최근에 우리말로도 설득에 실패했어요. 라고 말하고 싶다. 문화를 공유하고,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제가 소외감을 느낀다구요. 더 많이 더 얄팍하게 말하면서, 어떤 만족감을 느낄지 알 수 없는데, 우리 말도 못하는 주제에 영어가 유창해질 때까지 어이쿠 그 공부 안 할래요,가 된 거다.

 

그 다국적 수업에서 나는 그 수업에 참여한 선배 여성들에게 묻고 싶은 말을 묻고, 대답도 들었다. 대화를 가로막는 장벽은 발음을 품평하는 나의 태도나, 귀기울여 듣지 않는 나의 무심함이었지, 마구 토막나 흩어지는 엉망진창 영어단어들이 아니었다.


* 지금 막 끝까지 읽었다. 다른 언어를 익히는 게 다른 영혼을 갖는 거라는데, 책 속에 분열된 자아가 폭발한다. 언어학이나 인문학 책으로 만들었다면, 책이 안 팔릴 거라서 이렇게 썼는지 모르겠으나, 언어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글로벌 링구아 프랑카인 영어를 마스터하는 것이, 한국이라는 좁은 우물을 빠져나와 세계인을 이해함으로써 세계평화에 기여할 거라는데. 이해가 되냐고 되묻고 싶다. 언어 전쟁에 우리 말이 살아남도록, 우리 말을 더 열심히 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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