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양원목사의 옥중서신을 읽으며 나는 이성복의 시를 떠올렸다.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무관하게 어떤 사람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에만 눈이 갔고, 그 짐이 한 사람의 등에 얹혀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만 마음이 끌린 셈이다.

짐을 진다는 것은 분명 힘이 들고 힘을 써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내 경우 그 짐이 있어 중심을 잡을 때가 있었고, 그 짐이 있어 지리한 시간들을 견딘 적도 있었다. 허공에 걸린 줄을 타는 사람이 막대기를 들고 줄 위에 서는 것처럼 맨몸으로는 도리어 건널 수 없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삶이 시작되는 지점에 함께 존재한 죽음이라는 시간을 외면하거나 잊고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체구가 감당할 수 있는 물리적인 양보다 조금 더 나가는 짐보따리 하나 씩을 등에 메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외롭고 쓸쓸한 죽음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 아마도. 그렇게. 우리는 옥중에서 그리고 남해 금산에서도 짐을 내려놓지 않았던 것이다. 지독히 무섭고 외로워서.

 

편지 1

 

이성복

 

    처음 당신을 사랑할 때는 내가 무진무진 깊은 광맥 같은 것이

었나 생각해봅니다 날이 갈수록 당신 사랑이 어려워지고 어느새

나는 남해 금산 높은 곳에 와 있습니다 낙엽이 지고 사람들이 죽

어가는 일이야 내게 참 멀리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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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모델 - 캐나다 퀘벡의 협동조합 사회경제 공공정책
김창진 지음 / 가을의아침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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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의 모델들이 복제되고 확산되어야 함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컨텍스트의 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모델의 형식만을 복제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확산을 한다고 해서 동일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물론 저자는 퀘벡모델을 통해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는 모델에 대한 영감을 주려고 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걱정이 앞서는 것은 이 모델의 경우 주정부의 의지가 강하고 개입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는 퀘벡모델을 우리나라 지자체들이 유독 주목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니까 퀘벡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은 뒤로 하고, 주정부의 역할만을 주목한다면, 필경 정부 또는 지자체 주도의 계획들이 수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혁신 또는 사회적경제는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아주 다르게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이 성실하고 저자의 주장이 아름다워서 오히려 걱정이고, 태생적으로 물 건너 들어오는 어떤 것들이 미덥지 못한 성정때문인지 읽으면서 자꾸 딴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순전히 독자의 문제다. 책은 매우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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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 문학과지성 시인선 472
임승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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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누군가의 흔적을 뒤졌던 적이 있다. 그리고 흠결을 찾아내면 웃었다. 그리고 그런 날에는 역시나 울었다. 아마 임승유 시인이라면 울었다,라고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은밀함이란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시간을 들어올리는 지렛대를 가져본 적 없는 나는 시인이 부럽다. 그래서 시인의 흔적을 찾아보려 시어들을 쫓아가 본다. 결국 흠결은 찾지 못했고 불길하지만 단단한 진술들과 마주한다. 울기도 뭣하고 웃기도 뭣한 밤이다.

 

구조와 성질

 

임승유

 

 

 

창문을 그리고

그 앞에

잎이 무성한 나무를 그렸다

 

안에 있는 사람을 지켜주려고

 

어느 날은

 

나뭇가지를 옆으로 치우고

창문을 그렸다

 

한 손에

돌멩이를 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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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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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지긋지긋 하다가도 아름다운 한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곳에 터를 잡는데 도움을 준 무학대사가 고맙고 또 고맙다. 그는 이곳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릴 것이라 생각도 못했겠지만 말이다. 물론 이 도시는 둘러보면 숨이 막히거나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한 두 군데가 아니지만, 그래도 적어도 나는 이 도시에서 자랐고 이 도시에 살고 있다. 이제는 삶의 실체가 되어버린 이 도시 안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삶을 가능하게 하려면 도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저자는 보편화된 인권이라는 개념이 개인주의와 소유권 개념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적 소유권과 이윤의 원리는 그 어떤 개념보다 우위에 놓이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 따라서 이런 현실에서 집단적 권리(노동자의 권리, 여성의 권리, 성소수자의 권리, 장애인의 권리 등등)를 획득한다는 것은 때로는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또 다른 형태의 집단적 권리로써 도시권을 호출한다. 이 아름다운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다면 도시권은 무엇인가? 역사 이래 도시권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었는가?

 

책에서 저자는 도시권이란 우리가 원하는 형태에 가깝게 도시를 재창조할 수 있는 권리이며, 이는 개인적 권리가 아니라 집단적 권리라고 정의한다. 물론 도시 형성과정에 한 번도 참여해 본 적 없이 그저 자본의 이동경로에 따라 내몰리려왔던 우리들에게(물론 자본의 이동경로를 편하게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 권리는 낯설기만 한다. 누구에게 가서 우리에게 도시권이 있다고 주장해야 할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행사해야 할지 막연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최첨단 자본의 공습이 일상처럼 달려드는 서울을 바라보고, 서울을 살고 있는 나에게 도시권은 뭔가 솔깃하다. 진짜로 이게 가능하다면. 가능하다고 우리가 믿는다면. 뭐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 거지?

 

자본주의 체제아래서 도시 형성의 핵심 원리는 배제와 약탈이었다. 잘 아는 바 도시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은 자본을 증식하고 증식된 자본이 또 다른 자본을 흡수하는 형태를 띠었다. 거의 운명적으로 약탈과 배제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더 나아가 도시는 과잉자본을 끊임없이 흡수하는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도시에 살던 사람들에게서 도시권을 강탈하는 역할도 충실히 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 지경에서 우리는 도시권으로서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저자는 도시가 과잉자본의 생산을 끊임없이 자행했으니 그 과잉된 자본이 배출한 잉여생산물에 대한 이용과 민주적 관리를 우리가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도시권이 사적 이익집단에게 돌아가는 것을 최대한 막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여하간 도시라는 공유자원을 다시 되찾아 오기 위해 좌파적 분석들이 실패했던 지점들을 확인하고(이 책에서는 엘리너 오스트롬의 분석에 대한 비판으로 이를 확인하고 있다), 여러가지 층위에서의 조직화와 정치 공세를 함께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늘 힘이 분산되어 있어 반자본주의 투쟁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에서 또 다른 해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여하간 나는 이 아름다운 강과 산을 곁에 두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모든 사람들이 지불능력에 의해 고통받지 않았으면 한다. 시간은 다소 걸리겠고 진통도 있겠지만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다. 내 상상 속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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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의 비극을 넘어 - 공유자원관리를 위한 제도의 진화
엘리너 오스트롬 지음, 윤홍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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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을 끓인 맑은 국물을 먹다가 뭔가 아쉽다 싶어 생각해보니 '민어'가 먹고 싶었던 거였다. 민어가 먹고 싶다고 생각하니 또 '서대'가 먹고 싶었고, 서대 생각을 하다보니 할머니가 양은 냄비에 졸여주었던 '황석어' 생각이 났다. 이렇게 줄기 없는 생각이 황석어로 끝이 났는데 그건 아마 오늘 비가 와서 그럴테고, 은행나무 잎들이 마구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이런 아름다운 가을날 나는 더는 황석어를 먹을 수 없다. 안잡히니까. 씨가 마른 것이다. 왜냐. 마구 잡았으니까. 왜 마구 잡았을까. 수산물은 특정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공유자원이니까. 공유자원. 사유재인 양식장의 홍합을 넘들이 마구 쓸어갈 수는 없지만, 저 어정쩡한 바다의 고기들은 중국어선, 한국어선, 베트남어선, 필리핀어선, 수없이 많은 나라의 어선들이 잡아간다. 아주 양껏. 마구. 공유자원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면 그걸 어쩌냐? 이렇게 물으면 단박에 돌아오는 답. 국가가 관리하거나 사유재로 만들면된다고. 그런데 그럴까? 국가가 관리하면 남획을 막을 수 있나? 사적재산으로 만들어 기업에게 넘기면 다 해결이 되나? 진짜로?

 

 

 

그 물음에 대해 다른 시각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국가나 시장이라는 이분법으로 뭐든 해결하려는 무식한 사람들에게 노!노!노! 를 살살 날려주는 책.

그러니까 저자 오스트롬은 '공유라는 체제 자체가 자원의 소진을 불러 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 속에서 자원을 점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자원의 지속성, 공유의 지속성이 결정된다고 봤다. 내가 공유자원의 예로 그저 '황석어'를 가지고 와서 더 감이 안잡힐 수 있지만 공유자원은 이밖에도 무수하다. 비배제적이고 비경쟁적인 재화를 상상하면 된다. 예를 들면 항구의 '등대'도 공유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그러니까 외부의 행위자가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자원에 접근했는지, 어떤 목적으로 감시와 제재를 진행하는지를 살피지 않고, 더 나아가 공동체의 변화 가능성을 무시하며 그저 소유구조를 바꾸자는 주장은 너무 성급하거나 꼼수를 부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맥락에서 공유자원 관리를 위해 제도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여주고 앞으로도 지속가능하며 심지어 성공적인 개발의 조건들을 조명하고 있다.

 

 

다수의 사람이 공동의 혹은 집합적 이익을 가질 때-그들이 어느 목적이나 목표를 공유하고 있을 때-비조직화된 행동은 공동의 이익을 전혀 증진시킬 수 없거나, 아니면 적절하게 증진시킬 수 없 을 것이다(85).

 

 

공유의 문제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대목은 조직화의 문제였다. 이는 독자적인 행동이 개인 또는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때,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조직화'라는 것에 대해 동의하기 때문이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조직화’가 반드시 하나의 조직을 새롭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조직화는 하나의 프로세스라고 볼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나온 산출물이 조직화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는 점이다.

    

여하간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조직화’를  프로세스라고 정의한 부분에 어쩌면 공유자원 관리에 대한 해답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주체들이 상정한 목적과 차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합류하고,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어떤 공통의 기반을 만들고 이행 가능한 제도들을 고안하지만, 결국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긍정적인 역동을 생산하게 하는 수많은 차이와 변화의 교집합을 만들어 내는 과정! 이 과정이야말로 제3섹터에서 생산해내야 하는 궁극적인 사회서비스가 아닌가 싶다. 물론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주어진 과제고.

 

이 책은 다른 경제학 책들과 다르게 수학적인 방법을 크게 사용하지 않고, 실증적인 자료들을 통해 공유자원 관리를 위한 '8가지 디자인 원리'를 밝힌다. 주류 경제학에서 보면 어쩌면 명료하지 않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내가 보기에는 논리적인 추론이 압권인 책이다.

 

'황석어'때문에 시작한 이야기가 길고 두서도 없다. 그렇지만 공유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명료한 답이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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