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라는 책을 읽고 '동양과 서양은 다르다'(https://blog.aladin.co.kr/hahayo/10530930) 라는 서평을 쓴 적이 있다. 

많은 서평들에 그런 생각들을 썼고, 동양이나 서양으로 태그를 달았지만, 그래도 어딘가 빠진 게 있으려나 다시. 


1. 생각의 지도, 플루언트

https://blog.aladin.co.kr/hahayo/2508428

 

2009년에 읽었다. 서양의 학자가, 동서양 사고방식의 차이를 묘사하는 책이다. 동양인인 내게 가끔 설명이 비는, 서양인에 대한 설명은 적고, 동양인에 대한 설명은 많은 책이었다. 원숭이와 코끼리를 묶는 서양인과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는 동양인에 대해, 어항을 묘사하기 위해 서로 다른 것들을 말하는 동양인과 서양인을 말한다. 

플루언트,라는 책에서 본 내용인지도 모르겠네. 동양인과 서양인은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식으로 세상을 품고 살아간다는 이야기였는데.  (https://blog.aladin.co.kr/hahayo/8913535)

 

2. 요재지이

요재지이,를 질로 들여서는 후루룩 읽었다. 읽고 신기한 이야기들 가운데, 아, 동양인과 서양인은 다르네, 생각한 이야기는 이런 거였다. 부인이 못생겼다고 머리를 바꿔치는 이야기.

나는 중학교 때였던가, 미래소설 가운데, 머리만 남아 있는 어떤 존재가 그대로 살아남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아, 신기하네. 서양 사람들은 뇌가 남아있으면 그 사람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동양사람들은 심장-몸-이 남아 있으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신기해했다.

지금은 미래물에서 몸 전체를 잃고 뇌 한조각만 남겨서는 그게 바로 그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읽기도 했다. 현대의 나는 유심칩을 갈아끼우면서, 뇌에 남는 정체성을 실감하고 있는 것도 같다.

 

3. 행복의 경고 https://blog.aladin.co.kr/hahayo/9118347

 

2017년에 읽었다.

책 속에서 작가의 할머니는 작가의 노트에 '행복은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있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데 있다' 라고 적어주고 작가의 어머니에게 타박을 듣는다. 그 말이 가지는 어떤 지혜에도 불구하고, 현대 산업사회, 서구 문명사회에서 환영받을 수 없는 태도라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어머니의 어떤 태도, 자신의 딸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 위로 향하는 한계없는 서구의 어떤 태도를 나는 보는 것 같은 마음이 되었다. 

 

 


너무 흩어져서, 태그로 찾아 읽는 편이 좋겠다. 요재지이,는 아무래도 안 쓴 거 같아서 남겨놔야지. 

 

동양과 서양은 다르다. 나는, 서양의 문명이 어린 마음을 고양시키는 방식으로 팽창했다고 생각한다. 자국 내 불가능한 팽창이나 성장은 외부의 식민지를 요구했고, 지구 상 모든 세상이 열려버린 지금은 우주로 뻗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멋진 새 옷을 입고, 커다란 집이나 차를 우쭐거리며 자랑하고 싶은 어린 마음을 부채질하고,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위계지우고 그 위계 가운데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어린 마음을 부추긴다. 어린 마음들은 고양되고, 각자의 역할, 각자의 기여, 공동체의 수고, 지구를 구성하는 하나의 존재, 자연과 공존하는 작은 존재인 스스로를 용납하기 어렵다.

남자에겐 가능한데, 여자는 왜 안 돼!라는 억울한 마음은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마음이어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어린 마음이라서 이해하기 부끄럽다. 그 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나중에 나이들면 부끄러울까봐 걱정스럽다. 어린 남동생의 자유분방함을 내버려두는 엄마에 대한 억울함으로 나도 팬티만 입고 집 밖을 뛰쳐나갔다가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개진 적 있는데 왜 모르겠는가.

복잡하고 어려워서 이해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단순하고 어린 마음이라서 이해할 수 있지만 말리는 거다. 지나간 다음 흑역사로 박제될 거라서, 지나간 다음 자신에게 부끄러워질 말들이라서. 뭐, 나도 그 날들 다 지나서 지금이기는 하니, 그 사람들도 알게 되면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지금의 문화가 자라지 않기로 결심한 건가 싶어서 걱정스럽다. 어른이 되지 않는 문화 가운데, 과연 깨닫는 순간이 있을까. 단순하고 평범한 삶을 그래도 꾸준히 살아간다면 깨닫게 될 것들을, 스스로의 특별함에 대한 강한 믿음 가운데 결국 깨닫지 못할까 걱정한다. 어린 마음에 수도 없이 뱉어낸 자신의 말에 갇혀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시간을 흘러보내고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깨달음 얻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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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02-14 2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양이 어리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그런데 서양이 얼마나 어린지 평소 궁금했는데 제가 여러 책을 읽어 본 바로는 대략 약 2000년 어린 것 같습니다. ㅋ 맞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별족 2022-02-14 17:54   좋아요 1 | URL
ㅋ 2000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가치가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미미님의 글(https://blog.aladin.co.kr/759250108/13338995)이 나의 글(https://blog.aladin.co.kr/hahayo/13333280)에 대한 어떤 말처럼 들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말은 아니지만 오독의 여지가 있다.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가치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0737472)

말들이 합리로 가득 차서, 다른 가치에 대해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었다. 어쩌면 그것도 페미니즘 때문이다. 1세계 페미니스트 책들을 읽다가, 마음속에 껄끄러운 감정들-참, 나 우리 엄마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고!!!같은-이 '에코 페미니즘'을 읽으면서 납득이 되었었다.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도시에 살지 않는다고 해서, 선진국이 아니라고 해서, 박사학위가 없다고 해서,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시민-도시의 사람이란 의미로-이었던 적 없는 나는, 1세계 여성 페미니즘이 합리성의 언어로 침해하는 무엇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선물,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했다. 돈 대신 무언가를 골라서 주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또 이런 생각도 했다. 선물을 하는 내 마음은 어쩌면 우월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고. 선물을 주는 사람이 자신의 선물에 자부심을 가질 때 선물을 받는 사람은 고깝다. 선물을 받는 사람이 선물이 고까울 때 그 선물은 이미 선하지 않다. 선물을 줄 때는 내 선물이 보잘 것 없을 수 있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선물을 받을 때는 선물이 귀하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선물을 주는 사람이 '이 귀한 걸 알아보지 못하다니 한심하다'고 선물받은 사람을 타박하는 것은 합당한가? 선물받은 사람이 '참, 나 이런 쓸데없는 걸 선물이라고 골랐다니, 참'이라고 선물한 사람을 타박하는 것은 합당한가. 어쩌면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태도 뿐이다.  말이라고 다른가.

내가 상대에게 하는 말은 나의 삶들 가운데 발화한 것이고, 풍성한 삶의 다양한 결 가운데 겨우 한 자락이 빈곤한 언어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말해도 오해할 소지는 있고, 그건 상대보다 나의 잘못이라는 태도로 다시 말해 볼 수 있다.

내가 듣는 사람이라면, 상대의 삶들 가운데, 그 말들의 결을 열심히 들으려 애쓰고, 알아들을 수도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벌어질 수 있는 오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말하려는 사람이라면 더 열심히 자신의 말에 부족한 부분들을 설명하면서 거리를 좁혀보려고 해야 하고, 듣는 사람이라면 더 열심히 자신이 오해한 부분들을 살피면서 더 적극적으로 질문하면서 거리를 좁혀보려고 해야 한다. 그 가운데, 다른 삶을 살아온 서로를 아주 조금씩 이해할 수도 있다.

문해력,이란 말은 엘리트주의처럼 들린다. 나도, 내가 좀 더 문해력이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고, 내 자신이 오해한 말들을 반성하고 노력하지만, 그 말을 내 아이들이 모른다고 해서, 내 아이들에게 설명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내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로 두 번도 세 번도 다시 말한다. 나의 아이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대방을 '문해력이 떨어지니' 자신과 대화할 상대가 못 된다고 밀어놓기 보다, 저 사람의 삶 가운데 무엇이 이 말들을 이해할 수 없게 했는지 그 사람의 삶의 언어로 다시 한 번 말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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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2-14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쭉 생각하던 문제인데 마침 책에 나와서 쓴 거예요. 마침 별족님이 최근에 저 글을 쓰셨던 관계로 별족님을 향해 썼다고 생각하실까봐 잠시 망설이다 썼어요. 저에게 중요한 발견이었거든요. 저는 제 이전 글(어렵게 쓰여진 글에 관해..)을 제목이 생각안나 찾지못해 링크를 못올렸어요.

근데 발화조차 못하는 생각들이 있더라구요. 침착하게 말해야한다, 논리적이어야한다, 감정적이어선 안된다 등등 이러한 것들이 안그래도 움츠려든 약자들의 발화를 막고 용기내어 의견을 담은 글이 더 이어지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요.

‘누구의 말이 이해하기 어렵다‘보다 먼저 필요한건 누구든 어떤 의견이든 자기방식대로 자유롭게 발화시키고 써야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누군가가 이해할 수 있게 부연설명하느라 발화자가 지치고 앞으로의 표현이 위축될 수 있다고요.

예술에서의 표현, 언어에서의 의견표출, 창작에 대해서요.

별족 2022-02-14 10:31   좋아요 3 | URL
우선, 제가 도끼병이었던 걸로. -_-;;;
저도 시끄러운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요새는 발화하는 사람들이 너무 고압적이어서(https://blog.aladin.co.kr/hahayo/12131800)-내 말을 못 알아듣다니 멍청하구나! 너는 공부를 좀 해야 한다!- 화가 나 있는 거 같습니다.
참, 저는 서구문명이 어리석음을 고양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https://www.millie.co.kr/h4/checkit-test/

명절 교통편을 기다리는 시간에 딸아이가 해보래서 했다.

결과가 썩 듣기 좋지 않았다.

책 좀 읽는다고, 남의 오타 고쳐주는 걸 꽤나 즐기는 주제에, 아 이 정도밖에 안 되네, 하는 마음에 좋지 않은데, 옆에서 딸 아이가 낄낄대는 것도 안 좋은 마음을 부채질했다. 

그러다가, 늘 내가 잘하는 자기 변명의 순간이 도래했다. 

우선, 딸아이랑 이건, 책장사치들의 농간이다,로 정리했다. 

그러고 나니까, 대부분 나쁜 평가결과가 납득이 되었다. 짧게 변명한 다음에는 다시 길고 긴 합리화의 말들을 찾았다. 내가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읽은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 책들은 항상 쉽게 쓰라고 했었다. 어렵게 써 놓고는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말하다니, 이거 참 교활한데 싶어졌다. 못 알아들으면 설명해주려고 해야지, 더 쉽게 설명해야지, 이 사람들 이제 '문해력이 떨어졌으니 문해력을 키우라'고 하네. 싶어서 참. 

언어가 가지는 한계가 분명한데,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상대방 탓을 하는 게 좋은 건가, 싶다. 세상 참 신기하게 변하네, 하는 마음까지 든다. 

문해력 테스트, 어려웠다. 나쁜 결과를 받아들고 시험 탓을 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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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2-02-11 0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수에게 이해가 잘 되고 의미가 잘 전달되는 글이 좋은 글이라 생각하는 1인입니다. 쉬운 글이 수준 낮음을 뜻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솔직히 저는 다른 이웃분들의 글도 많이 어려워요😅 읽다보면 좀 더 이렇게 저렇게 바꿔서 쉽게 쓰셔도 될텐데 싶을 때가 많더라고요...ㅎㅎ

별족 2022-02-11 09:26   좋아요 2 | URL
어렵게 써놓았거나 이상하게 들려서 물어보면 공부하고 오라고들 해서 -_-;;;;
 

예전에 독도이슈가 화르륵 타올랐을 때 동생이 '누나, 이러는 게 일본이 바라는 거야'라고 했었다. 분쟁이 생기고, 국제재판소에 올라가는 것, 그게 일본이 바라는 거라고. 당연하게 점유하고 당연하게 우리 땅인데, 왜 재판에 올리겠냐고. 심판이 오염되었을 수도 있는데, 라고 말했다. 아, 기분 상 더 이야기하고 싶어도 참는 게 좋을 수도 있겠네, 생각했다. 나한테 그렇게 말한 동생은 중국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했다. 동북공정으로 화르륵 분노의 여론이 끓어오를 때, 근대국가의 국경은, 역사상 국경과 분명히 다르고, 그럼 중국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 거냐며, 지금 중국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는 일부분 중국의 역사로도 기술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생의 말들을 들어서 나는 좀 더 가만히 있기로 했다.

베이징에서 동계올림픽이 시작되었다. 개막식에서 중국 내 수많은 민족들이 자신의 전통의상을 입고 거대한 중국의 오성홍기를 떠받쳐서 옮겨서 게양했다. 그게 '한복공정'이란 이름으로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게 왜?라고 생각한다. 이웃으로 살고, 영향을 주고 받으며, 그 영향이라는 것은 사람들이기도 해서,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전쟁으로 포로가 되어 살기도 하고, 일제강점기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기도 했다. 바랐건 바라지 않았건 살게 된 후로 국경이 고정되고 국경 내 사람들은 이제 근대국가의 사람들이 되었다. 조선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일본에도 미국에도, 중국에도 우크라이나에도 살고 있다. 대한민국은 조선과 국경이 같지도 않고, 그대로 정체성을 이어오지도 않는다. 역사가 길고, 긴 역사 가운데 가지는 어떤 정체성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정체성 혹은 그 감각 그대로 모두 다 내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국경선이 가로지르는 데로, 북한에 갈 수도 없고, 그 모든 역사적 일들을 바로잡아 되돌릴 수도 없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 기억들 가운데에서 살아갈 뿐이다. 

중국의 조선족이 한복을 입는 일은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다른 많은 분노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복은 대한민국의 옷이라기 보다, 조선의 옷이고, 대한민국이라는 근대국가의 정체성을 나라고 생각할 수도 없고, 조선인이었던 사람이 중국에도 살고 있다. 그저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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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하룻밤에 읽는 한국 고대사 페이퍼로드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이문영 지음 / 페이퍼로드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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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시간을 딸'을 다시 읽으면서 그 속에 역사가의 정의에 동의할 수 없었다. 


"역사가는 그들이 무엇을 생각했는가 하는 점을 씁니다. 하지만 조사원은 그들이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을 쫓지요."-p132


역사에 대해 말하는 것에도 의아한 마음이 되었다. 


"역사학자는 펜을 들기 전에 심리학을 좀 배워야겠는걸."

"그렇게 하도록 해도 그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살아있는 사람에게 흥미를 갖는 이는 역사 따위를 쓰지 않습니다. 소설을 쓰거나, 정신과 의사가 되거나, 치안판사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기꾼이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기꾼이 되거나 또는 점쟁이가 되겠지요. 인간에 대해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역사를 쓰려는 동경심 따위는 갖지 않습니다. 역사는 장난감 병정과 같으니까요."-p244


소설 책 속의 역사가는 아마도 위서를 만들어 거짓을 진실인 척 꾸며내는 사람들인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역사를 조작하는 사람들인 걸까? 내가 생각하는 역사가,는 진리는 시간의 딸, 속의 역사가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역사가는 사실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그것들로 씨실과 날실을 짜서 과거의 이야기들 가운데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모색하는 사람들이다. 역사는 장난감 병정이 아니고, 지금의 우리를 비추는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거울과도 같다. 

초록불님 블로그(http://orumi.egloos.com/)로 알고있는 이문영님의 '하룻밤에 읽는 한국고대사'를 읽었다. 역사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소설가가 쓰는 고대사는 비어버린 기록의 틈들 가운데, 그래도 살아남은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크게 남아 있지 않은 고구려사가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만화 바람의 나라,-기억하는 장면은 해명과 어린 무휼이 이야기나누는 장면이다- 때문이구나. 역사란 이야기가, 현실에 경각심을 줄 수 있도록 역사를 가리지도 비틀지도 않아야 한다. 가리지도 비틀지도 않아도 해석이 달라진다는 게 역사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이야기들 가운데, 무언가 인간에 대한 어떤 생각은 권력에 대한 어떤 생각은 위태로움과 번영에 대한 경각심은 가능해지는 게 아닌가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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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2-10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에 제 페이퍼 오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모르고 있었는데, 댓글 읽고 수정할 수 있었어요.
별족님,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별족 2022-02-11 05:5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